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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10화 (110/251)

00110  여왕 2  =========================================================================

“.......”

여왕이 이렇게 말이 없는 건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자신에게 감히 그 문제로 장난이니 장단을 맞춰보라 한 이가 나올 줄 몰랐다.

여왕은 저 건방진 놈을 어찌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런 장난은...장단맞춰주기 싫은데?”

“당신이 한 장난질도 그다지 장단 맞춰주고 싶지 않은 것들이긴 했어.”

사람의 약점을 파헤치던 여자다. 좋게 봐주려야 봐줄 수 없는 여자였다. 저 여자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 일부러 능력을 사용해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 태상은 그녀에게 보상을 원한 거였다.

“화끈만 한 줄 알았더니, 꽤나 건방지기도 하구나. 내가 이렇게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있으니 별 거 아니게 느껴지니?”

“별 거 아니길 바라고 있는 중이야. 그래야 좋은 걸 내놓을 테니까.”

여왕이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토해냈다.

“그래, 시간은 많으니까 장단 한 번 맞춰줄게. 어디 한 번 설명 해봐. 네가 날 어떻게 죽여 줄 수 있는지 말이야.”

태상은 굳이 일일이 그녀에게 설명하고픈 생각이 없었다.

“순서가 틀렸잖아. 당신이 먼저 얘기해. 나한테 뭘 줄 수 있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

여왕은 태상이 한 마디도 지질 않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재미가 없다. 그녀는 자신으로 인해 다른 이가 당황스러워하는 것을 즐기지, 자신이 당황스러운 걸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싫음 말고.”

태상이야 그녀를 굳이 죽여주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그녀가 죽던 말던 그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쉬운 쪽은 태상이 아니라 여왕이었다.

여왕은 태상의 자신감 있는 모습에 호기심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에게 져주기로 마음먹었다. 태상은 정말 미련이 없어 보이는 얼굴을 했기 때문이다.

여왕이 태상의 마나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만약 네가 날 죽여줄 수 있다면 네 무기 성능을 강화 시켜줄게.”

“무기를 강회시킨다고?”

“그래, 아마 죽이지 못할 놈이 없을 거야. 아주아주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겠지.”

여왕의 말이 너무 허무맹랑했다. 하지만 여왕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기에 태상의 관심을 끌었다.

“그 말은 좀 관심이 생기네.”

“자, 그럼 이제 어서 말해봐. 날 어떻게 죽일 수 있다는 건지.”

여왕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아마 허무맹랑한 얘기를 한다면 여왕의 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태상은 마나건을 들어 올려 여왕을 향해 겨눴다.

“보면 알 거야. 내가 무슨 수로 당신을 죽일 수 있는지.”

탕!!

태상이 마나건을 쏘았다. 하지만 여왕은 죽지 않았다. 탄환은 그녀의 볼에 날카로운 바람을 휘날리며 쏘아져 뒤쪽에 숨어 있던 악마에게 명중했기 때문이다.

키이이이익!!!

태상의 총소리가 신호라도 된 것 마냥 악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허벅지 정도밖에 오지 않는 작은 악마였지만, 그 수가 굉장히 많았다. 사로나와 혜연 그리고 카살라, 야호까지 모두가 이미 그들의 인기척을 눈치 채고 전투 준비를 마친 후였다.

콰아앙!

쾅!!

혜연의 염동력이 주변에 있는 바위들을 휘감아 올린 뒤 악마들에게 던졌다. 가까이에 접근한 놈들은 단검으로 상대했고 말이다. 바위에 깔린 놈들은 발버둥을 치다가 사로나의 검에 목이 잘리거나 팔, 다리를 잘려야 했다.

사로나의 날카로운 예기를 담은 검이 무자비하게 악마들의 목숨을 빼앗고 있었다.

태상의 총을 맞을 때마다 악마들은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었다. 탕탕탕! 총을 쏘는 소리가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들렸다. 야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녀석은 오랜만에 마음껏 날 뛰는 기회를 얻어 실력 발휘를 하고 있었다. 악마의 목을 물어 뜯고 밟으며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카살라는 일행에게 버프를 걸어주었다.

유일하게 전투에서 여유로운 것은 여왕뿐이었다. 키키킥! 킥! 소리를 내던 악마 하나가 여왕의 다리를 물었다. 여왕은 자신의 살을 아그작아그작 씹어 먹는 악마를 물끄러미 보더니 놈을 발로 차 떨어트리고 다가가 머리를 밟아 터트렸다.

