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7 태상vs명진 =========================================================================
하지만 태상은 이미 송이에게 그것을 밝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것이 그의 약점이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밝힐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지금 알려진다 해도 태상은 상관이 없었다.
송이는 어차피 자신의 여자다. 앞으로도 그건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어떤 몸을 하고 있던,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자신의 아이고, 그녀는 자신의 여자인 거다.
그러니 명진이 저런 태도를 하는 건 자기 무덤을 파는 것과 같았다. 그의 분노를 사는 것은 그의 명줄을 생각했을 때, 그리 좋지 않을 테니 말이다.
더욱이 저놈은 악마 계약자다. 그가 저놈을 죽인다면 천사들이 그의 시체를 거둘 것이다. 그러니 태상은 그를 봐줄 이유가 더더욱 없었던 것이다.
“내가 널 계속 봐줄 거라 생각하지 마라.”
태상이 경고하듯 으드득 이를 갈며 말했다. 하지만 명진은 그의 경고를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명진이 이 일을 단순히 충동적으로 저지른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었다. 그는 모든 상황을 준비 해두고 그들의 앞에 나타난 거였다.
원래 명진은 태상이 송이와 함께 있을 때 덮치려고 준비를 해뒀다. 그러니 그가 갑자기 나타났다 해도 당황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계획대로 그들을 모두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면 될 일이었다.
시체를 처리하는 것이 조금 귀찮을 뿐이지, 그들을 죽이는 것이 힘들 거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네가 그 소리를 나한테 할 줄은 몰랐네.”
명진은 태상이 조용히 살았다면 굳이 죽이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봐주고 있었던 건 그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명진이 이어서 말했다.
“사실 난 너한테 궁금한 게 많아.”
“그것 참 안타깝게 됐군. 난 궁금한 게 하나도 없거든.”
고로 답하지 않을 생각이다. 지금 태상의 머릿속엔 놈을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까.
태상의 말을 무시하며 명진은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어떻게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거지? 아니, 기억을 잃긴 했었던 거야? 악마는 분명 이상 없이 소원이 잘 이뤄졌다고 했다고.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넌 멀쩡히 기억을 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내 여자를 취했어.”
“.....”
“왜 그랬지? 차라리 날 찾아와서 미친놈 취급을 받을 지라도 화를 내는 게 보통 사람들이 할 만한 행동 아닌가? 넌 참 이상한 놈이야. 송이를 취했다면 내 몸에 얌전히 있겠다는 뜻일 텐데, 그와는 반대로 다른 쪽에서 날 할퀴려고 준비하고 있었잖아. 그냥 얌전히 살았으면 이런 일도 안 일어났을 텐데, 어리석어.”
명진은 마치 지금 이렇게 된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얌전히 살았으면이라.....’
태상은 엄연히 피해자다.
삶을 빼앗겼고, 가족을 빼앗겼다. 그가 원한 일이 아니었고, 눈 뜨고 코 베인 것처럼 자고 일어났다가 당한 황당한 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얌전히 살았어야지 하며 거들먹대고 있으니 황당할 밖에.
이런 걸 가만히 두고 보는 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명진과 싸우기 위해서는 송이가 이곳에서 자리를 피해주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임신을 한 여자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할 시기에 태상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라이브로 보여줄 순 없었다.
태상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내 말 잘 들어 임송이. 지금은 날 걱정하는 것보다 우리 아이를 생각해야 하는 게 맞는 거야. 그러니까 당장 도망쳐.”
“.......!”
그랬다. 태상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안전도 중요했다.
송이는 더 이상 그에게 고집을 부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남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걸 듣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늘 그렇듯이 그녀는 그에게 질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송이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명진이 아니었다.
“어디가려고 송이야. 얘기는 듣고 가야지.”
“어서 가!”
태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송이가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 마냥 계단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송이가 올라가려는 계단의 문이 갑자기 쾅! 하고 닫혔다.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세기의 바람이 불어와 계단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송이가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서 우뚝 굳어 섰다.
그러다가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계단문 손잡이를 잡고 열어보려 했다. 하지만 사람이 닫은 게 아니었으니 분명 잠겼을 리 없는 문인데, 쿵쿵 요란한 소리만 날 뿐 열리지가 않았다. 엘리베이터 쪽은 명진이 서 있어서 갈 수가 없었기에 송이가 필사적으로 힘을 주어봤지만 헛수고일 뿐이었다.
태상은 계단문이 닫힌 것이 단순한 우연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저놈이 왜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 지도 알았다.
‘능력을 사용하는 구나!’
더 이상 인간계에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내 태상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태상보다 명진이 먼저 인간계에서 능력을 사용하는 놈들과 알고 지냈었다. 그러니 그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미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명진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바로 태상도 이곳에서 능력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그는 애초부터 태상이 천사 계약자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아마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여유로운 것이고 말이다.
태상은 놈과 능력을 이용해 싸운다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가 강한 능력자라 해도 말이다. 하지만 송이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것이 그의 마음을 계속해서 걸리게 만들었다.
태상은 지금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녀의 앞에서 이명진을 죽이는 것, 혹은 송이를 다른 곳으로 도망치도록 하고 다시 와 그를 죽이는 것이다.
첫 번째를 선택한다면 태상은 수월하게 이명진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태상의 그런 생각을 모르는 놈은 본격적으로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너무 날 원망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네. 애초부터 둘이 얌전히 살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의 뻔뻔한 말을 들으며 태상이 송이를 향해 뛰었다.
명진이 슬슬 본격적으로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녀가 위험했다.
