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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00화 (200/251)

00200  종구의 여신님  =========================================================================

종구는 선수 대기실에서 전투로 인해 달아오른 열을 식히고 있었다.

오늘 실수로 팔을 베였다.

아직도 자신은 이렇게나 부족한 것이다. CMC 전투조에 들어가게 된 후로 종구는 실전 싸움을 배웠다. 그런데도 이런 실수를 보였으니, 여전히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이다.

똑똑똑

그때, 종구의 사색을 방해하는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는 당연히 상처를 치료할 힐러가 들어 온 것이라 생각했다.

“예, 들어오세요.”

곧 문이 열리고, 종구는 당연히 힐러라고 생각한 대상을 바라봤다. 그런데 들어 온 이는 힐러가 아니었다. 종구가 알고 있는 이였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반겼다.

“사로나씨?”

사로나는 종구에게 인사를 했고, 종구도 일단 뜻밖의 방문에 놀라 그녀에게 마주 인사를 했다.

그녀의 뒤에는 누군가가 한 명 더 있었는데, 사로나의 등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종구가 무슨 일로 온 것인지 그녀에게 용건을 물었다. 그러자 사로나는 누군가를 소개시켜 주기 위해 왔다고 말하며 자신의 뒤에 있는 사람을 소개했다.

“나의 동생입니다.”

사로나씨는 아직 한국말을 잘 하지 못했다. 해서 길게 대화를 하면 그녀가 힘들어하곤 했다. 종구가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그녀의 옆을 보는데, 갑자기 뒤에서 인영이 튀어나오며 그의 앞에 섰다.

종구는 그 인영을 본 순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내 여신님이 여기에 있지?

종구는 눈을 껌뻑였다. 이건 분명 꿈이 맞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신님이 자신에게 섬섬옥수를 내밀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아이라라고 불러주세요. 사로나 언니 동생이고, CMC 직원이에요."

하지만 종구의 귀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여신님의 자애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게 꿈이 아니라고? 만약 눈앞에 여신님이 없었다면 종구는 자신의 뺨을 거하게 내려치고 말았을 것이다.

“제 인사를 무시하시는 건가요?”

종구는 여신님이 화가 난 듯 미간을 찌푸리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진짜 여신님이 그의 앞에 서 있는 거다. 이건 현실이었고, 종구는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수 없었다.

"여, 여, 여, 여신님...!!"

"네?"

"여신님이라는 뜻이 뭐죠?"

여신님이 여신님이 뭐냐고 물으셨다!

종구는 그녀가 사로나와 같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어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꺄아아악! 여신님이 궁금해 하시고 있어!!

종구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무 서둘렀는지 마구마구 말이 더듬거리고 발음이 셌다.

"아, 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아름다우셔서 정신을 놓...! 어후 이게 아닌데 그러니까 여신님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냐면 그게 여자인 신을 말하는 건데, 제가 말한 건 아이라님이 신이라는 게 아니라 신처럼 예뻐서 그렇게 말을 한 건데, 여신님이라고 제가 부른 건 이름을 몰라서가 아니고 아니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종구가 자신의 머리를 퍽퍽 치며 자책을 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신의 얼굴이 펑 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이대로 얼굴이 터져서 여신님 앞에서 죽으면 어쩌지 하는 겁도 들었다. 종구는 거의 울먹이고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는 건 반칙이잖아요 여신님. 제가 여신님한테 가려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을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상을 주시면 앞으로 어떻게 하라고....

아이라는 횡설수설하는 종구를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저 남자 지금 나한테 반한 거 맞지?

아이라는 이따가 핸드폰으로 여신님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종구에게 배시시 웃었다.

그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빨갛게 달아 올라 있었다. 저기에다 고기 구워도 될 것 같았다.

‘흥,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하지만 아이라는 정작 자신의 볼에도 홍조가 생겨났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사로나는 종구의 말을 하나도 알아 듣지 못해 그가 왜 저러나 하고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종구씨? 종구씨?”

