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6 민성희 =========================================================================
송이를 빼면 모두가 CMC에서 한 가닥 하는 중요한 인물들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 또한 초대를 하고 싶었으나 그들은 괜찮다며 거절했다.
TV에서도 방영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굳이 찾아가서 볼 필요가 없긴 했다. 태상은 이 대회의 주최자였기에 갈 수밖에 없었고, 송이는 알다시피 계약자들의 일에 관심이 많았기에 태상을 따라나선 것이었다.
송이의 발 치에는 야호가 하품을 하며 고양이 정도 되는 몸집을 하고 앉아 있었다. 비록 하품을 하고 있다 해도 누군가가 그녀와 가족들을 공격한다면 엄청난 덩치로 커져 놈의 살을 찢어버리고 뼈를 우그러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자들은 흔치 않은 CMC 주요 인사들을 마음껏 담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연신 이쪽을 향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 과해지자 검은 양복을 입은 이들이 나타나 기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경기장 위에는 대형 스크린이 있어서, 멀리 있는 관객들이 무리 없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었다.
드디어 사회자가 앞으로 나섰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꽉꽉 차 있었기에 함성이 울려 퍼지는 소리가 엄청났다.
와아아~!!!
사회자는 일단 이 대회를 주최한 CMC 강명진 사장님의 축사를 들어보겠다며 박수로 맞아달라는 형식적인 말을 했다. 커다란 스크린에 태상의 얼굴이 비췄다.
그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의 인파를 발아래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떨지 않으며 부드럽게 축사를 시작했다.
보통 축사를 하는 사람들은 줄줄줄 길게 얘기를 늘어놓곤 한다. 해서 사람들은 그 축사를 거의 대부분 자세히 듣지 않고 말이다. 태상은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댄 후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CMC 사장 강명진입니다. 부디 이 대회에서만큼은 그동안 있었던 비극을 잠시 잊고, 원하는 만큼 즐기고, 원하는 만큼 노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모든 소음이 사라지진 못했지만, 많은 이들이 태상의 말을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져야 할 태상의 축사는 그것으로 끝났다. 깔끔하고 시원한, 그리고 지루하지 않은 축사로 말이다. 사람들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당황한 사회자가 상황을 수습하자 다시 환호를 질렀다.
본격적인 대회가 진짜 시작된 것이다.
“뭐 먹을까?”
예쁘게 차려 입고 온 것만 생각했지, 무언가를 먹으면서 구경할 생각은 하지 못한 그들이다. 지금도 기자들에게 사진을 찍히고 있었기에 송이는 무언가를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태상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저거 먹을래?”
사람들 사이로 음식을 판매하고 있는 장사꾼들이 제법 있었다. 가장 인기가 좋은 건 아무래도 치킨이었다.
태상이 치킨을 가리키자 송이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떻게 치킨을 먹어. 난 됐어. 안 먹을래.”
그랬다간 웃음을 사고 말 거다. 생각지 못한 수많은 플레쉬 세례에 아무래도 송이는 크게 놀란 모양이었다. 송이는 아직도 그의 옆에 서기엔 간이 작았다.
“내가 먹고 싶은데?”
태상이 그녀의 긴장을 풀게 하고 싶어 괜스레 말했다. 송이가 거짓말 하지 말라며 그의 무릎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
“진짜야. 나 치킨 좋아해.”
태상이 억울하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주섬주섬 지갑을 챙겨 계단을 걸어가 치킨을 팔고 있는 상인을 향해 움직였다.
그가 슬렁슬렁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vip실이 있는 곳을 너머 일반 관중석이 있는 계단으로 움직인 태상은 치킨을 파는 상인 앞에 설 수 있었다.
“헉!”
상인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경악으로 가득 차고, 핸드폰을 꺼내 자신을 찍자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았다가 그에게 돈을 내밀고 있는 태상을 발견하고 기겁했다.
“치킨 몇 마리 남았습니까?”
