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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05화 (20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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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은 성희의 오해를 까마득하게 모른 채, 악마들이 무리지어 이동하고 있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악마들은 꽤나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것인지, 제법 행동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깃발을 들고, 제법 흉흉한 기세를 주변에 흩뿌리고 있었다. 웬만한 놈들이라면 기가 죽어 꼬리를 말고 도망갔을 것이다.

저 많은 악마들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천사들도 모두 죽어버린 지금 상황에서 저만한 인원이 움직일 만한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들이 가는 곳이 동쪽이었기에 태상은 더욱 저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때, 갑자기 그들이 이동을 멈췄다.

태상은 자신의 기척을 그들에게 들킨 것인가 싶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곧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앞에 악마가 나타난 것이다. 악마들은 갑자기 나타난 악마에게 존경심을 담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태상도 나타난 악마의 존재감이 대단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호오...?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곧 악마가 뭔가 그들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태상은 귀를 쫑긋 세우고, 저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듣기 위해 노력했다.

“카카로치님!....천사.....심장.....”

거리가 거리인지라 얘기를 듣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 속에서 태상은 카카로치라고 악마를 부른다는 것과 천사라는 단어 그리고 심장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놈이 카카로치인가.'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 몰랐는데, 멀리서라도 놈을 보게 됐으니 운이 좋았다. 갑자기 나타났던 카카로치로 의심되는 대악마는 애기를 듣더니 날개를 펄럭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없단.....도 안 돼는...도대.....디..있....!”

태상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몸을 움직여 앞으로 갔다. 그들이 하는 얘기가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태상은 앞으로 움직인 효과가 있었는지 제법 얘기하는 것을 뚜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대로 돌아갈 순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사들한테서 천계의 심장이 있는 곳을 알아내야 한다!”

“하지만 모두 자결을 하려해서....겨우 막아 놓긴 했지만 자백을 받기가 어려울 듯...컥!”

카카로치가 변명하는 악마의 가슴을 발로 차버렸다.

악마의 가슴이 훅 꺼지며 피를 토하며 순식간에 목숨이 끊어졌다. 카카로치는 죽은 악마를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대기하고 있는 자신의 군대를 향해 외쳤다.

“천사들이 발견한 근방을 샅샅이 뒤져라! 공을 세우는 자는 위대한 힘을 이어받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와아아아!!!!

카카로치님 만세!!!

카카로치의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가 주겠다고 한 것이 악마들에게 꽤나 좋은 것인 듯싶었다. 악마들이 모두 환호를 했다.

“시간이 얼마 없다! 어서 흩어져서 찾아!”

““예!””

우렁찬 악마들의 대답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카카로치는 흩어지는 악마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천사들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천계의 심장을 찾지 못했다. 그럼 정말 토다베스의 말대로 인간계에 천계의 심장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 걸까?

그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젠장, 천사놈들!! 죽어서도 귀찮게 만드는 구나!”

카카로치가 날개를 펄럭여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때, 카카로치가 돌연 태상이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태상은 고개를 숙이고 기척을 최대한 죽였다. 카카로치가 뭔가를 눈치 챈 것 같아보였기 때문이다.

"흐음....?"

카카로치는 잠시 저 멀리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상하게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바라봤으나, 그곳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기분 탓이겠거니 생각하며 날개를 펄럭여 동쪽을 향해 움직였다.

태상은 슬그머니 고개를 빼들고, 카카로치가 사라지는 방향이 동쪽임을 확인했다. 그가 카카로치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 태상은 동쪽으로 가는 것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불어 그들이 천계의 심장을 쫓고 있다는 것도 알아 낼 수 있었고 말이다.

짧은 대화를 엿들은 것이었지만, 태상에겐 많은 도움이 됐다.

그들이 천계의 심장을 찾으려 할 것이라는 건 너두 당연한 일이었기에 예상을 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태상은 오른쪽 손이 아까부터 저릿거리며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천계의 심장을 바라봤다. 저 놈은 확실히 대악마가 맞을 것이다.

그들이 악마를 카카로치라 부르지 않아도 천계의 심장이 반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앞으로 천계의 심장이 대악마를 구분 짓게 해줄 듯 싶었다.

그렇다고 이놈이 계속 자신의 신경을 건드리는 걸 가만히 내버려둘 태상이 아니었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천계의 심장에게 말했다.

“앵앵대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 했다. 쓸데없이 수작부리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태상은 과거 자신이 20여년 넘게 사용했던 몸도 스스로 죽였던 전적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손 하나 잘라내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거짓말로 똥통에 박아 넣는다고 협박한 게 아니었다.

그의 말 속에서 진심이 느껴져서 일까? 아니면 단순히 카카로치가 사정거리에서 떨어져서일까. 손을 저릿하게 만들던 천계의 심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얌전해졌다.

하나 확실한 것은, 천계의 심장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놈이라는 거다.

'이거 진짜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수상해...'

태상이 싸늘하게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희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녀가 아마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급한 마음에 설명하지도 않고 나와 당황했을 테고 말이다.

다행이 성희는 말 없이 사라진 그를 찾겠다고 돌아다니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바위틈에서 얌전히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을 보니 절로 기특해져 태상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녀는 태상을 발견하자 눈을 휙 피하더니 시선을 바닥에 두었다.

"?"

뭔가 그녀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은 알겠으나 그녀가 이상한 건 한 두 번 일이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방금 카카로치라는 놈을 봤는데, 동쪽으로 가더군.”

“에엣!?"

생각지 못한 말에 성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성희는 오해를 해도 너무 심각하게 오해를 했던 자신 때문에 그의 얼굴을 도저히 못 본다 생각하던 게 무색하게 태상을 바라봤다.

