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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19화 (119/251)

00119  클케논의 요새  =========================================================================

그러다 결국 그녀는 반을 남겨두고 뒤를 돌 수밖에 없었다. 반의 목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에 명령을 내린 것 마냥 박혀 들어왔다. 지금 그녀는 자신이 반을 두고 달려선 안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리를 움직이는 것을 선택했다.

자신에게 도망치라 하긴 했지만, 그냥 함께 죽는 것을 택해야 했던 걸지도 모른다. 도대체 누가 자신의 사정을 듣고도 도움을 주겠는가. 레베카는 동료를 두고 도망치는, 잔인한 선택을 왜 하필 자신이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하며 필사적으로 달렸다.

“하아...! 하아!...하아...!”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아아아아악!!

레베카의 귓가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레베카는 그 소리에 놀라 발을 헛디뎠고, 바닥을 몇 바퀴 굴러 쓰러졌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려 해봤지만 실패했다.

결국 레베카는 몸을 웅크리고 자신의 두 귀를 막고, 부들부들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다시 돌아가야 해. 끝까지 남아서 함께 죽어! 도망치는 건 비겁한 짓이라고!

아니야, 내가 여기서 빠져나가서 도움을 요청해야 동료들이 살 수 있어. 넌 무서워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동료들을 위해 도망치는 거야!

거짓말.....아니잖아. 넌 그냥 무서워서, 살고 싶어서 도망치는 거잖아.

레베카는 두 가지 마음과 싸우며 몸을 웅크렸고, 모든 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살고픈 마음이 그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걸수도 있고, 정말 동료들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레베카는 자신이 그 두 마음 모두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녀는 그렇게 홀로 두려움 속에서 몸을 덜덜 떨다가 주변이 잠잠해졌음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을 자각하고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주변에는 정적만이 남아 있었다.

“...아...저씨?”

몸에 힘이 돌아 온 것을 확인한 레베카는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도망쳤던 곳을 향해 달렸다. 반이, 동료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레베카가 정신없이 달려 반과 헤어졌던 곳에 도착하자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살점과 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레베카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아...아아, 안 돼...안 돼...이럴 순 없어....흐흐흑..흑..흑....”

이 피의 주인공들이 하루 전만해도 그녀와 함께 웃고 떠들던 동료들이라는 것에 레베카는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불과 몇 시간도 되질 않았다.

레베카는 자신에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레베카는 동료들에게 말했을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자고 말이다.

레베카가 눈물을 닦아냈다.

‘넌 지금부터 도망쳐서, 계약자들을 불러와. 그래서 우릴 구해주는 거다.’

지금 이렇게 넋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이 말했었다. 자신들을 구하러 와달라고. 레베카에겐 딱 한 명, 도와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 얘기를 들으면 모두 말도 안 된다며 꺼려 할 것이다.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떠올리고 있는 그 사람은 자신을 반드시 도와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럴 거란 믿음이 레베카에게 있었다.

**

태상 일행은 길드 건물에 모여서 잡담을 나누며 악마의 심장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그냥 입에 넣으면 된다고 했지?"

"네, 여왕의 말로는 그랬죠."

"흐음...."

태상이 악마의 심장을 테이블 위에 두고 손으로 이리저리 굴렸다. 영롱한 색을 내는 악마의 심장은 단순히 아름다운 보석으로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제가 먼저 먹어 볼까요?"

모두들 악마의 심장이 우릴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듣긴 했지만 선뜻 입으로 가져갈 수가 없었다. 부작용에 대해서 듣기도 했거니와 여왕의 말을 모두 믿을 수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때, 혜연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네가?"

태상이 놀라 묻자 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 번 먹어보면 이게 안전한지 아닌지 알 수 있잖아요."

"B등급 악마의 심장을 바로 섭취하는 건 위험해요. 적어도 C등급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로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확실히 지금 당장 이 심장을 취한다는 건 여러모로 위험이 많았다. 더욱이 여왕이 그러지 않았는가. 잘못해서 기운을 감당해내지 못하면 몸이 터지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지금 여기서 빨리 강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좀 더 조사를 해본 뒤에 사용하자."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그때, 갑자기 길드 건물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한 명도 빠짐없이 길드건물에 모여 있었기에 저렇게 다급하게 두드릴 이유가 없었다. 일단 혜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세요?”

“저...레베카에요.”

문 밖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혜연은 문을 두드린 이가 레베카라는 말에 얼굴을 살짝 찌푸렸지만 문고리를 돌려 열어주어야 했다.

“어머!”

혜연인 비딱한 표정으로 레베카에게 왜 왔냐고 말을 하려다가 말고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레베카의 몸이 휘청이며 혜연의 품속으로 넘어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정신 차려 봐요, 레베카!”

“태, 태상....태...상...”

레베카는 하얀 종이처럼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딱 봐도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혜연이 그녀의 몸을 부축하며 안으로 들였다.

“뭐야? 왜 이래?”

태상이 놀라 다가왔다. 다들 레베카의 예상치 못한 상태에 놀란 눈치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레베카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태상을 발견하자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필사적인지, 태상은 그녀의 손을 잡아주어야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꼴이 엉망인데?”

태상은 반에게서 연락이 왔었던 것을 떠올렸다.

분명 반이 자신에게 함께 미션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가 결혼식 때문에 거절해 함께하지 못했었다. 레베카는 분명 반과 함께 미션을 했을 테니, 그녀가 이렇게 엉망인 모습이라는 것은 반이 꽤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카살라!”

태상이 카살라를 불렀다. 그는 태상이 자신을 왜 불렀는지 그 이유를 이미 잘 알기에 레베카에게 다가가 그녀의 몸을 회복시켜주었다.

