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67화 (167/251)

00167  붉은 하늘 그리고 붉은 탑  =========================================================================

[짧막 공지 'The prince and the Pauper'제목에서 '계약자'로 제목 변경을 할 예정입니다. 혼란을 드릴 것 같아 공지합니다. 참고해주세요 :)]

영화를 보고 나오자 태상과 송이는 손을 맞잡고 길거리를 걸었다. 다른 커플처럼 평범하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물건들을 보고, 얘기를 나누고 하는 것들을 한 것이다.

가끔 태상을 알아보는 이들이 있어 소란이 일긴 했지만, 태상이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급히 사서 착용하자 사람들의 시선에서 조금 멀어질 수 있었다.

송이는 기분이 무척 좋은지 연신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저거 예쁘다.”

송이가 싸구려를 파는 가판대에 서서 연신 예쁘다고 말하고 있었다. 태상은 사달라는 걸로 생각하고 지갑을 꺼냈는데, 송이가 그의 손을 덥썩 잡더니 다른 곳으로 끌었다.

“왜?”

태상이 그냥 가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자 송이가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오늘 내가 원하는 건 아이쇼핑이야. 그러니까 지갑 집어넣어. 괜찮으니까. 그리고 저런 거 하고 다니면 어머님이 싫어하신단 말이야.”

세연은 송이가 태상과 급을 맞춰주길 늘 바랐다. 그동안 임신을 하고 있어서 함께 데리고 다니며 가르칠 수 없었지만 요즘은 그녀를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덕분에 송이는 무언가를 몸에 두를 때, 기본적으로 십 만원 단위 이하의 물건은 걸칠 수 없었다.

품위가 떨어진다며 세연이 질색을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이 얼마나 매서운지 조금만 값 싼 걸 걸쳐도 정확히 지적을 해왔다.

“엄마가 너 복장도 신경 써?”

태상은 금시초문이었기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세연이지만 그녀의 복장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심한 것 같았다. 그녀가 옷차림을 노출이 심해서 보기 불편할 정도로 입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바지를 자주 입던 그녀가 요즘에는 늘 단정한 원피스를 입었다.

“뭐....이 생활에 익숙해지려면 어쩔 수 없지. 이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니까, 힘들지 않아. 비싼 거 걸치고 좋은 거 먹는데 뭐가 힘들겠어. 어머님도 다 날 생각해서 그러시는 거 알아.”

태상이 세연에게 왜 송이에게 그런 짓을 하느냐고 물으면 세연은 서운한 마음에 송이를 못 살게 굴 수 있었다. 그런데 저렇게 송이가 말이라도 괜찮다고 해주니 태상은 고마웠다.

그때, 거리를 걷던 그들은 사람들이 TV 스크린에 시선을 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쩐지 주변이 부산스럽다 싶었다.

송이는 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향해 시선을 주며 말했다.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태상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오늘은 신경 안 쓸래. 나 없으면 세상 망해? 그냥 좀 오늘은 쉬자.”

“그래도 엄청 심각한 것 같은데...”

태상이 저렇게 말하는 게 이해가 되긴 하지만 그래도 그가 이곳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잘 알았다. 그가 안쓰럽긴 하지만, 그로인해 죽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걸 알았다. 송이가 단호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봤다.

“네겐 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힘이 있잖아. 만약 네가 그렇게 해준다면 태우도 나도 널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할 거야.”

“끄응......”

송이가 그렇게 말하니 태상은 더 이상 뉴스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오늘은 쉬려고 했는데 기껏 다 미뤄 놓고 오니 악마가 나타난 모양이다. 그는 뉴스를 보지 않았을 땐 단순히 그런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뉴스에서는 악마를 조명해놓은 게 아니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검붉은 탑의 모습이었다.

태상은 그 탑을 보자마자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저 탑은 그가 예전에 계약자들과 함께 한국에 있는 탑들을 모조리 뿌리 뽑았었다. 해서 다른 나라에는 아직 남아 있으나 한국에는 탑이 없는 게 맞았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한국에 또 다시 탑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이곳에서 아주 먼 곳은 아니었다. 그들이 영화관에 있을 때, 저 탑이 나타난 모양이었다. 차로 이동하면 얼마 걸리지 않고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태상이 저도 모르게 송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송이는 이미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가봐야 하는 거지?”

