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0 천계의 심장 =========================================================================
태상과 천사들이 함께 모여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모였다. 악마들을 견재할 천사들만 빼고서 모든 천사들이 태상과 함께 천계의 심장을 보러 움직였다.
천사들은 더 이상 태상이 천계의 심장을 파괴하는 것을 반대 하지 않았다. 해서 태상은 천사들과 함께 그곳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태상은 천사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멀뚱하게 구경했다.
천사들은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움직였고, 그의 앞에는 딱 봐도 굉장히 특별해보이는 문 앞에 설 수 있었다.
문자체가 특별한 건 아니었다. 그냥 나무색 톤의 문이긴 했다. 하지만 문이 존재하는 곳이 허공이라는 것이 좀 특별했다. 보통 문이라면 그 옆에 벽이 있어야 하는 게 옳은 데, 그게 없었다.
태상이 문 가까이로 걸어가 옆을 확인하자 허공인 듯 손이 아무런 방해 없이 휘적휘적 움직였다.
허공에 어떻게 문이 달려 있는 거지?
하긴, 생각해 보면 이것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들도 겪어왔다.
“이게 거기로 들어가는 문인 거야?”
태상의 질문에 실렌이 대답을 해주었다.
“네, 맞아요.”
“그냥 평범한 문인데....뭐 벽 없이 문이 달려 있다는 게 특이하긴 하지만.”
“저 안으로 들어가면 아마 더 놀라실 거에요.”
실렌이 웃으며 말했다. 문을 여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천사가 아니라면 절대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물쇠를 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천사의 손길뿐이었으니까.
끼이익-
나무색 문이 열리고, 그 안은 칠흑 같은 어둠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허공에 매달려 있으니 상식적으로는 문이 열리면 허공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 자리에는 허공이 아니라 어둠이 대신 자리 잡고 있었다.
정말 저 문을 넘기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모양이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태상이 아니었다. 천사들이 그를 가운데에 끼고 앞과 뒤를 차지하고 들어갔다. 천사들의 보호아래 문을 넘은 태상은 몸이 쑥 아래로 떨어진다는 느낌이 받았다.
사방이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것도 잠시.
태상이 다시 환한 빛을 보았을 땐, 더 이상 자신을 삼켜버릴 듯 두려운 어둠은 사라져 있었고 그의 앞에는 오색의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태상이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놀라셨죠?”
나중에 누군가에게 자신이 본 광경을 설명해 달라고 한다면 표현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마치 자신이 보석 안으로 들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이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았고, 아름다운 색을 내뿜고 있었다.
색은 수시로 변했다.
어떤 때는 금색, 어떤 때는 은색, 어떤 때는 붉은색 등등등.....
태상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구경하느라 넋을 잠시 놓을 정도였다. 태상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겨우 기억을 떠올리고 정신을 차렸다. 그의 발아래는 거대한 나무뿌리가 천사들이 모여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것이, 그리고 저 나무뿌리 같이 생긴 것이 이어져 있는 곳에 다다르면 천계의 심장이 있을 거라는 것이라는 걸 장담할 수 있었다. 그가 걸음을 옮겨 그곳으로 움직였다.
“이게 천계의 심장이라는 건가?”
“맞습니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계약자. 라마스 때문에 찬성을 하긴 했지만 널 믿기에 한 것이 아니다.”
안이 경계어린 목소리로 태상의 걸음을 막았다. 태상은 안의 말을 개소리로 가뿐히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어가 천계의 심장 앞에 섰다.
안이 울컥한 표정을 지었지만, 라마스가 웃음 섞인 얼굴로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천계의 심장이라고 하기에 단순하게 보석처럼 생긴 것일 거라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특별하게 생김새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이 공간의 색이 수시로 바뀌는 것처럼, 그것도 수시로 색을 바꾸고 있었다.
단순히 빛으로만 존재하는 듯하면서도 가끔은 네모낳게 변했다가 세모로 변했다가 둥글어졌다가 하고 있었다.
태상은 그곳에서 느껴지는 짙은 기운에 절로 숨을 토해냈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벅찰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강하네.”
태상이 짧게 소감을 표했다.
“강하죠. 천계의 심장이 있기에 차원이 유지되고, 이것이 존재하기에 천사들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거니까요.”
라마스를 힐끗 바라보니 천계의 심장을 바라보는 눈빛이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아니,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천사들 모두 천계의 심장을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저 눈빛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그 오글거리는 눈빛들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되나?”
“이 포근하고 위대한 기운 앞에서도 입을 잘 놀리는 군.”
안은 태상을 무척이나 상스러운 놈으로 생각했는지 경멸이 섞여 있었다. 확실히 분위기가 경건하긴 했다. 하지만 태상은 안이 자신을 어떻게 보건 상관이 없었다.
저 천계의 심장만 파괴할 수 있다면 말이다.
‘다들 저렇게 사랑스러운 걸 보는 눈빛인데 파괴를 하겠다는 생각을 바꾸는 건 아니겠지?’
왜 저들이 천계의 심장이 악마에게 넘어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지키려고만 했지 파괴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저렇게 천계의 심장을 좋아하니, 감히 파괴하자는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천사들은 하염없이 천계의 심장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었다.
태상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단 생각에 그들에게 현실을 깨워주듯 말했다.
“그래서 도대체 언제 저걸 파괴할 생각인 거야 다들?”
“아!”
천사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의 말에 자신들이 왜 이곳에 들어왔는지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었다. 정신이 돌아 오자 천사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저것을 다시 앞에 두고 보니 파괴한다는 게 얼마나 잔인한 짓인지가 새삼 생각이 난 것이다.