사로나가 종구를 불렀다. 두 번이나 불렀는데 종구는 사로나를 보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 마냥 아이라한테서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아이라가 여유롭게 웃으며 종구에게 말했다.

“오늘 경기 잘 봤어요. 실력이 대단하시더라고요. 전투조 소속이신 줄 몰랐는데, 역시 실력이 뛰어나시네요.”

“여, 영광입니다. 여신..아니, 아이라님.”

“왜 그렇게 말을 더듬어요? 제대로 잘 좀 해봐요. 당신은 목소리가 내 취향이에요.”

아이라가 반짝반짝 눈동자를 밝히며 말했다. 종구는 허억허억 숨을 몰아셨다.

여신님이 내 목소리가 취향 이래! 어무니 아부지 이런 목소리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흠 흠흠!! 제가 좀 당황을 많이 했네요. 하.하.하...”

“그래요. 이해해요.”

아이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종구는 또 속으로 여신님이 자애로워!! 하고 외치고 있었고 말이다. 사로나는 종구가 평소처럼 되돌아오자 그제야 말했다.

“둘이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종구가 그녀의 말에 넙죽 인사를 했다. 사로나는 자신의 말에 왜 종구가 감사하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냥 웃어 넘겼다.

**

한편, 태상은 천계의 심장이 다른 악마에게 반응이 보이는지 확인하는 일을 해야 했다. 성희가 옆에서 도와준 덕분에 악마가 있는 외국으로 이동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계의 심장은 그냥 악마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천계의 심장이 반응을 보이는 것은 ‘대악마’라는 존재들에게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얄밉게도, 천계의 심장은 그 이후로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대악마라는 녀석 심장이면 엄청 강한 기운을 가졌을 텐데, 이 녀석이 쏙 도둑질 해버렸다 이건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단 말이지.”

건방지게 자신을 조종했다는 것도 무척 불쾌했다.

태상은 단검을 꺼내 오른쪽 손바닥에 가져다댔다.

‘빼낼 수 있을까?’

건방진 걸 고분고분하게 들고 다니기엔 태상의 성격이 그러질 못했다. 어차피 손이야 포션으로 해결하면 된다. 물론 신경을 건드리면 태상도 곤란하긴 하지만, 그 정도가 무서워 아무 것도 하지 못하면 앞으로 일을 하는 것 중 어떤 것도 성공시키지 못할 것이다.

태상이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올려 오른쪽 손바닥을 찍었다.

푹!

피가 사방에 튀고, 짙은 고통이 태상을 찾아왔으나 그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고통은 늘 참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태상이 단검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좀 더 휘저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뚝뚝 피가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태상은 자신의 손바닥에서 천계의 심장을 꺼내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천계의 심장 때문에 재생력이 높아졌는데, 그 때문인지 손의 상처가 다시 아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것으로 멈출 태상이 아니었다.

태상의 끈기를 시험이라도 하는 것 마냥, 손바닥을 아무리 쑤셔도 천계의 심장은 이미 뿌리를 확실하게 내려버렸는지 빠지지가 않았다.

상처가 계속해서 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보자는 심정이었던 지라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천계의 심장에서 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태상이 서 있는 공간이 또 다시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한 번 겪어봤던 현상이었기에 태상은 당황하지 않고 그것을 싸늘하게 바라봤다. 건방지게 자신을 조종하려 든 천계의 심장을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천계의 심장은 그에게 아양을 떨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오색으로 반짝였다.

“그렇게 아양을 떤다고 내가 널 그냥 두고 볼 것 같아? 경고한다. 다시 한 번만 더 날 그 따위로 조종하려고 든다면, 내 팔을 잘라서라도 네놈을 떼어 놓을 생각이니까. 그리고 나서 널 똥통에 쳐 박아 버릴 거다.”

진심이 담긴 스산한 목소리에 천계의 심장이 겁을 먹은 듯 빛이 희미해졌다.

똥통이라는 말을 쉽게 넘기면 안 될 거다. 태상은 진짜 그렇게 할 생각이었으니까.