“혼자 집으로 못 돌려보내. 같이 가자.”

송이가 뜻밖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그녀를 두고 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 떨어지는 게 더 위험했다. 탑이 나타났는데, 언제 어디서 악마가 나타날지 모른다. 만약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송이가 혼자서 악마와 맞닥뜨리면 어떡하겠는가.

차라리 이럴 땐 그의 곁에 있는 게 훨씬 나았다.

태상이 꺼두었던 핸드폰을 켜자 뜻밖에도 아무 곳에서 연락이 오지 않음을 확인했다. 태상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고 혜연에게 통화를 걸었다. 그녀라면 아무리 휴가를 줬다 해도 일을 해겨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태상은 송이를 데리고 차로 이동하며 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상님,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뉴스 봤어. 지금 어디야?”

[아....역시 보셨군요. 오늘은 괜찮을 것 같아요. 그냥 휴가 즐기셔도 돼요. 제가 어떻게 해결해볼게요.]

태상은 그녀의 말에 왜 혜연이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아무래도 그의 휴가를 망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태상도 그럴 수 있다면 참 좋았겠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탑이 또 다시 나타났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지금 탑 근처지? 그쪽으로 갈게.”

[그냥 오늘은 사모님이랑 계속 계셔요. 정말 제가 혼자서 해결할 수 있어요.]

“네가 혼자서 어떻게? 탑은 내가 가야 해결 할 수 있는 일이야.”

[요즘 계약자들이 많아졌잖아요. 태상님이 계시지 않아도 해결 가능해요.]

태상은 그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계약자들이 많아졌다 해도 그들의 능력은 태상에 비하면 미미했다. 그렇기에 그는 전화를 끊고 송이와 함께 차로 탑을 향해 이동했다.

탑 근처에는 경찰들이 깔려 있었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탑 근처에 다가오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다. 태상과 송이가 차를 타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경찰이 그의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더 이상 접근하실 수 없습니다.”

경찰이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CMC에서 나왔습니다.”

태상이 지갑에서 카드 하나를 꺼내 경찰에게 보여주었다. CMC 회사 소속이 되면 받을 수 있는 카드였다. 태상도 이런 경우에 사용하기 위해 일반 계약자처럼 카드를 만들어 다니곤 했다. 경찰이 카드를 확인하면서 태상의 얼굴에 껴져 있는 선글라스를 보고 말했다.

“선글라스 좀 잠시 벗어주시겠습니까?”

경찰의 말에 태상이 순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태상의 얼굴을 확인한 경찰의 눈동자가 커졌다.

“어엇?”

아무래도 그를 알아 본 모양이었다. 태상이 윙크하며 카드를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가도 되겠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들어가시죠.”

경찰이 카드를 내밀고 뒤로 물러나자 태상은 차를 몰아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 그들은 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탑이 땅 아래에서 위로 솟아 오른 터라 차가 더 이상 탑 근처로 접근할 수 없었다.

“따라가도 될까?”

송이가 태상에게 물었다. 차 안에 남아 있으라고 하면 남아 있겠지만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송이의 눈동자를 본 태상은 평소라면 그녀를 당연히 차 안에 남아 있으라 했겠지만, 어쩐지 오늘따라 그녀에게 따라 오라고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와도 돼.”

“정말?”

송이가 활짝 웃었다. 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탑 가까이로 들어가려면 송이가 걸어서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해서 태상은 그녀를 안아 들고 움직였다.

송이가 꺅꺅 귀여운 비명을 질렀다. 무서워서 지른 게 아니라 재밌어서 즐기는 거였다. 태상은 그런 송이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탑 가까이로 다가가자 계약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게 보였다. 태상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누구십니...헉!”

일반인들도 그렇지만 특히 계약자들 중에서 태상의 얼굴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계약자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인데 더욱 얼굴을 모를 리가 없다.

“책임자 어디 있습니까?”

“제,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계약자는 마치 군기 바짝 든 군인처럼 태상에게 말했다.

책임자는 혜연이었다. 그녀는 발 빠르게 돌아다니며 열심히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저 탑을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다가 태상과 시선을 마주치자 깊게 한숨을 포옥 쉬었다.

