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91화 (91/251)

00091  여왕  =========================================================================

“여왕을 죽여야 해.”

“여왕? 여왕이 뭔데.”

태상은 처음 듣는 여왕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베이라는 그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 그녀도 이번 미션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여왕은 악마를 태어나게 만드는 존재야. 그러니 그 여왕을 죽인다면 앞으로 태어날 많은 악마들을 손쉽게 없앨 수 있는 거지. 천사들은 이번 미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어. 내가 생각했을 때도 꽤 중요해 보이고.”

태상은 베이라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롭네. 악마가 태어나는 걸 막을 수가 있다라....”

“정말? 그럴 줄 알았어. 그럼 도와주는 거다?”

베이라가 활짝 웃었다. 태상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점수 준다는 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잘 생각했어. 너희 말고도 많은 이들이 참가하게 될 거야. 동맹길드에 한해서 미션 공유를 하기로 결정했거든. 네가 이렇게 함께 해준다고 하니, 든든하다."

베이라는 기분 좋은 듯 연신 미소를 지었다.

“미션 공유는 잘 해주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다른 길드들한테까지 공유를 한다고?"

태상이 그녀의 말에 질문했다. 베이라는 잘 지적했다며 말했다.

"맞아. 이번 미션이 아무래도 여왕을 죽여야 끝나는 미션이다보니까 앞에서 악마들을 상대해줄 광대들이 많이 필요하거든."

베이라와 태상은 언제 그렇게 친해졌는지 모르게 서로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만약 나이트 레드가 봤다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들에겐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았다. 서로에게 반말을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는 점에서부터도 말이다. 미션을 공유하기 위해 왔던 베이라는 기분이 무척 나빠보이는 태상 때문에 오늘은 그냥 돌아갈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그런 자신의 기분을 내색하지 않았다. 덕분에 베이라는 안심하고 있는 중이었다.

“미션 도와준다는 건 고마운데, 따로 지원은 못해주는 거 알지?”

베이라의 말에 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지도 않았어.”

어차피 길드 건물을 카살라 덕분에 공짜로 얻게 되어 점수가 많이 남았다. 그 점수로 전투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면 됐기에 걱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베이라는 네가 있어서 참 든든하다며 그를 계속해서 칭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상은 그녀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도 단순히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저런 말들을 한 것이 아니었다.

“뭐야? 빨리 얘기 해. 말 빙빙 돌리지 말고.”

“말을 돌리다니, 내가 언제.”

베이라가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태상은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말 할 거 없어? 그럼 간다?”

태상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베이라가 황급히 그를 붙잡았다.

“왜 이렇게 급해? 알았어, 얘기하면 될 거 아냐.”

베이라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한동안 그의 매정한 태도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태상은 그녀의 불평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가 하려던 말은....”

베이라가 잠시 말을 끊고 침묵했다. 그러다가 이내 에라 모르겠다 싶은 얼굴로 말했다.

“혹시 너 혼자 따로 나와서 싸워 줄 수 있나 싶어서야.”

“혼자 따로 나오라고?”

그는 T.P길드의 길마다. 그런 그가 길드원들을 챙기지 않고 혼자 따로 나와 달라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발언이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뭔데?”

“우리를 도와줬으면 해. 말했다시피 미션 목적은 여왕을 잡아 없애는 거야. 많은 악마들이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 주위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을 거고.”

태상이 그녀의 말을 듣자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다른 계약자들이 시선을 끌어주고, 너희들은 가서 여왕이라는 놈을 잡아 죽이겠다는 건가?”

“....”

베이라는 정확히 짐작한 태상 때문에 할 말을 잃어야 했다. 그녀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리곤 베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정확히 봤어.”

“한 마디로 미끼네. 미션 공유받은 계약자들은.”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내가 좀 찔리잖아. 그냥 좋은 의미로 생각해 주면 안 될까? 그쪽도 어쨌든 미션 공유 받은 덕분에 두둑하게 점수 챙길 테니까. 그리고 너한테는 지금 이렇게 솔직하게 다 털어놨다?”

