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6 한용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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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니?! 몸은 어때? 다친 덴 없는 거야?”
세연이 태상의 등장에 호들갑을 떨며 나타났다. 태상이 계약자라는 이상한 존재이고, 악마를 잡으러 밖을 돌아다니는 걸 안 이후로 그가 나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저렇게 호들갑을 떨곤 했다. 그가 혹시나 바깥에서 다치진 않을까 늘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그녀의 뒤로 송이가 뒤따라 왔다.
이명진이 자신과 가족을 노리고 일부러 그쪽에 악마들을 풀었지만, 태상이 미리 가족들과 다른 안전가옥으로 온 덕분에 피해는 없었다.
그의 뒤로 혜연이 함께였다.
송이가 혜연을 보고 놀라 앗! 하고 소리를 쳤다.
“사모님.”
혜연의 얼굴을 그동안 뉴스에서 보아왔던 세연이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머! TV에 나오는 계약자 아가씨 맞죠?”
세연의 호들갑에 혜연이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안녕 하세요. 정혜연이라고 합니다.”
“어머어머. TV에서 보던 아가씨가 내 앞에 있으니까 정말 신기하네요. 실물이 훨씬 예뻐요. 이렇게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어떻게 그런 괴물들을 무찌르는지 모르겠네.”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을 보는 것보다 계약자가 훨씬 특별했다. 세연의 말에 혜연이 배시시 수줍게 웃었다.
“태상님에 비해 저는 별 것도 아니에요.”
“호호호, 어서 들어와요.”
“서로 인사는 나중에 알아서 하고, 지금은 내가 먼저 얘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방해하지 말아줘,”
세연이 그녀를 대접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태상이 혜연을 데리고 움직였다.
지금 태상 가족이 있는 곳은 단순한 일반집이 아니었다. 평범한 2층 전원주택으로 보이는 이 집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지하로 내려가게 되면 웬만한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는 공간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단어로 칭하자면 핵 대비 지하벙커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즉 어떤 대피소보다도 이곳이 가장 안전하며 완벽한 시설을 갖췄다고 할 수 있었다.
태상이 자리에 앉자 혜연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지금 현재 상황은 어때?”
태상이 묻자 혜연이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서울에 있는 천사 계약자들은 모두 저한테 다녀갔어요. 힘을 합쳐서 탑을 부수는 건 동의했고요."
"섣불리 둘을 섞으려고 하면 반발이 쌜 거야. 그러니 조심스럽게 시작하자고."
"이 일이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요?"
태상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며 말했다.
"내가 시작한 일이야. 난 성공하는 일만 해."
태상의 말이라면 뭐든 ok인 혜연이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악마계약자랑 천사계약자를 한 편으로 만든다니....천사 계약자들은 둘째쳐도, 악마 계약자들은 접속해서 매일 악마를 만나야 하는 거잖아요. 나중에 배신자가 나오면 어떡하죠?"
혜연은 현실적으로 너무 말이 안 되는 말인지라 계속해서 걱정만 드는 모양이었다. 그는 걱정 가득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 말했다.
"계약자한테 더 이상 악마니 천사니 하는 것들이 필요 없다는 걸 증명하면 되는 일이야."
"악마랑 천사가 필요 없어진다고요?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해요?"
계약자들에게 악마 혹은 천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건 해가 서쪽이 아니라 동쪽에서 뜬다는 말처럼 당연한 상식이었다. 태상은 혜연의 의문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사실 태상도 그 문제가 가장 걱정되긴 했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발견한 거에 대해 들으면 그 일이 정말 가능하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혜연의 얼굴에 궁금함이 깃들었다.
그걸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계약자들 사이에서 옥상에서 안경을 끼고 태상에게 자신도 악마 계약자라는 것을 털어놓았던 남자를 발견한 태상은 군인들의 안내를 받아 그들의 기지로 가기 전, 다시 한 번 경고를 하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더욱이 그 남자의 목에는 카메라가 걸려 있었기에 방금 전 있었던 일을 카메라로 찍어놓았을 확률이 높았다.
지금 오늘 일은 섣불리 알려져 봐야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해서 태상은 안경잡이 녀석의 목덜미를 덥석 잡은 후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끌고 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분명 경고 했을 텐데?”
“히이익!!”