레베카도 힐러인데, 왜 자신의 몸을 회복시키지 않고 이 꼴로 나타났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그럴 정신이 없을 만큼, 힘든 상황이었을 것을 짐작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레베카는 카살라의 회복을 받자, 몸을 가누는 것이 훨씬 편해졌는지 창백하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레베카는 자신의 몸을 추스르지도 않고 태상에게 다급히 얘기를 꺼냈다.

“......도와...주세요.”

태상은 예상한 말인지라 놀라지 않았다. 레베카가 마른 침을 힘겹게 삼키며 말했다.

“너무 염치없지만, 그래도 꼭 도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레베카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반이 미션에 간다는 건 알고 있었어. 그런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인데?”

반이 기가 막힌 미션 하나를 잡았다고 했었다. 그런데 난이도가 제법 높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A~B등급 미션을 하는 반이 난이도가 높다고 했다면 적어도 A등급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결혼식에 신경 쓰느라 반의 말을 깊게 생각하지 못했었던 태상이다.

태상은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에 놀라 물었다.

“설마 미션 난이도가 S등급 이었어?”

“....네.”

레베카가 눈을 질끈 감았다. 태상은 뜻밖의 난이도에 놀라 잠시 표정을 굳혔다. S등급이라니....절대 흔한 미션이 아닌지라, 반이 난이도가 높다고 했어도 S등급일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저희들만으로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S등급 난이도는....정말 말이 안 됐어요.”

레베카가 주먹을 꽉 쥐었다. 거대하고 날카로운 이빨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부들부들 몸을 떨자 사로나가 담요를 가져와 그녀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 단순하게 추워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녀 나름대로의 위로였다. 조금이라도 그녀의 시린 마음을 따듯하게 만들어주길 바랐다.

“지금 상황을 정확히 얘기해줘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너 혼자서 왔어? 다른 사람들은."

태상의 말에 레베카가 자신을 향해 도망치라고 외쳤던 반의 모습을 떠올렸다. 갇혀 있는 동료들은 아직 살아 있을 수도 있으나, 천계에 처음 왔을 때부터 쭉 함께했던 아버지 같았던 반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왜 대답이 없어? 반이 아직 그곳에 살아 있어?”

“.........”

머릿속이 복잡했던 레베카는 태상의 질문에 쉬이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반이 그곳에서 살아 있는 것이 얼마나 망상적인 희망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레베카는 희망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반이 그랬어요. 제가 살아나가서 동료들을 구하러 오라고요.”

레베카의 말을 들은 태상이 잠시 고민했다. 레베카가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계약자들을 죽이지 않고 생포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도망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거였고요. 그러니까 제발 도와주세요. 제 동료들 좀 구해주세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 간절하게 태상에게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무릎을 꿇고서라도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단 상황이 급하다는 건 알겠는데, 우리들도 어느 정도 사정은 알아야 갈지 말지 정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네가 최대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답해야 돼. 알겠어?”

태상이 레베카의 두 어깨를 잡고, 몸을 숙여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서 말했다. 태상도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를 구하러 움직이고 싶었다. 반이 태상에게 그동안 해주었던 고마운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 길드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다.

만약 인연에 휩쓸려 무모하게 움직였다가, 구하지도 못하고 그도 희생 되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됐다.

레베카가 태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차분한 목소리로 태상이 몇 가지를 물었다.

미션 내용은 무엇인지, 그곳에서 일행들을 위험에 빠트리게 한 악마가 어떤 놈이었는지 등등이었다. 레베카는 태상의 질문에 다시 그때 상황을 떠올리는 걸 힘겨워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박또박 얘기를 시작했다.

“미션은 클케논의 요새를 접수하라는 미션이었어요.”

“클케논의 요새? 클케논이라는 악마를 잡으라는 미션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고작 그런 걸로 난이도가 S등급이 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태상이 받았었던 S등급은 얼마나 어려웠는가. 고작 그런 것으로 S등급 미션이 된 거라면 말도 안 됐다. 레베카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S등급이라는 말에 눈이 멀어서 중요하게 생각하질 못했어요.”

그게 그들의 실수였다. S등급 미션을 너무 만만히 본 것이 말이다. 예전 태상이 S등급 미션을 했을 땐 인원수가 정해져 있어서 어려웠던 것이라 생각했던 반은, 인원제한 수가 없는 S등급 미션을 만만하게 본 듯 했다.

“아무리 그래도 조금만 더 신중하게 불카누스 길드처럼 다른 길드에 도움을 요청해서 공유라도 했었어야 했어.”

태상의 말에 레베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이 말하긴 했었는데, 저희 길드끼리만 해보자는 말이 나왔어요. 모두들 공헌도가 다른 길드에 넘어갈까봐 동의했고요. 저희들 잘못이 맞아요....생각이 너무 짧았어요.”

실로 멍청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공헌도 1위가 다른 길드에 넘어가는 게 싫어서 그들끼리만 하려고 했다니. 미션 난이도가 S등급이라면 분명한 그 이유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좋아, 그건 이미 벌어진 일이니 더 이상 따질 일은 아닌 것 같고, 이제 너희들을 이렇게 만든 악마는 어떤 놈이었는지 말해봐.”

요새를 공략하라는 것은 한 마디로 악마가 한 둘이 아니라는 뜻이라 생각됐다. 요새가 무엇인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는 뜻이다. 그곳에 있는 악마를 잡으라는 것은 결코 쉬운 미션이 아닐 것이다.

============================ 작품 후기 ============================

코멘 보고 아차...감사합니다. 수정했어요!

나가시기 전에 추천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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