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9 종구의 여신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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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나타나 엉망이 된 경기장 때문에 그곳을 복구하는 데에 시간이 제법 걸릴 듯 했다. 하지만 태상은 시간을 늦추는 대신 장소를 바꿨고, 경기를 일정대로 계속 이었다. 다들 태상이 이렇게까지 일을 급하게 추진하는 데에는 시커먼 장사속이 있는 거라는 비판을 늘어놓았다.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것을 대회로 만든 행위 자체를 갖고 그를 까내리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말을 태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말은 모두 멋모르는 것들이 지껄이는 쓸데없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경기를 보기위해,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한국을 찾았기에 일정대로 경기를 진행하지 않으면 일이 더 커진다. 그들 모두가 대회 일정에 맞춰 비행기나 숙박시설의 일정을 잡아 놓았다.
그러니 태상이 일방적으로 뒤로 미룬다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그걸 막기 위해선 일정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뚝심이 있어야 했다. 덕분에 가뜩이나 바쁜데 밤까지 반납을 해야 할 만큼 바빠진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태상은 직원들 모두에게 보너스와 일당 두 배를 약속하며 그들의 축 처진 어깨를 다독였다. 그리고 그 효과는 놀랍도록 좋아서, 경기가 예정대로 치러지는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아이라는 오랜만에 휴가를 받아 집에서 한가로이 TV를 틀어 보고 있는 중이었다. 밖에서 나가 노는 것도 좋지만, 그녀는 집에서의 휴식이 필요했다.
오늘은 경기가 있는 날이어서 그런지, TV에 대회를 생중계하는 방송이 많았다.
아침인지라 볼 것이 별로 없었기에 아이라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과 연관되어 있는 대회를 보게 됐다.
“와~ 저 사람 잘한다.”
아이라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처음 대회에 갔을 때 봤던 경기 수준보다 훨씬 좋았다. 특히 외국인들 사이에서 유독 튀는 검은 머리의 한국인 계약자가 아이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상황에 맞게 공격을 하기는 커녕 공격하다 보면 하나 얻어 걸리겠지 식의 공격을 하는 다른 계약자들과는 달리 그때그때 센스 있게 몸을 놀렸다. 때문에 당연하게도 그의 전투는 체력을 낭비하지 않고, 깔끔했다.
저런 실력자가 있었던가?
아이라가 눈동자를 빛내며 눈을 반짝였다. 아쉬웠다. 그의 경기를 카메라로 보는 것이 말이다. 아이라는 그 남자 계약자의 이름을 머릿속에 세겼다.
‘나중에 경기할 때, 직접 가서 봐야지.’
태상오빠가 인재를 발굴했다고 좋아할 것 같았다. 그녀의 처음 시작은 그렇게 단순하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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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왜?”
사로나는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언가를 바라보는 아이라의 행동에 의아해 했다. 아이라가 보고 있는 것은 대회 일정이었다.
그곳에는 선수 명단도 적혀 있었기에 아이라가 관심 있게 본 것이다.
“음...언니, 이거 보러 갈래?”
“대회? 시시하다고 다신 안 보겠다고 하지 않았어?”
아이라가 뜻밖으로 대회를 보러 가자고 하니 놀랐다. 그녀들은 CMC 관계자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표를 얻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내가 찜해놓은 계약자 한 명이 있거든. 그 계약자가 오늘 경기를 해서.”
“네가 찜해놓은 계약자?”
아이라가 하는 말에 덩달아 사로나도 관심이 가졌다. 그녀가 찜해놓은 계약자라는 말이 찜해놓은 남자친구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뭐하는 사람 아, 계약자라고 했지? 어느 나라 사람이야?”
장기연애는 아무래도 좋지 않다. 서로 사랑해야 할 시간에 그리워만 하다가 끝날 수 있었다. 아이라는 사로나의 오해를 깨닫지 못하고 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국인이야!”
사로나가 일단 안도했다. 앞으로 한국에서 오랫동안 지내게 될 테니, 그럼 장거리 연애는 아니게 되기 때문이었다.
“실력은 어떤데? 어디서 만났어?”
“실력이 엄청 괜찮아! 다른 계약자들 사이에서 눈에 확 뛰더라니까? 아 저 남자가 딱 내가 생각하던 그 조건의 남자구나 했어.”
