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39화 (139/251)

00139  붉은하늘  =========================================================================

악마들이 인간계를 다 망쳐놓기 전에, 천사 계약자들이 능력을 각성해서 힘을 합쳐 없앨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되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계약자들이 악마를 처치 할 것이고, 적어도 악마들이 일방적으로 인간계를 망치는 사태는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그 방법밖에 없었다고 하는 천사들의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고작 그딴 걸로 이 일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걸 다했다고 하는 거야? 악마들을 보내고 난 후 일이 더 복잡해 질 거라는 걸 몰라서 그딴 게 수라고 낸 거야?”

태상이 가장 최고의 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악마들을 한꺼번에 마계로 다시 돌려보낼 수 있는 묘수가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없는지 아니면 천사들이 시도를 할 생각이 없는 건지, 그가 생각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그들이 최대한 생각해낸 유일한 방법이라는 듯 말하는 것이 짜증났다.

누가 계약자들을 인간계에서 능력을 쓸 수 있게 해서 악마를 몰아내는 것을 몰라서 그들에게 물었겠는가. 당연히 그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길 바라고 한 물음이었다.

그의 질문에 라마스는 가장 최악의 대답을 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인간계를 지키려고 분명히 노력을 했다며, 최선을 다 했다고 변명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피해는 인간계에서 사는 인간들이 짊어져야 할 거다.

천사와 악마의 싸움에 상관도 없는 인간들이 끼어들었다.

그들이 편을 나눠 싸움에 끼어 든 것은 결국 개인의 탐욕 때문이 컸다.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인간들이 원하는 것이었고, 결국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의 나라 싸움에 인간들이 서로 피를 흘리며 싸웠다.

그리고 끝내 이렇게 자신들의 터전마저 그들의 싸움터로 변했다.

태상은 천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이번 사태에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열받지만 자신의 생각이 거의 맞을 거란 확신도 갖고 있었다.

그들도 분명 돕긴 할 것이다. 인간계에 있는 천사 계약자들이 악마들에게 죽임을 당하면 곤란해지는 것은 그들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나고 난 후, 폐허가 된 땅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을 거다.

그걸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계약자들이었으며, 그곳에 살고 있었던 무고한 사람들이다.

태상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라마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생각 같아서는 그의 얼굴에 주먹이라고 날려주고 싶었다.

라마스가 그의 흉흉한 기세에 말했다.

“저희들 또한 이번 악마들의 침략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현재 군대를 이끌고 마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마계가 위험해진다면 그들도 결국 인간계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주십시오. 저희들이 이번 사태로 생긴 일을 최대한 수습하겠습니다.”

지금 그를 달래놓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에게 무슨 말을 듣더라도 고개를 숙여야 했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천사 계약자까지 돌아서면 그들은 정말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천사 계약자들의 마음을 다독여 놓아야 한다.

그리고 이 미움을 자신들이 아니라 악마에게로 돌려놓아야 하고 말이다.

그동안 천사들이 마냥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알게 모르게 악마와 싸우기 위해 많은 것들을 준비해왔다.

악마들이 갑자기 인간계를 노리는 바람에 난감해지긴 했지만, 그들에겐 솔직히 지금이 기회였다. 악마가 천계를 아닌 인간계를 노렸을 때, 그들은 그동안 준비해두었던 계획을 실행하게 될 것이다.

그 계획이 성공하게 된다면, 악마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어쩌면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던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인간계는, 승리를 하게 되면 늘 그러했듯이 소정의 보상을 해주면 될 일이었다.

중요한 시기에 천사 계약자들을 섣불리 건드려서 문제를 일으킬 순 없었다. 일이 엉망이 될 수 있으니, 그들을 최대한 돕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게 해야 했다.

“여러분들께 폐를 끼치게 되어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저지른 악마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계약자들은, 그렇게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자신들의 터전을 그들이 지켜 줄 것이라 철썩 같이 믿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인간계를 침략한 악마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은 천사가 아니라 계약자들이다. 정작 그들은 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태상은 달랐다.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지 않는 것이다.

