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83화 (183/251)

00183  안  =========================================================================

태상도 물론 그걸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다. 좋은 영양제라고 먹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면 지금 당장 먹었을 것이고 말이다.

"웬만하면 파괴할 수 있다면 파괴시키는 쪽으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이걸 먹는다는 게 좀...."

천사들이 이걸 바라보며 지었던 눈동자가 떠올랐다. 마치 자기 자식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송이가 태우를 보는 그런 것 말이다.

그 눈빛을 봐서 그런지 어쩔 수 없이 악마에게 빼앗겨야 하는 그런 순간이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더욱이 자신이 이 에너지를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말이다.

하나의 차원을 유지시키던 힘이다.

아무리 강한 편에 속한다 해도 인간인 그가 과연 다룰 수 있는 힘일까?

혹여 욕심을 부리다가 애꿎은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천계의 심장이 저거야?”

송이가 태상의 바지주머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주머니가 눈에 띄게 볼록 튀어나와 있었기에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송이가 발견하기 쉬웠다.

태상은 주머니에서 천계의 심장을 꺼내 송이에게 보여주었다.

환한 빛을 내뿜던 것이, 그가 손에 쥐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지금 현재는 그냥 평범한 돌 같은 모양이 되어 있었다.

겉 색은 파란색이어서 돌이라고 생각하기엔 여러모로 무리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원래 처음에는 이런 모양이 아니었는데, 내가 손에 쥐니까 이런 식으로 바뀌어버리더라.”

“그냥 힘주면 부서질 것 같아.”

송이가 연신 바라보며 신기해했다. 이게 태상이 훔쳐올 만큼 대단한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태상은 그녀의 말에 천계의 심장을 쥔 손에 힘을 주어봤지만, 부셔지기는커녕 그의 손만 빨갛게 달아올랐다.

“애석하게도 그렇게 쉬운 방법으로 해결되진 않네.”

그가 마계로 간 것은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일이긴 했지만, 적어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니 나쁘지 않은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송이가 조심스럽게 태상에게 물었다.

“만져 봐도 돼?”

그가 만졌을 때 딱히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지라 송이에게 그것을 넘겨줄까 싶었는데, 혜연이 다급하게 말렸다.

“사모님은 계약자가 아니시니까 위험할 지도 몰라요. 그러지 마세요.”

자나 깨나 불조심처럼 자나 깨나 송이안전 조심이었다. 들었냐는 눈빛으로 송이를 보니 그녀는 납득을 했는지 알겠다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렸다.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혜연과 제대로 말도 못해보고 말이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가족들과의 해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만 더 이렇게 말없이 사라지면 세연은 평생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할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협박까지 당한 태상이었다.

가족이 그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기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들과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었지만, 그는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해서 결국 차려진 밥을 모두 먹은 후 혜연과 서재에 틀어박힐 수밖에 없었다. 혜연이 내일부터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으나 그가 없는 동안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부재중일 때 생긴 모든 일들에 대한 보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마 갑자기 탑 색이 바뀌었으니 내일 난리가 날 거에요.”

“탑을 무너트려선 안 돼. 그게 있어야 우리가 마계로 갈 수 있을 테니까. 한 번 갔으니 두 번이라고 못 갈 건 없잖아?”

혜연은 태상의 말에 의아함을 표했다. 계약자들이 마계로 갈 이유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태상은 그녀에게 굳이 전쟁을 해야 한다면 인간계가 아닌, 마계에서 한다면 더 좋지 않겠냐는 뜻밖의 말을 했다.

전쟁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상관없는 이들이 휘말리게 될 것이고, 재산상 피해도 만만치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계약자들이 모여서 마계로 가서 악마와 싸운다면 그런 피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좋은 방법이긴 해요. 마계와 인간계를 오갈 수 있는 방법을 좀 더 연구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 그게 중요해질 거야.”

“네.”

자잘 자잘한 일들을 해결하자 태상과 혜연이 한숨을 돌렸다.

정확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는데, 제법 시간이 지났는지 밤은 어느새 깊어져 있었다.

“수고 많았어. 오늘은 이만 들어가고, 내일 다시 얘기 하자.”

사실 혜연의 몸은 아까 전부터 노곤해진 상태였다.

태상이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그동안 긴장했던 몸에 힘이 풀린 모양이었다. 으슬으슬한 것이 감기라도 걸릴 것 같은 모양새였다. 물론 계약자인 그녀의 튼튼한 몸은 감기 같은 게 걸릴 일이 없지만 말이다.

그녀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심리적인 이유가 컸다.

“좀 더 자세한 보고는 내일 올릴게요.”

“그래.”

태상이 서류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

혜연은 당장 뒤를 돌아 방을 나가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혜연의 시선이 태상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서류에 집중을 하느라 그걸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도 문소리가 나지 않자 의아해져 고개를 들었다.

“왜? 뭐 할 말 남았어?”

태상이 의아해 묻자 혜연이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혜연이 문을 닫고 나갔다.

문에 등을 기대고 선 혜연이 바닥에 스르륵 쓰러졌다. 그녀의 얼굴이 울상을 짓고 있었다.

‘다치시지 않아서 다행이야...’

혜연은 입술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를 너무 많이 걱정해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하지만 혜연은 억지로라도 힘을 주고 일어났다. 다른 누가 보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어서 이곳을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여 사모님이 본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혜연이 쿵쿵 뛰는 심장 위에 손바닥을 댔다.

표정과 말투 들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뛰는 그녀의 가슴은 정직했다.

그녀는 더러운 여자다. 그런 자신이 감히 바라봐선 안 되는 이를 가슴에 품은 건 오래 된 일이었다. 오르지 못할 나무를 몰래 바라보는 것은, 혜연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이기심이었다. 물론 이 감정을 숨기는 것은 그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었고 말이다.

