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49화 (149/251)

00149  한용우  =========================================================================

“태상님은 한 번 뱉은 말은 꼭 지키시는 분이세요. 그러니 잘 협조한다면 당신 미래에 절대 나쁘지 않은 일이 될 거에요. 아니, 당신은 이미 태상님께 목숨을 빚 진 거나 다름없어요. 만약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한테 떠들었다가 정부에서 알기라도 했으면 실험체로 잡혀갔을 걸요?”

“실험체요?!”

용우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하죠. 당신은 다른 계약자들과 조금 다른 존재에요. 이 사실이 퍼지면 계약자들이 당신을 잡아가건, 정부에서 당신을 잡아가건 둘 중 하나였을 거에요. 물론 결과는 똑같았겠죠. 그들에게 정보를 쏙 빼 먹히고 버려지는 거요.”

“..........”

혜연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용우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태상에게 처음으로 말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었다. 다른 계약자였으면 이 사실을 알고 입막음을 위해 용우를 죽였을 것이고, 정부에서 이 사실을 알았으면 그는 실험체로 쓰기 위해 끌고 갔을 것이다.

용우는 혜연의 말을 듣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가족이 있는 대피소를 알려주자 태상은 용우가 자신에게 협조하는 이상 그들의 안전은 100% 보장 될 것이라 말했다.

솔직히 용우의 가족을 정말 보호해주기 위해 데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를 제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물론 그가 자신의 말을 잘 듣는다면 약속한 데로 그들이 피해를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땐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

용우를 혜연에게 맡기고, 태상은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그는 성진이 알아 온 건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악마가 나타나지 않아서인지 거리에는 어제보다 훨씬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손에는 하나같이 묵직한 짐들을 들고 다녔는데, 후에 또 다시 악마가 나타나면 급할 때 쓰려는 모양이었다.

성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상이 도착하자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성진의 인사를 대충 받은 태상이 그에게 물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일 할 사람들이 많이 필요할 거다."

"사람을 구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하실 생각이시죠?"

성진은 이 건물에 뭐가 들어설지 모르고 있었다. 솔직히 성진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회사를 설립하겠다고 건물을 알아보라 하는 태상의 명령이 무척이나 어이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려고 하기에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무리하게 움직이는 지 그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태상은 성진이 앞으로 맡아서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이 건물의 목적에 대해 말해주기로 했다.

"여긴 계약자들을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될 거야."

"....계약자요? 그 뉴스에서 나오는 이상한 능력을 쓰는 사람들 말입니까?"

성진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분야라서 그런지 무척이나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래. 앞으로 이 나라의 중심은 이곳이 될 거다.”

앞으로 그렇게 될 확률이 높은 곳이었다. 중심이 되기엔 건물의 크기가 그의 성에 차지는 않았지만 그건 앞으로 차차 재건축 하면 될 일이었다. 건물 바로 옆에 땅을 사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성진에게 말했다.

“일단 건물 싹 깨끗이 청소 시켜야겠네.”

“아, 네. 알겠습니다.”

아무리 괴물이 나타나고, 난리가 났어도 사람은 살아야 한다. 돈이 있어야 사는 게 사람이니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늘 많았다. 이런 단순 노동에는 특히 말이다. 그러니 건물을 청소시키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태상이 회사 로비에 서서 쭉 주변을 훑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이곳에 많은 사람들과 계약자들이 붐비게 될 것이다. 태상은 그 미래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

“환영합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흐트러진 머리 하나 나오지 않게 머리를 꽉 묶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안내소 여성 직원이 활짝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그러자 들어 온 남자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가 CMC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고객님.”

“제가 이걸 좀 팔려고 왔는데요. 정말 돈으로 바꿀 수 있나요?”

남자가 주머니에서 꺼내 내민 것은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는 보석이었다. 여성 직원은 연신 미소를 띠며 말했다.

“물론 가능하십니다. 저희 CMC 소속 계약자이신가요?”

“아뇨. 소속 계약자여야만 팔 수 있는 건가요?”

남자가 한껏 당황하며 물었다. 여성 직원은 물론 아니라며 설명했다.

“소속 계약자시면 2% 적립을 받으실 수 있어서 여쭤 본거랍니다. 소속 계약자가 아니시더라도 거래는 가능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십니다.”

“아~!”

남자가 2%라는 말에 아쉬움을 보였다.

한 푼이라도 아쉬운 지금이니 2%의 적립이 무척 아쉬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를 설립한 계약자가 천사 계약자인지라 악마 계약자인 자신은 이곳에 소속으로 등록하기가 꺼려졌다. 아무리 광고로 천사와 악마 계약자들 사이 차이를 두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야 없었다.

그런 위험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은 계약자들이 잡은 악마의 심장을 돈으로 바꿔준다. 도대체 심장을 모아서 뭘 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더 이상 접속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계약자들이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곳이 바로 이곳이 된 것이다.

합법적으로 돈을 벌려면 이곳에서 심장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범죄를 저질러야 했는데, 범죄자로 낙인찍히면 현상금이 붙는다. 다른 계약자들이 현상금을 얻기 위해 자신을 잡으러 오는 거다. 계약자가 범죄자로 낙인이 찍히면 죄의 엄중에 따라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악마가 나타나면서 법이 바뀌게 된 것이다. 계약자에 한하여 엄중한 죄를 지으면 진짜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 그런 강한 법 덕분에 한참 증가하던 범죄자 계약자들의 수가 많이 줄어들 수 있었다.

