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5 태상vs명진 =========================================================================
모든 가족이 함께 하는 아침 식사 자리였다. 태진과 세연, 그리고 명진이 모여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식사는 쉬이 끝나지 않았다. 세연이 명진을 당황시킬 얘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몸도 많이 회복 됐는데, 다시 독립해야 하지 않겠니?”
독립은 그동안 한 번도 생각 못해본 일이었다.
명진에겐 이 가족들에게 제대로 아들로 인정을 받고,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하는 게 계획이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집을 나가라니, 그건 명진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기는 일이었다.
당연히 명진은 절대 그럴 수 없다 펄쩍 뛰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가족들이 있는 곳에서 멀어진다면 세연과 태상, 둘이서 어떤 수작질을 부리는지도 알 수가 없어진다. 명진은 이제 시작인 건가...하는 생각에 눈동자를 날카롭게 빛냈다. 하지만 그런 속과는 달리 세연을 대할 때에는 반대로 그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피었다.
“그동안 생각을 못해본 일이라서 좀 당황스럽네요.”
“이제라도 생각해보렴. 원래 쭉 혼자 살아왔잖니. 이곳에선 회사도 머니까,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되는 게 많네.”
세연이 다정한 척, 그를 무척이나 위하는 척하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는 늘 절 걱정해주시네요.”
“당연하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거짓말.’
명진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감동 받았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서로서로가 가면을 쓰고 대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서로를 죽이고 싶어하는 살기로 가득하면서 말이다.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진이 입을 열었다.
“난 반대다. 예전에 네 엄마가 너 결혼 준비하고 있었다. 이대로 쭉 지내다가 결혼해서 들어와 살아라.”
태진의 뜻밖의 말에 세연이 펄쩍 뛰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결혼이라뇨. 아직 태상이는 기억도 못 찾았다고요. 아픈 아이한테 무슨 결혼이에요!”
남의 집에 주제도 모르고 굴러들어 온 돌멩이한테 어울릴 여자는 없었다. 적어도 세연이 태상의 짝으로 만들려 여기저기 알아 본 여자들 중에는 말이다. 누구 하나라도, 가장 떨어지는 스팩을 갖고 있는 여자라도 저 놈에게는 아까웠다.
“언제까지 기억 타령으로 미루려고! 이번에 너한테 딱 맞는 혼사가 들어왔으니 진지하게 만나 보도록 해.”
“여보!”
세연이 다급하게 그를 불렀지만, 태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말한 혼처는 요즘 일을 함께 추진하고 있는 회사 오너의 딸이었다. 그가 이번 결혼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어떻게 보면 얼굴조차 모르는 여자와 혼인하라는 태진의 말이 서운할 지도 모르겠으나, 명진은 도리어 그의 제안이 나쁘지 않았다.
그에게 들어오는 혼처의 여자들 모두가 고귀하게 자라 온 영애들임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여자와 결혼을 하는 게 바로 명진의 가장 큰 꿈이었다.
더욱이 이번 일로 태진이 자신의 진짜 정체를 모르고 있다는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모두 아는 게 아니라면, 명진이 이 집에 남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의 앞날에 방해가 되는 강태상과 민세연, 그리고 임송이를 죽인다면 그는 이 자리를 내어 놓지 않아도 될지 몰랐다.
“기억이 없는 상황에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긴 하지만, 일단 아버지 뜻에 따르고 싶어요.”
그의 대답에 세연의 얼굴이 무너졌고, 태진의 얼굴에는 만족한다는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자신의 아들이지만 서로 가깝지 않은 대면 대면한 사이였던 둘이다. 그래서인지 태상은 그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편이었고, 그것이 둘 사이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곤 했다.
헌데 기억을 잃은 후부터는 저렇게 고분고분하게 그의 말을 잘 듣곤 해 그를 흡족하게 만들고 있었다. 태진은 지금 태상의 고분고분한 태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세연은 저런 놈에게 결혼까지 시켜줄 순 없단 생각에 서둘러 말했다.
“일단 독립 문제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자. 내가 너무 섣부르게 생각한 것 같아. 그리고 태상이 결혼은 제가 알아서 하니까, 당신은 나서지 말아줘요. 예전부터 그건 내 권한이었어요.”