“꼭 파괴를 해야 하는 겁니까?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는 게 좋....”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만큼 여유가 철철 넘치나?”
천사가 말하는 도중 끼어 든 태상의 목소리가 싸늘했다.
그들이 천계의 심장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했는데, 역시나 문제가 터진 거다. 그는 더 이상의 시간 지체를 가만히 두고 볼 순 없었다. 라마스도 어느새 정신을 차렸는지 단단해진 눈빛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태상님의 말이 맞습니다. 이미 결정 난 일입니다. 저 또한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걸 악마들에게 빼앗기는 것 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천계의 심장을 악마에게 빼앗기면 어떻게 될지 상상한 천사들은 결국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파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만약 천계의 심장이 파괴되면 천계는 그때부터 무너지게 될 겁니다. 천계의 심장이 없으면 더 이상 천계도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희들은 이곳과 생을 함께 할 생각이니 상관이 없지만 태상님이 걱정이군요. 혹시 인간계로 갈 방법을 찾으셨습니까?"
라마스가 태상에게 물었다. 하지만 태상은 인간계로 돌아갈 방법을 아는 게 없었다.
"말했다시피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탑이랑 악마의 심장이 공명하면서 공간이 찢어졌다는 거야. 그래서 일단 악마의 심장을 잔뜩 모아오긴 했는데, 이걸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태상이 품에서 꺼낸 악마의 심장들을 보며 천사들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악마들이 어떻게 인간계와 마계 천계를 오가는지 방법을 알 수만 있다면 일이 훨씬 쉬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엔 물어 볼 악마들이 없었고, 또 물어 볼 수 있는 상황도 되질 않았다. 그렇다고 물어 볼 악마를 구하기 위해 바람길을 다시 열 순 없지 않은가.
“저희들이 힘을 합치면 악마 놈들이 수작을 부려 놓은 걸 뚫고 공간을 이동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천사 한 명의 힘으로는 부족할지 몰라도 모두의 힘이 합쳐진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라마스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인 것 같다며 의욕을 보였다.
천사들이 그를 인간계로 이동시켜주는 방법을 알아주기만 한다면야 태상은 맘 놓고 천계의 심장을 파괴하는 일에만 집중 할 수 있었다.
‘그럼 난 이걸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궁리해볼까?’
일단 가장 쉬운 방법인 데미지를 입혀 파괴하는 것을 해보는 게 좋았다.
그가 일단 공격을 해서 안 되면, 그의 능력이 천계의 심장에 먹히는지 확인해보고, 그것도 안 된다면 천사들과 모두 힘을 합쳐서 힘을 써보는 게 현재 유일한 방법이었다.
태상이 마나건을 들고 천계의 심장 앞에 서자, 몇몇 천사들은 차마 보는 것조차도 하지 못하겠는지 고개를 돌려버렸다.
도대체 이게 뭐기에 천사들이 저렇게 옴짝달싹 못하는 건지 궁금했다. 자신이 보기엔 그냥 강한 에너지일 뿐인데 말이다. 천사들은 저것에서 그가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태상이 천계의 심장을 향해 마나건을 겨누었다. 그것은 여전히 색이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고, 모양도 바뀌었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않아서 맞추기엔 어려움이 없었다.
태상이 마나건을 은색으로 바꿨다.
빨강색이나 다른 색으로 해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냥 단순한 총질로 천계의 심장이 파괴 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태상이 느끼기에도 천계의 심장에는 굉장한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가뜩이나 바위에다 계란 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시간 아깝게 은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시도를 해볼 필요가 없었다.
실렌이 태상의 마나건이 은색인 것을 보곤 안색이 파리해졌다. 저런 무지막지한 무기를 천계의 심장에 겨누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절로 그 앞을 막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천사들은 그만큼이나 천계의 심장에 맹목적인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곧 마나건에 힘이 모이고, 타아앙!!! 하는 거센 소리와 함께 기운들이 천계의 심장을 향해 쏘아졌다. 천사들이 질끈 눈을 감았다.
천계의 심장을 파괴한다는 것을 인간들의 관점으로 치면 자신의 자식을, 혹은 부모를,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끔찍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묵인하는 것은 오로지 천계의 심장을 악마들에게 넘기지 않기 위함 때문이었다.
태상은 겨눴던 은색 마나건을 물렸다.
그의 거센 기운도 천계의 심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는지, 작은 생채기도 나지 않은 모양새였다. 천사들이 그것을 확인하고 저도 모르게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가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역시 그냥 단순하게는 파괴할 수가 없구나."
그럴 줄 예상 했기에 태상은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천계의 심장은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게 안정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천계의 심장이 그의 은색 마나건이 내뿜은 에너지를 모조리 흡수해버린 것 같았다.
"어지간한 힘으로는 끄떡도 안 할 것 같아."
태상이 말하자 천사들의 얼굴에는 어쩐지 뿌듯함이 서렸다.
"하아? 지금 그딴 얼굴 하고 있을 때야?"
덕분에 태상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야 했고 말이다.
태상은 천계의 심장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악마의 심장을 이용해 마나건을 충전시킨 뒤 다시 한 번 쏘았다. 여전히 천사들은 움찔거리며 안절부절 못했고, 태상은 조금의 금이라도 가 있기를 바랐지만 아까 전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확인 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천계의 심장에 그의 능력이 통하질 않는다는 사실은, 이걸 파괴하기 위해 무슨 수를 써야 할지 막막해진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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