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9 천사 =========================================================================
“안녕하십니까? 혹시 뭔가 불편한 점이 있을까 하여 찾아 뵀습니다.”
태상은 그가 왜 온 것인지 알겠는지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이렇게 방문하는 것은 좀 더 그에게 신경을 쓰기 위함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태상이 선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보를 아예 모르니 이렇게 물으러 온 것이다. 대충 눈치로 성향을 살핀다 해도 그것에는 무리가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눈치로 알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이었다. 적어도 그가 원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마침 서비스를 부르려고 했던 참이었던 지라 태상이 그에게 말했다.
“저녁 2인분 준비해줘요. 배고프니까.”
호텔 책임자는 그의 선호 음식 몇 가지와 피해야 할 기피 음식을 묻고, 최대한 빨리 음식을 준비하겠다고 대답했다.
“아, 그리고 내일 아침에 내가 이 방을 나서기 전까지 누구도 문 두드리게 하지 마세요. 하실 수 있겠습니까?”
태상은 분명 자신을 만나러 사람들이 몰릴 것임을 알았다. 이를 몰랐던 호텔 책임자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른 채 알겠다며 시원하게 대답했다.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얼마나 진을 빼야 할지 전혀 생각지 못한 경솔한 대답이었다.
그때, 사로나가 문을 열고 나왔다.
호텔에서 사로나를 태상의 바로 옆방으로 배정해 준 덕분에 그녀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 둘 사이를 연인관계라 착각하고 한 방에 배정을 하려다가 태상이 그런 오해를 할 것 같아 방 두 개. 라고 딱 잘라 얘기를 해준 덕분에 그런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다.
그녀도 몸을 씻었는지 머리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사로나는 태상과 호텔 책임자가 나와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불어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
[밥 먹으라고.]
그녀가 갑자기 방을 나와 그에게 온 것은 태상이 그녀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사로나는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은 여기로 준비해주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태상이 호텔 책임자에게 영어로 말하고, 사로나에게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충 먹겠다고 답했다. 어차피 까칠하게 가리면서 먹는 편이 아니었기에 상관없었다.
잠시 후, 사로나와 태상은 올라온 음식을 먹으며 배를 채우고 있었다.
♬♪♩♬
그때, 태상의 전화가 울렸다. 혜연에게서 온 전화였다.
“어.”
[태상님, 일은 어떻게 되셨어요?]
“악마는 다 죽였고, 오늘 하루는 러시아에서 보냈다가 내일 한국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잘 되셨어요! 두 번 걸음 하면 어쩌나 했거든요.]
“두 번 걸음?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뭔가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메일로 영상 하나를 보내 드렸어요. 그걸 좀 확인해주세요.]
혜연의 말에 태상이 사로나의 핸드폰을 빌려 인터넷을 켰다. 사로나가 무슨 일이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상은 혜연이 영상 하나를 보라고 했다며 그녀와 함께 영상을 확인하기로 했다.메일을 확인하자 혜연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천사 영상? 진짜 천사라도 나타난 거야?”
태상은 제목을 읽어 보고 혜연에게 물었다.
[아뇨. 그건 아닌 것 같은데....일단 영상 한 번 봐주세요. 제가 확인한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태상님이 영국에 꼭 가보셔야 할 거에요.]
동영상을 클릭하자 곧 영상이 시작됐다. 화질이 좋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려서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 천사 날개를 단 이가 악마를 죽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조작이 된 게 아니라면 정말 천사가 나타난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였다.
천사의 등만 찍다가 그 등을 돌린 덕분에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천사의 얼굴을 보자마자 태상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확실하게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외형을 봤을 때, 그들에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카살라?!”
사로나 또한 생각지 못한 카살라의 등장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상과 눈을 마주했다.
“카살라 맞지?”
태상은 자신이 본 게 확실한지 다시 한 번 영상을 재차 확인했다. 하지만 정말 그 천사는 카살라였다. 그렇다면 이 동영상은 조작이 없는 진짜라는 거였다.
“어디서 얻은 영상이야?”
[영국에서 나왔어요. 조사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좀 찜찜한 부분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 영상이 진짜라면 영국에서 갑자기 의뢰를 취소한 건 카살라 때문인 것 같아요.]
