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3 악마의 탑 =========================================================================
“만약 저 남자를 공격한다면 적으로 간주하겠습니다.”
그때, 잠시 침묵이 돌던 그들 사이로 군인 한 명이 나서서 말했다.
그들은 상황을 살피며 뒤쪽으로 물러나 있다가 태상이 하는 얘기를 듣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태상이 옳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즉 저 남자를 도와야 한다는 건데, 그 방법을 생각하다가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저 남자를 공격하는 이들은 확실하게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해도 좋다는 확신이 들었다.
군인들까지 태상의 편에 서자 악마 계약자들은 점점 주춤거리며 악마와 명진이 있는 곳에서 멀어졌다. 명진은 태상만 없었다면 저들이 저러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저놈을 진즉에 없앴어야 했는데....이번에도 말을 바꾸시면 안 됩니다. 저 놈을 죽이기만 하면 모든 걸 갖게 해주겠다는 약속, 꼭 지키세요."
악마가 자신에게 한 말을 번복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악마에게 받아낼 것이 많았던 명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앞에 무릎을 조아릴 수밖에.
악마는 그리하겠노라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다.
그가 저 남자를 이길 수 있다면 그의 이용가치를 좀 더 높게 다시 측정해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명진은 다른 이들이 나서지 않고 있으나 자신이 공격을 시작해서 그를 죽이면 결국 저들도 자신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강태상만 죽이면 모든 것을 갖게 될 수 있는데 그걸 왜 마다하겠는가.
저놈의 말에 현혹됐던 어리석은 놈들도 무엇이 대세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배신은 너희들이 먼저 하고 있다는 걸 잘 생각해야 할 거다! 천사 계약자인 저놈의 새치 혀에 놀아난 대가는 목숨으로 갚아야 할 테니까.”
명진이 악마 계약자들을 향해 외쳤다. 이번에 그는 악마 계약자들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악마 계약자들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했다.
태상의 말을 따르기엔 그는 천사 계약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악마의 말을 따르기엔 태상의 말을 들어서인지 여간 찜찜한 게 아니었다.
'멍청한 놈들'
주춤거리기만 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그들을 향해 비소를 날리며 명진이 두 손을 하늘 위로 올렸다. 명진이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센 바람이 불었다.
악마는 명진이 싸움을 시작한 것을 보고 날개를 펄럭여 하늘 위로 올라갔다. 악마가 갑자기 움직이자 당황하여 명진이 말했다.
“지금 어딜 가시는 겁니까? 제가 저놈을 죽이는 걸 보셔야죠!"
말을 또 다시 번복하지 못하도록 할 생각이었던 명진이다. 그리고 이대로 악마가 가버리면 악마 계약자들을 설득시키기 더 어려워 질 수 있었다. 악마가 옆에 있어야 그들이 느끼는 압박감이 더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마는 그런 명진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매정이도 날개를 펄럭여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태상은 그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의 앞에 반드시 처리해야 할 문제덩어리가 있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문제덩어리는 당연하게도 이명진. 저놈이었고 말이다.
“다들 뒤로 물러나세요.”
태상이 계약자들과 군인들에게 말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계약자들에게 도움을 받아 내는 건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더욱이 태상은 저놈을 상대하는 일에 다른 계약자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계약자들은 차라리 자신들이 이 문제에 끼지 않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놈은 내가 죽일 겁니다.”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었다. 하지만 태상의 몸은 굳건히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명진의 능력에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계약자들이 물러서지 않으려하는 군인들을 뒤로 물렸다. 저들 싸움에 끼어들기에 그들이 가진 무장은 너무 약했다. 더욱이 명진의 능력이 워낙 범위가 큰지라 싸우면서 생기는 여파에 휩쓸리지 않도록 몸을 물려야 했다.
“뒤로 물러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휘말리고 말 테니까.”
계약자들의 말에 군인들을 책임지던 장교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그는 점점 더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물러나지.”
“알겠습니다.”
군인들과 계약자들이 모두 뒤로 멀찍이 물러난 후 태상과 명진을 바라봤을 때 그들은 금방이라도 서로를 향해 공격을 시작할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 명은 천사 계약자고, 한 명은 악마 계약자다.
그들은 악마 계약자였으니 당연히 명진을 응원해야 했지만, 누구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 중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가 이겨야 하는 걸까요?”
“.....젠장, 난 솔직히 저기 저 남자가 이겼으면 좋겠소. 저놈 처음부터 끝까지 건방진 게 마음에 안 들어.”
명진을 가리키며 남자가 답을 했다.
“지금 천사 계약자를 응원하는 겁니까?”
그러자 다른 남자가 말했다.
“그럼 그쪽은 악마 계약자인 저놈을 응원하는 거면 왜 같이 공격을 안 하고 있는 거요?”
“....그건!”
그도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뒤흔들리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혼란을 잠재운 것은 태상과 명진의 싸움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바람이 태상을 공격하듯 날카롭게 바뀌기 시작했다.
무력화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기에 바람은 더더욱 흉포하게 날뛰었다. 태상은 바람의 변화를 느끼며 생각했다.
