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82화 (182/251)

00182  천계의 심장  =========================================================================

“라마스!!! 네놈의 잘난 계약자가 천계의 심장을 들고 도망을 쳤다!! 지금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다. 당장 저놈을 찾아와야 해!!”

안이 흥분을 했는지 핏발이 선 눈동자로 라마스의 멱살을 잡아챘다. 다른 천사들도 라마스가 만들어낸 끔찍한 결과에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바깥에선 악마들의 공격이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방어막이 곧 깨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만만치 않게 절망적인 상황인데, 내부에서 가장 소중하게 지켰어야 할 천계의 심장을 허무하게 도둑맞았다.

거기다가......천계의 심장이 천계에서 사라졌기 때문일까?

“무, 무너지고 있습니다!! 천계가 붕괴 되고 있어요!”

구구구궁!!!!

한 천사의 외침처럼, 그들이 있는 곳은 가장 빨리 붕괴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들의 바닥 아래에 깔려 있던 나무뿌리같이 생긴 것들이 급속도로 시커멓게 변하며 생명을 잃고 있었다. 구심점을 잃은 천계의 붕괴는 순식간에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만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천계에 주둔하고 있던 악마들의 발아래가 순식간에 무너져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모조리 전부 집어 삼키고 있었다.

악마들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했기에 당황했으나 천사들은 달랐다.

“젠장! 믿어선 안 됐었어! 그놈은 애초부터 천계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던 게 분명 합니다!!”

“천계의 심장을 계약자에게 빼앗긴 이대로는 절대 그냥 죽을 수 없습니다. 인간계로 가는 문을 다시 열어야 합니다!”

천사들이 의견을 모았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태상에게 만들어주었던 것과 같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이 붕괴되기 시작한 아주 불안한 상태라는 점이었다.

천사들은 이미 내어놓은 목숨이었던 지라 몸을 사리지 않았다. 오직 태상을 쫓아갈 수 있도록 다시 공간을 찢는 것이 중요했다.

한 번 해본 것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그들이 필사적으로 해서 그런 걸까?

다시 그들의 앞에는 인간계로 갈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공간으로 갈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 뿐이었다. 아까 태상을 삼킨 것처럼 한 명이 들어가면 사라지게 될 게 분명했다. 무리하게 많이 들어갔다가 둘 다 이상한 차원으로 빠질 수 있었다.

“단 한 명입니다. 누가 가실 거죠?”

“......”

“......”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그런 과한 임무를 맡아 성공시킬 수 있을까? 목숨을 내어 놓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그때, 라마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저지른 실수입니다. 그를 믿었던 것이 이런 일을 초례했으니 책임도 제가 져야겠지요. 그 자에 대해서는 제가 가장 잘 압니다. 그러니 찾아내는 것도 제가 하는 게 빠를 겁니다.”

라마스의 뜻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다시 한 번 라마스님을 믿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실수를 한 자를 어떻게 믿고 이런 중한 일을 맡긴단 말입니까?”

시간이 얼마 없었다. 천사들은 태평하게 앉아서 회의를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안이 라마스의 팔을 잡더니 말했다.

“당신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 거죠? 그 계약자와 마지막까지 얘기를 나누던 건 당신이었습니다.”

안의 눈동자에는 깊은 살의가 깃들어 있었다. 라마스는 부디 자신을 다시 한 번만 믿어 달라는 뜻으로 간절하게 안을 바라봤으나, 그런 너그러운 마음을 갖기엔 분노가 컸다.

“그분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천계의 심장을 가져 간 게 아닙니다. 단지 파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윽!”

“안님...!!”

라마스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커진 눈동자로 안을 바라봤다. 안은 이글거리는 분노를 담아 라마스의 몸에 넣었던 길쭉한 칼을 뽑아냈다.

“크윽..!!”

라마스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눈동자가 안에게서 떼어지지 않았다. 분노에 가득 사로잡힌 안은 라마스의 몸에 다시 한 번 칼을 쑤셔 넣었다.

푹!

“커헉!”

푹!

사방에 피가 튀었다. 라마스의 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그 소리는 계속되었고,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

“........”

주변 천사들 사이에서 깊디깊은 침묵이 돌았다.

