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18화 (118/251)

00118  결혼식  =========================================================================

"그래, 여러모로 복잡한 일들 때문에 고생이 많은 결혼식이라는 건 잘 안다. 액땜한 것으로 생각하고 잘 살길 바라마."

"감사합니다."

"할배는 건강 좀 잘 챙겨. 요새 얼굴이 말이 아냐."

송이는 예의바르게 대답했지만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태상은 괜스레 말했다. 강회장은 옆에 놓여 있던 지팡이를 꺼내 태상의 머리를 정확히 맞췄다.

"악!"

태상은 본래 피할 수 있었으나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왜 자신이 맞아야 하는지는 알 수 없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 때려?!"

"잘 살라고 때린 거다, 요놈아. 원래 네 애비한테도 이렇게 해줬다."

강회장의 말에 세연이 기억이 떠올랐는지 호호 웃었다.

"맞아, 네 아빠도 그 자리에서 똑같이 아버님한테 맞았었어."

세연이 진짜임을 알려주자 태상은 더 이상 항의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증손주 보기 전까진 절대 못 죽으니 할아비 건강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안 그래도 여기 뱃속에서 할아버지 증손주 크고 있잖아. 좀만 참아."

태상이 송이의 배를 슥슥 쓰다듬었다. 송이는 혼전 임신도 아닌데, 괜스레 부끄러워 얼굴을 붉혀야 했지만 말이다.

가족 간의 인사가 끝나고, 식사를 하려 했지만 태진은 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려는지 홀로 나갈 준비를 했다. 강회장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태진이 고용인에게 말해 차를 준비시키라 말하고 있는데, 그에게 송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어.......”

태진은 자신이 어려워서라도 송이가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먼저 말을 걸자 그는 의외라는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송이는 태진에게 말을 거는 것에 무척이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식사 안 하시고 그냥 가시는 건가요?”

“그쪽이랑은 상관없는 일 같은데.”

태진의 차가운 태도에 송이가 잠시 움찔했으나 이내 다시 눈을 부릅떴다.

“급한 일 있는 거 아니라면, 먹고 가시면 안 되나요?”

송이의 말에 태진이 자신의 시계를 그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급한 일이 있다면?”

“그, 그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모처럼 가족이 모두 모인 거잖아요. 그래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가 가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송이의 말에 태진이 손가락으로 송이를 한 번 찍었다가 자신을 가리켰다.

“언제부터 그쪽과 내가 가족이었지? 난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태진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다. 송이는 자신이 아무래도 잘못 말을 건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송이가 우물쭈물 거리자 태진이 뒤를 돌아 나가려 했다. 그러자 송이가 황급히 그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태진은 누군가가 자신의 앞을 함부로 막아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난 남이 내 앞을 막아서는 걸 아주 안 좋아해.”

“저는, 남이 아니잖아요....”

송이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가 점점 자신감을 잃는지 목소리를 줄였다. 태진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까 얘기 했잖아. 아가씨랑 난 서로 가족이 아니라고. 머리가 멍청한가보군.”

“밥 한 번 같이 먹어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에요? 밥은 남이랑 먹는 것보단 가족이랑 먹는 거잖아요. 비록 몸이 바뀌어 버려서 피는 흐르지 않지만, 태상이를 낳아 주신 건 아버님이세요. 그건 변하지 않을 사실일 거고요. 그런데 남들이랑은 그렇게 많이 드시면서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한테는 그렇게 무심하신 건데요? 제 생각에는 이런 가족행사가 있는데 약속을 잡으실 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식사만이라도 같이 하시고 가면 안 될까요?”

송이가 작정을 한 것인지 질끈 눈을 감곤 말했다. 태진은 송이가 자신을 분명 무서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할 말은 다 하는 것을 보며 말했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네, 네?”

“네 남편이랑 똑같다는 소리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오지랖은 떨지 마라. 소용없을 테니까.”

끝내 송이를 시무룩하게 만든 태진이 문을 나가 고용인이 가져 온 차에 올라탔다. 송이의 말대로 그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가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가 그 식사자리에 참석한다 해도 반길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송이가 자신을 붙잡아 준 것에 대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태진의 얼굴에 희미하지만 미소가 서렸다.