“결국 그 말뜻은, 너희들이 인간계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거잖아.”

태상은 그의 말이 그런 거라 생각됐다.

천사들이 악마들과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도 라마스는 천사들을 이끌고 마계를 치러 간다고 한 것뿐이다. 마계가 위험해지면 악마들이 인간계에서 철수할 거라고?

그런 추측성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천사들을 인간계로 보내.”

태상은 그들에게 받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계약자들은 단순히 그들의 말을 듣고 믿은 후 인간계에서도 능력을 쓸 수 있는 물약을 먹고 접속을 끊었다. 자신들이 이 약을 먹으면, 인간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상은 단순히 그 말만으로 접속을 끊을 수 없었다.

라마스가 그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저희들은 현재 모든 인원을 총 동원해 마계를 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니 지원을 하는 것보단 마계를 쳐서 그놈들을 인간계에서 철수하게 만드는 방법이 훨씬 좋...!”

태상이 라마스의 말을 끊었다.

“너희들이 악마들이랑 싸우는 건 당연한 거고, 그놈들이 마계가 위험하다고 해서 철수한다는 보장이 없잖아. 책임지겠다고 했잖아. 책임을 지려면 천사들을 보내줘야지. 그게 책임을 지는 거야.”

천사들을 보내는 것이 가장 상책은 아니다. 결국 천사와 악마가 마주치면 파괴 되는 곳은 인간계다. 그러나 적어도 저들에게 이 일을 책임지게 하려면 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애초부터 너희들 싸움이잖아. 왜 인간들이 너희들을 위해 피를 흘려야 하지? 계약자들은 서로 거래를 했으니 인정하지만, 다른 일반인들은 아니야. 악마들 때문에 죽은 인간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계약자들은 둘째치더라도, 다른 이들은 아니다.

그들은 악마에게 죽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예전에 인간계에서도 상처를 회복시켜주는 물약을 먹을 수 있던데, 이곳 물건을 인간계에서도 쓸 수 있는 거지? 악마들을 상대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니까 내 마나건과 체력물약을 지원해줘야겠어. 할 수 있겠지?”

그들에게 그 물약이라도 지원을 받아 다친 사람들을 고칠 생각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자신이 싸울 때도 쓰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천사들을 지원해주는 건 저희들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계에 오랫동안 헌신해 있는 것은 인과에 맞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 않는 거지, 할 수 없는 게 아닐 것 같은데? 악마들도 떡하니 하고 있잖아. 그런데 왜 너희들은 할 수 없다는 거지?”

천사들은 악마가 먼저 법칙을 깨고, 인간을 계약에 묶어 천사들을 공격했을 때, 그들도 마찬가지로 악마를 따라서 인간과 계약을 맺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악마가 먼저 법칙을 깼으니, 천사들도 법칙을 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태상의 예리한 말에 라마스가 할 말을 잃고 침묵했다.

지금은 마계를 칠 절호의 기회였다. 악마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기회를 계약자들 구하겠다고 낭비할 순 없었다.

지원?

그런 걸 해줄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 천사들은 지금 인간들을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악마들을 죽이기 위해 전장으로 나가야 했다. 저런 일에 인원을 뺄 여력이 없었다.

일단 라마스는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마들이 무슨 수를 써서 인간계에 오랫동안 헌신해 있을 수 있는지,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부디 제게 시간을 주십시오.”

태상은 드디어 라마스의 입에서 자신이 원하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태상은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라마스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한 번 재차 말을 하며 경고하기로 했다.

"시간을 오랫동안 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겠지?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생겨선 안 돼. 최대한 빨리 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의 적이 될 마음이 기꺼이 있으니까.’

태상은 뒷말을 삼켰다.

이번 일은 천사들도 사활을 건 상태다. 만약 악마와의 전쟁이 끝난다면 더 이상 계약자들에게 일을 맡길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니 그의 경고는 무시해도 되는 일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았더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고작 계약자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태상, 그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라마스도 인정한다. 그의 능력이 독특하다는 것도, 강하다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라마스는 그를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중에 책임을 물으면 결국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하지만 최선을 다해 도우려 했다고 말하면 된다. 인간들은 대체적으로 천사들에게 약하다.