분명 라마스가 잘못 판단하여 계약자를 이곳까지 끌어들이긴 했어도, 그를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어차피 악마들과 싸우면 자연스레 죽을 목숨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은 태상에 대한 분노를 라마스에게 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몸을 계속해서 찌르고, 또 찔렀다.

“수, 숨이 끊어졌습니다, 안님. 이제 그만하세요.”

“.......”

긴 침묵을 뚫고 한 천사가 용기 내어 말했다. 그리고 말의 효과가 있었는지, 드디어 안이 손을 멈추고, 라마스의 시체를 훼손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안은 얼굴에 틘 피를 닦아내며 천천히 칼을 라마스의 몸에서 뽑아냈다.

죽은 자는 늘 그렇듯 심장을 남기고 사라진다. 라마스의 시체 또한 천사의 심장을 남겨두고 사라졌다. 안은 그의 심장을 주운 뒤 하늘 위로 들어올렸다.

“동지들이어! 더 이상 혼란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 계약자를 찾아 반드시 사지를 찢어 죽이고, 천계의 심장을 되찾아 오겠습니다!”

그들에겐 시간이 없었다. 안의 선택은 독단적이긴 했지만, 쓸데없이 시간을 없애는 것을 막아 줄 수 있었다. 과하다 생각이 되긴 했지만, 적어도 천계의 심장을 도둑맞은 분노는 조금 풀어낼 수 있었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합시다.”

안의 말에 갈팡질팡하던 천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미 벌어진 일. 따지고 들기엔 그들에게 허락 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안을 믿고, 자신들은 악마들을 상대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옳았다.

“안님을 믿겠습니다.”

“저도 안님을 믿겠습니다.”

“반드시 천계의 심장을 되찾아주십시오.”

악마들이 도망을 치고 있었다. 천계의 붕괴를 그들도 눈치 챈 것이 분명했다.

단 한 명이라도 함께 자신들이 갈 곳에 끌고 가는 것이 천사들의 목표였다. 그들의 눈동자가 결연하게 빛났다. 안은 라마스의 심장을 손에 쥐고, 함께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계약자 강태상을 쫓아 그를 죽이기 위해, 그리고 천계의 심장을 되찾기 위해.

안이 인간계로 이동했다.

**

송이는 깜짝 놀라 탑의 표면을 매만지던 손을 떼었다. 그녀는 영문을 모르고 있는 혜연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탑이 변했어요.”

“네?”

“아니, 변하고 있어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혜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탑이 변화를 보인다는 말은 기가 막히게 캐치를 해놓은 상황이었다.

혜연이 송이의 몸을 번쩍 들어올렸다.

“어쨋든 여기서 피하라는 말씀이시죠?”

혜연이 최대한 탑에서 멀어지기 위해 뛰었다. 송이는 혜연의 목에 팔을 두르며 탑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그녀의 짐작이 있어서 일까?

탑이 정말 눈에 보이는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게 보이는 변화는 검붉은색이었던 탑의 색깔이 흰색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올라가 있던 꼭대기에서부터 시작 된 변화였다. 적어도 검붉은색이었던 것보단 나은 색이긴 했지만, 그 변화로 송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혜연은 정신이 없었다.

완전히 탑의 색깔이 흰색으로 변해버리자, 이번에는 매끈했던 탑의 표면 중 한 곳이 세로로 갈라졌다. 혜연이 송이를 자신의 뒤에 숨기고 그곳을 응시했다.

“사모님, 절대 제 뒤에서 나오시면 안 돼요!”

“네. 그럴게요. 조심하세요 혜연씨.”

송이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혜연은 세로로 갈라진 공간 안에서 무언가가 나온다면 곧장 공격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아마도 탑에서 나오는 것이니 악마일 확률이 높았다. 그녀에겐 필사적으로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기에 침을 꿀걱 삼키며 집중했다. 그리고 그때, 그녀들을 긴장하게 만든 세로로 찢어진 공간 안에서 누군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몸에 힘을 주어 잔뜩 긴장하고 있던 혜연과, 그녀의 등 뒤에서 불안에 떨고 있던 송이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그곳에서 나온 이가 송이와 혜연의 눈에 무척이나 익은 존재였기에 더욱 그랬다. 송이는 잠시 자신의 눈을 비비며 재차 그 존재를 재확인했다.