"설마 아까 말했던 그 대악마 말씀하시는 거에요?”

방금 전까지 얘기하던 대악마를 태상이 만나고 왔다니 당황스러울 만도 했다. 지금 그들은 대악마를 찾아 이동하고 있는 건데, 그 목표 대상을 온지 얼마나 됐다고 만난단 말인가.

“그놈이 동쪽으로 간 걸 보니 그 정보는 확실한 걸 거야.”

“그럼 이제 동쪽으로 가서 안전한 장소만 찾으면 끝나는 거네요?"

“맞아.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아. 그런데....”

문제는 이 근방에 방금 들은 바처럼 많은 수의 악마들이 풀렸다는 점이다. 워낙 많은 수인지라 태상이 모두 없앤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결국 그에 대한 정보가 대악마들에게 풀리게 된다는 건데.....

그건 별로 썩 좋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이곳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거야.”

태상이 설명하자 성희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가뜩이나 어린아이 같은 외형인 그녀인데, 손까지 번쩍 드니 마치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고 싶어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제가 할 수 있어요! 도망은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잘 칠걸요? 자랑은 아니지만서도...”

“눈이 보이는 거리에선 딜레이가 없다고 했지?”

“네.”

태상은 그녀에게 이동할 곳을 하나씩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어주며 움직였다.

“저쪽으로 움직인 후에, 저쪽으로 이동하고 그 다음은 저쪽 아래 보여?”

“으으음....잘 모르겠어요.”

성희가 깨금발을 들고 알아들으려 노력했으나 단순히 손가락만 찍어 얘기하기엔 바위가 너무 많았다. 태상이 결국 그녀의 가까이로 움직여 손을 덥석 잡았다.

“흡!”

성희가 놀라 숨을 들이키는데, 태상은 태연하게 그녀의 검지손가락 하나를 빼서 자신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찍었다.

“저기. 저기. 저기. 이해 됐나?”

“네, 네!! 이, 이, 이해 도, 됐어요! 이제 그만 놔, 놔주세요.”

성희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갔다. 태상은 알아들었다는 말에 미련 없이 그녀의 몸에서 떨어졌다.

“흠흠! 근데, 왜 저기 저기 저기를 이동해야 된다는 거에요?”

성희가 생각하기에 주변에 악마가 없는데, 굳이 그렇게 이동을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태상은 기운으로 악마들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기에 저곳을 통해 가면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늘 위를 봐.”

성희가 태상의 말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들과 좀 떨어진 곳, 하늘 위를 보니 바위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았던 악마 무리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성희가 놀라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어, 언제 저렇게!!”

새떼처럼 꽉 찬 악마들을 보자 절로 안색이 창백해졌다.

태상은 시간이 얼마 없다며 그녀를 다그쳤다. 태상이 빠르게 이동해서 들키지 않을 수 있다면 좋았겠으나 이미 지적까지 닿은 악마들이었다. 더욱이 하늘 위에 있는 그들이었기에 태상이 움직이면 더 빨리 들킬 수 있었다.

살기 위해서라도 어서 빨리 자신의 능력을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태상의 손을 덥석 잡았다.

천만다행인 것은, 거리가 멀어 질수록 빛이 환해지고 단거리 이동에는 빛이 그다지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잠시 후, 태상과 성희는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말 태상이 말한 곳으로 움직이자 그들의 시야에 들키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성희는 무척이나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새삼 태상의 능력이 비단 강함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상황판단을 빠르게 하는 편이었다.

이런 남자가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었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선뜻 마계에 가겠노라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 혼자 악마들의 공격을 막으려 했었던 게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더불어 저 남자같은 이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말이다.

“이제 어떡하실 거에요?”

“뭐 별 거 있나. 동쪽으로 가는 게 전부지.”

태상이 덤덤하게 말했다.

이대로 쭉 동쪽으로 가게 되면 카카로치가 있는 곳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곳 근처에 계약자들을 이동시킬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알아보면, 태상과 성희가 이곳에 와서 하려는 모든 일은 대충 끝나는 것이었다.

“일이 이렇게 풀릴 줄은 몰랐지만, 정말 생각보다 일찍 끝날 것 같네요."

사실 3일보다 훨씬 더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온지 하루 만에 모든 게 해결 될 줄 몰랐다.

태상이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대로 일이 쭉 진행되면 정말 그들은 편하게 목표에 성공한 게 된다. 부디 이렇게 계속 일이 술술 풀리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바람일 뿐.

오랫동안 그들의 바람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캬아아악! 캬악!”

“이익!”

성희가 칼을 휘둘러 악마의 목을 잘라냈다. 그녀의 얼굴에 피 몇 방울이 튀었지만, 그녀는 닦아낼 겨를도 없이 다른 악마를 향해 칼을 내질러야 했다.

태상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속도로 악마들을 죽이고 있었다.

태상의 근처에는 이미 어마어마한 숫자의 악마들 시체가 쌓이고 있었다. 그때, 악마 한 명이 성희의 뒤쪽을 노렸다.

그녀는 그것을 채 보지 못했는지 뒤쪽을 완전히 무방비하게 놓은 상태였고, 태상은 그것을 발견하고 재빨리 마나건으로 그녀의 뒤쪽을 겨눠 쐈다.

탕!

퍽!

성희는 자신의 뺨 가까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태상의 마나건에 저도 모르게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이내 컥! 하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리자 자신이 큰일을 당할 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뒤를 돌아보니 악마가 머리통이 퍽! 하고 깨져 찐득찐득한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삽질성희로 불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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