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7 천계로 가는 길 =========================================================================
“정말 죄송한데,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왜?”
태상이 의아해하자 실렌의 시선이 바닥을 뒹굴고 있는 천사의 심장을 향했다. 태상은 그가 뭘 원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저걸 수습하려고?”
“천사의 심장도 악마의 심장처럼 흡수하면 도움이 되긴 하지만....솔직히 제 동료들을 흡수하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가지실 의향이 없으시면 제가 파괴해도 될까요?”
“.....”
태상은 현재 악마들을 죽이며 모은 수많은 심장들을 갖고 있었다. 해서 굳이 천사의 심장까지 챙길 필요도, 그걸 가지고 다닐 여유도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라마스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중요했다. 해서 무시하고 지나치려고 했던 건데, 아무래도 실렌은 마음에 쓰였던 모양이다.
“마음대로 해.”
태상이 선심을 쓰자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하나 처리한다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동료의 시체를 수습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실렌의 표정이 밝아지며 금방 하겠다고 하곤, 전투로 인해 흩어진 천사의 심장들을 한데 모았다.
악마나 천사의 심장을 파괴하려면 강한 힘이 필요했다. 심장을 남긴 천사나 악마의 등급이 높으면 높을 수록, 강도가 강해지고 말이다. 실렌이 심장이 모인 곳을 향해 힘을 사용하자 아무래도 낮은 등급의 심장들이었는지 금방 산산조각나서 가루가 되었다.
실렌은 그 가루를 절벽 아래에 뿌렸다.
이렇게 한다고 그들이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실렌 스스로의 마음에 위안이 되었으니 충분했다. 실렌은 감정 섞인 눈동자로 반짝거리는 빛을 내뿜으며 바람과 함께 절벽 아래로 사라지는 동료들의 심장을 씁쓸하게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실렌이 태상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가 급하게 이동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무리한 부탁을 한 거였는데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할 줄은 몰랐었다. 그는 실렌에게 충분했느냐는 물음을 던졌다.
동료들의 죽음에 익숙했기에, 슬퍼하는 것은 방금 그것으로 충분했다. 실렌은 그러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시간을 지체한 만큼, 그들은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이제 이쯤 되었으면 슬슬 이곳에서 악마들을 죽이면서 움직이는 계약자와 천사 한 명이 있다는 소문이 퍼질 때도 됐다. 분명 악마들도 바보는 아닐 테니 무슨 수를 쓸 것이다.
그 전에 도착해야 했다.
그게 현재 태상이 서두르는 여러 이유 중 한 가지에 속했다.
“이제 눈으로 보이네요.”
실렌이 움직이다가 걸음을 멈추고 하늘 위를 가리켰다. 태상이 고개를 들어 위를 보자 저 멀리서 희미하지만 웬 땅덩어리가 하늘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가 라마스가 있는 곳이야?”
“예.”
하늘 위에 땅이 있다니, 생각지 못한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동그란 막 같은 게 하늘 위에 있는 땅을 둘러싸며 악마들의 공격에서 저곳을 방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천공의 섬이라고 해도 좋을 듯 했다.
“확실히 위험해 보이네. 저런 막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 거야?”
악마들은 하늘 위에 떠있는 땅덩어리의 방어막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하지만 튼튼한 방어막은 훌륭하게 그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문제는, 저 방어막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냐는 거였다.
태상이 생각하기에 저 방어막은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 같았다.
“아마 그리 오래 가진 못할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저 방어막이 유일한 희망이긴 하죠. 그 전에 저희들이 천계의 심장을 파괴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천계의 심장을 어떻게 파괴할지는 생각해 보신 건가요?”
라마스도 그렇고, 실렌도 그렇고 태상이 천계의 심장을 파괴한다는 말에 놀라면서도,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며 의문을 표했다. 사실 천사들이 천계의 심장을 파괴하기로 결정이 된다면 그들이 파괴하면 될 일이었다.
