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6 타락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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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는 성을 빠져나가지 않았다. 아직 타락천사가 성 안에 남아 있다는 뜻이었기에 태상에겐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면 정말 막막해졌을 테니 말이다.
태상은 난이도를 좀 더 높여야 하는 거 아니냐며 툴툴거리면서 야호를 따라갔다.
야호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천사가 어디에 있는지 확신하는 눈치였다. 일행 모두가 뛰면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야호의 성에는 차지 않는 듯 했다.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일행을 힐끔힐끔 보면서 길을 안내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야호는 성 꼭대기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리고 갑자기 창문 쪽으로 뛰어가 손톱으로 한방에 창문을 열더니 밖으로 뛰어 내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뛰어 내리면서 하늘을 날았다.
녀석의 파닥거리던 날개가 쓸모 있는 것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야호는 혼자서 유유히 성 지붕 위로 올라갔다. 야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일행은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딱 봐도 천사가 성 꼭대기, 지붕 위에 있는 게 분명했지만 일행들 중 야호처럼 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 몸으로 움직여야겠네.”
태상이 창문 밖으로 몸을 빼내서 아슬아슬하게 손으로 주변의 틈을 잡아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들에게 창문 밖으로 몸을 내미는 일은 그리 위험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지켜보는 사람이 더 아슬아슬해진다는 게 흠이긴 했다. 그리고 땅과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다는 점도 말이다.
태상이 야호를 따라 지붕 위로 올라가버리자 남은 혜연과 사로나는 서로를 잠시 바라보며 시선을 마주했다.
“가야겠죠?”
“그래야죠.”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사로나와 혜연은 태상이 한 것처럼 창문 밖으로 몸을 빼내서 주변에 있는 틈을 잡고 몸을 움직여야 했다. 혜연은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었기에 심호흡을 하며 움직여야 했다. 이대로 짐이 될 순 없단 생각 때문인지 그녀는 앙 다문 입술을 한 채로 사로나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낑낑거리며 올라가자 태상이 야호와 함께 어떤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들도 함께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엔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타락천사가 보였다. 야호는 타락천사를 빤히 보고만 있고, 적의를 보이고 있지 않았다.
그가 타락하긴 했지만 천사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태상이 그에게 한 발작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왜 여기 있는 거야?”
“......”
천사는 멍한 표정을 한 채로 태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절 찾으러 오신 건가요?”
“그래, 갑자기 없어져서 놀랐잖아. 왜 갑자기 혼자서 여기로 온 거야? 뭔가 기억이 나는 게 있었나?”
“....아니요. 여전히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냥 머리가 아파서...정신없이 걷다 보니 이곳에 와 있더군요.”
“머리가 아팠다고?”
저렇게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다가 일행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해서 태상은 지금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생각할 게 많아서 그런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에서 자꾸만 난 누구인지, 왜 내가 이곳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만 떠오릅니다. 모든 게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내가 말 했잖아. 그걸 다 설명해줄 천사를 불러주겠다고. 근데 왜 도망을 쳤지?”
“도망...도망을 친 건 아니었습니다. 정신이 없어서 그걸 생각 못했습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천사는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면 나한테 와서 물어봤어야지. 머리가 엄청 아픈데 어떡합니까? 하고 말이야. 그랬으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르잖아.”
태상은 자신이 원해 저런 꼴이 된 게 아니었을 그를 동정했다. 하지만 동정한다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를 가만히 둘 순 없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놈을 죽이는 게 찝찝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하는 거였군요. 몰랐습니다. 다음부턴 꼭 그러겠습니다. 갑자기 제가 없어져서 곤란하셨죠? 죄송합니다.”
“무지 곤란했지. 얌전히 있었으면 편이라도 들어줬을 텐데, 네가 그럴 수도 없게 만들었잖아.”
곧장 사과를 해오는 타락천사 때문에 태상이 한숨을 푹 쉬었다.
“네?”
타락천사는 태상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타락천사에게 자신의 말을 이해시켜주는 대신 그를 불렀다.
“이리와.”
태상이 손짓하자 그는 얌전히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 들린 마나건을 분명 보았을 텐데도 말이다. 전혀 경계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니면 경계라는 걸 아예 잊어버린 걸 수도 있고.
사로나와 혜연이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태상을 바라봤다. 그냥 곧장 죽일 줄 알았는데, 태상이 시간을 끌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한테 넌 천사라고 했었잖아. 근데 천사가 맞긴 한데, 천사가 아니래.”
“천사가 맞긴 한데, 천사라 아니라고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그니까 네가 엄청 어중간한 존재라는 거지.”
“어중간한.....”
천사의 얼굴이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의 얼굴에는 언뜻 자괴감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수시로 그의 얼굴은 변했다. 단순히 멍한 표정을 짓다가도 한없이 우울한 표정을, 그러다가 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그가 불안한 상태인 것이다.
“제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겁니까? 전 왜 그런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리 말하는 타락천사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저 살기가 천사를 향하는 게 아니라 악마를 향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가 될 테지만, 그런 도박을 믿고 그를 살려두기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는 게 많았다. 안타깝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지만 그는 태상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는 듯 했다.
