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8 붉은 하늘 그리고 붉은 탑 =========================================================================
송이가 그런 태상의 옷깃을 잡아왔다.
태상이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송이를 보자 그녀가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의 뺨에 짧게 키스했다.
“조심해.”
그동안 송이는 그가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간접적으로만 알고, 보아왔다. 이렇게 직접 전투를 하러 가는 모습을 보는 게 처음이었으니 묘한 감정이 일만도 했다.
“너도 조심해. 송이 좀 부탁한다.”
태상이 혜연에게 송이를 부탁했다. 그녀라면 충분히 송이를 잠시 부탁해도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답했다.
태상이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해준 뒤,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뛰었다. 그가 순식간에 바람을 휘날리고 사라지자 송이가 걱정이 되는지 연신 그가 사라진 곳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괜찮으실 거에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태상님은 강한 분이세요.”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송이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태상이 달려가자 악마를 둘러싸고 계약자들이 공격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태상은 의외의 광경에 잠시 몸을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그들이 단순히 악마를 막는 게 아니라 악마를 사냥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에 그가 의외라는 시선을 보낸 것이었다.
처음에는 낮은 등급 악마가 나타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악마가 계약자들을 향해 제법 강한 공격을 퍼붓는 것을 보고 놈의 등급이 낮은 게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그렇다면 악마가 약한 게 아니라 계약자들이 강해졌다는 뜻이었다.
예전이라면 A등급으로 보이는 악마를 스물밖에 되지 않은 인원으로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악마는 등급이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그 강함이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 계약자들의 실력이 올라간 것은 다 태상이 그들에게 일정 금액을 받고 제공하고 있는 악마의 심장을 희석시킨 물약 덕분이었다.
그들은 그 물약을 사먹으며 힘을 길렀다. 그리고 저렇게 악마를 충분히 사냥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누구도 강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실력은 다들 쑥쑥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태상은 그들에게 돈을 얻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악마를 상대할 수 있는 군대를 갖게 되는 일이었기에 매우 흡족한 일이었다.
‘정말 내가 굳이 오지 않아도 됐었겠네.’
태상의 기분이 묘해졌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계약자들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마침내 그들끼리 악마를 쓰러트리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환호했다.
태상은 그제야 걸음을 옮겨 그들에게로 향했다.
태상이 악마가 죽은 곳으로 다가가자 그가 혹여 심장을 훔쳐가려고 하는 것인가 하여 경계서린 눈빛을 했다.
“가, 강명진?”
그러나 그들은 곧 누군가의 목소리에 경계를 풀 수밖에 없었다. 강명진이 누구인가.
바로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CMC 회사 사장이었다. 그리고 그들도 태상의 얼굴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진짜 강명진...사장님이십니까?”
“예.”
그들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서렸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왜 이곳에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태상은 어느새 사라진 시체 속에서 나온 심장을 손에 쥐었다.
“이 심장은 여러분들께 모두 균등하게 배분해드리겠습니다.”
어차피 그들이 심장을 갖고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CMC 회사에 파는 것밖에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처럼 등급이 높은 악마는 처음 잡아 보는 것이었다. 해서 그 값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했다.
“그 심장이 얼마나 가격이 될까요?”
“여러분들은 심장 값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해서 성과급을 여러분들께 5천만 원씩 추가 분배해드리겠습니다.”
“5천만 원이요? 심장 값이 5천만 원이 아니라 5천만 원을 추가로 더 준다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조금 과할 수 있는 돈이었지만, 태상은 그들의 성장이 굉장히 기꺼웠다. 처음으로 그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이들이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게 악마들을 상대하기 위해 옳은 준비과정을 밟고 있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해왔었다. 그런데 이렇게 A등급 악마를 소수의 계약자들로만 잡을 수 있는 모습을 보니 감격 그 자체였다.
태상이 눈에 익은 직원 한 명에게 손을 까딱하자 그가 다가왔다.