당연히 ‘생각하던 그 조건의 남자’를 해석하는 관점은 서로 달랐다. 사로나는 연애 쪽으로 였고, 아이라는 함께 마계에 가게 될 전투조의 일원으로였다.
“음.....”
사로나는 어쩐지 딸을 시집보내는 기분이 되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녀가 축복해주지 않으면 아이라는 이 황금같은 기회를 놓쳐버릴지 몰랐다. 사로나가 적극적으로 해줘야 아이라도 마음을 놓을 거다.
“그럼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서 표구하러 가자.”
“진짜?”
아이라가 사로나의 승낙에 활짝 웃었다. 오랜만에 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기분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로나는 아이라가 자신에게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주고 싶은 마음일거라 착각했다.
저렇게 좋아하니 서운한 티도 못 내겠다.
“네가 가자는데, 없는 시간이라도 내야지.”
사로나와 아이라는 그렇게 끝까지 서로 오해를 풀지 못하고, 경기장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와아아아!!!!
첫날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도 불구하고, 대회장에는 사람들도 꽉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찍힌 수많은 사람들의 카메라 덕분에 그날 일이 널리널리 퍼졌고, 계약자들이 목숨을 다해 일반인들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평소에도 계약자들이 자신들을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날 영상이 무척이나 의미 있었다.
CMC 사장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가 급격이 올라갔으니 그 여파가 대단하긴 했다. 잘생긴 얼굴에, 영웅적 면모를 갖춘 강한 계약자.
이젠 하나의 팬덤이 생겨날 정도였다.
아무튼 그 일 때문에 도리어 사람들이 CMC에 대한 인지도가 훨씬 높아져 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있었다.
몇 차례 경기가 시작되고, 아이라는 시큰둥하게 다른 사람들의 경기를 보다가 다음 차례의 계약자 이름을 부르자 눈을 밝혔다. 그녀가 눈에 찍은 남자 계약자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언니, 저 남자야!”
사로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대형 스크린에 보여진 한국인 남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어....?”
근데 그 남자 얼굴이 어쩐지 아는 얼굴이다.
사로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이라에게 물었다.
“저 남자 말하는 거야?”
“응!”
사로나는 종구가 자신의 실력을 데스트하기 위해 대회에 출전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아이라가 그를 찍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도대체 둘이 언제 만난 거지?
아이라는 아직 마계로 함께 가게 될 전투조 인원들과 만남을 다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인원이 많다보니 한 명 한 명 다 알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둘이 만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사랑을 키웠고 말이다.
“어...난....음....그래....네 선택을 존중할게.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 맞아. 하지만 난 네가 좀 더 나은...아니, 아니야.”
사로나가 갑자기 횡설수설했다.
사로나도 사람인지라 알게 모르게 외형을 마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이라가 좀 더 훌륭한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사람을 속단하는 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사로나는 크게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아이라가 저렇게 멸치(?)같이 생긴 남자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종구가 열심히 운동으로 몸을 키웠다 해도 멸치는 멸치였다. 종(?)을 벗어날 순 없는 법이다. 몸뿐만 아니라 그의 얼굴 자체가 멸치같이 생겨서 사로나는 아이라가 정말 그에게 반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라는 저 멸치같이 생긴 남자에게 주기엔 너무 아까운 아이였다. 얼마나 예쁜 아이인데, 저런 남자에게 준단 말인가! 아이라는 사로나의 자매였다! 당연히 그녀만큼이나 예쁘게 생겼고, 어릴 적 아팠던 것 때문에 청초한 아름다움을 갖고 이썽ㅆ다. 하지만 사로나는 그대선 안 된다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래, 사람을 볼 때 얼굴을 보는 게 아니라 마음을 봐야지.
종구의 순박한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사로나는 불쾌하게 뛰는 가슴을 애써 달랬다.
“뭐야? 저 계약자 알고 있는 사람이야?”
아이라는 사로나가 종구를 아는 듯 해보이자 깜짝 놀라며 물었다. 사로나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는 우리 전투조 소속이니까.”
아이라가 그녀의 말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발굴한 인재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전투조에 소속되어 있었다니!
길드원들이 각자 인재들을 발굴해 오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태상도, 사로나도, 혜연도 예선전을 보며 인재들을 데리고 오곤 했다.
