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97화 (97/251)

00097  여왕  =========================================================================

그가 선 곳은 바로 막스의 앞이었다.

“공헌도 1위를 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막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공헌도를 생각해서 여왕의 목을 자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천사는 그가 미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해결했다 생각했기에 그로 공헌도 1위를 결정한 듯싶었다. 막스는 이번 미션에 그다지 공헌을 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선봉에 서서 악마를 죽이던 나이트 레드나, 개구리 악마를 죽인 태상이 공헌도 1위를 받았다면 적어도 이렇게 부끄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음....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걸 내가 받을 순 없을 것 같소.”

막스의 말에 베이라가 왜 그러냐며 물었다.

“솔직히 저 청년이 받는다고 했으면 인정을 했을 거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번에 내가 받는 건 아닌 것 같다. 남의 공을 이렇게 낼름 먹을 수야 없지.”

“그러실 필요 없어요. 막스는 받아도 충분하세요.”

누가 감히 불카누스의 2인자인 막스에게 다른 말을 할 수 있을까. 다들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막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확실히 내가 받을 게 아니야. 공헌도 2위를 한 이에게 내가 받아야 할 걸 양도하겠소.”

“결정을 하시면 번복이 불가능합니다. 확실하십니까?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그렇게 해주시오.”

“막스!”

베이라가 그러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단호했다.

자신이 여왕의 목을 친 것은 그중에서 가장 깔끔하고, 그녀를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보낼 수 있는 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여왕은 목이 잘리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죽었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위해서 나선 거였다. 고생을 한 게 분명한 그녀에게 안식을 주기 위한 일. 공헌도 1위를 바란 일이 아니다.

이곳엔 자신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힘들게 싸운 이들이 많았다. 천사는 막스가 2위에게 공을 양보하자 알겠다며 날개를 펄럭였다.

베이라와 그들 길드원들은 그의 선택을 안타까워했고, 다른 길드 계약자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담아 천사를 응시했다.

천사는 걸음을 옮겨 누군가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건 바로 태상의 앞이었다.

“공헌도 2위는 강태상님입니다.”

태상은 개구리 악마를 죽인 공으로 공헌도 2위를 했다. 베이라는 끙하고 아쉬움을 토해냈지만, 그의 활약을 두 눈으로 목격했던 지라 인정은 하고 있었다.

“태상님께 1위 보상인 인드고의 눈물을 드리겠습니다.“

“인드고의 눈물!”

계약자들이 술렁였다.

인드고의 눈물이라는 익숙한 단어에 태상이 응? 하고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인드고의 눈물은 과거 그가 섭취를 한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던 적 있는 물건이었다. 그가 인간계에서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됐을 때, 인드고의 눈물이 없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드고의 덕분에 목숨도 살아나고, 능력도 훨씬 좋아 졌었다.

이 미션 1위 보상으로 그것이 나올 줄 몰랐기에 태상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베이라도 부러운 시선으로 태상을 볼 수밖에 없었다. 물량이 없어서 못 구하는 게 바로 인드고의 눈물이다. 하지만 정작 양보한 막스는 허허롭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받으시죠.”

천사의 말에 태상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는 직접 이걸 섭취해 본 적 있던 터라 얼마나 좋은 물건인지 잘 알았다. 천사는 보상을 끝내자 나머지 계약자들을 천계로 돌려보내주었다. 그의 손짓 하나에 환한 빛과 함께 계약자들이 모두 사라졌다.

천사는 이곳저곳 불이 타오르고, 피가 찐득찐득하게 웅덩이를 만들고 있는 마계의 모습을 훑었다.

그때, 환한 빛이 허공에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이 머물렀던 자리에 새로운 천사가 나타났다. 천사가 나타날 것임을 알고 있었는지, 보상을 주고 계약자들을 보냈던 천사가 놀라지 않으며 그를 바라보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셨습니까, 엔드님.”

천사, 엔드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변을 쭉 훑다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는 탑을 바라봤다.

“카반.”

“예.”

“여왕은?”

“탑 꼭대기 방에 있습니다.”

“알았다.”

엔드가 탑을 향해 간단하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탑을 불태우고 있던 불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엔드는 날개를 펄럭여 공중으로 몸을 뛰었다. 그 뒤를 카반이 따랐다.

그들이 날개를 접은 곳은 탑의 최상층이었다.

불이 우악스럽게 탑을 집어 삼키고 있었기에 탑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했다. 엔드는 여왕이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여왕은 활활 타오르던 불길 사이에서 놀랍도록 멀쩡한 모습으로 목이 잘린 채 누워 있었다.

카반이 여왕의 목을 집어 들어, 목 부분에 맞췄다.

그러자 놀랍게도 여왕의 목이 빠른 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일어나라 여왕이여.”

“.......”

엔드가 여왕에게 말했다.

여왕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목이 잘렸다가 다시 붙은 그녀는 놀랍게도 멀쩡한 모습으로 눈을 떴다. 그녀가 입을 벌리더니 크게 숨을 토해냈다.

“하아아아....”

그녀의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었다.

여왕이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천장을 한동안 응시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엔드를 바라봤다. 여왕의 입술이 호선을 그었다.

“안녕?”

여왕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자신의 배에 다리를 넣고 죽어 있는 새끼 악마를 발견하고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그녀는 새끼 악마의 목을 쥐더니 그대로 힘을 주어 밖으로 빼내버렸다.

새끼 악마의 다리부분과 함께 아물었던 살이 터지고, 그대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배가 구멍이 났는데도 아무런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흐응....뭐야? 기껏 힘들게 낳아줬더니, 다 죽었네? 거기다가 천사들이 내 앞에 있고.”