“이 분들 카드 받아놓고 내 사무실로 올리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들은 악마도 죽이고 거하게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했다. 이 세상에 아직 돈이 통한다는 건 다행인 일이었다. 사실 악마가 나타나면서 돈은 거의 불쏘시개가 될 뻔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태상은 돈이 무용지물이 되면 자신의 회사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을 잘 알았다. 해서 돈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바로 악마들이 더 이상 시민들을 위협시키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CMC 회사는 시민 여러분과 계약자 분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합니다.]
CMC 회사 광고에 괜히 저 문구를 넣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CMC 회사를 믿고, 다시 평소와 같은 생활로 돌아왔고, 태상은 악마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해 많은 기부금을 냈다.
아직 세상은 여전히 돈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것이다.
덕분에 돈은 예전 그대로의 값으로 돌아왔다.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더라도 한화는 그 값이 변동되지 않았다. 계약자들에게도 돈이 필요했고, 일반인들도 여전히 돈이 필요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셨어요?”
송이에게로 가자 혜연이 의아해했다.
그가 갔으니 5분도 빠른 거였는데, 무려 20분 가까이 시간이 걸렸다. 혜연이 의아해하자 태상이 웃으면서 말했다.
“계약자들이 잡고 있더라고. 그래서 그냥 놔뒀어.”
“등급이 낮았어요?”
“아니, A등급 비슷한 놈인 것 같더라.”
“정말요? 그런데 어떻게....”
혜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
계약자들이 언제 그렇게 강해졌는지 그녀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이 악마를 죽였으니 심장 가격 측정해서 균등분배하고, 성과급으로 5천만 원씩 넣어.”
"이게 그 악마의 심장이라는 거야?"
그때, 송이가 심장에 관심을 보였다. 태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혜연의 손에 올려주는 대신, 그녀의 손 위로 심장을 내려놓았다.
"예쁘다."
색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송이는 아무리 살펴봐도 평범한 보석처럼 보여 신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냥 평범해보이는데 이게 그 악마라는 괴물한테서 나온다고? 안 믿겨져."
송이가 심장에 제법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연신 눈을 초롱거리며 그에게서 받은 심장을 살폈다.
“아무래도 사모님께 선물로 하나 드려야겠어요."
혜연이 농을 하며 세 사람의 얼굴에서 잠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나저나 다른 계약자들도 실력이 얼마나 향상 됐는지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악마의 심장을 반 정도 희석해서 만든 물약이 아마 그들의 실력 상승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여왕이 했던 말처럼 너무 강하면 계약자들에게 부작용을 줄 수 있기에 부득이하게 반을 줄여야 했는데도 눈에 띌 정도로 큰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그럼 실력 테스트를 위해 대회 같은 걸 열어보면 어떨까요? 지금은 저희가 아는 사람들 빼곤 누가 강한지 모르잖아요."
"호오...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계약자들의 실력이 생각보다 훨씬 더 향상됐다. 그럼 새로운 실력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인재를 등용하는 건 태상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고 말이다.
태상의 칭찬에 혜연이 쑥스럽다는 듯 헤헤 웃었다. 그러다가 아차! 하며 말했다.
“그동안 탑에 대해 회의를 했는데, 국가에서는 오랫동안 기다릴 수 없다고 해요. 하지만 일주일 정도는 내버려 두는 걸 허락 한대요.”
허락할 수 없다고 해도 국가에선 계약자들을 움직일 힘이 없었다. 하지만 말이라도 저렇게 해서 CMC 회사와 관계를 이끌어가야 했다. 태상은 당연히 그들이 그렇게 나올 것이라 생각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태상이 일주일 넘게 저 탑을 내버려 둔다 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 그냥 듣지 않아도 상관없을 말이었다.
“탑에서 또 안개가 나올 수 있으니까, 대비시켜두고 사람 접근 차단해놔. 송이 집에 데려다주고, 곧 돌아올게.”
“네.”