그가 악마를 죽인 거라면 충분히 이해가 됐다. 갑자기 악마를 어떻게 잡았나 했더니, 이런 비밀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만약 영상에 나온 이가 카살라가 맞는 거라면 태상은 그를 자신에게로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살라는 그의 길드원이다. 그러니 그가 있어야 할 곳은 영국이 아니라 자신의 곁이었다.
“이 영상이 많이 퍼지고 있어?”
인터넷에서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아무리 사이트에서 차단을 한다 해도 마우스 몇 번이면 퍼지는 게 동영상이었다. 태상은 카살라가 널리 알려지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이트에 올라왔다가 지금은 모두 삭제돼서 널리 퍼지진 않았어요. 아마 영국에서 퍼지는 걸 막으려고 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예 전부 다 막았다고는 확신할 수 없겠죠. 퍼진 곳이 인터넷이다 보니까요.]
영국에 나타난 천사.
그 천사가 카살라라면, 물을 것이 많았다. 그는 천계와 마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접속이 되지 않은 후에 천계와 마계의 일이 어떻게 됐는지, 태상은 그것을 알아야 했다.
태상과 사로나는 내일 아침 일찍 준비를 해서 영국으로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국 어딘가에서 카살라가 분명 태상을 찾고 있을 것이다.
그가 이곳이 계약자들의 세계라는 것을 알았다면 말이다.
**
호텔 책임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방금 말 했다시피 고객님께서 먼저 일어나기 전까지 절대 방문객을 받지 말라는...”
“지금 저분이 누구이신지 알면서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그건 그렇지만 그러다가 기분이 언짢으시기라도 하면 어쩌십니까?”
“......”
호텔 책임자의 말도 일리가 있었는지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문제는 방문객도 절대 방 안에 있는 고객에 뒤지지 않는 귀한 분이라는 점이었다.
“그럼 저분을 무작정 계속 세워둬야 한다는 말입니까?!”
“끄응.....”
결국 호텔 책임자는 어쩔 수 없이 태상이 머무는 곳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객실 안에 있는 손님이 얼마나 귀한 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찾아 온 이를 언제까지 계속 세워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문 앞에 선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심호흡을 한 뒤 문을 노크했다. 비록 밤에는 별 다른 일 없이 얌전하게 지냈다곤 하지만 귀한 손님일수록 이런 문제에 예민한 법이었다. 욕이란 욕은 다 들을 준비를 마친 그가 드디어 노크를 했다.
똑똑똑
“고객님.”
똑똑똑
“고객님?”
하지만 아무리 노크를 해도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잠을 자고 있는 건가? 싶어 다시 한 번 더 큰 목소리로 노크를 했다.
똑똑똑!
“고객님,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고객님을 찾아 온 귀한 손님 분이 계십니다.”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듣지 못한다는 건 그의 목소리를 일부러 무시하고 있거나 아니면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거였다.
호텔 책임자는 결국 프론트에 연락을 넣어 호실에 연결 된 전화를 걸어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안에서 받는 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의 가슴이 불안감에 휩싸였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일단 그는 마스터키를 이용해 문을 열었다.
이 정도 연락을 했는데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면, 혹여 응급상황이 펼쳐져 있을 지도 몰라 들어왔다고 핑계를 댈 수 있었다.
그가 드디어 문을 열고,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방 안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가 없었다. 숨길 수 없는 싸한 분위기가 흘렀다.
설마....하는 표정으로 모든 방을 확인한 그는 울상을 지었다.
없다.
아무도 없다.
그가 서둘러 방을 나와 사로나가 있는 객실의 문을 다급하게 두드렸다.
똑똑똑똑!
“고객님! 고객님?”
하지만 역시나 사로나의 객실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확인하자 역시나 였다. 호텔 책임자는 지금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귀한 분께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울상을 지었다.
혹 잠깐 다른 곳에 간 건가 싶어도 들고 왔던 캐리어가 모두 사라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짐작은 틀릴 확률이 높았다.
‘큰일 났군.’
