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2 야호 =========================================================================
왜 하필 세연을 납치했을까.
차라리 이명진 그놈을 납치했다면 오히려 그를 도와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명진이 아닌 세연을 선택했고, 그러므로 그의 최후는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턴 내가 당신 죽인다 해도 아무런 피해가 없어. 당신은 악마 계약자가 될 뻔한 사람이었으니까. 당신 참 운도 지지리 없다. 아니, 내가 운이 좋은 건가?”
시체 치우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는데, 악마가 나타나 준 덕분에 그 일이 편하게 해결 될 듯 싶었다. 악마 계약자를 이곳에서 죽이면 천사가 처리를 해주겠다고 약속을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보상은 줄 수 없지만 적어도 시체 처리는 확실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니 태상은 동춘을 죽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태상이 막아 계약은 하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는 예비 악마 계약자였다. 천사들에게 말을 한다면 저 남자의 시체는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고, 태상한테는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참 당신도 딱하네.”
이 남자가 그냥 일반인도 아니고, 예비 악마 계약자이기에 더욱 살려 보낼 수가 없었다. 동춘이 저지른 죄는 괘씸하고 화가 났지만, 생각지 못한 악마의 등장으로 이미 시간이 꽤 지난 상태였다.
곧 해가 뜰 것이기에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태상은 덜덜 떨고 있는 동춘의 목을 한 손으로 감싸 쥔 뒤, 힘을 주었다.
“사, 살...!”
동춘이 채 말을 끝내지 못한 채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는 눈조차 감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몸은 바닥에 축 늘어져 더 이상 까딱도 하지 못했다. 생명을 잃었기 때문이다.
태상은 그의 축 늘어진 시체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태상이 죽은 동춘의 시체를 버려둔 채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함이었다. 그의 몸 이곳저곳에 피가 묻어 있어, 그것을 닦아내려면 또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세연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갔는지도 궁금했다.
도중에 그녀를 내버려두고 와야 했던 지라 걱정이 됐다.
그리고 송이가 만약 중간에 깨어서 도대체 밤사이에 어딜 다녀왔냐고 묻는다면 그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궁색하게 거짓말로 변명을 해야 하는데, 거짓말 하는 걸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차라리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 게 낫지 거짓말은 싫었다.
그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고, 어느덧 달리는 모양새가 됐다.
그가 사라지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인적 없던 수풀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인영이 한 명 있었다. 그 인영은 정확히 죽어있는 동춘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인영은 천사도, 평범한 일반인도 아니었다.
“......”
동춘의 시체를 발견하고 잠시 바라보던 인영이 쪼그려 앉았다. 눈조차 감지 못하고, 목이 부러져 죽은 동춘의 모습은 무척이나 기괴했지만 그를 보는 남자는 전혀 감흥이 없어보였다.
도리어 동춘의 부러진 목을 빤히 응시하며 그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왜 이 놈이 이 꼴을 해서 여기에 죽어 있는 걸까.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동춘의 목은 도구로 인해 부러진 게 아니었다. 시퍼렇게 멍들어 있는 모양이 딱 사람의 손바닥을 연상시켰다. 그렇다면 이건 누군가가 손아귀 힘으로 목뼈를 모두 으스러트려서 죽인 게 된다.
남자는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 이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곳에서도 가능한 일인지는 몰랐다. 물론 이제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말이다.
“이곳에서 능력을 쓸 수 있는 계약자가 있다는 건가?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남자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동춘의 시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얻었기에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지금 이곳에서 시간을 오랫동안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귀찮게도 그를 애타게 찾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또 다시 수풀 속에 방치 된 동춘의 시체는 날이 밝았음에도 그대로 방치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다. 분명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그의 시체가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기업 사모님의 납치 소식에 한동안 떠들썩했던 인터넷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식어 어느 곳에서도 그 이야기를 다루는 곳이 없었다.
관심이 식은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명령으로 모든 정보가 차단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세연의 납치는 묻히고, 묻혀 바람에 쓸려가는 먼지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게 말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아예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분명 변한 것은 있었다.
“어머니.”
계단에서 내려오던 세연은 1층에서 자신을 보며 그녀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움찔 몸을 떨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었다가 표정을 바꾸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을 부른 이를 바라봤다.
“그래, 일어났니?”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채 감추지 못한 어색함이 깃들어 있었다.
“몸은 어떠세요?”
“이제 완전히 나았어. 걱정하지 마렴.”
“그럼 다행이구요.”
그의 말에 세연이 싱긋 웃었다. 그러곤 갑자기 뒤를 돌아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어디가세요? 내려오시던 거 아니셨어요?”
그녀의 이상한 행동에 당연하게도 태클이 들어왔다. 세연은 올라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아아, 엄마가 깜빡 잊고 핸드폰을 두고 와서.”
세연은 급하게 핸드폰 핑계를 대고 다시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명진이 그녀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눈치 채고 가리키며 말했기 때문이다.
“손에 들고 계시잖아요.”
“어머! 내 정신 좀 봐. 그러네? 늙으니까 자꾸 깜빡깜빡 한다, 얘. 호호호.”
세연은 자신의 손에 떡하니 들린 핸드폰에 아차 하며 얼굴을 구겼다. 그녀는 결국 다시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명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세연에게로 다가갔다.
“생각보다 빨리 퇴원하셔서 다행이에요. 걱정 많이 했는데.”
세연은 잠시 명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떨리는 눈동자로 말했다.
“정말 걱정을 했니?”