여왕의 다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아물었다.

“......”

여왕은 그 모습을 마치 끔찍한 것을 보는 것 마냥 바라봤다. 잠시 질끈 눈을 감았다 뜬 그녀는 다시 태상 일행이 전투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도대체 뭘 보고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건지 아직까지 감이 오지 않았다.

또 그렇게 장난이었겠지 하고 생각하려던 찰나, 제법 강한 악마가 튀어나왔다.

“호오?”

그들이 상대할 수 있을까 싶은 악마였다. 저들이 꽤나 잘 싸운다는 것은 알겠는데 B등급 악마를 저 인원으로 과연 상대할 수 있을까? 여왕의 얼굴에 미소가 서렸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탈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었군. 여왕.”

악마는 태상 일행을 무시하고 여왕을 바라봤다. 여왕이 악마를 향해 손 인사를 했다.

“안녕~?”

“네가 맡은 바 일을 다 했기에 약속을 지키러 왔다.”

“난 또 나타나지 않기에 약속을 어기는 줄 알았잖아.”

그랬다.

여왕은 모든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수작을 부려놨다는 것을 말이다. 태상 일행에게는 일부러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했던 거였다.

사로나가 둘의 대화를 듣고 말했다.

“당신 설마 다 알고..!”

“후후, 그러니까 날 너무 얕보지 말라고 했잖니.”

문제는 B등급 악마가 한 명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녀석의 뒤로 2명의 악마가 더 나타났다.

3명의 B등급 악마였다.

지금 태상 일행은 고작 4명밖에 되질 않는다. 그러니 B등급 3명이 나타났을 때, 보자마자 도망을 쳐야 하는 게 맞았다. 여왕이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내 보기엔 지금 상황파악을 하는 것보다 죽어라 도망을 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꼬맹이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도망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악마를 향해 무기를 겨눴다. 태상이 여왕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잘됐네. 마침 딱 보여주기 좋은 놈들이 제 발로 걸어왔으니. 거기에서 내가 싸우는 걸 똑바로 봐. 그러는 게 너한테 좋을 거다.”

태상이 마나건을 들어 올렸다.

“야호, 너는 여왕이 도망가지 못하게 막고 있어.”

여왕은 모든 인원이 다 달려들어도 모자랄 판인데, 훌륭한 전투원인 야호를 자신에게 보내는 태상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다. 야호는 태상의 말을 듣고 거대한 몸으로 그녀를 압박했다.

여왕은 저들이 자신처럼 죽으려고 환장한다고 생각했다. 태상이 위압적인 포스를 내뿜고 있는 악마들을 향해 걸어갔다.

악마의 붉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들의 모습은 라마스와 비슷한 인간형이었지만, 덩치가 있었고, 허리가 나병환자처럼 휘어 있었다. 그리고 어깨부터 이어진 팔은 단단한 강철이었다. 생김새는 3명이 거진 비슷했다. 그들의 등에는 악마임을 상징하는 검은색 날개가 펄럭이고 있었는데, 놈들의 덩치가 커서 그런지 날개가 작게만 느껴졌다.

“왼쪽 눈 없는 놈은 사로나가, 코 빨간 놈은 혜연이 맡아. 카살라 버프.”

태상이 사로나와 혜연에게 맡을 악마를 지정해주었다.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고, 카살라는 일행에게 버프를 걸어주었다.

태상은 가장 덩치가 큰 가운데 놈을 상대할 생각이었다. 그놈은 양 옆의 두 놈보다 2배는 더 큰 덩치를 하고 있었다.

“고작 네놈들이 우릴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태상이 상대하려는, 여왕에게 말을 걸었던 악마가 물었다. 녀석은 자신의 강철 팔을 주먹 쥐어 맞부딪혔다.

그게 태상에게 하는 경고일 것이다.

“여왕을 호위해서 무사히 넘기는 게 내 미션이라서 말이다. 계속 떠들 거면 내가 먼저 갈까?”

“자신감이 대단한 놈이구나....그 자신감이 자만심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다...”