“악마는 그대를 지켜 줄 생각이 없다.”

엔드가 여왕에게 말했다. 여왕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죽지도 않는데, 뭐하러 지켜? 지킴 받고 싶지도 않아.”

진짜 여왕을 지킬 생각이었으면 이렇게 허술하게 그녀를 두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악마들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하급 이상의 악마를 쓸 이유를 찾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그녀를 죽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대를 죽이진 못하지만, 적어도 그대의 몸을 구속할 순 있다.”

“그래, 그렇게 날 잡아다가 가둬놓고 내가 낳은 아이들을 모두 죽였지. 그런데 난 또 이렇게 도망칠 거야. 그리고 아이를 낳을 거고. 그게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니까.”

엔드는 그녀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천사들은 그동안 여왕을 죽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모든 천사들이 실패를 했다.

그녀를 도저히 죽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든 방법을 다 써봤다. 불에 태우거나 심장을 터트리는 등의 육체적인 방법은 이미 오래 전에 해봤다. 하지만 모두 쓸모없는 짓일 뿐이었다. 그녀의 몸은 그 어떠한 상처라도, 재생하고 재생했으니까.

심지어 심장을 빼내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만들었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심장은 마치 새것처럼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생성됐다.

그래서 그녀가 천사들의 고민거리였다.

그녀는 악마를 낳는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두면 계속해서 악마가 태어난다. 그걸 막기 위해선 그녀를 죽여야 하는데, 죽이지도 못한다. 그러니 골칫덩어리이고,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사들은 여왕의 몸을 구속했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새끼 악마들을 태어나는 순간 바로바로 죽였었다. 그런데, 악마 계약자들이 그녀를 구하러오는 바람에 여왕의 신변을 빼앗긴 것이다. 악마들은 아마 그녀를 구하러 가긴 귀찮고, 그냥 내버려두긴 껄끄러우니 계약자들을 이용한 것일 거다.

그래서 천사도 곧바로 계약자들을 이용해 그녀의 신변을 다시 되찾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다시 빼앗길 거면서, 왜 악마들은 굳이 계약자들을 시켜 그녀를 되찾았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었다. 천사들은 앞으로 그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녀는 전투적으로는 굉장히 약하면서 성질이 괴팍했고, 건방졌다.

그래서 고위 등급 악마들은 그녀를 싫어한다. 해서 그녀를 굳이 구하려고도, 지키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그녀가 악마가 아니라는 것도 한몫을 했다. 악마가 아니라고, 그녀가 천사인 건 더더욱 아니지만.

죽지 않고 어디에선가 계속해서 하급 악마들을 잉태해야 하는 게 그녀의 운명이다. 그러니 자신들이 하급 악마들의 일까지 신경 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거다.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그녀는 본능적으로 새끼 악마를 낳는다. 그래서 악마들은 그녀를 구하지 않았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녀를 지킨다고 애를 쓸 악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만이 새끼 악마를 태어나게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여왕이 낳는 새끼 악마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게 그녀를 특별하게 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죽지 않는다는 점도 특별하긴 하지만 말이다.

여왕도 그 상황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그녀의 본능이 새끼 악마들을 낳는 게 아니었다면 굳이 악마의 편에 서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적어도 악마들은 자신을 구속하진 않았으니까 그들 편에 있는 게 좀 더 편하긴 했다.

그런 편리함 빼고는 천사나 악마나 둘 다 똑같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여왕은 아주 오래 전,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

그녀는 악마에게 죽지 않는 영생을 요구했다. 어리석게도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른 채 말이다. 그녀의 소원을 이뤄준 악마는 무척이나 강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녀에게 건 악마의 능력도 강해져 갔다.

스스로도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수가 없어질 만큼. 그녀가 빈 소원은 그렇게 자신을 비극의 구렁텅이로 떨어트렸다. 그녀는 영생을 얻었으나 그 영생을 예상처럼 행복하게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악마는 그녀에게 영생을 살면서 계속해서 악마를 낳으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이미 그에게 소원을 빌었던 지라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인간이었다.

평범하디 평범한 여자.

하지만 이젠 과거의 그 모습을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으며, 악마도 천사도 인간도 되질 못했다. 그 어느 곳도 끼어들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여왕’이라는 죽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지금 현재 그녀는 본능적으로 새끼 악마를 낳으면서도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악마를 찾는 게 목적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그녀의 목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자신이 낳은 새끼 악마들에게 부탁해놨으나, 다시 자신을 찾아오는 악마는 없었다. 자신이 낳은 새끼 악마들은 모두 쓸모없는 하급 악마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여왕은 천사들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왔을 때, 순순히 자신의 몸을 내어주었다.

그때는 그들이라면 자신을 죽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천사는 끝내 자신을 죽이지 못했고, 단순하게 자신이 낳은 새끼 악마를 죽이기만 했다. 그들에게 붙잡혀 있는 건 그녀를 제자리걸음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래서 탈출한 거다.

여왕은 천사들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았다. 그리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말이다. 해서 그녀는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천사들은 그게 당연하다는 듯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왕은 체념한 듯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그녀는 다른 손으로 자신의 허전한 배를 쓰다듬었다.

배가 찌르르 울렸다. 금방이라도 자신의 뱃속에서 새끼 악마가 자신의 배를 가르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물론 진짜 그녀의 생각대로 배를 가르고 튀어나오는 새끼 악마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천사들을 따라 움직이면서 계속해서 자신의 배를 신경 썼다.

그건 아마도 그녀의 뱃속에 악마가 자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그녀의 배 안에는 악마의 씨앗이 들어가 있었다. 여왕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뱃속에서 무언가가 자라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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