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6 태상vs명진 =========================================================================
송이는 신경 써서 입은 티가 팍팍 나는 차림새로 태상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였다.
“어때?”
무릎까지 오는 검정 원피스는 그녀의 몸매를 부각시켜주어 절로 사람의 시선을 끌 것 같았다. 튀는 디자인 없는 깔끔한 스타일이었지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듯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태상은 그녀에게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송이가 기분이 좋았는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냥 가볍게 밥 한 끼 먹는 거니까, 네가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을 거야.”
“그런데, 왜 나랑 밥을 먹자고 하신 건지 이유가 좀 궁금해. 그때 만났을 땐 솔직히 나한텐 신경 도 안 썼었잖아. 그 분이랑 무슨 사업 같은 걸로 얽힌 게 있는 거야? 처음엔 그분이 널 좀 탐탁지 않아 하셨잖아.”
“자세힌 말 할 수 없어.”
태상의 입에서 늘 그렇듯 또 다시 말 할 수 없다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그에게서 그런 답을 듣는 게 익숙했다. 송이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문제를 캐묻는 건 그녀가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말이다.
태상은 송이가 더 이상 묻지 않자 안도했다.
분명 엄마는 송이에게 꼬치꼬치 물을 것이다. 지금도 그 질문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곤란한 질문들이 오갈 테니, 송이가 대답을 하다가 문제가 있는 발언을 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언제까지 송이와의 만남을 막을 수 없기에, 차라리 이번 기회에 만나게 하고 당분간 그녀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세연과 만나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한 번 만남을 주선 했으면 한동안은 그녀에게 그 일로 시달리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집을 나서서 태상이 차를 몰고 움직였다. 이동 중에 송이는 태상에게 슬며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내가 잘 해야 되는 거니?”
“응? 뭐가?”
“잘 보여야 하는 건가 싶어서.”
송이의 질문은 그런 거였다. 태상과 그녀의 관계가 상하관계라면 자신은 그를 내조하기 위해서라도 그녀에게 잘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 즉 그녀의 말은 세연에게 알랑방귀 해야 하는지 물은 거였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당연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절대 그럴 필요 없다 했겠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그녀와 세연의 사이가 얼마나 복잡 미묘한가. 그러니 태상은 선뜻 그녀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송이가 세연에게 잘 해준다면 태상으로서는 좀 더 마음이 놓이게 되긴 했다.
태상이 곧장 답을 하지 못하자 송이가 마치 대답을 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내가 알아서 잘 해볼게.”
“.....”
아무래도 그녀가 태상이 침묵한 것을 그렇게 하라는 뜻으로 들은 듯 했다. 하지만 태상은 약속장소에 도착 할 때까지 그녀에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태상은 차를 주차하기 위해 잠시 송이를 먼저 내려주었다. 차가 막히는 바람에 약속 시간에 촉박하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예의를 위해서라도 송이가 먼저 가는 게 맞았다.
“먼저 올라가 있을 테니까, 주차하고 올라와!”
“그래.”
송이가 차문을 닫고 나갔다. 태상은 주차를 위해 다른 곳으로 차를 몰고 사라졌다. 송이는 약속시간에 늦을까 싶어 발걸음을 바쁘게 놀렸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자 그녀의 뒤로 누군가가 뚜벅뚜벅 걸어와 멈춰 섰다.
송이는 엘리베이터에 비취는 이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쩐지 그 얼굴이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힐끗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남자가 송이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떼었다.
“또 만나네요.”
“네?....저요?”
남자의 예상치 못한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여기에서 제 말에 대답할 다른 사람이 있나요?”
송이와 남자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즉 그녀에게 한 말이 맞다는 뜻이었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자신도 아는 사람인 듯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남자가 정확히 누구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음...저도 낯이 좀 익긴 한데, 솔직히 누구신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어설프게 기억하는 척 하는 것보단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물었다. 헌데 남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말하기 뭐한 장소이긴 한데, 쓰레기장이라고 말하면 기억이 나실까 싶네요. 쓰레기장에서 만난 적 있거든요. 저희가.”
“쓰레기장이요?”
송이가 생각지 못한 장소가 튀어나오자 당황했다.
누구지?
송이는 끝내 남자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때문에 송이는 난감해져 말했다.
“음...죄송해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그러실 수 있습니다. 아주 잠깐 스치듯 만났으니까요.”
아, 그런 거였어?
송이는 남자의 말에 조금 안심이 되어 살짝 웃었다.
그때,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돌연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송이는 화들짝 놀라 말했다..
“왜 그러세요?! 꺅!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남자는 송이를 엘리베이터에 타지 못하도록 힘으로 제압했다. 송이가 발버둥 치며 화를 냈다.
“이봐요! 이거 놓으세요!”
“잠시 만요, 제가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시죠.”
“시간은 무슨...! 저 시간 없어요. 약속시간에 늦는다구요!”