한편, 그렇게 태진이 매정히 가버리자 송이는 허탈함에 한숨을 푹 쉬었다.

“잘했어요. 저 사람도 송이씨가 마음에 드나보네요.”

그때, 송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세연이 말했다. 송이가 뒤를 돌아 그게 무슨 소리인지 물었다.

“제가 마음에 드는 게 아니라 절 굉장히 싫어하시게 된 것 같은 걸요? 괜히 주제도 모르고 나섰나 봐요.”

“아니, 잘한 거에요. 저 인간은 속이 좁아서 새파랗게 어린 게 자기한테 가르치려 들면 절대 저렇게 안 끝나거든.”

송이가 세연의 말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 정말요? 제가 그럼 역시 잘못 한 거죠? 아버님이 절 영영 안 보시겠다고 하면 어떡하죠?”

그냥 밥 좀 같이 먹었으면 좋겠다고 한 거였는데 아무래도 완전히 잘못 짚은 듯 했다. 송이는 태진과 태상의 사이를 좋게 만들고 싶어 노력을 한 것 뿐이었다. 송이가 울상을 하자 세연은 걱정 말라며 송이의 어깨를 다독였다.

“내가 말 했잖아요. 저 인간이 진짜 송이 씨가 싫었으면 저렇게 그냥 안 넘어갔다고. 마음에 드니까 그냥 넘어간 거에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요. 그리고 그렇게 시도하나 거, 나름 귀여웠어요.”

세연은 송이가 왜 굳이 그를 붙잡으려 했는지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도가 귀엽게 느껴졌다.

“......”

세연이 다독여줬지만, 아무래도 송이는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싶었다. 여전히 송이의 안색이 창백한 걸 보니 말이다.

“둘이 여기서 뭐해?”

식사준비가 다 되었는데도 둘이 나타날 생각을 않자 나와 봤다가 얘기를 하고 있기에 태상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들어가요 어머님.”

“그럴까요?”

세연이 미소를 지으며 송이의 팔에 팔짱을 끼웠다.

“뭐야, 엄마는 언제까지 송이한테 존댓말을 쓰려고 그래?”

“응?”

“아! 맞아요. 말 놓으세요. 어머님.”

“음....그럴까?”

“뭐 그런 당연한 걸 물어?”

태상은 식사자리가 끝나갈 때까지도 태진이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강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송이는 이 가족의 틈에 태진의 자리가 애초부터 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태진이 없음에도 식사 자리는 즐겁게 끝났다.

세연은 강회장의 저택에서 살지 않기에 집으로 돌아갔고, 송이와 태상은 앞으로 지낼 건물로 이동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차는 타지 않아도 되는 거리였다. 바로 옆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난 함께 산다고 해서 문만 몇 개 열면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산다는 건 줄 알았어.”

송이가 허탈해 했다.

“남는 게 집인데 뭐하러 그렇게 해. 그리고 원래 이 정도는 되야지.”

태상은 그런 끔찍한 건 절대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송이는 일단 자신이 지내게 된 집을 살펴보기로 했다. 송이가 집을 살피러 움직이자 성진이 태상에게 말했다.

“기상시간은 6시 이십니다. 원래 회장님은 5시에 일어나시지만, 아무래도 송이님이 적응하시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하셨습니다.”

성진의 말에 태상이 반응했다.

“6시라고? 난 절대 그렇게 할 생각 없어.”

그렇게 할 생각도 없고, 할 수도 없었다. 그의 수면은 천계에서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회장님께서 분명히 말씀을...!”

태상이 성진의 말을 끊었다.

“그게 아니잖아? 네가 이제부터 할 일은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걸 할아버지한테 알리는 거야. 내 말에 말대답 하는 게 아니라.”

“.....”

성진이 아차 싶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앞으로 집 청소는 오전 10시에 와서 최대한 신속하게 해놓고 사라지도록 하고. 아침식사 시간 8시는 맞출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앞으로 송이가 엄청 힘들 텐데, 기상시간까지 스트레스 주고 싶지 않아."