태상이 굳이 라마스가 있는 곳으로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이곳까지 온 것은 바로 천사들도 천계의 심장을 파괴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천계의 심장이 단순하게 천사의 심장이나 악마의 심장을 파괴하는 것처럼 힘으로 파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차원을 유지시키는 거대한 힘이 담긴 천계의 심장을 파괴한다는 생각을 누가 해봤겠는가.
태상이 아니면 말이다.
천사들은 그것을 지키려고만 했지, 파괴한다는 것 자체를 떠올리지도 못했었다. 태상은 대수롭지 않게 실렌에게 말했다.
“어떻게 생긴 놈인지도 모르는데 파괴하는 법을 내가 어떻게 알아? 가서 보고 생각해봐야지.”
“예에?!”
실렌은 그의 비범함을 보았기에,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대답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 태평하게 가서 생각해봐야지 하고 말하니 황당했다.
“그럼 이건 파괴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할 수 있는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실렌이 어처구니없어하는 것을 보면서도 태상은 태평하게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자, 그래서 이제 저기를 가려면 어떡해야 하지?”
태상이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실렌은 노골적으로 화제를 돌려버리는 태상 때문에 깊게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저곳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딱 하나 뿐입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라마스님의 도움이 필요하고요. 일단 라마스님께 이곳에 도착했다고 연락을 넣어 보는 게 좋겠네요.”
태상이 그러라며 그에게 목걸이를 건넸다. 그러자 곧 목걸이에 빛이 서리고, 라마스가 연락을 받았다.
[실렌입니까?]
“예, 라마스님. 저희는 무사합니다.”
[어디쯤에 계신가요?]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악마들 때문에 몸을 숨겨야 해서, 가까이는 못 갔지만 눈에 보일 정도 거리입니다.”
실렌의 말에 라마스가 놀라 되물었다.
[벌써 말입니까?]
태상이 무척이나 서두르는 바람에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었던 거였다. 실렌은 놀라는 라마스의 목소리에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태상님이 굉장히 서두르시더라고요.”
실렌과 라마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상이 끼어들어 말했다.
“어떻게 결정됐어?”
천계의 심장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라마스는 굉장히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대가 반이고, 찬성이 반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넌?”
[예?]
“넌 찬성이야 반대야?”
라마스만 찬성해서 그를 돕는다면 문제 될 건 없었다. 다른 천사들이 반대를 하건 찬성을 하건 뭔 상관인가. 해서 태상이 그의 생각을 물은 것이다.
라마스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저는 찬성 쪽 입니다.]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천사들은 천계의 심장이 파괴되면 생길 여파가 두려웠기 때문일 거다. 자신들의 손으로 천계를 멸망시키자는 말에 어떻게 선뜻 그러자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라마스는 다행이도 태상의 의견을 찬성하는 쪽으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제가 지금까지 그 위기들을 넘기고 살아남은 건, 어쩌면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천계의 심장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는 건 끔찍한 일이 될 겁니다. 그런 불안의 싹은 아예 제거해버리는 게 좋을 테죠.]
태상과 라마스의 의견이 하나로 일치가 됐다. 태상은 사실 그가 그렇게 말할 것이라 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가 겪은 라마스는 영 속을 모르겠는 놈이긴 해도, 옳은 일에는 옳다고 할 줄 아는 놈이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되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던 태상은 한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럼 된 거야. 다른 놈들 사정 봐줄 이유 없어. 그럼 이제 문제가 되는 게, 저곳으로 들어가는 건데....도대체 저긴 어떻게 가야 하는 거야? 악마들을 막고 있는 저 둥글고 투명한 막 때문에 무작정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천사들의 의견은 전혀 상관없다고 말하는 게 퍽 태상스러워 라마스는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태상은 그가 그렇게 했다는 걸 몰랐지만 말이다.
[이곳으로 들어오려면 바람길을 찾으셔야 합니다.]
바람길?
