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202화 (202/251)

00202  종구의 여신님  =========================================================================

이렇게 무식하게 공격을 할 줄은 몰랐는지 황당하다는 표정이 역력 했다. 침묵을 깨고 태상이 넋을 놓고 있는 힐러들에게 호통을 쳤다.

“뭐하고 서 있어?! 부상자 안 보입니까?”

힐러들이 화들짝 놀라 서둘러 태상의 공격으로 다친 계약자들을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개개인으로 전투를 했을 땐 제법 훌륭했으나, 단체로 적을 맞서려 하니 오합지졸이었다.

태상은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팔짱을 끼고 그들이 상처를 수습하는 것을 바라봤다.

멀리 날아가서 등을 부딪친 힐러는 고통을 호소하며 왜 나만...하는 눈빛으로 태상을 바라봤으나, 엄살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기에 외면했다. 그냥 힐러 중에 눈에 띄는 ‘남자’ 힐러가 저 남자밖에 없었다는 게 던져진 이유일 것이다.

“힐러가 당하면 파티가 전멸 당하게 됩니다. 장기전이 될 게 분명한 지금, 힐러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존재입니다. 헌데 방금은 순식간에 대열이 무너지고, 힐러가 당했습니다. 그렇죠?”

.......

그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할 말을 잃었는지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다시 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다시 해보겠다고 의욕을 불태우는 이는 바로 종구였다. 그의 적극적인 태도는 태상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무모할지라도 도전정신을 가져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생각하는 태상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다시 대열 갖추세요.”

이번에도 얼을 빼고 전과 달라지는 것이 없으면 안 될 것이다. 태상의 말에 계약자들이 서둘러 자신의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다시 대열이 갖춰지자 태상이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더 이상 방심하지 않았다. 태상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으니 당연했다. 온 몸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도대체 얼마나 강하면 이 많은 사람들을 순식간에 무장해제시킬 수 있는 건지, 두려움과 존경심이 솟아났다.

그리고 그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비록 이루어지기 힘든 일일지라도 말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서 있었던 태상의 몸이 사라졌다. 그가 나타난 곳은 후방이었다.

뒤쪽에서 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또 다시 이리저리 치이며 몸이 밀려났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계약자들은 바닥에 누워 있는 자신을 확인해야 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들의 얼굴이 어리둥절해졌다.

태상은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편없군.”

이래선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태상은 소수정예를 원했는데, 인원은 소수일지 몰라도 ‘정예’가 되기에는 실력이 부족했다.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계속 저대로 둘 순 없었다.

어떻게 내가 땅바닥에 누워 있는지 모르는 계약자들도 있어서 그들의 몸놀림이 느릿했다. 하지만 태상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다시!”

그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자 계약자들이 서둘러 대열을 다시 갖췄다. 이번에도 힐러 한 명이 등짝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게 실전이었으면 그들은 이미 2번 이나 죽은 거였다.

“마계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전 혼자지만, 그쪽은 수가 많죠. 이런 공격에 멕을 못 춘다는 건 악마를 사냥하러 가는 게 아니라 악마한테 나 자신을 바치러 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태상은 저들이 적어도 한 번쯤은 자신에게 반격을 할 때까지 이 훈련을 계속 하겠다며 그들을 사색이 되게 만들었다.

어떻게 쓰러졌는지도 못 봤는데, 반격을 하라고?

사실 태상은 그들이 자신을 쓰러트리진 못해도 옷깃 정도는 벨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옷깃을 베기는커녕 반응도 못하고 있으니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들의 훈련은 깊은 밤이 내리도록 계속 됐다. 그리고 마침내 어떤 계약자가 태상이 있었던 곳을 향해 칼을 휘둘러준 덕분에 겨우 훈련을 끝마칠 수 있었다.

물론 그 검은 태상의 옷깃도 베지 못했다. 태상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한 후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반격에 성공한 것이긴 했기에 태상이 마지못해 인정을 해주었다.