“널 이렇게 만든 놈들은 악마야.”
“악마.....”
그의 눈빛에 살기가 가득 담기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잔잔했던 그의 기세가 180도 바뀌어 있었다.
“그 악마라는 자들은 어디 있습니까?”
“왜? 죽이러 가기라도 하려고?”
“복수하고 싶습니다. 절 이런 존재로 만든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으드득 이를 가는 게 그가 느끼는 분노가 태상에게도 느껴졌다. 순둥이인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닌 듯 했다. 사로나와 혜연이 놀라 각자 자신들의 무기를 쥐고 태상에게 달려갔다.
지붕의 경사가 제법 되었기에 움직이기 어려웠지만 다급한 상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태상이 타락천사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안타깝지만 널 이렇게 만든 악마는 우리 손으로 죽였어.”
“아...,!”
태상의 말에 갑자기 타락천사의 기세가 사그라졌다. 그의 살기 가득한 날카로운 눈빛이 아까처럼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순식간에 변한 기세에 사로나와 혜연은 다가가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태상이 그녀들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손짓을 했기에 더욱 그랬다.
“제 대신 복수를 해주셨군요...정말 감사합니다.”
타락천사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한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태상은 그의 상태가 확실히 굉장히 불안하며, 라마스의 말대로 정신을 놓으면 막무가내로 공격을 퍼부어 천사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생각했다.
콰아아앙!!!!!!!
“꺅!”
“..!!”
“크윽?!”
그때였다. 갑자기 성 전체에 큰 폭발이 일어났다. 성 전체가 지진이 난 것 마냥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성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래층에서 난 폭발인 듯 검은 연기가 아래에서 위로 솟아올랐다.
쿠구구구구구궁!!!!
아래부터 시작 된 무너짐은 위쪽까지 금방 여파를 옮겨왔다.
야호는 날개로 하늘을 날아 피할 수 있었지만 태상과 사로나, 혜연은 달랐다.
갑작스러운 지진에 마땅히 잡을 게 없었기에 순식간에 그들의 몸이 성과 함께 아래로 추락했다. 성 안 쪽으로 떨어졌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무너지는 건물 잔해로 인해 다칠 수 있지만 적어도 발버둥은 쳐봤을 것이다. 태상과 사로나는 건물 안으로 떨어졌기에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혜연은 불행이도 지진으로 인해 몸이 지붕에서 쭉 미끄러져 아무 것도 없는 아래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지붕이 넓은 편이었던 지라 곧장 떨어지자 아래에는 맨땅밖에 없었다. 성 주위에는 나무와 같은 것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저 아래에 맨땅이 끝이었다. 해서 속도를 줄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때, 야호가 자신의 주인을 구하기 위해 빠르게 날개짓을 했다.
폭발이 아래쪽에서 일어났기에 건물은 계속해서 아래로, 아래로 쭉쭉 무너졌다. 태상은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건물 잔해를 마나건으로 쏴서 작은 파편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 급한 순간 야호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호가 그의 목소리를 듣기엔 주변이 너무 시끄러웠지만,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혜연을 구해!!”
야호가 구하기엔 건물 안쪽으로 떨어지는 태상보단 혜연을 구하는 게 더 나았다. 하지만 야호에겐 그녀보다 태상이 더 중요했다. 그가 야호의 주인이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혜연은 발버둥칠 세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야호가 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방향을 틀었다.
놈은 태상의 명령 하나는 아주 잘 듣는 녀석인지라 다행이었다.
사로나는 어디로 갔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럴 정신이 없는 게 맞았다. 그때, 태상은 잠시동안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무수한 깃털들을 시야에 담았다.
그 깃털들은 모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태상은 저런 것에 넋을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기에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뗐다. 저 깃털들의 정체를 밝히기 전에 자신의 몸부터 챙겨야 했다.
태상이 넓고 평평한 파편을 밟아 건물 밖으로 도약했다.
어느 정도 내려왔기에 지금은 건물 안에 남아 있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는 게 훨씬 안전했다. 태상의 선택이 맞은 듯 바깥으로 튕겨져 나온 그는 낙법을 사용하며 바닥에 착지 할 수 있었다.
멀리서 사로나가 그와 마찬가지로 무사히 빠져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혜연도 야호가 무사히 구해낸 듯 안전한 모습으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 야호가 그 옆에서 혜연의 감사 인사를 받고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태상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방금 전 보였던 이상한 흰색 깃털이 다시 그들의 머리 위에서 나풀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깃털은 건물이 무너지면서 생긴 흙먼지와 함께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저건 설마....”
태상은 흰색 깃털의 주인을 찾기 위해 시선을 좀 더 하늘 위로 올렸다.
흙먼지가 가라앉고, 점점 드러나기 시작한 하늘 위로 날개를 활짝 펼친 채 하늘을 날고 있는 존재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존재들 모두가.....
타락천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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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상 여기서 컷뜨 하겠습니다잉.
닭(비)둘기들이 참 많죠.
근데...월병인님 때문에 심쿵했습니다.
추천 그렇게 설레게 주는 게 어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