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5 여왕 =========================================================================
역한 냄새가 나는 막 안에는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묵직한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설마 이것들이 전부 다 새끼악마들인 건가?”
“일단 하나 잘라보자고.”
막스가 거대한 도끼를 휘둘러 막 하나를 떨어트렸다.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떨어진 막 안에는 알 수 없는 액체가 줄줄 세어 나와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 액체는 막을 두르던 것과 똑같이 끈적끈적해서 일행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막 안에 나온 정체 모를 것들은 정말 짐작대로 악마가 맞았다. 아직 다 크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건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베이라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새끼 악마의 몸에 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일으킨 화염은 순식간에 막과 새끼악마를 집어 삼켰다.
아직 제대로 태어나지 못한 놈들이라 그런지 심장은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여왕을 죽인 후에 불을 지르는 게 좋겠네요. 다행히 불이 잘 붙는 것 같으니까요.”
“그래. 그럼 되겠구나.”
“이런 놈들을 낳는 여왕이라니, 엄청 끔찍하게 생겼을 것 같아.”
일행이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전부 역겨워하던 끈적끈적한 것 속으로 자신의 몸을 집어넣어야 했다. 여왕을 만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택 전체가 끈적끈적 거리고 있었다. 바닥도, 벽도, 계단도 예외가 아니었다.
“난 이제 그냥 내 몸을 포기하기로 했어.”
일행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모두들 조금이라도 끈적끈적한 것에 닿지 않으려 했는데, 그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게 맞는 듯싶어 다른 일행도 덩달아 그처럼 포기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일행은 좀 더 빠르게 계단을 올라 움직일 수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에도 탑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실제도로 굉장히 높았다.
고작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힘들어 하는 체력이 약한 계약자는 없었지만,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끈적끈적한 액체들과 싸우며 올라와야 했기에 일행의 정신력은 많이 약해졌다. 특히 여자들은 최악의 기분을 맛봐야 했다.
새끼 악마들이 매달려 있는 곳은 다양했다. 천장만 있으면 무조건 전부 다 매달아 놓은 듯 빼곡 했다. 저 많은 놈들이 다 깨어나면, 아마도 하늘을 검게 물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짜 저게 다 제대로 태어났으면 끔찍했을 것 같아.”
“수없이 죽여도 계속 나타난다 싶었는데, 이렇게 생산해대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일행은 드디어 꼭대기 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도 일행은 악마의 악짜도 볼 수가 없었다. 모두 끈적끈적한 막에 쌓여 있는 새끼악마들만 천장에 빼곡하게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베이라는 너무 쉽게 여왕이 있는 곳까지 왔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망설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엔.
베이라가 계단 끝에 섰다. 이 문을 열면 분명 무엇이 나타나던 일이 시작 될 것이다. 베이라가 침을 꿀꺽 삼킨 뒤 힘을 주었다.
끼이이익-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베이라는 문 사이로 훅 들어오는 뜨거운 열기에 얼굴을 찌푸렸다.
일행이 모두 슬금슬금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잖아?”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랬다.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황당하게도 넓은 공간에 덩그러니 있는 침대와, 그 침대에 혼자 나체로 배가 부른 채 누워 있는 여자가 보였다. 괴기스럽게도 여자의 성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긴 줄 같은 게 박혀 있었는데, 여자가 문 쪽으로 다리를 벌리고 있어서 일행은 모두 그걸 그대로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상한 모양새로 누워 있는 것외에는 저 여자가 특별한 존재라는 걸 확신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녀의 이상한 모습이 아니었다면 그냥 계약자라고 오해했었을 것이다.
“저 여자가 여왕일까요?”
“아마도 그렇겠지.”
베이라가 막스에게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왕으로 추정되는 여자는 그저 가쁜 숨만 쉴 뿐이었다.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이는 저 여자 뿐이었다. 그러니 저 여자가 여왕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일행은 일단 여왕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로 결정했다. 주변을 둘러봤으나 별다른 기척이 없었다.