남자가 발버둥거리며 그의 손아귀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반인일 그가 계약자인 태상의 힘을 당해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메라에 뭘 찍어뒀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앞으로 쓰지 못하게 될 거다.”
태상이 팔을 잡아당긴 후 놈의 목에 걸려 있는 카메라를 빼앗아버렸다.
“아악! 안돼요! 돌려줘요!!!”
카메라를 뺏어버리자, 남자가 격하게 반응을 해왔다. 하지만 그런다고 태상이 가만히 봐줄 위인이 아니었다.
“내 경고를 무시했으니 그에 따른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할 거야.”
태상이 카메라를 손으로 순식간에 우그러트렸다. 그리고 메모리칩까지 완벽하게 망가뜨린 태상은 넋을 잃고 카메라를 보고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카메라지만 다음번에는 카메라가 아니라 당신이 될 거라는 걸 명심해.”
“........”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쪼그려 앉아 태상이 부셔 놓은 카메라 잔해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매만졌다. 그러다 돌연 고개를 들어 올려 태상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이이익!!!!! 이 나쁜놈!!!!”
그의 눈동자가 갑자기 짙은 초록색으로 빛났다. 그리고 그는 태상을 향해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움직여 주먹질을 했다.
그의 주먹에는 옅은 초록빛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을 태상은 똑똑히 보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절대 착각않고 똑똑히 목격한 것이었다. 남자의 주먹은 퍽! 하는 소리가 나는 대신 탁! 하고 막히는 소리가 났다. 그의 주먹이 태상에게 먹히기엔 너무 속도가 낮았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태상은 그의 주먹이 일반인이 낼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으며, 그의 주먹을 막은 손바닥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을 느끼며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태상은 설마 자신이 잘못 착각한 것인가 싶어 그에게 진지하게 되물었다.
“너, 진짜 계약자야?”
남자는 카메라를 잃은 슬픔에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의 주먹이 허무하게 막히자 갑자기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크흐윽..!! 이걸 사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내 카메라가..!!”
남자가 훌쩍거리며 우는 모습은 썩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태상은 정신을 놓은 듯 보이는 놈의 멱살을 잡아 올려 다시 재차 물었다.
“너 계약자 맞냐고 묻고 있잖아! 그깟 카메라 따위에 왜 넋을 잃어?!”
“카, 카메라 따위?! 따위라고?? 이게 얼마짜린지나 알아요!!!! 내가 알바해서 열심히 모은 돈으로 겨우겨우 산 거란 말이야!!”
“.......”
태상은 남자의 말에 또 다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계약자들은 절대 돈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가진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점수로 현금을 얻을 수 있기에 굳이 아르바이트까지 해서 물건을 살 정도로 궁핍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계약자처럼 능력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말을 하니 태상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너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흐흑..흑...”
남자는 태상의 말에 쉬이 답해주지 않았다. 여전히 카메라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태상은 무척 짜증나는 어조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딴 카메라 다시 사줄 테니까 말 하라고!! 답답하게 남자 새끼가 질질 짜고 난리야?”
“....!!”
그의 말을 듣자마자 남자의 고개가 번쩍 들어 올려졌다.
태상은 그 모습에 헛웃음을 지었다. 카메라를 사주겠다고 하자 그제야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저, 정말요??”
그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주먹질까지 했던 놈치곤 소심한 물음이었다. 태상은 저게 1억이라도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해준다면 충분히 사줄 의향이 있었다.
“그래. 저게 얼마짜리든 사줄 테니까 내 말에 대답해. 넌 도대체 뭐지?”
“저, 전 한용우라고 하는데요....?”
“....지금 내가 그쪽 이름 묻는 게 아니잖아.”
놈의 이름이 용우이건 뭐건 태상이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가 어떻게 능력을 사용했는지가 궁금한 거다. 진짜 그가 계약자라면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태상이 생각하기에 저런 어벙한 놈이 계약자라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태상의 살벌한 기세에 용우가 겁을 집어 먹고 말했다.
“그럼 나이 물으시는 거에요?? 저 20살이요...”
“그게 아니라 난 지금 네가 계약자가 맞는지 묻고 있는 거라고!!”
“계, 계약자 맞아요! 진짜에요!! 거짓말 아니라 진짜요.”