세연이 태진에게 도도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대대로 후계자의 혼인은 그 어미가 주관하는 게 이어져 온 전통이었다. 그러니 세연의 말을 태진이 반박하고 나설 순 없었다.
결혼 문제가 일단락되자 세연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명진을 보고 있는 순간순간이 끔찍하고 싫었다. 금
쪽같은 내 새끼의 몸을 빼앗은 저 놈을 죽이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당사자가 아니라면 절대 모를 것이다. 참고 참던 그녀는 더 이상 표정관리에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결국 그에게 독립을 하라 제안을 한 거였다.
물론,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지만 말이다.
괜스레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태진을 슬쩍 째려봤다.
그는 아마 지금 눈앞에 있는 이가 진짜 그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다시 그를 보니 어찌나 진짜 태상과 다른 게 많은지, 어떻게 그동안 감쪽같이 속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자신이 멍청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엄마라면 아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어야 하는 게 맞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냥 보통 엄마인가? 태상을 세상에서 제일로 아끼고 사랑해주었던 자신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식을 알아보질 못했으니, 미안한 마음이 무척 클 수밖에 없었다.
왜 아버님이 낯선 남자에게 그토록 정을 주었는지, 그리고 갑자기 뜬금없이 입양이라는 것을 입에 올렸는지. 그걸 좀 더 깊게 생각했어야 했다.
만약 그녀가 납치를 당하는 일이 없었다면, 혹은 납치를 당했을 때 기절한 척을 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저놈을 자신의 아들로 생각하고 아끼고 있지 않았겠는가. 세연은 자신의 사랑을 태연하게 받은 명진이 너무 밉고 또 미웠다.
기억을 잃은 사고 때문에, 세연은 그를 더더욱 아꼈었다. 한 시도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그를 보살폈던 것이다. 하지만 뒤늦게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그녀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도 아깝고 화가 났다.
태상이 그에게 티를 내지 않아야 한다고 했기에 참고 있긴 했지만, 눈앞에 찢어죽이고 싶은 이가 있는데도 참아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가 가진 태상의 몸만 아니었다면....
세연이 직접 나서서 그를 죽이고야 말았을 것이다.
아무튼, 도저히 표정 관리 할 자신이 없어서, 그를 독립시키려 했던 그녀의 계획은 그렇게 뜻하지 않은 태진의 개입 때문에 모두 무로 돌아갔다.
아니, 도리어 이번 일 때문에 명진을 더더욱 집에서 내쫓을 수가 없어지고 만 것이니 낭패를 본 걸 수도 있다. 이런 사단을 만든 태진을 속으로 원망하며, 조용히 식사를 끝냈다.
방으로 돌아 온 세연은 답답한 마음에 태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당집에 가보아도, 그런 쪽에 용하다는 이들을 찾아가 봐도 사람의 몸을 바꾸는 방법을 안다는 이는 나오질 않았다. 태상에게 반드시 방법을 찾겠다고 장담을 했었는데 말이다.
뜻하지 않게 생긴 며느리라는 존재도 그녀를 심란하게 했고, 아무리 수소문을 해봐도 실마리가 나오지 않는 몸을 바꾸는 방법도 그녀를 심란하게 했다.
태상에게 자신의 고민들을 털어놓으며 속풀이를 하려 했던 그녀다.
그녀가 답답한 가슴을 풀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있을 무렵 연결음이 끊어지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런데 전화를 받은 사람이 태상이 아니었다. 분명한 여자 목소리를 들은 세연은 당황하며 말했다.
“제가 전화를 잘못 건 것 같네요.”
[아! 아뇨, 명진이한테 전화 거신 것 맞으시죠? 잠시 그이가 씻으러 들어가서 제가 대신 받았어요.]
....씻으러 들어갔다고?
세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혹시 그 아이와 무슨 관계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관계요...? 그건 왜 물으시는지....]
통화음 속으로 의심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세연이 황급히 말했다.
“아, 제가 혹시 아는 분인가 해서요. 명진이 와이프 되시는 분 아닌가 싶은데, 제 짐작이 맞나요?”
송이는 자신을 정말 아는 것 같아 보이자 놀라 물었다.
“절 아시나요? 누구신지 성함을 여쭤도 될까요?”
