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1 아이라 =========================================================================
태상이 궁금해 하자 강회장이 궁금은 한가보지? 하며 말했다.
“네놈이 앞으로 수족으로 데리고 다닐 놈이다.”
“수족으로 데리고 다닐 놈?”
“그이 아비가 내 오랜 수족이었다. 아들놈도 제법 괜찮은 놈인 것 같아 네게 소개시켜 주려고 하는 거다. 앞으로 이놈을 잘 써먹어봐!”
옆에서 보좌해주는 이가 있었으면 했던 적이 분명히 있었기에 강회장의 말에 태상이 오~ 하고 감탄사를 뱉었다. 강회장이 소개시켜 주는 사람이니 분명 믿을 만한 사람일 것이다. 누구일지는 모르겠으나 강회장의 마음에도 흡족한 사람인 것 같으니 태상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어떤 녀석이기에 할아버지가 그렇게 칭찬을 해?”
그의 마음에 들려면 어지간해선 안 됐을 것이다.
“네 녀석 마음에도 들 거다. 호락호락한 놈은 아니니, 잘 길들여야 할 거다.”
강회장은 나중에 지금 말한 녀석을 만나게 해줄 것이라 말했다. 태상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에게 내가 말해뒀다. 네가 내 양자이니 너의 말을 내 말처럼 들으라고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 네 것을 사용하는 데에 문제가 없을 거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네 얼굴을 사람들에게 알릴 생각이니 그리 알고. 이게 바로 후계자 수업의 마지막 단계가 될 거다.”
본래 어릴 적부터 참석해왔던 파티에서 태상의 얼굴을 알린 터라 그럴 필요가 없었으나, 지금은 그 몸을 잃었으니 굳이 이런 과정이 필요한 거였다. 강회장의 단호한 얘기에 태상은 역시나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명진이 없어졌으니 강회장은 절대 이 일을 뒤로 물리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번에는 태상이 강회장에게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에게 반박하면 강회장은 그를 길들이려 할 것이다. 그는 절대 단순히 자비로운 할아버지가 아니다. 손자를 완벽한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강회장이 했던 수많은 시련들을 태상은 똑똑히 기억한다.
가장 서로를 이해하기에 좋아하나,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기에 꺼려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강회장의 태상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 마냥 말했다.
“기한은 이미 충분히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좋아, 알았어. 할아버지가 그동안 나한테 양보했으니 이번은 내가져야겠지. 근데 기한은 송이랑 나랑 결혼식하고 난 다음으로 해줘. 지금은 송이나 나나 결혼준비 하느라 바빠.”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강회장은 자신이 그리 융통성 없는 사람이 아니라며 태상을 안심시켰다.
강회장이 이제부터 자신의 것을 쓰는데에 아무런 제약도 없을 것이라 했으니, 굳이 전용기를 띄워달라고 그에게 부탁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가 직접 연락을 넣으면 비행기가 뜰 테니 말이다. 훨씬 일이 간편해진 것이기에 강회장의 배려가 무척이나 흡족한 태상이었다.
“엄마는 요새 어때?”
태상이 세연에 대해 물었는데, 갑자기 강회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그런가 했더니, 바로 강회장의 아들이자, 태상의 아버지인 태진 때문이었다.
“그놈이 영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제 고집에 쌓여 있어. 하여간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놈이야!”
못 마땅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강회장이다. 태상은 그의 그런 말들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강회장은 그의 아버지인 태진에 대한 불만을 늘 태상에게 털어 놓으며 넌 그러지 말아야 한다 강요아닌 강요를 하곤 했었다.
“아버지가 엄마를 미친 여자 취급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솔직히 그렇게밖에 생각 안 될 일이기도 하고.”
“그래, 맞다. 네 엄마를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고도 하더구나. 미쳐서 자기 아들도 못 알아본다고 말이야. 제 놈이 멍청한 줄도 모르고.....”