그가 이번에도 자신이 계약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저번처럼 아예 개소리로 듣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네가 계약자라고? 어느 쪽인데.”
“어......악마 계..약자요.”
용우가 갑자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답했다. 그는 태상이 천사 계약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자신이 악마 계약자라고 말하는 것이 좋은 일인지 고민이 됐었다. 하지만 일단 그나마 알고 있는 걸로 얘기해야 둘러대기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말 진짜겠지?”
이를 모르는 태상이 여전히 의심을 버리지 못하며 물었다. 용우는 거세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은 진짜 계약자가 맞다는 것을 어필했다.
용우가 진짜 계약자라면, 그가 카메라를 부순 것은 확실히 실례되는 일이었다. 태상은 일단 자신이 오해를 해서 실례를 한 것이니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 얼마야?”
“네, 네?”
용우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태상은 저런 놈이 어떻게 계약자 노릇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딱 보니까 계약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나보네. 카메라는 내 잘못이 맞으니 두 배로 변상하지. 얼만지 얘기해. 돈 줄 테니까.”
변상해준다고 듣긴 했지만 진짜 당장 변상해 주는 줄은 몰랐던 용우는 일단 자신에게 좋은 일이었기에 술술 얘기했다.
“카메라 그거 200만원짜리였어요.”
사실은 100만원짜리 였지만 2배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거짓말이 또 다시 튀어나왔다. 하지만 태상은 별스럽지 않게 알겠다며 지갑을 꺼냈다. 그의 지갑에는 무려 100만 원짜리 수표가 여러 장이 들어 있었기에 용우의 카메라 값을 물어내는 것에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용우는 그의 지갑에서 쑥 나온 100만 원짜리 수표 여러 장에 눈을 휘둥글 하게 떴다.
“우와~!!”
“너 도대체 계약자 된지 얼마나 된 거냐?”
태상에게서 받은 수표를 소중하게 바지주머니에 넣은 용우는 전보다는 좀 덜 무서워하며 답했다. 태상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신중해졌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섭기는 한 건지 그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는 못했다.
“계약자가 된지 하루됐어요.”
“.....하루?”
“네.”
“완전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였군.”
그러니 저렇게 어벙한 얼굴을 짓고 다닌 것일 거다. 악마들이 인간계를 침략했으면서 또 다른 인간들에게 접근해 계약을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그들이 직접 침략을 한 덕분에 악마나 천사 계약자 가릴 것 없이 피해를 입었으니 계약자를 잃은 악마들의 수가 제법 될 것이다.
악마는 자신들의 계약자를 죽여 놓고 이렇게 뒤로 새로운 계약을 했다는 것에 분노가 솟아났다.
얼마나 놈들에게 멍청하게 보였으면 이렇게 이용하고도 또 이용한단 말인가.
그리고 놈들에게 넘어가 소원을 빌고 계약자가 된 놈도 문제가 있었다.
“도대체 무슨 소원을 간절하게 빌 게 있었기에 지금 상황에서 악마랑 계약을 한 거지?”
태상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은연중 경멸하고 있음이 풍겨졌다. 그의 싸늘한 목소리에 용우가 몸을 움찔 떨면서도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전 그냥 계약자가 된 것 뿐이에요.”
“그래, 그러니까 말하는 거잖아. 악마들이 내건 조건이 그렇게 매혹적이었나?”
악마들이 이런 수작을 벌이고 다닌다면 새로운 계약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인간계를 침략한 게 악마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수족이 되겠다 계약을 한 것일 테니 완벽한 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런 어벙한 놈이 그런 짓을 한 것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았지만, 태상은 이 자리에서 용우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악마랑은 방금 만난 게 처음이에요! 말을 해본 적도 없고요. 조건이니 뭐니 그런 거 없었는데....”
악마랑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계약자가 될 수 있겠는가. 그건 용우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혹시 모른다. 저런 어벙한 얼굴 속에 교활한 뱀이 들어 있는지도 말이다.
태상이 마나건을 꺼내 용우에게 겨눴다.
용우는 그의 마나건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목격했던 터라 턱이 빠져라 놀랬다.
“왜, 왜, 왜 이러세요!! 사, 사, 살려주세요!”
긴장을 하면 말을 더듬는 게 습관인 모양이었다. 그가 사색이 되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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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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