“오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세상에, 사모님까지 오신 거에요?”

혜연과 태상 그리고 송이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너야 말로 하루 쉬라니까 여기서 뭐하는 건데? 남자라도 좀 만날 것이지...”

“.....전 그냥 일이 더 좋아요.”

혜연의 얼굴이 낮게 가라앉았다. 태상은 그녀의 표정을 보며 아차 싶었다. 그녀가 남자들에게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그 일 때문인지 혜연은 낯선 남자와 가까이 지내는 법을 못 봤다.

태상이나 길드원들에게는 자주 맑은 웃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해서 태상과 그녀의 스캔들이 자주 나는 것이다.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송이가 그런 혜연에게 인사를 건넸다.

“혜연씨, 오랜만이에요.”

“네 사모님.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정말 죄송해요.”

“일이 바쁜 거 아는데 뭘요. 태상이 도와주느라 힘들죠?”

송이와 혜연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태상은 혜연에게 일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물었다.

“갑자기 탑이 또 나타났고, 현재 계약자들을 풀어서 악마가 나타나는 곳이 있을까 해서 주변을 수색 중이에요. 근처에 있는 분들은 될 수 있으면 대피소로 이동 해달라고 했고요.”

탑이 나타난 곳에는 늘 악마가 나타났기에 더욱 조심해야 했다. 아무리 한국은 악마로부터 가장 안전한 나라로 손꼽힌다지만, 악마가 나타날 확률이 높은 곳에서 대피하지 않고 있을 간 큰 사람들은 없었다.

“탑에서 뭔가 이상한 일은 없고?”

“안개가 끼지도 않고, 그냥 조용해요. 공격을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하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어서 지금 회의를 하고 있었어요.”

악마가 나타난다는 건 시민을 위협하는 일이기에 나라에서 사람이 파견된다. 해서 그 사람과 함께 회의를 하여 심사숙고 한 뒤에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해야 했다.

CMC 회사가 나라에서 해야 하는 일을 대신해주고 있기에 정부가 무능력한 게 아니냐는 불똥이 튀었고, 결국 이런 식으로 CMC 회사를 도와주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이 하는 일은 미미했으나 나라와 협조한다는 명분은 회사를 운영하는데에 제법 괜찮은 타이틀이었던 지라 서로 윈윈하는 결과였다.

"이제 태상님이 오셨으니 회의 할 필요도 없겠지만요."

혜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탑이 생긴지 1년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한 탓인지 하늘 또한 여전히 붉었다.

하늘이 붉어진 것은 탑이 나타났을 때 시작 된 일이었다. 그러니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분명히 이어지고 있을 거다. 태상이 한국에 있는 모든 탑을 없앴지만 하늘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의 탑까지 영향력이 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저걸 해결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솔직히 모든 나라를 돌아다니며 탑을 부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국 일주를 해야 한다는 건데,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그는 가족들이 있는 이곳을 오랫동안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해서 그 일은 계속해서 미뤄지고 미뤄지기만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 일 때문에라도 탑에 대해 다시 한 번 조사를 시작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탑이 나타난 건 분명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유가 없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탑은 이거 하나가 전부인 거야?"

"일단 한국에 나타난 건 이게 전부 인 것 같아요. 다른 나라도 똑같은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볼까요?"

혜연의 말에 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탑에 대해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어."

"그럼 지금 당장 없애지 않겠다는 거세요?"

"이 주변에 24시간 계약자들 대기시켜서 악마가 나타나는지 순찰 돌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주민들이 싫어할 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탑에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게 확실하니 그걸 알기 전까진 없애지 않을 것이다. 태상은 송이를 집으로 안전하게 데려다 놓고 탑을 본격적으로 수색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다! 악마가 나타났다!!!!!"

그때, 먼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혜연과 태상의 시선이 마주쳤다. 드디어 찾았던 악마가 나타난 것이다.

태상은 인명피해가 있기 전에 악마를 죽이기 위해 서둘러 움직이려 했다.

============================ 작품 후기 ============================

제목 괜찮아요? 가시기 전에 추천 한번씩 부탁드립니다.

그리고.....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

추석 26~29일 총 4일간 부득이하게 하루 1연재를 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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