예전에 명진을 상대했을 때보다 훨씬 그가 강해진 것이 맞는 것다고 말이다. 해서 저렇게 이미 한 번 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상대를 하려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때, 한 줄기 바람이 태상의 볼을 날카롭게 스치며 지나갔고, 그가 지나간 곳에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태상이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피를 닦아냈다. 그렇게 태상이 잠시 여유를 부린 사이 바람은 순식간에 그를 가두듯 장벽을 만들어 회오리처럼 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태상이 한 발작만 움직여도 저 바람에 휩쓸려 갈 것만 같은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이명진이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었다.
“넌 이제 갇혔다!! 그곳에서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바람이 네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걸? 킥킥, 날 한 번 꺾었다고 기고만장해 있었겠지?! 하지만 넌 끝났어!! 그 장벽을 절대 뚫지 못할 거다!!”
엄청나게 강한 바람이 불면 마치 귀신이 절규라도 하듯 괴이한 소리를 내곤 한다. 그리고 지금 태상의 주변에는 그런 소리를 내며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의 옷자락은 그리 크게 휘날리지 않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서 살벌하게 휘몰아치고 있는 바람과는 전혀 다르게 말이다.
“지금 네가 있는 곳은 태풍의 눈이랑 똑같은 곳이지. 그곳을 조금만 벗어나도 그대로 찢겨 죽는 걸? 그러니 친절하게 널 위해 충고 하나 해준다면,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내 자비로 너에게 조금이라도 살 시간을 주고 있는 거니까.”
태풍의 눈.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태풍의 안쪽에 생겨나는 바람 없는 고요한 상태가 바로 태풍의 눈이었다. 그러니 정말 명진의 말대로 태상이 움직이지만 않으면 다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야.”
그때, 태상이 갑자기 명진을 불렀다.
명진은 용케 괴이한 울음소리를 토해내는 바람 속에서 태상의 목소리를 듣고 어서 말해보라며 그에게 눈짓을 보냈다.
“왜? 이제 서야 상황파악이 되셨나? 살려 달라고 빌기라도 해보게??”
명진은 무척이나 유쾌한 듯 하하하!!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계약자들은 자신들이 태상을 도와주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태상이 자신의 말을 이었다.
“안물 안궁이 뭔지 아냐?”
“.....뭐?”
태상의 뜬금없는 말에 명진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생사를 오고 가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가 할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험에 처한 태상은 어떤 두려움도,공포도 얼굴에 띄우고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를 향해 씨익 웃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마나건을 꺼내들었다.
“안 물어봤다고 새끼야. 그리고 안 궁금하다 이 새끼야.”
“저 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명진이 분노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를 살려 두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들을 안쪽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태상의 주변을 회오리 방향으로 맴돌던 바람들이 좁혀지기 시작했다.
그가 지금 하려는 것은 태상을 가두어 말 그대로 갈기갈기 찢기게 만드는 것이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강해졌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데....그거 아냐?”
“죽어라 강태상!!”
“그동안 너만 강해진 게 아니거든?!”
태상이 마나건을 들어 올려 이명진이 있는 곳을 향해 겨눴다. 하지만 명진은 그가 하는 행동이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바람들에 의해 막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 자신이 당했을 때, 갑자기 능력이 써지지 않았던 것을 명진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은 분명 놈의 능력일 것이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놈이 그런 수작을 버리기 전에 자신이 먼저 선수를 쳤다.
이미 장벽 안에 갇혔으니 자신에게 그 수를 쓸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바람 장벽은 어떠한 공격도 막아주는 아주 튼튼한 방어벽이자 공격이었다.
놈은 절대 저곳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죽지 않고서는 말이다.
자신의 승리라고, 명진은 생각하며 좀 더 빠르게 태상을 죽이기 위해 능력을 강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바람이 태상에게 다가오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하지만 태상의 마나건은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거센 에너지가 모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태상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 같아보였던 바람이 마나건에서 모이는 에너지를 감당해내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명진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눈을 크게 떴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심지어 천사조차도 자신의 공격에 사지가 찢겨 죽었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바람 장벽을 부숴버렸다고??
그의 경악한 얼굴을 향해 태상이 무력화를 사용했다. 두 번째 사용하는 무력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명진은 또 다시 능력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의 모든 것들이 3분간 일반인으로 바뀌었다.
타앙!!
콰아아아아앙!!!!
단 한 발의 총알이었지만, 여파는 컸다.
태상은 더 이상 놈을 이 세상에서 보고 싶지 않았다. 두 번 실수는 없다.
흙먼지가 주변을 나돌았다. 그리고 태상으로부터 시작 된 음푹 파인 길 끝에, 거대하고 깊은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계약자들이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능력이 없는 군인들은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몸을 쉽게 가눌 수가 없었다. 바람 장벽이 거대한 기운에 이기지 못하고 주변으로 흩어진 바람에 전투를 보고 있던 그들에게 여파가 미친 것이다.
바닥을 뒹굴었다가 제정신을 차리고 앞을 본 계약자 한 명이 넋을 잃은 듯 그곳을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마, 맙..소사..."
그가 보고 있는 곳에는 태상만이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보이는 광경은, 이곳에서 터졌던 기운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읽어주세요!
아쉽게도 오늘은 1편밖에 가지고 오질 못했습니다 ㅜ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