티는 내지 않았지만 세연은 분명 송이를 바꾸려 들 것이다. 옆에 두고 같이 다녀도 괜찮을 충분한 사람으로 만들 테지.

태상은 그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송이가 감당해내야 하는 일이다. 그걸 감당하지 못하면, 세연은 끝내 송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세연을 감당해내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무척 버거운 상황이라는 거다. 그러니 태상은 송이에게 그 외에 부담 되는 일은 없도록 할 생각이었다.

"돌아가. 둘이 있고 싶으니까."

"예. 편히 쉬십시오."

성진이 고개를 푹이고 사라졌다. 태상은 성진의 뒷모습을 의미심장하게 주시했다. 저놈은 지금 숨기려고 하고 있지만 태상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강회장이 놈을 왜 잘 길들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저놈은 자신이 뛰어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놈이다. 그러니 그 주인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분명 얼마 가지 않아 떨어지게 될 것이다.

태상은 저놈이 있건 없건 상관이 없긴 했지만, 저런 놈에게 자신이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또한 기분 상하는 일이었다. 태상은 그를 응시하던 것을 그만두고 송이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

키에에에에에에!!

키익...키...킥!..킥킥...!

끔찍하고, 기괴한 소리가 쫓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로부터 도망치고 있던 이들은 차라리 자신의 귀가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크윽.......난 아무래도 틀린 쿨럭, 것...같다. 도망쳐라 레베카...!!”

악마에게 다리가 뜯겨 쩔뚝거리며 도망을 치던 남자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는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레베카가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낑낑거리며 남자를 부축하려 했지만 그녀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싶었지만 이미 그녀도 녹초가 된 터라 능력이 사용되질 않았다. 아무리 그의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대고 집중을 해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더 이상 레베카가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레베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을 바라보며 말했다.

“흐윽..흑....아저씨...흑....도와주세요!!”

하지만 반은 그녀를 도와주는 대신 억지로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 뒤로 밀었다. 그리곤 쫓아오고 있는 지긋지긋한 악마들의 정면에 서서 그들을 향해 무기를 겨눴다.

“레베카, 내 말 잘 들어라.”

그의 이마에 주르륵 땀이 흘렀다.

“흑...으흑..흑....”

레베카는 본능적으로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눈치 채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넌 지금부터 도망쳐서, 계약자들을 불러와. 그래서 우릴 구해주는 거다.”

레베카는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그럴 수 없어요!!"

"아니! 넌 그래야 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놈들이 지금 우리를 잡아두고 있지, 죽이진 않고 있는 중이잖냐. 최대한 버텨볼 테니까 네가 지금 이곳을 빠져나가서 도움을 요청해야 다 살 수 있는 거다."

반이 그녀에게 힘을 주고 싶었는지 고개를 돌려 레베카와 시선을 마주하곤 씨익 웃음을 보였다. 그의 웃음에는 어떤 두려움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레베카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갇혀 있는 동료들은 그렇게 해서 구해낼 수 있다쳐도, 그녀와 도망을 치다가 걸린 반이 살아날 확률은 없었다. 그는 지금 죽음을 목전에 둔 것이다.

그러니 레베카가 지금 이곳을 빠져나가 계약자들을 데리고 온다 해도 반을 구할 수는 없었다. 우릴 구해달라는 그의 말은 분명한 거짓말이었다. 반은 레베카가 다시 계약자들을 구해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어서!!! 네가 빨리 움직여야 우리들이 살 확률이 높은 거다. 알겠어?!”

반이 머뭇거리는 레베카에게 호통을 쳤다. 레베카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 작품 후기 ============================

어제 조아라 접속 안 되는 거 저만 그랬나요..?

ㅜㅜ 접속이 안 되서 올리질 못했어요~ 뒤늦게 올립니다.

8월의 마지막날입니다. 9월 새로운 시작을 위해 다들 파이팅하세요!!

다음화 새로운 파트 시작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