혜연은 배시시 웃었다.

태상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것으로 된 거다.

혜연은 서둘러 몸을 추스르고, 얼굴에 밝은 미소를 덧씌웠다. 고된 피로가 그녀를 괴롭혔지만, 나가기 전에 송이를 만나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

송이가 뚫어져라 투명 유리 안에 놓여 있는 천계의 심장을 응시했다.

태상이 천계의 심장을 딱히 둘 곳이 마땅치 않아 급하게 마련한 곳이었다. 투명한 유리에 넣어 놓은 덕분에 송이는 편하게 가까이에서 그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왜 그렇게 거기에 관심이 많아?”

오랜만에 태우를 만나 기분이 좋은 것인지, 태상은 말똥말똥한 눈동자를 하고 있는 태우를 안고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송이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이내 다시 천계의 심장을 바라봤다.

“그냥 신기해서.”

송이는 악마의 심장을 봤을 때에도 무척이나 신기해하곤 했었다. 정말 악마의 심장으로 만든 장신구라도 만들어주어야 하나 싶었다.

“으아아앙”

송이가 갑자기 들리는 태우의 울음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고 태상을 봤다. 그가 품에 태우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울리지 않고 용케 안고 있는다 싶더니 결국 울리고 만 모양이었다.

송이가 황급히 일어나 태우를 받아들자 요란하게 울던 아이가 금세 울음을 뚝 그쳤다. 그 모습을 본 태상은 괜스레 억울해져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도대체 얜 날 왜 이렇게 싫어하는 거야?”

어릴 때(?)는 잘 웃어주곤 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잘 웃지 않고 시크해 진 태우다. 그리고 그 시크함은 아빠 태상의 곁에 서면 더 심해지고 말이다.

“거야 네가 얼굴을 잘 안 보여주니까 그렇지. 자주 얼굴을 보여줘야 네가 아빠라는 것도 알 거 아니야.”

송이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에 태상이 울상을 지었다. 그라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겠는가. 워낙 일이 바빠 어쩔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는 회사가 체계적이지 않았고, 인재가 고루 등용되어 있지 않아 그가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다.

CMC 회사 덩치가 너무 커져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솔직히 그의 회사는 신생회사였다. 세워진지 몇 년도 되지 않은 말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을 왕창 더 뽑아야겠어.’

지금 인원의 두 배는 더 뽑을 생각을 하며 송이의 품에서 방싯방싯 웃는 태우를 본 태상이 헛웃음을 지었다.

한편, 태상일행이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각.

홀로 남은 탑 주변에서 또 다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현상은 태상이 나타났을 때와 비슷했는데, 탑의 벽면에 세로로 길쭉하게 공간이 찢어졌다.

그 안에서 나타난 것은 새하얀 날개를 달고 있는 천사, 안이었다.

라마스의 피가 그의 옷 이곳저곳에 얼룩하게 남아 있었지만 그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흉흉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주변을 훑었다.

“강...태상...”

안의 스산한 목소리가 작게 주변을 울렸다.

으드득 이를 가는 그의 주변에는 살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살기를 받아내야 할 태상은 그 자리에 없었다.

“강태상!! 어디에 있는 거냐!!!”

주변이 쩌렁쩌렁하게 울릴 만큼 큰 목소리로 고함을 치는 안이었다. 하지만 잠깐의 시간차로 이미 태상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 간 후였다.

그는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 위로 올라갔다.

안은 계약자를 따로 갖고 있지 않았기에 인간계는 처음이었다. 해서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그의 눈을 뒤덮자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천계의 심장이 태상의 손에 잡히자마자 빛을 내뿜는 걸 멈췄던 것 때문인지, 안은 천계의 심장이 어디에 있는지 기운을 느낄 수가 없었다.

상황이 막막해지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조금 과한 방법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그의 신형이 하늘 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곤 안은 걸어가고 있던 아무 상관없는 일반인의 멱살을 잡아 채 벽에 밀쳤다.

쾅!

일반인의 몸이 벽에 그대로 박힐 정도로 과한 힘이었다.

후두둑 돌이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더불어 벽에 부딪힌 일반인의 몸도 함께 말이다.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일반인은 안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약한 존재라는 점이었다.

죄없이 그냥 길거리를 걷고 있던 남자는 안이 벽에 밀치는 힘에 의해 온 몸의 뼈가 산산조각나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안은 그저 손쉽게 남자에게 강태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그런 것 뿐이었다.

죽일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바닥에서 일반인의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안은 그가 죽었다는 것을 깨닫고 황당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약해. 너무 약해.'

안이 입술을 깨물었다. 고작 저렇게 약한 존재한테 천계의 심장을 빼앗기다니...

안은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 알지 못했다.

"꺄아아악!!"

그때, 여자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안이 뒤를 돌자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안이 남자를 죽인 것을 보고 비명을 지른 게 분명했다. 안이 자신을 쳐다보다 여자가 꺄아악!! 하고 또 다시 소리를 질렀다.

여전히 그의 눈동자에는 스산한 살기가 맴돌고 있었다.

약하게 밀친 것 뿐인데, 물어야 할 이가 죽어 난감했는데 잘 된 일이었다. 안이 순식간에 몸을 움직여 여자의 머리채를 잡았다.

"아아악!!!"

여자의 입에서 굵직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인간, 강태상이 어디에 있는지 얘기해라."

"아악! 아악! 살려! 살려주세요! 아악!"

여자는 공포에 사로잡혀 안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었다. 안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 작품 후기 ============================

아닠 왜자꿐 암송이랰 독자분들ㅋㅋㅋㅋㅋㅋ

밤송이도 아니곸ㅋㅋ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