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8 천계로 가는 길 =========================================================================
말 그대로 그 광경은 실렌이 말하고 라마스가 말하던 바람으로 만든 길이라고 설명할 수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바람이라니, 신기하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머리 꼭대기에 바로 만들어진 것이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실렌 또한 걱정하던 것을 너무나도 허무하게 만드는 광경에 헛웃음을 토해냈다.
"허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
태상과 실렌이 있는 곳 바로 위에 바람길이 만들어지는 확률은 아주 적었다. 그 확률을 뚫고 어처구니없게도 바람길은 마치 태상과 실렌을 반기는 것처럼, 그리고 얌전히 주인에게 자신을 타라고 말하듯이 나타났다.
어쩐지 이 모든 게 우연이 아니라 태상이 해낸 일인 것 같아서, 실렌이 저도 모르게 태상을 바라봤다. 하지만 태상은 신기하다는 눈동자로 바람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게 바람길이라는 거야?"
그가 태상의 바로 옆에 있었으니, 몰래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일단 실렌은 태상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게 바로 바람길입니다."
바람길이 나타났다는 것을 안 것은 태상과 실렌 뿐만이 아니었다. 악마들이 날개를 펄럭여 바람길로 진입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길은 중간에 끼어들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만들어졌다. 태상과 실렌이 있는 시작점에서부터 타야 바람길을 온전히 타고 움직일 수 있었다.
태상은 여기서 바람길을 감탄하고 있을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착하게도 콜택시처럼 왔줬으니 타줘야 겠지? 그러니까 내가 걱정하지 말랬잖아."
자신이 생각해도 운이 참 좋았다 싶었다. 그는 바람길과 이곳을 향해 날아오는 악마들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저걸 어떻게 타면 되는데?"
그는 바람길을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기에 실렌이 설명과 시범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린 실렌이 서둘러 방법을 알려주었다.
"제 뒤를 따라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저항하지 마세요. 바람길에 온 몸을 맡기시면 그가 우리를 안전하게 안내해줄 겁니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 바람길이 시작되어 있었기에 실렌이 태상의 몸을 들어 올려야 했다. 실렌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태상에게 물었다.
"제가 태상님을 안고 움직이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
태상은 실렌의 물음에 절대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시범을 보이면 자신이 알아서 가겠노라 말했다. 태상의 머릿속에는 어쩐지 카살라와 실렌이 겹쳐 보이고 있었다.
결국 실렌은 거센 바람 소리를 내는 바람길을 향해 뛰었다. 태상도 땅을 박차고 뛰어 곧장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태상의 몸이 바람길에 닿자 순식간에 휩쓸렸다. 실렌이 왜 바람길에 몸을 맡기라고 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람은 포근하게 그의 몸을 휘감아 빠른 속도로 하늘 위로 올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상의 뒤로 악마 몇몇이 바람길을 타고 그들을 뒤따라 오고 있었다.
그렇지 못한 아래에 있는 악마들은 점점 더 까마득한 점으로 보였고 말이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바람길에 저항하게 될 것 같아서 뒤따라 오는 악마들을 향해 마나건을 쏠 수는 없었다.
바람길을 타지 못한 악마들은 실렌과 태상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누구도 공격에 성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바람길이 그들을 완벽하게 지켜주며, 이동시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렌이 말하길 바람길에 순응하고 몸을 맡기면 안전하게 그들이 태상을 안내해줄 것이라 했었고, 실제로도 바람길은 태상과 실렌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그들으 라마스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었다.
물론 그 보호는 그들을 뒤따라 오는 악마들에게까지도 포함 된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바람길의 끝에 도달했다. 그의 몸을 휘감던 바람들은 태상을 뱉어내고 사라졌고, 그는 낙법을 이용해서 안전하게 땅에 착지했다.
그의 앞에 있는 천사들에게, 그리고 라마스에게 인사를 하기도 전에 태상은 마나건을 바람길로 겨눴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람이 툭툭 하나씩 악마들이 뱉어지자 탕탕! 하고 총을 쏘아냈다. 태상은 천사들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이제 막아!"
더 이상 들어와야 할 이가 없었고, 나머지는 모두 불청객이었다. 천사들이 서둘러 바람길을 닫았다. 태상은 천사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사이, 악마들을 무자비하게 쏘아 죽이고 있었다.
악마들은 기세좋게 바람길을 타고 들어왔다가 태상의 마나건에 꽥 하는 비명 한 번 지르지도 못하고 악마의 심장으로 변해야 했다.
바람길이 막히자 중간에서 들어오지 못한 악마들은 결국 바닥으로 추락해야 했다. 방어막은 다시 견고하게 막혔고, 다시 누구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았다.
태상은 악마들을 모두 정리하고 뒤를 돌자 천사들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음...안녕?"
태상이 그들의 시선에 보답하고자 인사했다. 천사들 사이에서 라마스가 앞으로 나와 그의 인사를 받았다.
"어서오십시오, 태상님."
그의 인사가 오랜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천계에 접속하면서 그에게 미션을 받아, 생활하던 그때를 말이다.
"오랜만이야, 라마스."
헤어짐이 서로 그리 좋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서 웃음을 썩힐 이유가 없었다. 천사들은 모두 경계어린 눈빛으로 태상을 바라봤지만, 유일하게 라마스만이 그를 반겨주고 있기도 했다.
라마스는 태상에게 좀 더 이야기 하기 좋은 자리로 안내를 하겠다고 말했다.
"실렌, 따라와주시겠어요?"
"물론이죠."
할 얘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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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천사들은 몇 되지 않았다.
해서 회의는 다 모여서 진행되었다. 수가 적은 덕분에 의견을 모으기는 쉬울 것 같기도 했다.
