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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44화 (144/251)

00144  악마의 탑  =========================================================================

태상은 경악하는 계약자들을 뒤로한 채 뿌연 먼지 속을 터벅터벅 걸어 이명진의 시체에 가까이 다가갔다.

시체랄 것도 없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짙은 탄내와 비슷한 냄새가 태상의 코를 찌릿하게 울렸다. 대부분의 몸은 사라져 보이지가 않았고, 손가락 몇 개가 저 멀리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해서 놈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정확히 가는 건 무리였다. 사방에 자잘자잘한 살점들이 튀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그나마 가장 멀쩡해 보이는 머리통이 있는 곳으로 간 거였다. 화상을 입은 듯 엉망이 된 얼굴은 신원을 알 수 없을 만큼 엉망이 되어 있었다.

얼굴 반쪽이 다 날아가고, 눈알 하나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만이 검게 그을려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태상의 골칫거리였던 놈이 드디어 이렇게 속 시원하게 해결 된 것이다. 그를 죽이는 것은 분명 그가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긴 했다.

과거 자신의 얼굴, 자신의 몸이었던 것들을 직접 스스로 죽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기분이 더러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이젠 정말 영영 자신의 몸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평생을 강명진으로 살아야 했다. 후회 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는 지금 자신의 삶도 만족하니 말이다. 아니, 이젠 자신이 강태상이었을 때의 삶보다 지금의 삶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에겐 예전보다 소중한 것이 2개나 더 늘어 있었다.

태상이 만들어 낸 어마어마한 광경에 지켜보던 계약자들과 군인들은 여전히 어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계약자들도 경악하는데, 군인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들은 계약자라는 존재가 자신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이건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핵이 아니고 뭐겠는가!

“계...약자는 다 저럽니까?”

군인들 중 한 명이 물었다. 계약자는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런 미친 짓을 혼자서 할 수 있는 계약자는 없습니다.”

만약 계약자들이 많다고 하면 군인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을 것이다. 저런 능력을 쓰는 자에게 총구를 겨눴던 지난날의 자신을 생각하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태상은 반쪽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얼굴을 발로 밟았다. 강하게 밟은 터라 피가 터지고, 뇌수가 터져 나왔지만 그는 이 시체가 강태상의 몸이었다는 것을 알릴 무엇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악마 계약자들, 그리고 군인들 중 누구도 감히 그런 태상에게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태상이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들도 모두 저 꼴이 났을 수도 있었다. 왜 태상이 위험을 무릅쓰고 악마 계약자들이 모인 이곳에 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단순히 간이 커서 온 것도 아니고, 악마가 이 세상을 차지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영웅 심리로 온 것도 아니었다.

만약 계약자들이 자신의 말에 동요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 자리에 있는 계약자들을 모두 죽였을 것이다. 그는 탑에 사냥을 하러 온 거다. 자신들은 사냥감이 될 뻔했다가 처신을 잘 한 덕분에 살아남은 것이고 말이다.

태상이 발에 묻은 명진의 피를 땅에 닦아내고, 돌아섰다.

계약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저지른 어마어마한 일을 군인들도 보았기에 절로 긴장이 되는지 그들 또한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생각은 하셨습니까?"

태상이 그들에게 물었다.

명진과 싸워 난 상처는 얼굴에 난 생채기밖에 없었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엄청난 실력을 보고서도 이 자리에서 그의 뜻에 따르지 않겠다 말 할 사람은 없었다.

"이곳을 지키는 데 뜻을 함께하겠습니다."

악마 계약자 중 침략으로 가족을 잃었던 남자가 가장 먼저 손을 들어 올려 태상에게 말했다. 태상은 그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기에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한 명이 그렇게 나오자 다른 이들도 군중심리처럼 모두 그리 하겠노라 약속했다.

태상은 그들의 태도에 흡족해 하며 씨익 웃었다.

이명진을 처리한 그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이젠 이명진과 계약한 그 악마를 찾아야 했다. 이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놈은 분명 명진이 자신과 싸웠을 때,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해서 몸을 피한 것이고 말이다.

명진을 두고 간 것으로 보아 악마는 이미 그를 포기한 걸지도 모른다.

쓸모가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나 말이다.

악마가 자신의 계약 천사인 라마스를 알아 본 것으로 보아 어중이떠중이 악마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이런 짓을 저지른 놈인데, 분명 강한 놈일 것이다.

악마들을 침략시킨 명진을 처리했으니, 이제 그에게 이런 일을 맡긴 배후악마를 죽여야 했다. 그리고 그 악마를 죽이는 것은 천사나 악마로 나뉘지 않은 '계약자'. 그들이 다 함께 힘을 합쳐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되어야 만이 이 일을 해결했을 때, 그 후에 생길 여파를 막을 수 있었다.

인간계를 천사 계약자와 악마 계약자들 사이의 전쟁터로 만들지 않기 위한 태상의 계획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태상이 이 계획을 생각해 냈을 때, 과연 정말 그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많이 들었었다.