그렇게 모든 일이 잘 해결되어 가고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송이의 손에 든 악마의 심장이 불길하게 번쩍거리며 빛을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갑자기 빛이 환하게 뿜어졌다가 다시 사그라들고, 다시 빛을 내는 것이 계속되고 있었다. 태상이 혜연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기에 둘은 그 변화를 알지 못했다.
그녀는 심장이 원래 이런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사실 한 번도 심장이 이런 식의 변화를 보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당황스러워 태상에게 말했다.
"태상아. 이거 원래 이래?"
"응? 뭐가?"
태상이 의아한 듯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이상한 빛을 내뿜고 있는 악마의 심장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번쩍 빛을 냈다가 다시 사그라졌다가 다시 빛을 내는 심장은 태상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가 송이를 손에서 서둘러 심장을 뺏어들고, 자신의 뒤로 물렸다.
“이거 언제부터 이랬어?”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태상의 손에 닿자 심장이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혜연이 다가와 심장을 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왜 이러죠? 심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처음 아니에요?”
“그래. 처음이야.”
“사모님, 괜찮으신 거에요?"
"네, 괜찮아요. 제가 잘못 만져서 이러는 걸까요?"
송이는 혹여 자신 때문에 일이 잘못 된 건가 싶어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심장에 잠시 손을 뎄다고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는 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아닐거에요.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어요. 아무래도 이 심장이 특별한 것 같은데요?”
“갑자기 탑이 나타났고, 악마가 나타났어. 이 심장이 그 악마한테서 나온 거니 탑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타당하겠지.”
태상은 잠시 고민을 시작했다. 이 심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심장에서 나오던 우우우웅!!!하고 울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좀 위험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 계약자 몇 명 붙여서 송이 좀 집으로 보내줘"
"난 괜찮아. 어서 일봐. 혼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송이의 말에 태상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결국 송이는 계약자들의 호의를 받고 돌아가겠다고 약속을 해야 했다. 혜연이 계약자 두 명을 불러 송이를 부탁시키고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도 태상의 손에 있는 심장은 진정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는 동생한테 부탁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에요. 그런데, 심장은 여전해요?"
"응."
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혜연은 어쩐지 심장에게서 불길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파괴하는 게 어떨까요? 왠지 불안해요.”
"나도 불길한 기분이 들긴 하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소리가 나는 거지? 괜히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태상과 혜연이 원인을 찾기 위해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붉은 탑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이상함을 처음 발견한 것은, 바로 송이였다.
송이는 자신들을 데려다주기로 한 계약자들과 함께 걸어가다가 잠시 양해를 구했다.
그녀의 시선을 탑이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계약자들은 탑 가까이에 접근하려는 송이를 말렸다. 하지만 그녀는 자꾸만 탑이 신경 쓰였다. 계약자들은 송이가 태상의 와이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함부로 손을 델 수가 없었다.
이 탑이 나타난 후로,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그 변화의 흐름 속에 그녀의 남편인 태상이 있었다.
송이는 탑을 보면서 느껴지는 불안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어쩐지 자신이 그냥 이대로 이곳을 떠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자신의 손에서 이상하게 번쩍거리기 시작하던 악마의 심장이 마음에 걸렸는데, 탑을 보면서 느껴지는 불길함까지 더해지자 도저히 그냥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마음을 먹고 계약자들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아무래도 남편한테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절 그이한테 다시 안내해주세요.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요."
계약자들은 혜연에게 그녀를 안전하게 집으로 보내라는 명령을 들었기에 무척이나 곤란했다. 그들이 서로 시선을 마주하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송이가 다시 한 번 그들을 설득했다.
"절대 피해가는 일 없을 거에요. 그러니까, 절 그이 있는 곳으로 다시 데려가주세요."
송이의 표정이 무척이나 간절했다.
============================ 작품 후기 ============================
그런 책이 있었군요. 모, 몰라쓔ㅠㅠㅠㅠㅠ여ㅠㅠㅠㅠ
그럼 그냥 이름 떼고 '계약자'로 제목 바꾸겠습니다.
괜...찮으신지요?? 아, 그리고 '저희나라'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아는 부분이었는데도 실수를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