“예, 예?”
“치킨 몇 마리 있냐고요. 10마리, 아니 최대로 몇 개나 가능해요?”
태상의 가족만 먹을 순 없으니 길드원들도 모두 챙겨야 했다. CMC 사장이 자신에게 치킨을 달라고 하는 말을 듣는 지금 이 순간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은 방금 전까지 커다란 스크린에 담겨 있던 얼굴이었다. 상인은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20마리 가능합니다."
"그럼 그거 전부 주시고, 배달 가능합니까?"
"튀, 튀겨야 해서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실한 놈으로 잡아다줘요. 이거 받고.”
태상이 수표를 건넸다. 치킨값으로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가격이었다. 제대로 된 놈을 튀겨오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상인은 재빨리 돈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들고서 판매를 하던 치킨은 태상의 손으로 들어갔다.
제법 출출했던 터라 VIP석으로 가면서 짭짭거리며 치킨을 뜯었다.
그 모습은 관중석 사람들의 핸드폰에, 그리고 눈에 모두 남김없이 담겼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옮겨졌고, [치킨 뜯는 CMC 오너, 역시 치느님?] 라는 제목의 뉴스로 도배가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본선이라서 그런지 대회가 제법 치열했다. 물론 그래봤자 태상의 눈에는 애들 장난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띈 이가 있었는데 태상은 아무래도 그가 1등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압도적인 기세로 상대방과 싸우는 것이, 딱 봐도 제법 많은 전투경험을 한 계약자인 것 같았다.
“저 남자 프로필 있어?”
“네.”
혜연이 태상에게 서류를 넘겼다.
남자는 미국인으로, 스티브 에드워드라는 이름을 가진 2세대 계약자였다.
근육질 몸매의 190cm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주된 공격무기는 검이었다.
“이 남자가 아무래도 오늘은 1등 할 것 같네.”
워낙 사람이 많아서 오늘 하루로 끝나는 건 아니었다. 며칠씩 계속 경기가 있었지만, 오늘 나온 본선 진출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가장 실력이 뛰어났다. 태상의 말에 아이라가 놀라 물었다.
“와~ 그런 것도 예측하실 수 있는 거에요?”
“대충 싸우는 걸 보면 실력이 드러나잖아. 그걸로 추측해봤을 때, 이변이 없으면 저 남자가 이길 거야.”
“그럼 2등은요?”
“2등?”
그것까진 생각 안 해봤는데, 아마도 1등 아래에는 고만고만한 실력들인지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할 듯싶었다. 대전운도 따라줘야 할 것이고 말이다.
“와~ 태상오빠 너무해. 순식간에 스포를 하다니. 그럼 경기 이제 다 본 거잖아요!”
처음에는 그렇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라가 갑자기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누구도 태상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다.
아마도 그가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그렇구나 하고 믿을 것이다.
그런 그가 스티브 에드워드 라는 남자가 1등을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럼 1등은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즉 오늘 경기 결과를 미리 알게 된 것이니 스포가 맞았다.
솔직히 경기는 스티브 에드워드라고 했던 남자의 경기 외에는 눈에 띌 만큼의 경기는 없었다.
계약자들이 싸우는 모습을 잘 보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는 너무나도 흥미로운 경기였겠으나, 앞서 말했다시피 그들의 눈에는 어린아이들이 장난질 치면서 노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흐아아암.”
태상이 하품을 크게 하자 송이가 깜짝 놀라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 말했다.
“그러다가 사진 찍히면 어쩌려고 그래?”
“지루해.”
“난 재밌기만 한데. 조마조마하고.”
"네가 보기엔 좀 과격하긴 한데. 괜찮은거야?"
송이는 계약자가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흥미진진할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죽을 정도로 치명적인 공격을 해선 안 된다고 했지만, 싸우는 결투이다보니 피가 튀곤 했다.