그런데 현상금은 누가 거냐고?

바로 이곳, CMC (Contractors Management Company). 계약자들을 먹여 살리는 이 회사였다.

도대체 범죄자들을 잡아 이곳에 이익이 되는 일이 뭐가 있는지는 모른다. 그냥 돈을 주니 잡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의에 위배되는 일이 아니니 더욱 좋았다.

아니, 모른다는 건 어쩌면 그냥 핑계일 뿐. 사람들은 은연 중 알고 있다.

그들이 단순히 이익이 되기 때문에 범죄자가 된 계약자에게 현상금을 거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진 않지만, CMC가 없었다면 이 나라는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을 것이다.

지금 다른 나라를 보면 이곳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 때문인지 이곳은 정부에서도 인정해주는 회사였다.

단순히 천사 계약자가 설립한 회사이기 때문에 찝찝해서 소속하고 있지 않은 거지, 솔직히 대외적으로는 어떤 회사보다도 훨씬 좋은 일을 많이 하는 회사였다. 오늘 처음으로 이곳에서 거래를 하는 그는 혹시나 뒤로 무슨 수상한 낌새를 풍기지는 않는지 열심히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직원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뭐야?”

남자가 당황하는데, 직원들은 다 함께 90도로 인사를 했다.

직원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인사하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뒤를 돈 남자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다른 계약자의 시선도 그와 똑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비 안으로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처음 보지만, 여자의 얼굴은 그에게 많이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헉! 정혜연!!”

남자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저도 모르게 외쳤다. 그녀의 이름이 로비에 울리자 혜연의 시선이 움직이며 그와 마주쳤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너무 큰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버린 것이다. 그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저 싱긋 웃음을 보인 후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자 남자가 숨통이 트이는지 후~하고 숨을 쉬었다.

어느새 직원들은 다시 자리에 앉아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녀의 옆에서 함께 움직이던 남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져 자신을 담당하던 여자 직원에게 물었다.

“정혜연씨 옆에 오던 남자는 누굽니까?”

"사장님이신데요? 돈은 통장으로 넣어드릴까요 아니면 현금으로 찾아가시겠어요?"

"예?! 사장님이요?"

"네."

“여기 사장이 저렇게나 젊었습니까?”

남자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자신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보이는 남자였다. 그런데 이 회사의 사장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처음부터 저 남자가 계속 사장이었나요?”

“왜 그런 걸 물으시죠? 저희들은 업무 외에 다른 것에 대한 질문을 대답해드릴 의무가 없습니다.”

상냥하게 웃어 보이던 여자 직원의 표정이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남자는 그녀의 변화를 눈치 채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가져 온 심장을 거래할 수 없을 것만 같이 직원의 눈초리가 살벌했던 것이다.

‘정혜연이 회사 대외적인 일을 하는 이유가 애인 사이여서 그런거였군. 정혜연 힘을 믿고 이 회사를 차린 거였어.’

정혜연은 계약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인기 연예인 같은 존재였다.

일반인들에게,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계약자의 존재를 알리게 된 것도 그녀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이 퍼지게 되면서였고, 그동안 그녀가 활약해 온 수 많은 업적들이 계약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고, 정부에 대한 억압을 푸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해서 지금은 그녀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녀의 활약을 알지 못하는 이가 없었다.

그런 상징적인 정혜연이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곳이 이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왜 악마 계약자들이 선뜻 이곳과 계약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악마 계약자와 천사 계약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 공평하게 대했으며, 서로 등을 맡기는 신뢰를 보여주었다.

이 회사가 어떻게 악마 계약자와 천사 계약자를 공존하게 하는지.

남자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이곳과 계약을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남자의 뜻밖의 말에 여자 직원은 생긋 미소를 다시 지어주었다. 이곳에 아예 오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오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여자 직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리 챙겨둔 서류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걸 모두 작성해주시고, 저한테 다시 오시면 됩니다."

남자는 서류를 받기 전, 아직까지 머뭇거리는 태도를 없애지 못하고 물었다.

"정말 악마 계약자들도 차별 없이 대해주는 겁니까?"

남자의 물음에 여자 직원은 아주 가볍게 말했다.

"저희들은 계약자들을 그렇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CMC소속 계약자와 그렇지 않은 계약자로 나누죠."

"......."

남자는 여자 직원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그녀가 남자에게 덧붙여 설명했다.

"누구도 이곳에서 악마 계약자를 차별할 수 없습니다. 서류를 천천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계약서 1항에 '우리는 모두 똑같은 계약자임을 인정한다'는 것에 동의를 하셔야만 소속 계약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남자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서류를 받아 들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정말 서류 가장 제일 첫 문장에 그녀가 했던 말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계약자임을 인정한다.]

악마 계약자라는 이유로, 그동안 서로를 죽고 죽여 왔던 사이이기에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일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계약자들이 이곳을 들락날락거리며 거래를 하고 있었고 그들 모두 이 서류에 동의한다는 사인을 했을 것이다.

남자는 자신이 너무 고정관념에 휩싸여 너무 늦게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다른 이들은 이미 자신보다 훨씬 앞서 나가고 있었다. 그는 서류를 한 줄, 한 줄 읽으며 글귀를 마음속에 깊이 세기고 그것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지장을 찍었다.

그는 이제부터 악마 계약자에서 벗어나 CMC 소속 계약자로 바뀌게 된 것이다.

비로소 갖게 된 소속감이 그의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어 주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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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서 쓰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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