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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76화 (176/251)

00176  천계로 가는 길  =========================================================================

천사들의 사정을 실렌에게 들었을 테니 알고 있을 것이다. 태상이 천사들을 위해 희생한다느니 뭐니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라마스가 가장 잘 알았다. 그러니 그가 저렇게까지 이곳에 반드시 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거기에 악마들한테 넘겨선 절대 안 되는 게 있다며.”

라마스가 속으로 이런...하고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실렌이 그에게 말한 모양이었다.

[...실렌에게 천계의 심장에 대해 들으셨나보군요.]

“그래.”

라마스는 그제야 그가 왜 이곳으로 오려하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그걸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천사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만약 그렇게 될 위기가 온다면 스스로 모두가 자결을 택할 마음도 갖고 있었다.

[천계의 심장을 원하시는 겁니까?]

라마스가 그렇게 오해를 했는지 목소리가 스산했다. 천사들은 그 누구에게도 천계의 심장을 건네 줄 생각이 없었다. 태상이 힘에 대한 탐욕이 강했으니 그것을 갖고 싶어 할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악마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태상에게 넘기는 일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태상의 말에 자신이 오해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상이 피식 웃으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한 것이다.

“아니, 그걸 파괴할 생각이야. 악마한테 넘어가기 전에.”

[천계의 심장을 파괴한다고요?]

라마스는 실렌과 마찬가지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말을 내뱉는 태상 때문에 당황스러워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너희들은 모두 죽게 되겠지. 그게 천계를 이루는 근원? 힘? 뭐 그런 거라며. 그래도 협조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악마의 손에 들어가면 천계가 끝나는 것으로 멈추는 게 아니라 인간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알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내가 태평하게 인간계로 돌아가라고? 절대 안 되지.”

라마스는 태상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까마득해졌다.

파괴라니, 말도 안 된다.

아니 파괴를 할 수 있는 건지 그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저희들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모든 수를 다 쓸 겁니다. 그러니 그 문제에 관해서는 태상님께서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너희들이 모두 죽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겠지.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선 천사들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하지만, 그거 정말 확실한 방법 맞아? 만약 아니면 어떡할 거야?”

[......]

만약 아니라면?

다른 방법이 있어서 악마가 천계의 심장을 취하게 되면?

결국 인간계도 천계와 마찬가지가 되고 말 것이다. 악마들에게 짓밟히고, 무고한 이들이 죽어나가게 된다.

태상은 그런 조금의 가능성도 남겨두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난 절대 그냥 넘길 수 없어. 나중에라도 악마 놈들이 수작을 부려서 그곳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인간계는 끝나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그런 가능성을 아예 없애버리게 천계의 심장을 파괴할 거야.”

[하지만....!]

라마스는 차마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말인데도 실렌이 왜 하겠노라 그의 뜻에 따랐겠는가.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차마 라마스는 지금 당장 확답을 할 수가 없는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 그러겠지. 그럼 그곳에 갈 수 있는 방법이나 알려줘. 내가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고.”

더불어 다른 천사들도 설득시켜 놓으면 더 좋고 말이다.

그들이 반대한다 해도 하지 않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부디 그걸 깨닫고 알아서 잘 행동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막는다면 그들을 죽여서라도 해결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지만 말이다.

[제가 오지 말라고 해도 오실 거죠?]

라마스가 물었다.

태상은 피식 웃으며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말했다.

“당연하잖아. 나 몰라?”

아니,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한 번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것까지 말이다.

[위험하실 겁니다만, 그 경고를 들을 분이 아니겠죠. 알겠습니다. 그럼 이곳에 올 수 있는 최단거리를 알려드리죠.]

딱히 방법이랄 것도 없었다. 이곳에 오는 것 자체가 너무 불가능한 일이라서 안 된다고 한 것 뿐이었다. 바깥에 악마들이 저렇게 많은데, 그걸 뚫고 오는 게 가능할 리가 없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 거다.

라마스가 실렌을 불렀다.

[실렌.]

“네, 라마스님.”