베이라와 태상이 여왕에게 먼저 닿았을 때, 그녀의 눈동자가 갑자기 번쩍 떠졌다. 태상과 베이라는 그녀의 공격에 대비했으나, 정작 여왕의 눈동자는 어딘가 흐리멍텅했다. 공격할 생각 아니, 그들을 바라보는 것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태상과 베이라를 볼 수 있었을 텐데도, 고개 하나 돌리지 않고 갑자기 천장을 바라보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여왕은 온 몸을 움직여 발버둥치고 있었다. 가까이 와서 보니 그녀의 팔 다리에 움직이지 못하도록 검은색 줄들이 고정하고 있었다. 그 검은색 줄들은 그녀의 성기에 박혀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가까이서 본 여왕은 무척이나 마른 몸매를 하고, 배만 볼록하게 나와 있었다.
여왕이라기에 악마들이 모시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딱 봐도 일회용으로 새끼 악마들을 생산하고 버리는 모양새였다. 베이라는 그녀가 어쩌면 희생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션의 목적이 여왕을 죽이는 것이었기 때문에 단검을 꺼내들었다.
바라지 않았는데, 이렇게 편하게 몸이 묶여 있으니 일단 죽이고 보자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봐도 그녀가 여왕인 건 확실했기 때문이다.
베이라가 단검으로 그녀의 숨을 끊어 놓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갑자기 길고 축축한 혓바닥이 그녀의 손목을 휘감아 공중으로 끌어당겼다.
“!!!!!!!!”
태상과 다른 일행들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악마다!!
그들은 생각지 못한 광경을 목격하고 서둘러 무기를 꺼내들었다. 악마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놈은 천장에 딱 달라붙어 있었던 것뿐이었다. 일행이 방심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놈은 노란색 바탕에 검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일행들의 머리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여왕을 공격하려 하자 막은 것이고 말이다.
“공격 해!”
“베이라 누님을 구해야 돼!”
놈이 휘감은 게 단검을 잡은 손이었던 지라 베이라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때, 태상이 마나건으로 놈이 베이라를 잡은 혓바닥에 겨눴다.
“뭐하는 거야!”
그러자 베이라 길드원 중 한 명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악마가 베이라를 정신없이 휘두르고 있었기에 만약 잘못 쐈다가 엉뚱하게 그녀가 맞을 수가 있었다. 팔이 붙잡힌 태상은 싸늘한 목소리로 그에게 경고했다.
“당장 내 팔에 손 떼라. 두 번 말 안한다.”
그의 목소리에 팔을 잡았던 것을 놓고, 그가 서둘러 변명했다.
“아니, 그러다가 길마가 맞으면 어떡하려고요. 칼로 잘라내면 되니까 하지 마세요!”
베이라가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니 혼자서 빠져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짐작대로 베이라도 혼자서 스스로 빠져 나오기 위해 악마를 향해 화염을 쏘아내고 있긴 했다. 하지만 놈은 화염공격이 전혀 먹혀들지가 않고 있었다.
“저래도 할 수 있다고 봐?”
태상이 누군가를 가리켰다.
막스가 땅을 박차고 뛰어 베이라를 잡은 놈의 혓바닥을 도끼로 내리쳤던 것이다.
하지만 혓바닥은 잘리지가 않았다. 아예 타격도 주지 못한 건 아니었다. 놈의 혓바닥이 반쯤 잘리긴 했으나 곧 빠르게 아물어버려 소용이 없어졌을 뿐이다.
대신 베이라를 휘감았던 혓바닥을 더욱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놈은 이리저리 휘두르던 그녀를 데리고 혓바닥을 자신의 입속으로 끌고왔다.
그녀를 먹으려는 모양새였다.
그들 중 힘이 가장 쌘 막스가 도끼로 놈을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라내지 못한 혓바닥이었다. 막스가 끌려가는 걸 막기 위해 다시 한 번 도끼를 휘두르려 했지만, 놈이 펄쩍 뛰어 옆면 벽으로 움직여버렸다.
“당신 능력! 그 무력화인지 뭔지 그걸 쓰면 되잖아!!”
“함부로 낭비하라고 있는 능력 아니거든?”
태상이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그는 마나건을 들어 그녀의 몸을 휘감고 있는 놈의 혓바닥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쏘기 시작했다. 놈의 움직임은 빨랐으나 태상의 탄환은 무섭도록 놈의 혓바닥을 정확히 맞췄다.
탕! 탕! 탕탕! 탕탕탕!
불카누스 길드원은 베이라가 맞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태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마나건을 쏘아댔다. 그리고 곧 그의 불안감과는 정 반대로 그녀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베이라는 잽싸게 낙법을 사용해 바닥으로 내려 와 그녀를 받아주려던 다른 길드원들을 실망시켰다.