“일반 악마랑 대악마 사이에 차이점이 있으니 네놈이 반응을 안 하다가 갑자기 한 거겠지? 내가 그냥 가만히 앉아서 네놈이 하라는 대로 해주는 호락호락한 놈으로 보였으면 넌 사람 잘못 본 거야.”

태상은 아예 그냥 천계의 심장을 살아 있는 놈으로 여겨야 겠다고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그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몸을 조종하려 들었던 그 불쾌한 기분을 느꼈었기에 확신을 하고 있었다.

저 천계의 심장은 분명 살아있다.

말을 하고 이성이 있고 그런 것만이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천계의 심장은 동식물처럼 자신의 의지를 분명하게 갖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태상의 협박에 기가 죽어 희미한 빛만 내뿜고 있는 것이리라.

태상은 한 번 봐주겠다는 뜻으로 단검을 품에 넣었다. 그도 솔직히 자신의 팔을 자르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경고가 먹히지 않는다면 진짜 각오를 하고 놈이 박혀 있는 오른쪽 손을 잘라내야겠지만 말이다.

“이미 한 번 몸을 빼앗겨봐서 다신 그 기분 느끼고 싶지 않거든.”

명진에게 자신의 몸을 빼앗겼다. 그리고 나선 복수로 자신의 몸을 스스로 죽였다. 꽤 시간이 지난 일이라 잊고 지냈는데, 저놈 때문에 그때의 기분이 또 떠올라버렸다.

그러니 괘씸하고 화가 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천계의 심장과 씨름을 한 덕분에 그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가 남지 않았으나 바닥에 흥건이 고인 피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는 자해를 한 장소를 자신의 집 서재로 결정했다는 이유로 송이에게 밤새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

그워어어어어~!!!!!!!!!!!!!

마계 심층부.

“어떤 악마가 시끄럽게 저 지랄이야?”

사샤가 짜증난다는 듯 팔짱을 끼면서 등장했다. 토다베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모였나.”

“왜 이렇게 회의를 자주해? 우리 얼마 전에 회의 했었잖아. 이렇게 짧은 간격으로 회의한 적 없었고.”

사샤는 들어 올 때부터 짜증이 나 있었는데, 그 덕분인지 굉장히 뾰족하게 말을 했다.

확실히 이렇게 빠른 시일에 회의를 두 번이나 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들 각자 맡아서 자신의 일을 잘 하곤 했으니 말이다.

토다베스는 쭉 좌중을 훑었다.

모두가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내뿜고 있는 대단한 강자들이었다.

사샤, 토다베스, 바로세, 카인, 카카로치.

각자 자신의 영역과 세력을 가진 군주였다. 즉 각자 갖고 있는 자존심이 대단하다는 소리였다. 그들 중 사샤가 가장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에게 존중을 받고 있는 것만 특이사항이었다.

토다베스가 그들을 와라 마라 할 수 있는 것은 사령관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그라 해도 대악마를 함부로 와라 마라 할 순 없었다. 무척 조심스러운 일이었기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회의를 연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부득이한 사정으로 회의를 연 것은, 그들에게 알려야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인간계로 간 앙키파에 관한 얘기다.”

토다베스가 앙키파의 얘기를 꺼내자 사샤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앙키파와 목숨을 건 내기를 한 걸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그때 그들이 모두 이 자리에 있었으니 당연했다.

“그놈 성공했어? 아니지, 이 자리에 없는 걸 보니 실패했구나? 킥킥 꼴사납게 나한테 죽을까봐 회의에 참석 안 한 거야?”

사샤가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꼴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내기를 했다고 해서 진짜 그의 목숨을 취할 생각은 없었다. 한껏 약을 올려 주는 것으로 퉁칠 생각이었다.

“귀여워라. 앙키파가 이렇게 소심한 놈이었어?”

사샤가 매우 안타깝다는 듯 쯧쯧거렸다. 하지만 토다베스는 표정을 싸늘하게 굳히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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