그의 능력은 바람이었다. 그는 자유자재로 거센 세기의 바람을 만들어낼 수가 있었다. 그가 의도하는 데로 주변에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태상은 그의 능력에 송이가 휩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단문고리를 잡고, 품에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그들을 잡아먹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명진은 그들이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버티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반인이 자신의 능력에 이렇게까지 버틴 건 처음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벌써 저 날카로운 바람에 휩쓸려 살들이 모두 갈기갈기 찢겨졌을 것이다. 사방에 터지는 피가 꽤나 재밌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태상은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보통 인간이 아닌 듯싶었다.
‘그래봤자 날 당해낼 순 없어!’
명진이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더욱 능력을 거세게 사용했다.
태상은 힘을 주어 문고리를 열어보려 했지만 송이가 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열리지가 않았다. 문고리가 잠긴 것이 아니라 안쪽에서 문을 열지 못하도록 거센 바람이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상은 송이의 귀에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대고 말했다.
“내가 신호하면! 이 바람이 사라질 거야! 그때! 올라가서 엄마랑 도망쳐!”
바람이 불면서 생기는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컸기에 그가 소리를 지르며 그녀에게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송이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엔 ‘그럼 너는 어떡하고?’ 라는 말을 묻고 싶은 듯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괜찮다고 해봤자 그리 신뢰를 주진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태상은 그녀의 눈빛을 보지 못한 척하고 넘겼다. 지금 그녀가 이곳에 있어서 그가 명진을 공격하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그가 명진에게 밀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송이에게 문고리를 꽉 잡으라고 말한 뒤, 태상이 명진에게 능력을 사용했다.
“...응?”
그의 능력이 먹힌 순간, 자동차를 들썩이게 만드는 바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뿌연 먼지가 공중에서 빠른 속도로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송이가 계단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태상은 계단문을 닫아 잠그고 뒤를 돌았다. 명진은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당황스러움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뭐, 뭐야? 왜 이래?”
“왜 그렇게 당황한 얼굴이지?”
송이가 사라졌으니 이제 누구도 그를 막을 사람이 없었다.
태상은 속이 시원하다는 듯 씨익 웃었다.
반면 명진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이해가 되질 않는다. 왜 갑자기 잘 사용되던 능력이 되질 않는 건가! 그는 지금 그가 겪고 있는 현상을 태상이 했다고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다.
태상은 계단문을 등지고 명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기 시작했다.
“멍청한 건 너다. 그런 궁금증이 들었으면 좀 더 신중하게 움직였어야지. 만약 나였다면 왜 그런 건지 확실히 그 이유를 알아보고 움직였을 거다.”
“그게 무...컥!”
명진이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태상이 먼지 속을 헤쳐 방심하고 있는 명진의 배 부분을 주먹으로 쳤던 것이다.
명진은 컥컥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태상은 그에게 쉴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그의 머리를 힘주어 발로 찼다. 능력을 쓰지 못하는 명진은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했다. 태상이 그를 죽이는 시간까지는 3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태진의 구타는 한동안 계속됐다.
명진이 입을 벌리고 쿠웨에엑! 하고 검붉은 가래 피를 토해냈다. 그의 이빨이 산산 조각났고, 얼굴 곳곳에 멍이 들어 퉁퉁 부어오르고 있었다.
만약 자신의 손에 총이 들어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놈의 이마에 총알을 박아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으니 무력화가 끝나기 전, 그를 완전히 무장해제 시키기 위해 다리를 꺾이지 않는 방향으로 꺾어버렸다.
놈도 이곳에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보통 사람보다 회복력이 빨랐다. 그러니 할 때 확실히 해야 그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었다.
“아아아아악!!!!”
태상이 힘을 주자, 명진의 비명이 함께 터져 나왔다. 고작 이것으로 그를 완전히 무장해제 시켰다고는 할 수 없었기에 그의 나머지 발을, 그리고 양 팔 모두를 가차 없이 꺾었다.
우드득 우드득 하는 뼈 부러지는 소리 등이 계속해서 사방에 울려 퍼졌다. 명진의 비명소리도 함께 말이다.
태상은 바닥에서 부들부들 몸을 떨며 꿈틀거리고 있는 명진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첫 번째. 내 얼굴로 그딴 비열한 웃음 짓지 마라. 기분 더러우니까.”
명진은 그의 말을 태연하게 듣고 있을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쓸 수 없어진 능력 때문에 완전히 멘붕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이 그때부터 시작 된 끔찍한 고통은 명진이 이성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태상은 그가 듣지 않는 눈치이자 꺾어놨던 다리를 힘주어 밟아버렸다.
“아아아악!!”
“잘 들어라. 물어 볼 거니까. 두 번째, 함부로 남의 여자 이름 부르지 마. 이름 닳아.”
“...으...으으으..으..윽....”
그가 송이야 송이야 하는 게 무척 거슬렸던 태상이다. 명진이 저도 모르게 헐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겐 살고자 하는 본능과도 같았다. 태상이 흡족하다는 듯 웃으며 마지막을 얘기했다.
“마지막 세 번째. 엄마,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한테 모두 사과하면서 죽어라. 그래야 네 저승길이 조금은 편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놈은 저승길조차도 편히 쉴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 거니까.
태상이 진심을 담아 경고했지만, 명진은 아무래도 그 경고를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경고를 듣기엔 그의 상태가 너무 좋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긴 해도 저 고개짓에 진심이 담겨있진 않을 것이다.
태상은 슬슬 끝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죽이기엔 사람이 너무 많이 지나다녔다. 그는 일단 명진을 질질 끌고 자신의 차에 태우기 위해 움직였다.
그곳에서 놈의 숨통을 끊어놓고 트렁크에 넣어 두면 천사들이 그의 시신을 수거해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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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목 오타 죄송합니다.수정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