태진 혼자서만 이명진을 태상으로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이명진이 차라리 자신의 아들이었다면 좀 더 편했을 것이다. 이명진은 강회장의 마음에 들지 못하는 자신과 비슷한 못난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는 나서지마.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아버지는 엄마가 잘 다룰 거야.”
태진의 아내로 살아오면서, 세연은 그를 다룰 줄 알게 됐다. 그러니 지금까지 이혼하지 않고 둘이서 잘 사는 것 아니겠는가.
애초부터 사랑 없는 사이다. 그런데도 그동안 큰 싸움 없이 이혼이니 뭐니 그런 얘기 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해하곤 했던 태상이다. 만약 세연이 태진을 다룰 줄 몰랐다면 그 둘은 이미 이혼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태진은 가정에 너무나도 무관심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놈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구나!”
강회장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회장과의 일을 끝내고,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집으로 들어오기로 확답을 받은 태상은 곧장 전화를 해 전용기를 띄우도록 했다. 강회장의 입김이 있어서 그런지 그는 태상임을 확인받자 곧바로 알겠다는 시원한 대답을 내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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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간다고?”
아이라는 생각지 못한 사로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국 여행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웠을 뿐이었다. 물론 예전의 한국 여행도 굉장히 갑작스럽게 진행 된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 다시 태상 오빠랑 만날 수 있는 거야?”
“물론이야. 태상이도 네가 보고 싶대.”
“근데 엄마는 어떡하고?”
아이라는 옆에 있는 엄마의 팔에 자신의 팔짱을 끼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엄마랑 같이 가는 거 아니면 가기 싫어.”
사로나는 아이라의 말에 깊게 한숨을 쉬었다.
“아니야. 어...머니도 함께 가실 거야.”
“정말? 그럼 우리 이번엔 진짜 가족 여행 가는 거네?”
아이라가 사로나의 말에 제자리에서 기쁨에 폴짝폴짝 뛰었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게 가족 여행이었다. 엄마와 함께 가는 여행이라니....그동안 절대 이뤄지지 못할 불가능한 소원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아이라는 너무 기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눈물을 보이면 사로나가 의아해 할 것 같았기에 눈물을 꾸욱 참았다.
아이라는 사실 요즘 자신이 소원을 잘못 빈 건 아닐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자신은 엄마가 생겨 너무나도 행복한데, 언니는 그다지 행복해보이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녀의 얼굴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갔다.
해서 자신이 괜히 소원을 잘못 빌어 그녀를 또 다시 힘들게 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사로나가 깜짝 비밀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이라는 사로나도 자신처럼 엄마가 생겨 행복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그럼 우리 제일 먼저 뭘 해야 하는 거지? 옷, 옷부터 챙겨야 하나? 엄마~ 뭐부터 해야 할까요?”
그녀가 엄마를 바라보며 조르듯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여행을 갔을 때, 뭐가 가장 먼저 필요할지 말이야.”
“네, 엄마.”
아이라가 엄마와 함께 짐을 싸기 위해 정신이 없을 동안, 사로나는 그 둘의 모습을 신중하게 주시했다. 대부분 엄마가 허둥대는 아이라를 진정시키며 차분하게 짐들을 챙겨주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완벽한 모습이 사로나는 너무나도 거북스러웠다.
지금 저 여자는 아이라를 기만하고 있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자신은 그 사실을 밝힐 수가 없었으며 저렇게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막을 힘도 없었다.
사로나는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부디 자신이 바라는 대로 놈이 움직여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살벌한 사로나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이라는 사로나에게 미처 묻지 못한 ‘언제 여행을 출발하느냐’에 대한 것을 질문하기 위해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아이라는 그녀에게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혼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사로나의 눈빛이 너무나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사로나가 저런 눈빛을 하는 것은 처음 봤다.
아이라는 당황스럽고,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왜 언니가 저런 무서운 눈빛을 하고 있는 건지, 그리고 그 이유가 자신이 한 행동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찌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로나의 저런 눈빛은 아이라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 맞지 않은 반응이었다.
