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96화 (96/251)

00096  여왕  =========================================================================

“먹이다! 먹이! 먹이가 왔다! 먹이 먹는다!”

먹이?

태상은 악마의 말에 처음엔 저 놈이 말하는 먹이라는 게 우리를 뜻하는 것인가 했다. 하지만 놈의 시선이 박혀 있는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여왕의 배를 가르고 나오고 있는 새끼 악마를 향한 것이었다.

태상은 막에 둘러싸여 매달려 있었던 새끼 악마들을 떠올렸다.

막을 잘랐을 뿐인데, 그 안에 있는 새끼 악마는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았었다. 그땐 그냥 다 자라지 못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놈에게 모두 죽은 거였다. 죽어서 그런 이상하고 끈적거리는 막에 매달려 있었던 거다. 태상은 그 깨달음을 다른 이들에게 알렸다.

“저놈, 새끼 악마를 먹고 큰 놈이야. 우리가 지금까지 봤던 새끼 악마들은 모두 놈에게 먹히고 껍데기만 남은 거였을 거야.”

저놈도 그냥 악마가 아니라 새끼 악마였던 거다. 저놈은 제 동족을 잡아먹고 저렇게 덩치를 키운 게 틀림없었다. 지금도 보면 같은 동족을 보고 먹이라며 입맛을 다시고 있지 않은가.

태상은 재빨리 마나건으로 여왕의 뱃속에서 튀어나온 새끼악마를 맞췄다.

키엑!

새끼악마가 태상의 마나건 위력을 당해내지 못하고, 여왕의 배 안에 다리를 걸쳐놓고 쓰러졌다.

개구리 악마가 그걸 목격하고 안타까운 듯 괴음을 질렀다.

“안 돼!!! 내 먹이! 내 먹이 빼앗으면 안 된다! 내 거다! 내거!!!”

놈은 금방이라도 자신의 먹이를 낚아채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일행이 겨누고 있는 무기 때문에 차마 그러질 못했다. 그는 막스와 태상의 공격 덕분에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상태였다.

그는 새끼 악마다. 그가 느낀 ‘고통’은 방금 전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선뜻 공격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이다.

여왕은 여전히 시끄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생살을 뚫고 악마를 낳았으니 그 고통에 그럴 만도 했다. 그때, 본래 새끼 악마가 다 빠져 나갈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여왕의 배가 엄청난 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피가 뿜어져 나오던 그녀의 살이 순식간에 아물었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새끼 악마가 다리를 그녀의 배 안에 걸쳐 놓고 있었기에 그대로 살이 아물어버렸다.

그 광경을 본 사로나가 물었다.

“그냥 죽여주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녀의 말이 맞았다. 여왕은 그 이름에 맞게 영광 적이지 못했다. 차라리 죽는 게 그녀를 위한 일일 듯싶었다. 그녀의 성기에 꽂힌 줄기가 점점 굵기를 늘리기 시작하며 피스톤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저 줄기가 그녀를 임신시키고, 악마의 새끼를 낳도록 만들고 있는 듯 했다.

“하...으..으...하응...으응...응! 아앙!”

검은색 줄기의 피스톤이 계속 되자 여왕이 조금씩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곧 그녀의 입에서 민망한 신음이 적나라하게 뱉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저 줄기의 피스톤 운동에 성적인 흥분을 얻고 있는 듯 했다.

“내가 하지.”

막스가 여왕을 향해 다가갔다. 개구리 악마가 자신의 먹이에 막스가 손을 데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다시 제자리에서 쿵쿵 뛰기 시작했다. 차마 다가가진 못하겠는데, 먹이를 이대로 놓치는 게 너무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막스의 도끼가 마치 가벼운 회초리처럼 휘둘러졌다.

여왕의 목을 향해 정확히 내려진 도끼가 서걱! 하는 서늘한 소리를 내며 여왕의 목을 잘랐다.

들뜬 신음을 내뱉던 그녀의 목이 데구르르 침대를 굴렀다. 그녀의 눈가에 주르륵 흘러내렸던 눈물은 누구도 보지 못했다.

깔끔하게 목을 잘라준 덕분에 그녀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지는 않았다. 막스는 그녀를 위해 성호를 그어주었다. 부디 죽음 후에는 편안한 곳으로 갔기를 바랐다.

그녀가 악마 계약자였던, 천사 계약자였던간에 말이다.