계속해서 확인하고 또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송이는 혜연의 등 뒤에서 빠져나오며 탑을 향해 뛰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간 안에서 나온 이를 향해 뛴 거였다.

송이의 돌발 행동에도 혜연은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그녀가 왜 저런 행동을 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도 상황이 허락했다면 송이처럼 그가 나타난 곳을 향해 뛰고 싶었을 테니까 말이다.

“태상아!!!!”

송이의 몸이 나풀나풀 나비처럼 날아와 태상의 품속으로 안겼다.

태상의 몸이 탑 안에서부터 완전히 벗어나자 세로로 찢어졌던 공간이 사라지고 흔적도 남지 않았다. 태상은 온 몸을 다 해 송이를 와락 끌어안으며 귀환을 생생하게 느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태상은 주변을 살피며 탑 근처라는 것을 확인하고 송이에게 물었다. 송이는 그런 태상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서럽게 눈물을 터트렸다.

“흑...흑흑.....어디 갔다 온 거야...흐윽....! 내가 위험하다고 하지 말랬잖아아~!!”

송이가 태상의 가슴을 원망을 담아 때렸다. 그는 일단 송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우는 그녀를 달랬다. 혜연이 뒤늦게 터벅터벅 태상에게로 걸어왔다.

“태상님....”

혜연의 눈동자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두 아름다운 여인들의 환영인사가 반갑기는 했지만, 탑 근처라는 이유 때문에 위험하게 이게 무슨 짓이냐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너 누가 여기 있으래? 탑 근처 위험한 거 몰라?"

"네가 안 오니까 그랬지! 도대체 그동안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네가 오지 않아서 얼마나 걱정 많이 했는지 알아? 연락은 왜 안 했어!"

태상은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천계의 심장을 주머니에 넣고, 송이의 두 볼을 손으로 잡아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냈다.

"할 얘기가 많긴 한데, 여기서 할 건 아닌 것 같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궁금해 하는 거 다 얘기해줄게."

태상의 말에 혜연이 고인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내고 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혜연이 태상과 송이를 차로 이동시켰다.

탑이 갑자기 하얗게 변한 것은 태상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천사들이 그를 이곳에 보내줬기에 변한 걸지도 모른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바뀔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악마는 검붉은색이고, 천사는 흰색인가 그럼?

태상은 탑에 대한 궁금증은 일단 뒤로하고 혜연에게 탑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송이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면서도 그의 말 하나하나를 경청해서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동안 그가 위험한 짓을 하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그러는 모양이었다.

얘기 중간중간 궁금증을 담은 눈빛을 쏘는 송이 때문에 잠시 자세한 용어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주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간단한 설명으로 끝냈다.

송이는 마계라는 곳이 악마들이 사는 곳이라는 말과 그가 간 곳이 그곳이라는 것을 알고, 기겁을 했다. 혹여 그가 다친 곳이 있지는 않을까 싶었는지 당장 차를 병원으로 돌리라고 성화를 부렸다.

"다친 곳 없어. 집으로 움직여. 병원으로 가는 것보단 집에서 쉬고 싶으니까. 그리고 손은 좀 떼어줄래? 여기서 일 치르고 싶지 않으면."

태상이 그윽한 눈빛으로 송이를 바라봤다.

그녀는 태상의 가슴과 허리 부분을 더듬거리며 상처를 찾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재빨리 손을 치웠다. 혜연이 있는데, 무슨 그런 엄한 소리를 하냐며 째려보는 것은 덤이었고 말이다.

태상은 얘기 마지막에 자신이 천계의 심장을 들고 튀었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혜연도 송이도 다소 황당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태상과 도둑질이라니, 이렇게나 어울리지 않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엄청 강한 에너지원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런 건 둘째 치고서라도 태상님이 위험해지는 거 아닌가요? 악마들이 가지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면서요."

아마 악마들도, 천사들도 태상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천계의 심장을 훔쳐 온 대가는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했기에 후회를 하진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거였어. 이걸 그냥 거기에다 뒀으면 분명 악마놈들 손에 들어갔겠지. 그 전에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볼 거야."

"심장이면 그냥 태상님이 흡수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천사나 악마의 심장은 아니었지만, 어찌됐든 심장이니 흡수를 하면 강해질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이 통하지 않아서 훔쳐 온 것이니, 그냥 흡수해버리면 깔끔하지 않을까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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