“압니다. 하지만 그곳에 나가진 못할 거에요.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남자 아니, 명진이 송이의 팔을 잡아당겨 몸을 꽉 끌어안았다. 송이가 비명을 지르려 입을 벌리려는데, 명진이 그럴 수 없도록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힘이 어찌나 쌘지, 송이는 그의 손아귀에 붙잡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송이가 더욱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녀의 눈앞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송이야. 내가 지금 좀 많이 날카로운 걸 들고 있거든.”
“.....읍!..으읍!”
송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무서워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에게로 겨눠진 칼 때문에 더 이상 발버둥도 칠 수가 없었다. 송이는 명진에게 질질 몸이 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이 장면을 보고 도움을 준다면 좋았겠지만, 불행이도 주변엔 누구의 인기척도 느낄 수가 없었다.
명진이 그녀를 차에 태우고, 미리 준비해둔 줄로 그녀의 몸을 꽁꽁 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녀가 비명을 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의 입에 손수건을 집어넣어 묶었고, 팔과 다리까지 모두 꼼꼼하게 묶어 마무리했다.
그녀를 확실하게 묶느라 생각보다 시간을 지체 한 명진은, 서둘러 앞좌석에 탔다.
송이가 묶은 것을 풀어보려 애를 썼지만, 너무 꽁꽁 메여서 그런지 전혀 소용이 없었다.
명진이 뒷좌석에 있는 송이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넌 이제부터 미끼야. 그놈을 죽일 미끼. 그러니까 소중히 대해줄 때 얌전히 있어.”
콰앙!!!!
그때였다. 차 앞 유리를 향해 무언가가 날아와 박혔다. 유리는 날아오는 물체에 의해 충격을 받고 깨져 명진의 몸에 파편이 박혔다. 무언가가 갑자기 날아오는 것은 이해가 될 수도 있는 일이나, 그 물체가 유리를 뚫고 온다는 건 비이상적인 일이었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명진은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거리가 좀 있는 곳에서 달려오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놈이 그의 멱살을 잡아 채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크윽!”
명진이 바닥을 뒹굴자, 태상은 뒷문을 열어 송이를 챙겼다. 그가 힘을 주어 뜯자 명진이 열심히 묶어 놓은 것들이 손쉽게 뜯겨져 나왔다.
“괜찮아?”
“흐윽..! 명진아!”
송이가 태상의 품에 울음을 터트리며 안겼다. 태상은 그녀의 등을 몇 번 토닥인 뒤 자신의 뒤로 숨겼다. 그는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는 명진을 무시무시한 눈동자로 바라봤다.
“풋! 하하하하!!”
명진이 기분 나쁘게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숙여진 고개가 드러나자, 태상은 놈이 이명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송이를 강제로 태운 것을 보고 앞뒤 생각하지 않고 뛰어왔었다. 해서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얼굴을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너 날 알아? 우리 지금 서로 처음 보는 거 아닌가?”
서로가 서로를 모를 수가 없는 데도, 그가 시치미를 뗐다.
“저 새끼가....!”
태상이 으드득 이를 갈았다. 그는 일단 그녀를 놈에게서 떼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했다.
“넌 올라가 있어. 엄마랑 만나면 경호원들이랑 같이 움직이고.”
송이가 그럴 수 없다는 듯 그의 팔을 필사적으로 잡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 널 두고 나 혼자 갈 순 없어!”
“내 말 들어!”
태상이 답답한 마음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명진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왜 송이를 보내려고 해? 송이도 엄연히 이 일에 연관되어 있는 거잖아. 알건 알아야지.”
명진은 그녀가 태상을 자신의 이름으로 불렀을 때, 알았다. 그녀는 여전히 태상을 자신으로 알고 있다고 말이다.
“어서 가 있어.”
태상이 그의 말은 고려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다시 한 번 송이에게 말했다.
송이는 그가 저 이상하고 위험한 남자와 아는 사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저 남자가 자신이 미끼라고 했었다. 그건 둘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드는 증거였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 자신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말 때문에 송이는 쉬이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저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친근하다는 듯 말하는 것이 소름끼쳤다.
“그냥 나랑 같이 도망가서 경찰에 신고하자...”
태상만 들을 수 있도록 작은 목소리로 송이가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그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둘이서 해결 봐야 할 문제가 있어.”
경찰 쪽으로 문제를 넘길 순 없었다. 둘이서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때, 명진이 송이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송이야, 나야. 정말 모르겠어?”
송이는 그의 말에 질겁하며 태상의 옷깃을 힘주어 잡았다. 그가 무서웠다.
“그 입 안 닥쳐!?”
태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시 한 번 더 입을 놀리면 가만히 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명진이 말했다.
“앞으로 해야 할 얘기가 얼마나 많은데 너무하네. 좋아, 그럼 송이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다른 것부터 얘기해볼까? 강태상, 내 가면을 쓰고 날 연기해보니까 어땠어? 난 많이 수월했는데. 다들 참......”
명진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서 이어서 말을 했다.
“내가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건 상상도 못하더라고.”
태상은 여유로운 이명진의 태도가 자신이 송이에게 정체를 들키기 싫어하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지금 놈은 송이를 약점으로 잡고 자신을 협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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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피곤하네요.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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