그들이 선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자신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선하다고 믿는 것이다. 이보다 이용하기 쉬운 상대가 어디 있겠는가.

라마스는 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숨겼다. 그들이 천사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들의 힘은 자신들이 준 것이다. 그러니 컨트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계약자들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고, 여전히 자신들의 말을 철썩같이 믿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편견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생각했다.

**

괴물이 나타났다.

소설에서처럼,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이대로 세상이 멸망하게 될 거라는 멸망설이 나돌았다.

그리고 그때, 모든 방송국, 그리고 인터넷에 하나의 동영상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영상 안에선 놀랍게도 악마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악마 계약자들이여. 우리들의 전우여. 탑으로 오라. 그대들에게 영광이 있으리라.]

동영상은 짧았지만, 그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태상은 동영상 속에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이를 으드득 갈았다.

“이명진...!!”

네놈이었구나.

이 일을 만든 게!!

천계에서 접속을 해제하고 나온 태상은 송이가 TV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 다가왔다가 영상을 보게 됐다.

송이의 안색이 파리했다. 그녀도 충격을 받은 게 분명하다.

저 동영상 속에 있는 것은 악마뿐만이 아니었다. 놈의 옆에 남자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그리고 한 때는 그녀의 남편이었던 명진임을 깨달은 것이다. 송이는 이 끔직한 일을 그가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저기 영상에 있는 사람....”

송이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만큼 충격이 컸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녀에게는 전 남편이었다.

태상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알려줘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맞아. 예상한대로야.”

“....정말 저 남자가 명진인 거야?”

“그래.”

태상의 고개가 끄덕여지자 송이의 눈에서 무너지듯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태상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 후 말했다.

“이명진은 악마와 계약을 했어. 그리고 그 소원은 다른 사람과 몸을 바꾸게 해달라는 거였지. 하지만 그 소원을 빈 대가가 없는 건 아니었어.”

“대가....”

다른 이도 아닌 악마다. 이곳에선 악마에게 소원을 빌어 타락한 사람의 이야기가 동화로, 이야기로 만들어져 오랫동안 내려왔다.

악마에게 소원을 빌면 영혼을 대가로 받는 건 가장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보면 계약자가 되는 것은 영혼을 파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계약자들은 꿈속을 통해 영혼으로 계약자가 되어 그들이 시키는 대로 악마 혹은 천사와 목숨을 걸고 싸우니 말이다.

“우리들은 그들을 악마 혹은 천사라고 부르지. 그리고 그들에게 소원을 비는 자들은 계약자가 되는 거야. 악마와 천사는 서로 오랫동안 전쟁을 이어왔고, 누구에게 소원을 빌었느냐에 따라  편을 갈랐어. 천사 계약자 그리고 악마 계약자. 똑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배척하고, 죽였지. 서로를 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럼 너도 설마 계약자인 거야??”

“맞아.”

계약자가 아니었다면, 태상은 모든 기억을 잃고 자신이 이명진이라고 믿으며 남은 인생을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라마스의 계약자로 선택됐기 때문에 기억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라마스의 계약자로 자신이 미리 선택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명진은 악마 계약자고, 난 천사 계약자. 지금 이곳에 나타난 놈들은 악마고, 저놈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천사 계약자들뿐이야. 영상에서 탑으로 오라고 한 건 악마 계약자들일 거야. 자신들을 도우라는 명령을 내리겠지.”

============================ 작품 후기 ============================

으으...ㅠㅠ 생일이시라기에 한 편 더 써드리고 싶었지만 못난 작가를 용서해주세요.

대신 평소보다 키바를 좀 넉넉하게 써봤습니다.

하루 2편 연재도 무척 힘든지라....3편은 무리였습니다. 미안해요~~

하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후원쿠폰 정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