녹다운 된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의 모든 공격을 받아내야 했던 태상은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다. 그걸 본 그들은 어쩐지 억울해 졌는데, 한편으로는 저 괴물 같은 체력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냥 쌘 것도 아니고 너무 압도적으로 강하니 자연스럽게 그 방법이 궁금해졌다. 물론 궁금하다고 태상에게 직접적으로 묻지는 못했다. 태상을 모두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사적으로 다가가 말을 걸기엔 그들의 간이 너무 작았다.

아무튼, 워낙 빡센 훈련을 받기에 그들이 훈련하는 훈련장에는 샤워시설이 준비되어 있었다.

함께 훈련을 받고, 함께 샤워도 하니, 절로 그들의 사이가 끈끈해졌다. 힘든 훈련을 견뎌내야 하는 동지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쌘 태상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더욱 끈끈한 동지애를 가졌고 말이다.

“오늘 회식 어때?”

“어...사장님 벌써 나갔는데요?”

“진짜? 빨리 가서 잡어! 사장님 없음 무슨 재미야?”

태상이 그들의 리더인데, 그가 빠지면 절대 안 됐다. 더불어 그들은 술자리를 만들어 그가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 듣고 싶었다.

그러니 절대 태상이 빠지면 안 되는 것이다.

종구가 황급히 그를 잡으러 나갔다.

온 몸이 욱신거리게 얻어터진 덕분에 그와 사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솔직히 편하진 않았다. 솔직히 무서웠다. 그의 눈만 보면 오금이 저리고 절로 몸이 덜덜 떨렸으니까.

인간같지 않은 강함 때문인지 태상이 괴물처럼, 혹은 악마처럼 보이곤 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의 강함은 그들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강함이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줄 것이다. 또한 그 힘이 인간계를 지켜주게 될 것이다.

자신이 만약 태상과 같은 힘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알려서 그들의 위에 서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을 지켜주겠다는 생각보단 말이다. 그게 사람의 심리였다. 잘난 것은 겉으로 드러내고 싶은 법이니까.

그런데 지금 누구도 그가 이렇게까지 강하다는 것을 모른다.

그는 자신의 힘을 알면서도 과시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정혜연이라는 계약자를 얼굴로 두고 뒤로 숨었다. 그동안은 그가 이렇게까지 강할 줄 몰랐는데, 오늘 그들이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이렇게나 강하면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목숨을 바쳐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희생하려 하다니!

그가 돈, 명예, 권력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면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압도적인 강함에 대한 존경심과 그런 힘을 함부로 사사로이 쓰지 않는 그의 겸손함에 대한 감탄은 계약자들이 자연스럽게 그를 따르도록 만들었다.

인간적인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사장님! 사장님!”

다급하게 종구가 밖으로 나와 태상을 불렀다. 그의 옆에는 놀랍게도 한 아름다운 여자가 서 있었다.

어라?

종구는 그 얼굴이 낯이 익다는 것에 두번째로 놀랐다.

“무슨 일이야?”

태상이 뒤를 돌아 종구를 봤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여자도 함께 뒤를 돌았다.

“어? 종구씨!”

아름다운 여자가 종구에게 아는 척을 해왔다. 하지만 종구의 심장은 덜컹 내려앉아 내핵까지 닿은 상태였다.

“여, 여신님...”

응?

태상은 지금 자신이 들은 게 여신이 맞나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라를 보니 그녀와 종구가 아는 사이인 듯싶었다.

“어머, 맞다! 내가 종구씨한테 인사한다는 걸 잊고 그냥 갈 뻔했네요. 서운할 뻔했다. 헤헤”

아이라가 배시시 웃었다. 종구의 안색이 급속도로 창백해져 태상과 아이라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가 어찌나 흔들리던지 강도 8.0 지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아이라씨랑 사장님이랑 아시는....사이셨군요.”

종구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흔들렸다. 태상은 잠깐 사이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인가 싶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종구는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나 우울해요 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게 팀원들이 오늘 회식 어떠냐고 해서 사장님께 알려드리러 온 거였습니다. 그런데 데이트가 있으셨는 줄 몰랐네요.”