천사 계약자와 악마 계약자를 구분하지 않게 하고, 계약자라는 단어 하나로 묶는다는 건 솔직히 생각했을 때 이뤄내기 무척 힘든 목표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비웃음을 듣기 충분한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상이 생각하기에 그 방법만이 가장 최선이었다. 인간계에서 악마 계약자들과 천사 계약자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하면 그 전쟁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태상 혼자서 악마들의 침략을 막는 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했다.

이 일은 천사 계약자니 악마 계약자니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계약자’들이 힘을 합쳐 해결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결말이었다. 마치 천사들에게서 받는 S등급 미션처럼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첫 단추가 잘 꿰어졌다는 점이었다.

“저희에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금 태상이 있는 곳은 싸움이 일어난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그들은 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임시 기지 같은 곳을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지금 태상이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고 말이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앉자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태상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그들이 정중하게 저희들에게 시간을 내어주길 바란다는 부탁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의 힘을 보았던 지라 절대 섣불리 총을 겨누진 않았다. 그들은 태상이 마음만 먹으면 너무나도 쉽게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상은 그들의 부탁에 잠시 고민하다가 수락했다.

그들도 엄연히 악마들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나라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이들에게 정보를 주는 것은 태상에게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선 태상보단 그들이 훨씬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그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는 많았다. 하지만 태상이 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태상은 천계나 마계의 일과 상관없는 저들이 과한 정보를 얻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해서 그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하면서 그들에게 정보를 조금씩 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장교가 가장 먼저 질문한 것은 어떻게 그런 능력을 쓸 수 있게 되었느냐였다. 하지만 태상은 그 정보를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당신들과 대화를 하려 했던 이유는 그런 정보를 넘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태상은 그가 섣불리 다른 말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은 태상이 넘겨주는 작은 정보에 감사해야 하는 거지, 그에게 정보를 캐물을 자격이 없었다.

“제가 대화를 하겠다고 한 이유는, 앞으로 계속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직접 눈으로 봤다시피 군대로 악마를 이기긴 어렵습니다. 아니, 할 수 있다 해도 희생이 많이 따를 겁니다. 하지만 계약자들은 그들을 죽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없애는 건 계약자들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모두에게 알리십시오.”

오늘같이 군대가 계약자들을 막아서는 일이 또 다시 일어나선 안 될 것이다. 만약 갑자기 명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군대와 계약자들이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건 태상이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 그들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는 악마들을 막고 있다는 걸 알긴 하지만, 현재 상부에서는 계약자들을 만나면 무조건 생포하라는 명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저희들은 그 명을 따를 수밖에 없고요.”

군에서는 상부의 지시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아무리 태상의 말이 옳다 생각해도 자신의 생각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장교는 자신의 상황을 부디 태상이 헤아려주길 바랐다.

“앞으로 계약자들이 악마를 없애고, 탑을 부수기 위해 움직일 겁니다. 그런데 그걸 막겠다는 겁니까? 이 세계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뭔지 구분하지 못합니까?”

“....그건 알지만.”

“그럼 상부를 설득하세요. 뭐가 옳은 일이고, 뭐가 그른 일인지 알리시고요.”

계약자들은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기에 자칫하면 큰 위험을 초례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악마 때문에 능력을 이용해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이 없지만, 나중에는 그러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해서 계약자가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특별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지도 알면 좋을 것이다. 만약 그 힘을 자신들도 쓸 수 있으면 더욱 좋을 테고 말이다. 해서 상부에서는 계약자들을 생포하라는 명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을 두 눈으로 겪은 이곳 군인들은 그들을 감히 생포할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을 뿐더러, 그럴 의향도 모두 사라지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 계약자들은 혼란에 빠진 세상을 구할 영웅들일 지도 모른다. 그런 영웅을 나라에서 핍박한다는 건 말이 되질 않는 일이고 말이다.

“....일단은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장담을 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말이 얼마나 그들에게 먹혀 들어갈진 모르겠다는 소리였다. 태상도 그의 말을 듣고 현 상황이 싹 깨끗하게 좋아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 그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일 테니 말이다.

악마들과 싸우는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천사 계약자와 악마 계약자들 사이를 좁혀야 하는 어려운 미션이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부디 나라에서까지 그를 힘들게 하지 않아주길 바랐다.

“전 계약자들을 모아서 탑을 없앨 겁니다. 그 과정에서 부디 군대와 마찰이 생기는 일이 없길 바라겠습니다. 누가 더 손해가 될지는 잘 생각해보면 아실 겁니다.”

그들의 능력이 이토록 대단하다는 것을 오늘 두 눈으로 보았다. 그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장교가 태상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능력은 어떻게 생기게 된 겁니까?”

그는 태상에게 어떻게든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떻게 능력을 얻었는지,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 능력을 얻을 수 있는지. 지금 그 정보를 얻기 위해 사방에서 계약자들을 만나려고 난리를 치고 있는 중이었다.

장교의 눈동자에 작은 탐욕이 맴돌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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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잘 써지지않네요 다음편은 조금 더 다듬어서 오늘 중으로 올리겠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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