그 말을 끝으로 악마 3명이 다 함께 쿵쿵 소리를 내며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태상이 마나건으로 총을 한 발 쏘자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 마냥 사로나와 혜연이 달려들었다. 악마가 강철 주먹으로 땅을 내려치자 바닥이 갈라지며 태상을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태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B등급 악마 모두에게 무력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는 녀석의 공격에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달려갔다. 그의 공격을 맞는다 해도 아프지 않을 것이며, 이미 녀석의 공격은 무력화로 인해 사라진 후였기 때문이다. 그가 총을 연속해서 악마에게 쏴댔다.

악마는 자신의 방어력이 태상의 마나건을 막아 낼 것이라 생각하고 그의 탄환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달려갔다. 하지만 그건 그의 가장 큰 실수가 되었다. 그는 태상의 마나건을 무시해선 안 됐었다.

그에게 걸린 ‘무력화’가 몸에 독처럼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총이 너무나도 쉽게 악마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태상이 쏜 탄이 악마의 무릎에 명중하자 그가 크어억!!하는 신음을 흘리며 바닥을 굴렀다. 달려오던 속도를 채 멈추지 못한 터라 앞으로 몇 번을 꼴사납게 굴러야 했다.

태상은 그가 잠시 전투불능 상태가 되자 사로나와 혜연을 살폈다. 그녀들이 잘 하고 있는지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사로나는 악마를 거의 묵사발 만들어 놓고 있었고, 혜연은 악마를 염력으로 공중에 띄워 바닥에 패대기를 치고 있었다.

둘 모두가 굳이 신경을 쓸 필요도 없이 잘해주고 있었기에 태상은 괜한 걱정을 했음을 깨달았다.

처음 여왕은 그들이 뭉쳐도 모자랄 판에 각각 한 명씩 B등급 악마를 상대하겠다고 흩어진다는 것에 헛웃음이 나왔었다.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가 있었다. 여왕은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목격하며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여왕이 조금 앞으로 움직이자 야호가 크르렁 거리며 움직이지 말 것을 경고했다.

“너 저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계약자 한 명이서 B등급 악마를 상대하는 걸로도 모자라 죽이고 있다는 게?”

야호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뻣뻣하게 들었다. 그의 주인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에 대한 자부심을 보인 것이다.

여왕은 그들이 강해서 저런 광경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저들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다 치명적이긴 했지만 특출한 강함이 있는 건 아니었다.

‘뭐지? 뭐 때문에 저런 말도 안 되는 게 가능 한 거지?’

이상한 건 계약자들이 아니라 악마였다.

기세등등하게 등장한 것치고 그들이 하는 공격이 모두 형편없었다. 방어력도 무척이나 약했다. 마나건의 공격력을 버티지 못하고, 온 몸에 구멍이 뚫리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들은 제대로 된 공격 하나를 못하고 허우적만 대고 있었다.

“이상해....이건 저놈들이 강한 게 아니야....악마, 악마들이 너무 약해졌어!”

여왕이 그것을 깨달았을 무렵, 전투는 끝나가고 있었다.

태상이 상대하던 악마가 온 몸이 구멍 난 채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자 사로나가 검으로 악마의 다리를 자르고, 가슴부분에 검을 푹 박아 넣었다. 혜연은 염력을 이용해 거대한 바위를 들어 올려 악마의 몸을 짓눌러버렸다. 악마는 그동안의 충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혀를 쭉 내밀고 숨이 끊어졌다.

악마들이 죽은 곳에 심장이 떨어졌다. 태상은 그 심장을 수거하고 돌아오자 카살라가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야호는 자신이 전투에 끼지 못한 것이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여왕은 태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다가 이내 자조어린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확실히 실력이 대단하네. 다시 봤어. 인정할게 너희들이 강하다는 걸.”

“고작 그런 것밖에 못 본 건 아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는데.”

태상이 여왕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여왕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눈빛에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것밖에 못 봤으면 나잇값 못하는 거지. 너희들이 악마를 이긴 게 너희가 강해서가 아닌 것 같더라. 마치 그건...”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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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관한 코멘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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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phen 님 질문 <달음누리님께서 설명을 잘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계약은 몸으로 하는 게 아니라 영혼에 따라서 계약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와는 무관합니다!

화이트프레페님 질문< 천사나 악마나 자신의 계약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서로 파장이 맞는 사람 중 랜덤으로 선택됩니다. 해서 아이라와 계약을 맺은 천사는 그녀의 언니가 계약자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엄마를 살려주었을 때, 사로나가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엄마가 계속 함께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겠죠. 천사는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소원을 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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