하지만 그녀의 제안을 받은 태상은 그다지 내키지가 않았다. 일행 모두 함께 가는 것도 아니고, 그 혼자서만 빼온다는 것 자체가 끌리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그녀를 따라 간다면 공헌도 1위를 노릴 수도 있으니 어쩌면 나쁘지 않은 제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난 내 길드원을 챙기는 게 제일 우선이야.”

“만약 네가 우리에게 힘을 보태준다면,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거야. 탐나지 않니? 우리 쪽에서도 따로 또 보상을 줄 거고.”

베이라가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그를 설득하기 위해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 거에 내가 흔들릴 거라고 생각해?”

동맹을 맺으면서, 지원 받지 않겠다고 했던 태상이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역시 안 통하네.”

다른 이들은 물욕에 눈이 멀어 이 정도만 해줘도 알겠다고 하거나 생각해보겠다고 하곤 한다. 하지만 태상은 그런 말을 아예 하지도 않고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결국 꼼수를 쓰는 것을 포기했다. 길드자금 아껴보겠다고 시도해봤으나 태상은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솔직히 대체 불가능한 태상과는 달리, 그의 다른 길드원들은 그녀의 길드원으로도 충분히 대체 가능한 흔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녀가 그들까지 값을 지불해서 지원을 요청할 이유가 없었다. 괜스레 돈 쓰느니, 그를 꼬셔서 혼자만 오도록 하면 여러모로 그녀는 길드자금을 아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수를 한 번 써본 것인데, 태상이 바늘구멍 하나 들어갈 틈도 주질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좋아, 알겠어. 그럼 다시 한 번 제안할게.”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사무적으로 변했다. 마치 그를 처음 만났을 그때처럼 말이다.

“불카누스 길드 길마가 T.P 길드 길마한테 정식으로 지원을 요청합니다. T.P 길드원 모두와 함께 저희 미션에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지원 사례금도 톡톡히 챙겨드리죠.”

그녀의 말에 이번엔 태상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요청 받아드리죠.”

존댓말에는 존댓말로 응수하는 태상이었다. 결국 베이라는 그의 길드원 모두에게 지원을 요청한 값을 치러야 할 듯 했다.

“완전 나쁜 남자야. 여자한테 하나도 져주질 않아.”

베이라는 그것이 못내 서운한 듯 투덜거렸다.

“이제 알았으면 다신 이런 짓 하지 말길 바라.”

태상이 매정하게도 그녀의 투정을 받아주지 않았다.

길드원을 모두 모이게 한 태상은 베이라에게 들은 이야기를 모두 해주었다. 미션을 하게 됐고, 그 미션에서도 따로 떨어져 나와 그들의 심장부, 여왕을 죽이기 위한 정예로서 일을 해주어야겠다는 말이 사로나, 혜연 그리고 카살라에게 전달됐다.

베이라와 있었던 실랑이는 말하지 않았기에 알겠다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혜연은 태상의 말이 끝나자 입을 열었다.

“요즘 저희 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여러모로 소문이 많다보니 그런 것 같아요. 그와동시에 가입 문의도 많이 오는 편이고요.”

태상은 그녀의 말에 궁금해져 물었다.

“공고를 낸 적도 없는데, 가입문의가 온다고?”

초보자들은 길드를 선택한다. 라마스도 태상에게 가장 먼저 길드를 선택하라고 권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것이리라. 그러니 여러 대형 길드에선 늘 초보자들의 길드가입 문의가 빗발치곤 한다.

그런데, 이런 생초짜 길드에 가입문의가 있을 줄은 상상 못한 일이었다.

“카살라가 천사다 보니 인간계에 가지 않고 하루 종일 길드건물을 지키잖아요.”

“응.”

“카살라한테 이만큼이나 종이를 주고 갔더라고요. 연락 기다린다면서요.”

그랬다. 언젠가 태상이 길드건물에 접수대를 지키는 사람을 고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는데, 그 일을 얼떨결에 카살라가 해주고 있었다. 날개가 없긴 해도 천사이기 때문에 함부로 인간계를 돌아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서 일행이 오지 않으면 카살라는 늘 길드 건물 안을 지켰다.

그리고 오늘은 혜연이 제일 먼저 길드건물에 왔던지라 그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거다.