[태상님을 모시고 이곳으로 오세요. 그분이 곁에 있으니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라마스가 태상이 알아들을 수 없는 지명을 말하며 실렌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딱히 악마들에게 들키지 않고 올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그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이동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간 후, 악마들을 물리치고 직접 걸어서 움직여서 그곳에 가는 게 계획의 전부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자살하러 간다고 생각하면 되는, 계획조차 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막무가내 정면돌파였다.

“이건 미친 짓이에요.”

실렌이 라마스와 연락을 끊고 태상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실렌의 투정을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투정이건 뭐건 빨리 천계로 이동해. 내가 말 했잖아. 시간 없다고.”

실렌이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태상의 옷깃을 붙잡고 라마스가 알려 준 천계로 이동했다.

까라면 까야 하는 게 실렌의 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

크르륵!

쿠엑! 퀘엑!

실렌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무서워서 떨고 있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거면 큰 오산이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증오, 분노 그리고 살기가 가득 깃들어 있었다.

“정신차려.”

“죄송합니다.”

태상이 작은 목소리로 실렌에게 경고를 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바로 천계였다. 하지만 천계라고 다 같은 목적지가 아니었기에 계속해서 이동하고 또 이동해야 했다.

실렌은 태상이 일반적인 계약자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서 천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모두 태상의 무력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저곳을 지나야 하는데...또 정면돌파 하실 거죠?"

그들의 앞에는 거대한 절벽이 있었고, 그 절벽을 가로지르는 다리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있었다. 하늘 위를 날아 가는 건 너무 눈에 띄었기에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저 아슬아슬한 다리를 건너서 이동해야 그들이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태상은 돌아가는 방법을 원하지 않았다. 그건 가뜩이나 시간이 별로 없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당연하지. 무조건 정면돌파다."

태상이 이번에도 역시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강하다는 것을 이젠 알지만, 그럼에도 저 악마들이 득실거리는 소굴 속으로 뛰어드는 미친 짓은 익숙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악마들을 죽일 수 있다는 것 자체는 그에게 굉장히 기쁜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저 무리들을 모조리 절벽 아래로 떨어트리면 깔끔하겠는데."

다리 주변을 지키고 있는 악마들의 수가 제법 됐다.

덩치가 큰 녀석 두 명이 다리 끝과 끝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고, 그 주변에는 악마 녀석들이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왜 저렇게 분주한가 유심히 봤더니 커다란 상자에 보석같은 것들을 옮기고 있었다.

태상은 그것이 천사들에게서 얻은 그들의 심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렌도 그것을 보며 이를 으드득 으드득 갈고 살기를 내보이고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왜 저렇게 갑자기 흥분하나 했더니 저것 때문이었군.'

"다른 자잘한 악마 녀석들은 가능할지 몰라도, 다리를 지키고 있는 두 녀석은 제법 강할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그 능력을 쓰시는 게 빠르겠네요."

그 능력이 태상의 무력화를 가리키는 거였다.

"이걸 쓰면 다리도 같이 날아 갈 수 있으니 그렇게 해야겠네."

태상이 실렌에게 은색 마나건을 가리키며 말했다. 실렌은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태상의 마나건을 괴물 보듯이 응시했는데, 저 은색 마나건이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똑똑히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하늘을 날아서 저놈들의 시선을 끌겠습니다."

실렌은 의외로 그의 전투에서 쓸모가 많았다. 자신이 미끼가 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상은 그의 그런 태도가 기꺼우면서도 걱정이 되어 말했다.

"그러다가 저번처럼 죽을 뻔 하는 건 아니겠지? 네가 길잡이를 해주지 않으면 난 미아나 다름없다고."

바로 그것 때문이다.

새삼 그와 함께 다녀 정이 쌓여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실렌이 죽으면 갑자기 길잡이가 사라지는 것이니 무척이나 곤란해지는 상황이 된다. 실렌이 알겠다며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악마에게 당한 걸 얘기하는 게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부끄러움도 잠시, 실렌은 다시 진지해져야 했다.