심지어 카살라도 한 여자 옷깃을 질질 끌고 와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전적이 있었다. 그녀는 카살라가 자신에게 헌팅을 한 줄 알고 따라왔다가 스카웃이라는 것을 알고 환호했고 말이다. 여전히 그녀는 카살라를 어떻게 한 번 자빠뜨려 볼까 연구 중이었다.
그런데 유독 아이라만은 운이 없는지 영 마음에 차는 이가 보이질 않았다.
때문에 우울해 하던 그녀였는데, 드디어 찾았다 했더니 이미 전투조 소속이란다. 당연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로나는 왜 아이라가 시무룩해있는지 알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선수대기실로 갈래?”
사로나의 말에 아이라가 고개를 저었다.
“됐어. 이미 전투조 소속이라며.”
“그가 전투조 소속인 게 뭐가 문제야?”
사로나가 눈을 깜빡였다. 아이라도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각각 하나씩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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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얼....
아이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사로나를 봤다. 아이라가 팔짱을 끼고 얼굴을 붉히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어떻게 그런 오해를 할 수가 있어?"
"난 네가 찜했다기에...."
아이라는 자신의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아무리 단어가 좀 이상했다고 해도 그런 쪽으로 오해를 하던 어떡하란 말인가! 그와 아이라는 아직 말 한 마디도 섞어보지 않은 사이였다!
사로나는 자신의 오해였음을 알게 되고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녀는 몹시 가벼운 마음이 되어 아이라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된 거, 전투조 소속인 종구씨를 소개시켜줄게."
"끄응....."
어차피 함께 마계로 가야 할 사이였다. 미리 안면을 익혀둔다고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아이라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종구는 멋지게 이겼다. 축하 인사를 해주면 좋아 할 거라며 사로나가 아이라를 이끌고 선수 대기실로 움직였다.
똑똑똑
"예, 들어오세요."
문을 두드리자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라는 생긴 것 답지 않게 그의 목소리가 굉장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자 사로나가 멸치라고 말했던 그의 얼굴이 보였다. 목소리가 아까운 얼굴이었다. 아니, 목소리 덕분에 그나마 여자에게 어필할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로나씨?"
종구는 눈에 익은 사로나가 갑자기 나타나자 놀란 모양이었다. 사로나가 인사를 하며 그에게 아이라를 소개했다.
"나의 동생입니다."
그녀는 아직 한국말을 부드럽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법 듣는 귀도 생겼고, 이렇게나마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계속 아이라가 통역을 해주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나았다.
아이라는 사로나의 뒤에 숨어 있다가 짜잔하고 등장하듯, 앞으로 나서서 종구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아이라라고 불러주세요. 사로나 언니 동생이고, CMC 직원이에요."
그녀가 예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손을 내민지 한참이 지나도 이놈의 멸치가 그녀의 손을 마주잡지를 않는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싫어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싶어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제 인사를 무시하시는 건가요?"
어쩐지 그의 얼굴이 넋을 잃은 듯 보였다.
왜 저래?
아이라가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종구가 정신을 차린 듯 물고기처럼 파다닥 거리더니 손을 자신의 옷에 벅벅 닦았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손가락 하나를 아주 조심스럽게 맞잡았다.
"여, 여, 여, 여신님...!!"
"네?"
아이라는 분명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건만 자신을 이상하게 부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신님이라는 뜻이 뭐죠?"
그녀는 애석하게도 여신이라는 한국어를 알지 못했다. 종구는 정신없이 떨리는 눈동자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아름다우셔서 정신을 놓...! 어후 이게 아닌데 그러니까 여신님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냐면 그게 여자인 신을 말하는 건데, 제가 말한 건 아이라님이 신이라는 게 아니라 신처럼 예뻐서 그렇게 말을 한 건데, 여신님이라고 제가 부른 건 이름을 몰라서가 아니고 아니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종구가 자신의 머리를 퍽퍽 치며 자책을 했다. 아이라는 정확히 그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 없음에도 대충 그가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종구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만 봐도 알겠다.
아이라가 눈치가 없는 애도 아니고, 그가 지금 그녀가 너무 예뻐서 정신이 없는 게 분명했다.
아이라의 굳어있던 얼굴이 슬며시 풀리고, 그녀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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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구랑 아이라랑 얼레리 꼴레리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