태상의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길드원은 눈을 왕방울 만하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태상이 자신의 마나건을 거두고 총구에 후~ 하고 바람을 불었다.
“뭐 불만 있나?”
길드원은 고개를 저었다. 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다.
태상은 분명 무력화를 쓰지 않겠다고 했는데, 혓바닥을 무서운 정확도로 맞춰 끊어낸 것인다. 막스도 잘라내지 못한 혓바닥인데,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게 끊을 수 있었던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베이라가 태상에게 달려왔다. 그녀의 몸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태상이 쏜 마나건에 악마가 상처를 입어 튄 피와, 막스가 도끼를 휘둘러 생체기를 내서 나온 피들 때문이었다.
“고마워, 무력화 사용 한 거지? 그럼 지금 당장 총 공격을...”
그녀는 방금 전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완전히 잊은 듯 차분했다.
그동안 이런 위기가 한 두번이었겠는가. 그들의 리더인 베이라가 고작 이런 일에 당황한다면 다른 길드원들도 그녀의 분위기에 따라 우왕좌왕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심장이 쿵쿵 뛰고, 식은땀이 났다 해도 그것을 밖으로까지 티를 낼 순 없었다.
베이라는 태상이 악마에게 무력화를 사용해서 자신을 구해낸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마나건 공격력이 저 혓바닥을 당해낼 정도로 강하다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상은 베이라의 말을 끊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사용 안했어.”
“뭐?”
베이라는 그가 당연히 무력화를 사용했을 거라 생각했다. 솔직히 무력화를 사용 한 거냐고 물은 건 아주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당연히 그랬을 거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예전에 B등급 악마를 죽였던 것도 사로나와 혜연, 그리고 카살라가 함께 있었기에 태상의 능력이 돋보이진 않았었다.
혜연도 그들이 태상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음을 잘 알았기에, 그녀에게 확실하게 태상의 능력을 설명해주었다.
“저희 태상님은 갖고 계신 고유능력도 뛰어나시지만, 기본적인 능력도 뛰어나세요. 결코 무력화만 믿고 게을리 하시지 않았거든요.”
태상은 무력화가 사용되지 않았던 수련동의 순간들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래서 그는 마냥 무력화만 믿고 기본 능력을 올리는 것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기본적인 능력만으로도 웬만한 놈들보다 나은 것이다.
더욱이 그의 마나건은 파괴력이 무척이나 쌨다. 연속으로 파괴력이 강한 공격을 했으니 당연히 놈이 견뎌내지 못한 게 당연했다.
막스의 도끼질을 아주 빠르게 계속해서 휘둘렀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만약 막스도 그럴 수 있었다면 태상처럼 저놈의 혓바닥을 잘라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사용해서 놈을 잡으면 돼.”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때였다.
여왕이 또 다시 비명을 질렀다. 태상이 그녀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그런데, 그녀의 성기 아래에 박혀 있던 검은색 줄이 꿈틀꿈틀 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 때문인지 그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도대체 저 여자애는 왜 자꾸 저러는 거야?”
“아아아아아악!!”
여왕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녀의 몸도 계속해서 들썩였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불러있는 배도 말이다. 그리고 꿈틀 거리던 배의 배꼽부분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푹!하는 소리와 함께 튀어나왔다.
여자의 배를 가르고 새끼 악마가 태어난 것이다.
여왕이 왜 그렇게 비명을 질러댔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벗어날 수 없는 고통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괴기스러운 광경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혜연은 차마 계속 보고 있을 수가 없었는지 눈을 돌렸다.
그때, 혓바닥이 잘린 악마가 천장을 철퍽철퍽 소리를 내며 움직이더니 바닥으로 내려왔다.
바닥에 내려 온 녀석의 몸은 개구리와 비슷했다.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길까 했더니 개구리와 비슷한 모습을 한 녀석이라 그런 듯싶었다.
그리고 악마 녀석은 제자리에서 탑을 무너트릴 듯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일행들이 놈의 행동에 긴장하며 놈에게 무기를 겨눴다. 여왕의 뱃속에서 태어나는 새끼악마도 견제하고, 개구리 악마도 견제를 해야 했던 터라 일행이 나눠져야 했다.
놈의 눈동자가 데구루루 굴러가 여왕에게로 닿았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으로 가시기 전에 추천 한 번만 눌러주시면 제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후원쿠폰, 선작, 추천, 코멘트 모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