호텔 책임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일단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세르게이에게 단순히 그들을 잘 모시라고 부탁을 받은 것만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는 손님들이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만약 나가려 한다면 자신에게 재빨리 연락을 줄 것을 신신당부 했었다. 그런데 눈 깜짝 할 사이에 없어졌으니 그의 안색이 창백해질 만도 했다.
호텔 책임자는 서둘러 그들이 사라졌음을 알리고, CCTV를 확인하는 보안실로 이동했다.
그들이 도대체 언제, 어떻게 나갔는지 알기 위함이었다.
한편, 그들을 기함하게 만든 태상과 사로나는 태평하게 영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그들에게 손을 쓸 게 분명하니 귀찮은 일을 없애고, 한 시라도 빨리 카살라를 찾기 위해 서둘러 움직인 것이다.
“정말 카살라가 맞을까?”
얼굴을 정확히 세세히 확인 할 수 없다는 게 그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 모습을 하고 날개를 달고 있는 이는 그들이 알기로 카살라밖에 없었다.
“입고 있는 옷이나 체형이 카살라 같았어. 그리고 그런 날개를 갖고도 인간 모습을 한 게 카살라 말고 더 있겠어?”
“아니, 아마 없겠지.”
그가 어떻게 그의 길드원이 됐는지는 사로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영국 어디에서 카살라를 찾을지가 문제였다. 영국에서 악마를 죽일 수 있는 카살라를 쉽게 내어 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 태상과 카살라가 만나는 게 중요했다.
“영국 어디로 가야 카살라를 만날 수 있을지 생각해 놓은 거라도 있어??”
사로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영국 어디에서 카살라를 찾느냔 말이다.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사로나의 생각과는 달리 태상은 방법이 있다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어쩔 수 없이 카살라가 올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면 돼.”
“올 수밖에 없는 환경?”
사로나가 의문을 표했다.
그랬다. 카살라가 올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면 영국에서는 카살라를 태상이 있는 곳으로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악마'였다.
"악마를 이용할 거야. 악마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어가면 그들은 분명 카살라를 악마에게로 보낼 거야. 그때 우린 카살라랑 만나는 거지."
"카살라가 만약 강제적으로 영국에 붙잡혀 있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면 이 방법이 소용 없어지는 거잖아."
"아니, 그들은 카살라를 절대 강제적으로 붙잡아 놓지 못해. 그들한텐 카살라의 능력이 필요한 거야. 러시아가 우리들한테 쩔쩔 메던 거 알잖아."
세상은 변했다.
많은 돈을 가진 것보다,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인정을 받는다.
카살라는 그 점에서 영국에 필요한 인재였다. 그러니 절대 강제적인 구금을 당했을 리 없다. 아마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그들에게 모셔지고 있을 것이다.
"악마가 날뛰면 분명 카살라한테 부탁을 하겠지. 악마를 없애 달라고 말이야. 그러면서 뒤로는 카살라를 어떻게 하면 계속 쭉 이용해 먹을 수 있을 지 머리를 굴리겠지."
사로나가 이해가 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어찌됐든 카살라를 만나려면 악마를 이용해야 한다는 거네."
하지만 어떻게?
사로나는 다시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악마는 원한다고 해서 소환이 가능한 존재가 아니다. 언제 소환이 되는지 시간이며 장소며 절대 미리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지금 이곳에 아이라라도 있었다면 악마가 있는 곳을 찾아달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 곁엔 아이라가 없었다. 사로나나 태상이나 둘 모두 그런 능력은 갖고 있지 않았고 말이다.
태상이 그녀의 의문에 웃음을 지었다.
"없으면 있는 것처럼 꾸미면 돼."
꾸민다고??
사로나는 설마 하는 시선으로 태상을 봤다.
악마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은 폭발이 일어나는 곳을 확인하는 거였다.
그들이 몸을 숨기고 주변 건물들을 파괴한다면 굳이 악마의 모습을 확인하지 않아도 악마가 한 짓이라고 착각을 할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카살라가 나타나 주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악마가 진짜 있을 필요까지는 없는 거다.
사로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의 생각은 지금 상황에서 가장 기가막힌 해결책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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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가시기 전에 추천 한 번씩만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