그의 핸드폰에 이상하게 저장이 되어 있는 번호였다. 처음엔 받지 않으려다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통화를 받은 거였다. 솔직히 송이야 말로 도대체 왜 그녀가 명진의 핸드폰 속에 ‘엄마’라고 저장되어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한 번 만나 본 기억이 있는 걸로 알아요. 자선파티에서 말이에요.]
세연의 말에 송이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송이가 아! 하고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그때 그 일억 사건!’
태상을 일억이나 쓰게 만든 장본인 여자, 세연이 송이의 머릿속에 정확히 떠올랐다.
‘그런데 왜 그때 그 여자를 엄마라고 저장한 거지?’
도통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기억이 나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봬요. 명진이랑 연락을 하고 계셨을 줄은 몰랐네요.”
세연은 속으로 환호 했다. 그동안 태상이 절대 안 된다며 막았던 터라 그녀와 얘기조차 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약속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잘 됐어요. 제가 송이씨랑 다시 한 번 만나면 얘기를 꼭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먹이가 제 발로 굴러 들어왔는데, 놓칠 순 없었다.
세연이 기회는 이때다 싶어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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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 핸드폰 만졌어? 내가 안 받은 전화가 받아져 있네?”
씻고 나온 태상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송이에게 물었다. 송이는 찔끔한 표정으로 입술을 오물거렸다.
“혹시 급한 전화 일까봐 나도 모르게 받았어. 혹시 기분 나빴니?”
“아니, 뭐.....”
태상은 송이가 자신의 핸드폰을 만졌다는 것이 거슬린 다기보단 그녀와 통화한 사람이 엄마라는 것 때문에 거슬린 거였다.
“무슨 얘기 했는데?”
더욱이 통화시간이 제법 길었다. 태상의 걱정대로 송이는 그녀와 둘만의 비밀 대화를 나눈 것인지 선뜻 답을 해주지 못했다.
“그게.....”
“빨리 말해. 혹시 만나자고 그러디?”
엄마라면 송이를 보기위해 막무가내로 그랬을 것 같았다. 그리고 송이의 찔끔하는 표정을 보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 언제 어디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태상이 약속을 취소하기 위해 세연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송이가 서둘러 그의 핸드폰을 빼앗아 막고 말했다.
“둘만 비밀로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거절 할 수 가 없었어. 넌 그냥 모르는 척 해.”
“됐어, 나가지 마.”
“이미 약속했는데 그걸 어떻게 취소하니?”
“내가 전화해서 취소할게.”
“몰래 만나자고 했는데, 그럼 내가 뭐가 돼! 그건 절대 싫어.”
“........”
송이가 너무 단호하게 고개를 젓자 난감해진 태상은 젓은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잠깐 한 눈을 판 사이 세연과 송이가 연락이 닿을 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세연은 아직 송이가 명진의 아내였다는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만약 뒤늦게 그걸 알게 되면 크게 화를 낼 것이다. 그녀를 절대 받아 줄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태상은 웬만하면 세연과 송이의 만남을 최대한 뒤로 미루려고 했던 거였다.
물론 그녀가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이미 법적으로 결혼도 하고, 임신까지 한 사이이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너 저 멀리까지 걸어 온 사이인 것이다.
처음에 그녀를 만났을 때,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어느새 그의 삶으로 깊게 스며들어, 누가 그이고 누가 그녀인지 알 수 없이 서로 섞여버렸다.
“좋아, 그럼 취소하지 않는 대신, 같이 나가.”
“그럼 약속이랑 달라지잖아. 몰래 나오라고 하셨단 말이야.”
“그럼 약속 아예 취소하던가.”
태상이 그녀에게 생각할 틈도 없이 몰아 붙였다.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해.”
결국 송이가 태상에게 지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왜 그가 세연을 ‘엄마’라고 저장해두었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세연을 꼭 만나고 싶었다.
약속을 취소하게 되는 것보단, 그와 함께 가는 것이라 해도 그녀를 꼭 한 번 다시 만나보고 싶었다. 결국 송이는 태상과 함께 세연을 만나러 움직여야 했다.
세연과의 약속 날은 바로 다음날 오후 1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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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의 코멘 모두 깊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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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모두 제게 큰 도움이 됩니다.
내일은 꼭 연참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