전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실렌이 하늘 위로 올라가 그들에게 공격을 퍼붓자, 악마들은 천사가 나타났다며 곧장 대응을 시작했다. 악마들이 낄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하늘 위로 올라와 실렌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그들에게 천사는 더 이상 위험 대상이 아니었다.

목숨이 위험할 뻔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실렌이 마냥 약한 건 아니었다.

이런 조무래기 악마들은 그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실렌이 그렇게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이, 태상은 아래에서 마나건을 이용해 악마 놈들을 쏘아 죽였다. 그가 총을 한 번 쏠때마다 실렌을 향해 날아 오르던 악마가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타앙!! 쾅!!

탕!!! 탕탕!! 쾅 콰아앙!

더불어 어느새 붉은색으로 바뀐 마나건이 악마의 몸에 박힌 후, 2차 폭발을 일으켜 주변에 있는 악마들에게도 타격을 주었다.

그로인해 악마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다리를 지키던 악마가 그 모습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반대편에 있는 악마는 날개를 이용해 다리를 건너왔다.

천사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동료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던 것이다. 더욱이 천사의 실력도 제법 되어 보였다. 자신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들은 재빨리 전장을 살폈다.

적이 얼마나 되고, 얼만큼의 실력을 가졌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곧 그들은 어처구니없게도, 적은 고작 두 명뿐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상은 나머지 악마들은 실렌에게 맡기고, 그놈들의 앞에 섰다.

"네놈은 누구냐."

악마가 태상에게 식상하게도 정체를 물었다. 그동안 머리가 좀 돌아가는 높은 등급의 악마들은 하나 같이 태상이 계약자라는 것에 의아함을 표했다. 태상이 그들에게 마나건을 겨누며 말했다.

"이 형님이 지금까지 그 질문을 수십번 들었거든?"

태상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갔다.

그보다 덩치가 세 배는 더 큰 악마들은 자신들에게 전혀 겁을 먹지 않는 태상을 보며 불길함을 느꼈다.

"그러니까....."

그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왔다.

악마들은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가 이내 자신이 뭘 했는지 깨닫고 아차 싶어 고개를 돌려 동료 악마를 바라봤다. 자신의 추태를 그가 보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헌데 정작 동료 악마도 자신처럼 뒷걸음질을 친 게 보이니 더욱 황당했다.

"그 레파토리 좀 이제 그만 들으면 안 되겠냐?"

태상이 능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각각 한 명씩 한 개의 탄환을 쏘아냈다.

탕! 탕!

그들의 머리 통을 정확히 관통하는 두 발의 총성이 허공에 울려 퍼지다가 이내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아무리 총이 머리를 관통했다 해도 그들은 악마다. 악마가 고작 저런 상처에 즉사를 하진 않는다.

그러나 뒤를 이어 터지는 폭발은 그들의 머리를 펑! 하고 터트려버렸다.

해서 더 이상 두 악마는 생각을 이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없어졌는데 살아 남을 수 있는 악마는 없었다.

그들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고, 이내 허무하게도 악마의 심장으로 변해버렸다. 태상이 이곳을 지키는 대장 격 악마 둘을 너무나도 손쉽게 죽여버리자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실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늘 봐도봐도 적응이 안 되는 강함이다.

왜 라마스가 그라면 성공할지도 모른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그만큼의 능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강력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그의 무기가 강해서 저런 무력을 보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착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실을 목격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무기가 사기가 아니라 저 계약자가 이상할 정도로 강한 거였다. 해서 실렌은 더 이상 자신의 이 여정이 그렇게 미친 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자신의 관점에선 미친짓이지만, 태상의 관점에서 봤을 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 정리 했으면 가자."

실렌이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자신들의 대장이 죽자 도망치는 악마들을 처리하고 태상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태상은 어느새 달리며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앗! 같이가요!"

그가 움직이는 속도가 제법 빨랐기에 서둘러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됐다. 실렌이 날개를 펄럭여 쏜살같이 그의 곁으로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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