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5 붉은하늘 =========================================================================
태상은 어느 순간부터 송이가 파티장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녀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옆에 붙여 놓으려고 했는데, 그녀에게 자꾸 볼 일이 있다는 여자애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자선파티 때, 생각보다 훨씬 잘해주었던 송이다. 그때를 떠올려 자신 있다는 듯 송이가 자신이 따로 움직이겠다고 그에게 말했다.
태상은 그녀가 해보겠다는 말을 하지 말라 붙잡을 수 없었다. 해서 계속 상황을 주시하며 조금이라도 송이의 얼굴에 곤란함이 떠오르면 데리고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그녀가 사라지고, 나머지 여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 태상이 그녀의 행방을 묻기 위해 움직였다.
“제 파트너 어디 있습니까?”
송이와 얘기를 나누던 이들에게 가서 행방을 묻자 그녀들이 어깨를 으쓱였다.
“여진이가 데려가서 저희들은 잘 모르겠네요.”
‘여진이가?’
태상은 일단 여진이가 데려갔다고 하니 안심은 됐다. 그녀를 태상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송이에게 못된 짓을 할 녀석은 아니었다. 여진과 인연을 만드는 건 태상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여진의 성격상....
“분명 사람들 없는 곳에 가서 얘기를 나누고 있겠지.”
본래 사람을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이곳 여자들에겐 도도하다 혹은 싸가지 없는 여자애라는 취급을 받지만 다른 곳에서는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여자라는 말을 듣는다. 그녀는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이다.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의 구분이 뚜렷해서, 태상이 보기에 여진과 송이는 친해질 확률이 높았다. 그녀는 태상과도 죽이 잘 맞는 친구였다.
그가 송이를 찾아 주변을 한 번 슥 훑었다.
여진과 송이가 사람이 없는 창문 근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어디 가십니까?”
그때, 도진이 태상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고개로 여진과 송이를 가리켰다. 도진은 아~ 하며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저기 있는 아가씨는 제 친굽니다. 괜찮은 녀석이죠. 제가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도진의 말에 태상이 피식 웃곤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애초부터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스스로를 소개할 필요가 없었다. 태상이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 말이다.
여진이 도진과 태상을 발견했는지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송이에게 뭐라 속삭였다. 그러자 송이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봤다. 송이의 시선이 태상과 마주치자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태상도 그녀를 보며 마주 웃었다. 그녀의 기분은 좋아 보이는 편이었다. 태상이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자연스럽게 감으며 물었다.
“몸은 괜찮아?”
“응. 괜찮아. 아, 이쪽은 아까 전에 만났는데, 얼떨결에 친구 먹었어.”
“그래?”
“안녕하세요? 홍여진이에요.”
송이가 여진과 친구를 먹는 것은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태상이 손을 내미는 여진의 손을 맞잡았다.
“강명진입니다.”
“잠깐 떨어져 있었던 것뿐인데, 그새를 못 참고, 보고 싶어서 찾아 온 건가요? 굉장히 애처가시네요. 너 사랑받고 사는구나?”
“으응?”
송이가 여진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여진 씨도 약혼자한테 해달라고 하시면 되겠네요.”
태상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여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글쎄요, 제 약혼자와는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요. 연애 결혼을 하기엔 저희 부모님이 유난이라서. 근데 절 아시나보네요? 제가 약혼자가 있다는 걸 아시는 걸 보니?”
조사를 해서 아는 게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당연히 여진씨 약혼자가 누구라는 것도 알고, 이 파티에 있는 사람들이 뭐하는, 누구네 집 아들 딸인지 기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멍청하게 아무 것도 모르는 얼빠진 머리통으로 여길 참석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건 아니시죠?"
태상의 말에 여진이 이해한다며 불쾌함은 거두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멍청하게 아무 것도 대비하지 않는 놈은 그녀도 싫었다.
"이런, 내가 소개시켜 주려고 했는데 괜한 소릴 한 거였군요."
도진이 자연스럽게 여진의 옆에 섰다. 여진은 그런 도진을 힐끔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때, 파티를 즐기던 누군가가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창문 가까이에 있었기에 변화를 쉽사리 눈치 챌 수 있었다.
“저거 왜 저래?”
“응? 뭐가?”
“창문 밖 좀 봐.”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의문이었다. 해가 질 시간도 아닌데, 하늘이 빨갛게 변한 것이 이상해 의문을 표한 것뿐이었다. 창문에 누가 장난질을 해놨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누군가가 해놓은 장난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 하늘이 붉었다.
아주 불길하게, 구름 한점 없이 붉었다.
“하늘이 빨갛잖아. 한 번 확인해봐. 진짜라니까?”
“벌써 취했냐? 그게 무슨 개소리.....엥?”
친구가 덩달아 창문 밖을 확인했다. 하늘이 진짜 붉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이게 도대체 뭔 이상 현상인가 싶어 핸드폰을 꺼내들어 동영상으로 찍기 시작했다. 단순히 노을이 져서 붉은 게 아니었다.
그런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이게 원래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나야 모르지. 어이!! 다들 하늘 좀 봐봐. 하늘이 이상해!”
사람들이 창문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냐며, 혹자는 무슨 이벤트라도 있는 건가 싶어 다가가 밖을 살폈다. 태상도 그 소란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이 그는 창문 근처에서 송이와 함께 있었기에 확인을 쉽게 할 수 있었다.