여왕이 죽은 것도 모르고, 검은색 줄기는 계속해서 피스톤 운동을 계속했다. 태상은 그것이 거슬려 마나건으로 검은색 줄기를 맞춰버렸다.

탕!

검은색 줄기가 여왕의 몸에서 끊어지자 그제야 움직임을 멈췄다. 끊어진 부분에서 탁한 흰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지독하군.”

여왕은 방금 전과 같은 일들을 계속해서 겪으며 악마들을 낳고 있었을 것이다. 도대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말이다. 막스가 생명을 끊어 준 것이 그녀에겐 구원과 같았을 것이다.

여왕을 죽이자 개구리 악마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는지 고함을 질렀다.

“안 돼!! 내 거야! 내 먹이! 내 먹이!!”

개구리 악마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능이 낮은 것 같았다.

태상은 저놈을 어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구리 주제에 말하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마 베이라와 함께 이곳에 와 여왕을 죽이지 않았다면 이놈은 계속 여왕에게서 태어난 악마를 먹으며 자신의 덩치를 키웠을 것이다.

태상은 일행을 두고 혼자서 개구리 악마를 향해 움직였다.

일행이 그를 막을 세도 없었다. 그가 순식간에 툭 튀어나와 달렸기 때문이다. 그는 달리면서도 마나건을 쏘아 놈의 몸 이곳저곳에 구멍을 냈다. 그가 쏜 총알은 마치 유도탄이라도 되는 것마냥 개구리 악마의 몸에 정확히 박혀 들어갔다.

그는 마나건을 사용하는 원거리 능력자다. 무력화라는 독특한 능력을 제외하고서, 마나건을 사용하며 공격을 했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악마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싸워야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태상은 놈에게 오히려 접근하며 마나건을 계속해서 쏴댔다.

공격이 끊이지가 않으니 재생력이 좋다 해도 악마가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욱이 그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악마였다.

계속해서 그의 마나건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행은 태상이 혼자서 너무 악마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가 갑자기 튀어나가 놀랐다가, 악마를 압도하듯 공격해 안도했다가, 또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아 걱정이 됐다.

다들 태상의 돌발 행동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를 지켜봤다. 도대체 저게 무슨 짓인지 몰라 그를 막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지금 태상이 무력화를 사용한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태상은 일부러 무력화를 사용하지 않았다. 놈이 무력화가 필요할 정도로 강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새끼 악마치곤 놈이 강하긴 했다. 하지만 놈은 전투를 하는 방법을 아예 몰랐다. 그리고 고통을 너무 두려워했다. 지금도 태상이 쏘는 마나건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반격도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덩치만 컸지, 그것 외에는 봐줄 만한 것이 없는 약한 놈이었다. 그러니 지금 태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와 싸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탕!

케에에에에엑!

탕탕! 탕!

캬아아악!

“.......”

“......”

베이라도 일행들도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막스도 태상의 압도적인 전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악마가 태상에게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놈이 꿈틀대는 부위가 있으면 태상은 가차 없이 그곳을 향해 마나건을 쏘았다.

마치 너에겐 발악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는 듯 말이다.

태상의 그런 강압적인 태도에 악마가 바닥에 축 늘어져 몸을 파르르 떨었다. 태상이 살려줄 테니 나에게 꼬리를 흔들어라 한다면 진짜 악마는 시키는 데로 할 기세였다.

하지만 그는 악마에게 그런 자비로운 말을 하지 않았다. 말대신 무차별적으로 그에게 총알을 먹였던 것이다. 곧 악마의 온 몸에 총구멍이 났고, 이내 축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잃은 것이다. 놈이 먹은 새끼 악마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했기에 만약 이대로 쭉 성장하다가 밖으로 나갔다면 꽤나 골치아픈 악마가 되었을 것이다.

그를 이렇게 초기에 잡을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다. 놈이 죽일 천사와 그 계약자들의 희생을 사전에 막은 걸 테니 말이다.

“저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건 완전 밸런스 붕괴잖아요! 아니, 뭘 먹고 저렇게 쌘거죠?”

베이라가 멘탈을 챙기지 못한 듯 경악하며 말했다. 다른 이들은 잘 모르고 있으나, 태상이 이곳에 온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면 아마 더 경악할 것이다.

기본적인 능력 스텟이 평균 상급으로 나온 것도 있었고, 초반 미션에서 공헌도 1위를 하여 받은 인드고의 눈물도 그를 성장시키는데 영향이 컸다. 그리고 수련동에서 수련을 받으며 얻은 몸 기술들이 지금의 강태상을 만든 거였다.