라마스는 우선 태상에게 어떻게 이곳으로 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곳은 더 이상 계약자들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그가 영혼으로 접속을 한 게 아니라 실제 몸을 갖고 이곳에 왔다는 것이 놀라웠다.
물론 태상은 어떻게 이곳으로 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했기에 많은 것을 대답해 줄 순 없었다.
그가 이곳에 온 방법에 대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천계의 심장에 대한 말이 나오자 회의장은 마치 시장통이 된 것마냥 난리가 났다.
"천계의 심장을 파괴한다 쳐도,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걸 파괴한단 말입니까!"
태상은 할 수 없을 거라고 단정 짓는 천사에게는 깔끔하게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그럼 파괴 되나 안 되나 실험해보면 되겠네."
"실험이라뇨! 도대체 당신은 천계의 심장이 어떤 건지 제대로 자각하고 있는 겁니까? 실험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말을 하다니, 저 무례한 계약자를 당장 내쫓아야 합니다! 애초부터 이곳에 계약자를 들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라마스!"
격렬하게 반대하는 쪽에 속하는 천사가 라마스의 이름을 으드득 이를 갈며 불렀다. 하지만 태상은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태상이 지금 저 귀찮은 천사를 죽일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그럼 천계의 심장을 넘기고 악마한테 여길 다 장악하게 할 건가? 당신이 그렇게 되면 책임 질 거야? 당신 목숨으로 인간계를 지킬 수 있었다면 난 굳이 이렇게 나서서 천계의 심장을 파괴하자고 하지 않았어. 너희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니까 내가 도우러 온 거라고."
태상은 엄연히 그들을 도우러 온 거였다.
그들이 저지를 죄악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인간들이 왜 저희들 싸움에 피해를 받아야 하지? 난 그렇게 되는 걸 두고 보지 않을 거야. 너희들이 계속 방해한다면 난 반대하는 네놈들을 죽이고서라도 저 안으로 들어가 천계의 심장을 파괴 할 거다."
어차피 천계의 심장을 파괴한다는 것 자체가 천사들을 모두 죽인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었다. 해서 그의 말은 거침없었다. 자신들을 죽이겠다고 떳떳하게 말하는 그의 오만한 태도에 천사는 얼굴을 붉혔다.
"라마스! 저 건방진 계약자를 계속 두고 볼 겁니까!?"
"미안하지만 안, 저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대를 죽이는 건 태상님이 아니라 제가 될 지도 모르겠군요. 계속 반대한다면 당신을 제 손으로 죽일 생각이니까요. 물론 그대가 날 죽이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기에 어쩔 수 없지만, 그대의 고집이 모두를 위한 고집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서로 목적은 같았다.
악마들에게 천계의 심장을 넘기지 않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걸 이루는 데 있어서 방법이 다르기에 서로 죽고 죽여야 한다면 라마스는 그 비극을 감내할 생각이었다.
안이 라마스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주춤했다.
그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은 라마스의 진심을 듣고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라마스님은 그게 옳은 일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게 옳은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싹을 틔우고 싶지 않을 땐 씨앗을 제거하는 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
잠시 회의장에 침묵이 돌았다. 모두들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명쾌하게 나와 있지 않으니 더욱 그랬다. 라마스가 지금 진심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은 안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것보다 비극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서로 함께 힘을 합쳐도 부족할 시기에 뜻이 맞지 않는다고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일어날 바에야 그냥 라마스의 뜻에 따르는 것이 나았다. 죽도 밥도 안 되는 일이 되는 것보단 그냥 한 가지 가능성을 믿고 뜻을 함께하는 게 말이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안이 침묵을 뚫고 입을 열었다.
"저 계약자가 다른 마음을 먹고 천계의 심장을 탐하려 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가 정말 믿을 만한 자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태상이 천계의 심장에 대한 탐욕을 부린다면 그것또한 천사들로서는 비극적인 일이 될 것이다. 실렌과 라마스도 처음에는 태상의 의도가 무엇인지 몰라 그런 쪽으로 오해를 하지 않았는가.
라마스가 안의 말에 답했다.
"오랜 시간이라면 오래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강태상 계약자를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그가 힘에 대한 탐욕이 강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마스가 태상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그는 남의 것을 탐내면서 자신의 배를 불릴 만큼 치졸한 분이 아닙니다."
본래부터 가진 것이 많은 남자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무언가에 탐욕을 부릴 사람이 아니었다. 라마스의 말을 들은 태상은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라마스가 비록 그를 계약자로 이용하긴 했어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파악할 만큼의 시간동안 함께 했었다.
그의 눈동자에 확신이 머물자, 안은 더 이상 자신의 의견을 고집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더불어 실렌이 라마스의 말에 자신의 말도 보탰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태상님은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짧게 함께 지낸 거지만요."
마지막에는 조금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하긴 했어도, 그의 뜻은 충분히 전해졌다. 반대를 하던 천사들 중 중심 역할을 하던 안의 기세가 누그러지자 다른 반대파 천사들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대체 천계의 심장을 어떻게 파괴하겠다는 겁니까."
"그건..."
라마스의 시선이 태상에게로 향했다. 모든 천사들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로 모아지자 태상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방법을 강구하지. 난 그거 생김새도 모른다고."
고로 나한테 묻지 말라는 뜻이었다.
너무 당당하게 모른다고 하니 라마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분을 그곳에 들이는 것에 반대하시는 분이 아직도 계시는 겁니까?"
모두들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반대하는 이를 찾았으나 누구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라마스의 말이 모두를 설득했음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젠 태상이 그곳에 가서 파괴를 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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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시기 전에 추천 한 번씩만 해주시면 제게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