“아아~”

태상이 지갑을 꺼내 카드를 종구에게 건넸다.

“참석 못해서 미안하다고 전해주고, 이걸로 전부 계산해.”

“아! 아니 그게 그러려고 말한 게 아니었는데...”

종구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자 태상이 받아도 된다며 그에게 카드를 받으라고 손짓했다. 그때, 아이라가 갑자기 튀어나가며 그의 손에 있는 카드를 빼앗아 들었다.

“이거 제가 써도 돼요?”

“네가 왜?”

“저도 마계에 같이 가야 하니까요. 이 기회에 팀원들이랑 친해지면 좋잖아요.”

종구는 눈을 깜빡였다. 둘이 데이트를 가야 해서 회식에 참가하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데이트 당사자가 회식에 참가한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그래,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게 해.”

태상이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라는 앗싸! 외치며 카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이 카드가 한도 무제한이라는 것을 송이와 함께 쇼핑하며 알고 있었던 아이라였다. 어차피 태상은 돈이 썩어나간다는 것을 알았기에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아무래도 사장님 카드다보니 아이라가 아니었다면 딱 1차만 계산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라는 그와 친분이 있었기에 그럴 생각이 절대 없었다.

“다음 달 카드 고지서로 송이 언니 뒷목 잡을 지도 모르는데 진짜 괜찮아요?”

아이라가 배시시 웃으면서 애교를 피웠다. 태상은 피식 웃으며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놀다 들어가야 한다. 늦게 들어가면 사로나한테 내가 혼나. 종구 네가 잘 책임져.”

“예예?! 제, 제가요?!”

종구가 화들짝 놀라 물고기처럼 파드득거렸다.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둘의 사이가 종구가 오해했던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해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태상이 그녀를 자신에게 맡기니 황송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태상이야 둘이 아는 사이인 것 같으니 다른 이들에게 맡기는 것보다 종구에게 맡기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종구의 성격을 알기에 그녀를 잘 챙길 것이라 생각이 됐고 말이다.

“송이 언니랑 데이트 잘하세요, 오빠!”

아이라가 손을 흔들며 태상을 배웅했다. 그가 차를 타고 사라지자 아이라가 종구를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처음에 그녀를 봤을 때 창백하던 얼굴이 이젠 또 사과가 되어 있었다.

어쩜 이렇게 얼굴 색이 휙휙 바뀌는지, 아이라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제 그럼...들어갈까요?"

"네? 넵! 그, 그러시죠! 이리로..."

종구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 로봇처럼 끽끽거리며 움직였다. 아이라는 그의 행동이 왠지 귀여워 보여 계속해서 얼굴에 미소를 피어올렸다.

"종구씨가 팀원들 잘 소개시켜줘야 해요. 제가 전투조 분들이랑은 안면이 별로 없거든요. 제가 괜히 끼어서 어색해지거나 그러면 어떡해요."

"그럴 일 절대 없습니다!"

아이라가 앓는 소리를 하자 종구가 단호하고 우렁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해주니 아이라가 기운이 좀 나는지 말했다.

"종구씨는 원래 그렇게 얼굴이 빨간 편인가요?"

"헉! 제 얼굴이 빨간가요?"

종구가 마른세수를 했다. 얼굴이 원래 빨갈 리가 없었다. 이건 아이라를 만났을 때 보이는 조건 반사같은 일이었다.

종구가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 이렇지는 않습니다. 이상하게 아이라씨랑 만나면 얼굴이 이렇게 붉어지네요. 제가 아름다운 분이랑 대화를 해보는 게 처음이라서 그런 가 봅니다."

"....."

아이라가 예고없이 갑자기 훅 들어오는 종구의 말에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이 남자 의외로 선수일지도?

저렇게 순박한 표정을 지으면서 제가 너무 예뻐서 얼굴이 붉어졌다고 하면, 그가 자신에게 반했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라라 해도 부끄러워질 수 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한 편 연재 마음에 걸려서 밤새 썼습니당ㅠㅠ

오타가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추천, 후원쿠폰, 코멘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