“네가 왜 동맹을 받아들였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 알 것 같구나.”

“평범한 이는 아니에요. 그걸 알고 있긴 했지만 보면 볼수록 놀랍네요.”

전투가 끝났다.

여왕은 죽었고, 새끼 악마들은 이미 개구리 악마에게 목숨을 잃은 후였다. 개구리 악마는 태상의 손에 차곡차곡 접히다가 뒤늦게 도움을 준 사로나와 혜연, 그리고 반카이의 합공에 목숨을 잃었다.

반카이는 이럴 바에야 그냥 나이트 레드와 함께 악마들이나 잡으러 갈걸 했다 후회했다. 그는 이 미션에서 제대로 몸 한 번을 풀지 못했다.

베이라는 일행 모두가 탑에 나오자마자 그곳 전체를 화염으로 뒤덮어버렸다. 모든 새끼악마들의 시체를 한꺼번에 태운 것이다. 바깥의 싸움도 거의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악마들이 탑에 불이 난 것을 보고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혜연이 활활 타오르는 탑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 저런 여왕이 많겠죠?”

“그렇겠지.”

“끔찍하네요. 천사들도 저렇게 번식하는 걸까요? 그럼 좀.......”

“다행스럽게도 저희는 저렇게 태어나지 않습니다. 천사들은 모두 평등하게 천계수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저런 식으로 태어난 악마는 최고 D등급 악마 밖에 되질 못합니다. 여왕은 하급 악마들을 생산해내는 도구에 불과하니까요.”

“아!”

혜연과 태상이 뒤를 돌자 천사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미션에 들어 올 때, 베이라의 옆에서 모든 계약자들을 이곳으로 이동시켜 주었던 그 천사였다. 천사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웃다가 이내 카살라에게 시선을 주었다.

“카살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얘기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절 기억하지 못하시겠죠.”

그 천사는 카살라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태상과 혜연이 하는 말을 받은 듯 했다. 카살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역시나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절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전 카살라님에게 많은 걸 가르침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아.....”

“지금은 힘을 많이 잃었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그렇더군요. 기운이 무척이나 약하시네요. 부디 무운을 빕니다. 타락한 존재로 사는 것이 카살라님을 위한 일일지는 모르겠으나 응원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을 한 뒤 고개를 살짝 숙여 예의를 차렸다.

“천계수? 천계수가 뭐죠?”

“천계수는 일반적으로 나무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자세한 것은 말씀드릴 수가 없을 것 같군요..”

천계수.....

일행은 생각지 못한 색다른 정보를 얻은 터라 얼떨떨했다. 천사는 또 다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모든 천사가 탄생하는 곳인지라, 천계수는 아주 중요한 곳이죠. 그러니 이 정보를 섣불리 퍼트리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악마들처럼 야만적인 방법으로 저희들이 태어나는 거라 생각하실 것 같아 말씀해드린 겁니다.”

천사가 그들에게 윙크를 했다. 그리곤 그는 날개를 펼쳐 하늘 위로 올라갔다.

사로나는 천사가 윙크하는 것은 처음 보는지라 저도 모르게 말했다.

“굉장히 독특한 천사네.”

혜연은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마계에 악마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B등급 이상의 천사 계약자들이 아주 많이 참여한 미션이었다. A등급 악마가 여럿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어쩌면 이 승리는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미션이 끝났습니다. 여러분이 활약해주신 덕분에 순조롭게 미션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모든 계약자들이 천사를 응시했다.

이제부터 천사는 공헌도 1위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고, 그들을 다시 천계로 이동시켜 줄 것이다. 그들은 과연 누가 공헌도 1위를 했을지 궁금했다. 베이라가 개구리 악마에게서 얻은 심장과 문지기에게서 얻은 심장을 조금 앞으로 나와 바닥에 내려 놓았다.

그러자 나이트 레드도 앞으로 나와 심장을 같은 곳에 놓았다.

그가 얻은 심장은 대부분 C등급 심장들이었다. 생각보다 개수가 많았다.

악마가 한 두 마리도 아니었을 텐데, 그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만약 그걸 막아주지 못했다면 여왕을 죽이고, 개구리 악마를 죽이는데 많은 힘이 들었을 것이다.

천사는 날개를 펄럭였다. 그가 이제 공헌도 1위를 한 이를 발표해줄 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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