[그 바람길을 찾아서 타시면 이곳으로 곧장 들어올 수 있습니다. 지금까진 악마들이 오지 못하도록 막아놨지만, 잠시 풀어놓겠습니다. 자세한 건 실렌에게 들으시면 되실 겁니다.]
실렌은 아는 내용인지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라마스에게 걱정 어린 말을 했다.
“그걸 풀면 악마들이 그곳을 통해 들어올 지도 모를 텐데 괜찮을까요?”
바람길을 이용할 수 있는 건 태상도 실렌도 그리고 악마들도 마찬가지였다. 태상이 들어 올 때까지 잠깐만 풀어 놓는다고 해도 악마들이 그 순간을 놓칠 리가 없었다.
“방해하면 모두 죽이면 돼.”
태상이 걱정할 것 없다며 말했다. 실렌이 저도 모르게 저 많은 악마를 어떻게 다 막느냐고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는 그걸 충분히 하고도 남을 실력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람길을 열어주세요.”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그렇게 말한 라마스는 연락을 끊었다. 라마스가 길을 열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있었기에 그 동안 실렌이 좀 더 자세하게 바람길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바람길은 한 방향을 향해 계속해서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곳입니다. 바람길을 잘 찾아 들어가기만 하면 곧장 저곳에 도착할 수가 있어요. 들어가기만 하면 나머지는 모두 바람이 해주니까요.”
“찾는 게 어렵나?”
“어렵다고 해야 할지....그곳까지 가는 사이의 시간동안 생길 일이 여러모로 걱정이라서요. 이게 바람이라서 시간에 따라 장소가 제각각으로 변하곤 하거든요. 그러니까 만약에 저희들이 있는 곳에서 엄청 먼 곳에 만들어지면, 그곳에 가까이 가는 사이 악마들이 바람길을 타고 안으로 엄청나게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거죠.”
실렌이 걱정하는 이유는 알겠지만, 무슨 일이든 어쩔 수 없는 위험부담은 지고 가야 하는 게 현재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안 위험한 일이 있었어? 왜 이렇게 걱정을 많이 하는 건데?"
태상이 축 늘어진 그의 어깨를 퍽퍽 때렸다. 하긴, 언제고 위험하지 않은 일이 있었나.
이곳까지 오는 것도 굉장히 위험했고, 지금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위험한 일이었다.
안 위험한 일이 있었나? 아니, 모든 게 다 위험천만했다.
그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두 말이다.
안전을 따지고 움직이는 겁쟁이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숨 쉬고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계약자들처럼 그냥 저냥 살아갔겠지.
그가 모험을 즐겼고, 위험했던 전투들을 이겨냈기에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거였다.
실렌은 태상의 다독임에도 여전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자신들이 혹여 바람길을 늦게 찾아 저곳에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긴다면, 실렌은 그 죄책감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일은 그나마 남은 천사들을 모두 죽이는 최악의 선택이 될지도 몰랐다.
때문에 실렌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긴장감이 잔뜩 깃들어 있었다.
"바람길이 보이면 제가 태상님을 데리고 곧장 날아 오르겠습니다. 태상님은 악마들을 상대해주세요."
그 말을 들은 태상이 품에서 마나건을 꺼내들었다. 악마들이야 그의 마나건 한 방이면 모두 죽을 놈들이었다.
그때였다.
휘이이이이이이이잉~!!!!!
그들의 머리 위로 엄청난 바람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태상의 머리가 이리저리 휘날렸고, 실렌의 날개와 머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엄청난 존재감에 태상이 저도 모르게 하늘 위를 바라봤다. 거센 바람들이 은빛처럼 빛나면서 하늘 위에 떠있는, 그리고 악마들의 공격을 막고 있던 둥근 방어막을 향해 휘몰아치고 있었다.
"바람길...?"
태상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제 3회 77페스티벌, 3위 했습니다.
부족한 글 3등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더 노력해서 좋은 글 쓰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그리고 오타지적해주시는 분들 귀찮으신대도 추천 눌러주시는 분들, 코멘 달아주시는 분들....모두모두 감사인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