왜 기뻐하지 않아?
왜 행복해 하지 않아?
엄마가 싫은 거야?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이렇게 모였는데?
애초부터 언니를 위한 소원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소원은 사로나보다 자신이 훨씬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이라는 사로나에게 ‘엄마’를 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를 화나게 하려는 생각이 아니었다.
아이라에게 언니인 사로나는 언니이기 전에 엄마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녀에게도 엄마라는 존재를 선물하고 싶었다. 자신처럼 엄마를 든든해하고, 의지하고 믿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사로나는 살아난 엄마를 좋아하지 않았다. 딱딱하게 어머니라고 불렀고, 대화조차도 잘 하려 하지 않았다. 아이라는 그녀의 데면데면한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도대체 어떡해야 하지?’
사로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자신은 이번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단지, 사로나가 웃어주기를 바랄 뿐이었는데 말이다. 후에 다시 만난 천사는 언니가 예전부터 쭉 엄마와 함께 자랐던 것처럼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라가 보기엔 사로나는 엄마를 경계하고, 낯설어하고 있었다. 자신의 언니인데 말을 하지 않는다고 모를 리가 없었다. 해서 일단 시치미를 떼고 자신은 엄마가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척했다.
아이라는 어쩌면 천사가 일을 잘못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언니는 엄마가 죽었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이라는 어렴풋이 모든 것을 눈치 채고 있으면서도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자신에겐 지금 이 순간들이 너무나도 행복한데, 그 행복이 깨질 것 같아 두려웠다. 사로나도 그냥 자신처럼 엄마가 돌아왔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라는 사로나에게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엄마라는 존재를 이해시키는 게 더 낫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이틀 후.
사로나와 아이라 그리고 엄마까지 합쳐서 세 명이 한국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그들을 위해 태상이 미리 준비한 고용인이 그녀들을 편하게 모셨고, 고급 호텔에 숙박하는 대신 한 단독주택에 머무르게 됐다. 그곳은 태상이 따로 마련해준 공간으로, 그녀들의 식사와 광광을 모두 책임질 고용인들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긴 그때 묵었던 곳보다 훨씬 더 좋은 것 같아.
아이라가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사로나는 가짜 엄마를 신경 쓰느라 아이라의 그런 변화를 신경 쓰지 못했다. 그녀는 아이라에게 놀고 있으라며 자리를 비켜 태상과 연락을 넣었다.
“한국에 도착했어.”
[응, 들었어. 움직이는 동안 별 다른 움직임 같은 건 못 느꼈고?]
“별 다른 느낌은 없었어. 누군가가 지켜본다던가 따라 오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고.”
[하루 이틀 있을 것도 아니니까, 천천히 하기로 하자.]
“응. 그리고....고마워, 신경 써줘서.”
사로나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에게 말했다. 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이런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게 어쩐지 조금 오글거린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태상은 별스럽지 않은 일로 넘겨버렸지만 말이다.
[나중에 아이라 보러 갈게. 그동안 얼마나 컸을지 기대가 크다고 전해줘.]
“별로 크지 않았어. 자기도 이제 아가씨라며 뻗대긴 하지만.”
사로나가 대화의 주제가 아이라로 넘어오자 오랜만에 미소를 피어 올렸다. 그나마 그녀를 웃게 만들어주는 존재는 아이라가 유일했다. 태상은 송이와 산부인과에 가는 일정이 있어서 곧바로 그녀를 보러 오진 못했다.
일을 끝내고 오후에 만나기로 했기에 그동안은 그가 고용한 이들이 마련해준 식사와 편의시설을 즐길 생각이었다.
전화통화를 끊고 아이라가 있는 곳으로 가자 그녀가 엄마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재잘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광경에 사로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사로나가 온 것을 이미 아이라가 보았는지 그녀를 부르며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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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 못한 100회 축하 감사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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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에 관한 것은...제가 잘 조절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다수결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게 제 입장인지라...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