사로나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정확히 얘기한 적이 없었구나. 우린 초보자들을 지원해서 키우고 하는 그런 거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지원 서류 같은 거 받을 필요 없어.”

단순히 사로나를 길드원으로 데려오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만약 초보자 중에서도 함께 싸우면서 커갈 생각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지원을 바라고, 쩔을 바라는 속셈으로 길드에 들어가려는 사람이라면 태상은 절대 사절이었다.

“아예 초보자들을 안 받겠다고요? 그럼 길드는 어떻게 키우시려고요?”

“굳이 대형 길드가 되어야 할 건 없잖아.”

태상의 말에 사로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끼리 함께 있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데. 지금도 충분히 재밌잖아.”

사로나가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그녀의 마음을 두드렸다. 하지만 혜연은 그렇지가 않은지 머뭇댔다.

“그렇지만, 아쉬워요. 태상님이 마음만 먹으면 다른 대형길드 부럽지 않은 길드를 만들 수 있을 텐데요.”

태상의 능력은 그녀가 보기에도 굉장히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그러니 그의 능력 덕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길드에 들려고 줄을 설 게 분명했다.

불카누스 길드 못지않게 그렇게 T.P길드를 키울 생각이었던 혜연이다. 태상이 자신의 생각을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태상은 단호하게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 뜻을 전했다.

“대형 길드를 만든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그런 길드를 만든다 해도 여전히 우린 천사들한테 미션을 받을 거고, 점수를 얻을 거 아니야?”

그건 그랬다. 길드가 뭐가 중요한가.

태상은 권력의 중요함을 잘 알긴 했으나, 그것의 부작용도 잘 알고 있었다.

태상의 말을 혜연이 반박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힘이 있는데, 힘을 사용하지 않는 건 이해가지 않았지만 태상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네. 알겠어요.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하지만 아예 길드원자체를 받지 않으실 건 아니시죠?"

"난 초보자가 아니라 함께 싸워서 강해질 사람을 구할 거야.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함께 할 거고."

태상의 말에 희망을 찾는 혜연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서류종이를 꼭 끌어안고 자신이 이 서류 안에서 그런 사람을 가진 계약자를 한 번 찾아 보겠다고 했다. 태상은 괜한 헛수고가 될 것 같았지만 그녀에게 그 일까지 하지 말라 할 수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회의는 이걸로 끝내고. 혹시 개인적인 걸로 하나만 물어봐도 돼?"

태상이 머뭇대다가 사로나와 혜연에게 물었다.

혜연이 뭐든 물어보라며 적극적으로 시선을 주었다. 사로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태상이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로나, 너도 듣고 생각을 알려줬으면 좋겠어."

사로나는 생각지 못한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한테도?"

일단 그녀도 알겠다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태상은 큼큼 헛기침을 몇 번 하다가 물었다.

"여자가 화가 많이 났는데, 그걸 풀어주려면 어떡해야 해?"

"........"

"........"

혜연과 사로나는 생각지 못한 말에 침묵했다. 혜연이 곧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그에게 물었다.

"사모님과 싸우셨어요?"

혜연의 정확한 추리에 태상이 입술을 깨물었다.

"싸운 건 아니야.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모르겠어."

생각같아선 그냥 성질대로 밀어 붙이고 싶은데, 송이한테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자신의 말만 듣고, 날 사랑하라 명령하듯 말하긴 했지만 고작 그것으로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같은 여자인 사로나와 혜연에게 물은 것이다. 송이를 어떻게 풀어 줄 수 있을지 말이다. 자세한 사정은 말하고 싶지 않았기에 태상은 그녀들에게 자세한 상황을 털어 놓지 않았다.

그다지 많지 않은 정보들만 가진 채 혜연이 고민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선물을 주면 풀리지 않을까요? 여자들이 원래 선물 좋아하잖아요."

태상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방법에 실망했다. 송이에게 백화점에 있는 모든 옷과 보석을 준다 한들 기분이 풀릴 것 같진 않았다. 그때, 사로나가 말했다.

"이벤트...?"

태상이 사로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 작품 후기 ============================

기승전 추천 한 번씩만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내일도 연참으로 찾아 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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