그가 창문을 열어 밖을 확인했다.
그리고 정말 소란처럼 하늘이 붉자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이건 절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태상이 송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무래도 파티는 이걸로 끝내야 할 듯싶군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서둘러 돌아가시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왜 그래? 이렇게 갑자기 가자고?”
송이가 당황하여 물었다. 태상은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늘이 심상치가 않아.”
여진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네요. 몸 조심해야 하니까 이만 가봐 송이야.”
그녀는 임신한 몸이었으니 더욱 조심해야 했다.
도진은 일단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확인했다.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고 이 파티를 계속할지, 아니면 끝낼지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엔 당연하게도 붉은 하늘이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만 발견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전국, 전 세계의 하늘이 모두 붉어진 것이었다.
그 불길하기 짝이 없는 현상에 드디어 멸망의 날이 왔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마트를 가서 음식을 사놔야 하는 것 아니냐며 말이다. 인터넷에는 멸망설이 돌고, 그걸 믿는 사람과 개소리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뉘어 난리가 나 있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특이점 때문인지 이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사람들의 여러 가지 추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파티를 계속 할 겁니까?”
태상이 도진에게 물었다. 도진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민스런 얼굴을 했다.
“제가 다시 한 번 추천을 해드리자면 아마 끝내는 게 좋을 겁니다.”
태상은 그를 위해 충고를 해주었다. 다른 색도 아니고, 붉은 하늘이 주는 불길함을 은연 중 그들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하는 식의 표정이 많았다. 하지만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그때부터 이곳은 아비규환이 될 것이 분명했다.
태상은 이 현상이 천계와 마계의 일이 얽혀 있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마치 여기가 마계인 것 같군.'
그것이 태상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붉은 하늘의 원인이 악마들과 연관이 있다면 그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송이와 가족들의 안전이 100% 보장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이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건물이 지진이 일어난 듯 진동하기 시작했다.
“꺄악!!”
쨍그랑!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유리잔들과 음식이 담겨 있는 접시가 제일 먼저 지진에 반응해 바닥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불길한 하늘과 맞물려, 사람들의 얼굴에는 급속도로 공포가 물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건물을 빠져나가기 위해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송이가 불안한 듯 태상의 팔을 붙잡았다.
“괜찮아, 놀라지마.”
“어, 어떡해! 우리도 나가야 하는 거 아니야?”
“뭐하고 있어! 어서 나가야지!!”
도진과 여진도 다른 사람들과 섞여 나가려고 했다. 도진은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지만, 여진은 도망치면서 뒤를 돌아봤다가 가만히 서 있는 태상과 송이를 발견했다.
그녀도 겁이 났을 테니,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이렇게 자신들에게 어서 가자는 손짓을 해선 안 됐었다. 태상이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오지랖이 태평양이군.’
태상은 도리어 그녀에게 자신에게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지금 장난해?!”
여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흥분할 땐, 저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반말을 내뱉곤 했다. 확실히 그녀도 겁이 난 건 맞는지, 다가오라는 신호에도 선뜻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여진은 모르지만 그가 내민 손은 그녀를 구해주겠다는 호의였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는 문과 태상을 번갈아 바라봤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죽으려면 혼자 죽어! 송이는 무슨 죈데?!”
송이야 태상을 믿고 있기에 그의 옆에 남은 것이었지만, 여진은 오늘 사귄 친구를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안타깝게도 그녀가 나가려 했던 문 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쿵!! 콰앙!
“꺄아악!!”
건물이 강한 지진을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건물이 지진에 얼마나 대비를 해놓고 있겠는가. 그리고 이 지진은 자연적인 지진이 아니었다. 태상은 여진에게 손을 다시 한 번 내밀었다.
“살고 싶으면 달려!!”
자신을 향해 달리라는 소리였다. 여진이 미친 짓이라 생각했으나, 지금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저곳밖에 없었다. 건물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문을 통해 나갔던 사람들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여진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들이 문 쪽으로 나갔기에 더욱 빨리 죽었을 지도 모른다.
천장에서 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여진은 이를 악물고 태상을 향해 뛰었다.
“눈 감아.”
태상이 송이에게 말했다. 그녀는 그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놀이기구 잘 타?”
태상이 눈을 감은 그녀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송이는 저도 모르게 응 하고 대답했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놀이기구라니, 송이는 무척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상은 그녀의 대답에 무척 만족했다는 듯 말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날 꽉 잡아. 절대 놓으면 안 된다.”
송이가 땀이 나도록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얼마 안 있어 자신의 몸이 붕 뜬다는 기분이 들었다. 거센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꺄아아아악!!!하는 여진의 비명소리가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송이는 태상의 말을 듣고 최대한 눈을 뜨지 않으려고 했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여진의 목소리가 너무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결국 송이가 태상의 품에서 눈을 희미하게 떴다.
송이는 머리로 자신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성이 인식했을 때, 이미 그녀의 몸은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를 한 상태였다. 송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태상을 바라봤다.
“이게...뭐야?”
그녀의 뒤로 무너진 건물이 보였다.
============================ 작품 후기 ============================
유티단장님께 작명센스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페어 로쉬!!!! 완전 멋있네요. 계모임따위 애초부터 없었던 겁니다! 하.하.하.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