송이는 그런 잔인한 장면이 나올 때면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꿋꿋하게 경기를 시청했다. 태상은 오랜만에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 아니 금보다 더 귀한 이 순간을 저런 흥미없는 것을 보며 끝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태상이 송이의 손을 덥석 쥐었다.
“나가자.”
“으응?!”
송이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글 하게 떴다. 야호가 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송이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는지 눈을 뜨고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여기서 시간을 이대로 보낼 순 없어.”
“잠깐만, 지금 경기 완전 재밌는데..아앗!”
송이의 손목을 휘어잡은 태상이 그녀를 끌고 나가려 했다. 혜연은 그걸 말리기는커녕 이곳은 제가 잘 정리하겠다며 오히려 둘이 나가는 것을 부추겼다.
그녀가 보기에도 송이가 보기에 그닥 좋은 광경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콰아아아앙!!!!!!!!!!
꺄아악!
아악!
으아아악!
그때!
갑자기 경기가 치러지고 있는 경기장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관중석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었기에 피해가 크진 않았지만, 다들 당황스러워했다.
태상이 송이의 손을 놓고 경기장을 향해 몸을 돌려, 심각하게 표정을 굳혔다.
저 정도 폭발이라면 경기를 하던 둘 중 하나는 죽었을 만큼의 위력이었다. 이 경기에는 절대 살인을 해선 안 됐다.
검은 연기가 경기장에서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경기를 하고 있던 선수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긴 줄로만 알았던 태상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심판들이 시커먼 연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기에 상황을 파악하려고 경기장 가까이에 다가가다가 목이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
"꺄아아아아악!"
"사, 사람이 죽었어!"
관중석에서 심판의 목이 뎅강 잘리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하자 동요가 일었다.
“크흐흐흐....!! 어리석은 인간들이어. 재롱을 부리는 걸 좀 더 지켜보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구나.”
검은 연기가 걷히고,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누군가가 혼란으로 가득한 경기장 가운데에서 우두커니 서서 말하고 있었다. 태상이 눈짓을 하자 야호가 몸집을 크게 키우고, 송이를 자신의 등 뒤에 올렸다.
“집으로 데려가.”
야호가 크릉! 하고 소리를 냈다.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오랜만에 일어난 전투인데 이대로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호승심을 억누르며 야호가 몸을 움직이려 했다.
“잠깐만, 멈춰봐.”
그런데 그때, 송이가 갑자기 야호를 멈춰 세웠다. 그녀는 야호의 등에서 뛰어내려 경기장으로 가려고 하는 태상의 옷깃을 잡았다. 그가 당연하게도 고개를 돌려 송이를 보자, 그의 입술에 짧게 키스를 해주었다.
“조심해.”
“....그래.”
태상이 대답을 하며 송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송이는 더 이상 그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야호의 등에 다시 얌전히 올라탔다.
“고마워.”
“크릉”
야호는 별 말을 다 한다는 듯, 거대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송이가 안전하게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는 것과는 달리 관중석에 있는 관중들은 그러질 못했다. 그들이 나갈 수 있는 통로가 한정되어 있었고, 인원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였다.
심판의 목이 잘렸다. 지금 상황이 결코 가볍지 않은 게 분명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패닉이 된 관중들은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앞뒤 따질 것 없이 입구를 향해 막무가내로 몸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공포가 전염되는 것은 놀랍도록 빨랐다.
혜연이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고 막무가내로 도망치는 것을 말리고 있었다. 질서를 지켜야 무의미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질서를 지켜서 움직이세요!]
하지만 단순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패닉이 온 사람들이 멈춰질 리가 없었다.
콰앙!
또 다시 폭발이 일어났다. 땅을 울리는 커다란 소리였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더욱 강한 공포가 깃들었다. 자신에게 주목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경고를 날린 것이었다.
검은로브를 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크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를 즐겁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죽을 지도 모른다!
아니, 조금만 늦장을 부렸다간 모두가 죽을 거다!
관객들의 머릿속에 모두 하나의 생각만이 가득 차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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