그가 예상한 대답이 아니었기에 순간 명진이 당황했다. 보통 ‘걱정시켜서 미안해’ 라거나 ‘이제 걱정하지 마렴.’등 그와 비슷한 대답이 나올 거라 예상을 했던 것이다. 정말 걱정을 했냐는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몰라 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 일그러진 얼굴을 세연에게 보일 순 없었기에 금방 아무렇지도 않은 척 미소로 바뀌었다.
“하하, 그게 무슨 소리세요? 걱정을 했냐니요. 그런 당연한 소리를 왜 물으세요?”
세연은 명진을 계속해서 빤히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에 슬픔이 담겨 있어 명진을 더욱 알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눈빛에서 더 이상 슬픔을 눈치 챌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얼굴에 가면을 써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물었니? 말이 잘못 나왔나보다.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엄만 괜찮아.”
세연의 웃음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는 아무것도 알아 낼 수 없었다.
**
태상은 책상에 앉아 팔짱을 끼고 무언가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야호가 그의 무릎에 앉아 자신의 발바닥을 핥고 있었는데, 힐끗힐끗 태상이 응시하는 것을 훔쳐보기도 했다. 태상은 야호에게 물었다.
“이게 뭔지 아냐?”
당연하게도 야호에게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직 야호는 많이 크지 못해 그와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태상도 그걸 잘 알았기에 혼잣말을 하듯 계속해서 말했다.
“이게 바로 악마심장이라는 거거든. 그놈들 죽이면 나오는 거. 보통 라마스한테 넘겨주면 되긴 하는데.....”
태상은 악마심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천사들은 이걸 갖다가 뭐에다 쓰는 거지?”
겉보기엔 별 볼일 없는 노란색 보석이었다. 이게 악마 심장이라는 게 좀 껄끄럽긴 했지만 어찌됐든 천사들이 이걸 모으는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야호가 몸을 일으켜 테이블 위로 매끄럽게 뛰었다. 그리곤 악마 심장을 장난치듯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캬앙!”
제법 앙칼진 소리를 내며 말이다. 그러더니 녀석의 눈동자가 갑자기 반짝거리며 초롱초롱해졌다. 보석이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다.
하지만 녀석에게 줄 순 없었기에 그냥 갖고 놀다 빼앗아야지 하고 생각한 태상이다. 그런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마냥 녀석이 갑자기 악마의 심장을 덥석 입에 물고, 투다닥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치 고양이가 생선을 도둑질하고 도망치듯 말이다. 태상은 그 광경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저게 왜 저래?”
그동안 태상이 느낀 바로는 야호가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람의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의 말을 전부 다 알아듣는 것 마냥 행동했다. 그런 놈이 갑자기 저러니 황당할 밖에 없는 것이다.
태상이 밍기적 일어나 야호가 사라진 곳으로 걸어갔다.
“야 흰별!! 빨리 안 나오냐? 말로할 때 갖고 와라.”
그가 야호를 흰별이라고 부르는 것은 송이가 저 녀석의 이름을 흰별이로 지었기 때문이었다. 야호는 그 이름을 격렬하게 싫어했지만 송이는 무자비하게도 녀석의 의견을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해서 둘만 있을 때에는 태상이 녀석을 위해 야호라고 불러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악마 심장을 들고튀는 괘씸한 행동을 했기에 녀석이 싫어하는 이름을 불렀다.
그가 부른다고 튄 놈이 제 발로 돌아 오는 건 아니었다.
녀석이 어디로 도망쳤나 두리번거리던 태상은 저 멀리에서 소파 아래에 삐죽 튀어나와 있는 살랑거리는 꼬리를 발견하고 성큼성큼 다가갔다. 녀석의 꼬리를 덥석 잡고 질질 끌어내자 주르륵 끌려나온 야호는 말똥한 눈빛으로 아무 잘못 없다는 듯 태상을 바라봤다.
“너 그거 어따 뒀어.”
야호의 입에 아무것도 물려 있지 않았기에 태상이 물었다. 하지만 야호가 초롱초롱 특유 애교 섞인 표정으로 태상을 바라봤다. 태상은 어림없다는 듯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 들었다.
“소파에 숨겼냐?”
태상이 야호를 소파 위에 올리고 고개를 숙여 소파 밑을 살폈다. 하지만 어디에도 보석 비스무리한 것은 없었다.
태상은 도둑을 추궁하듯 야호를 매섭게 노려봤다.
소파 위에 안착한 녀석은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다가 태상의 매서운 눈빛을 받고 찔끔 한 듯 꼬리를 푹 내렸다.
시선을 피하는 야호와 그런 야호를 빤히 바라보는 태상의 대치가 잠시 동안 계속됐다. 그는 문득 야호에게 말했다.
“몸 뒤집어봐.”
야호가 그게 무슨 실례되는 소리냐는 듯 끔뻑거리며 태상을 봤다. 하지만 태상은 단호하게 말했다.
“빨리 뒤집어라.”
결국 야호가 주인인 태상의 말을 듣고 소파에 몸을 누인 채 배를 까보였다. 이처럼 굴욕적인 자세는 난생 처음인지라 야호는 저도 모르게 크르릉...하며 심기 불편함을 내보였다.
태상은 녀석의 배를 손바닥으로 슥 쓰다듬어보았다.
“이노무자식! 그거 먹었지?!”
야호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들키지 않으려고 시치미를 떼고 있었는데 정확히 들켜버린 것이다. 야호는 나 죽었소 하듯 뒤집은 몸을 아예 축 늘어트렸다. 태상은 눈을 감고 죽은 척 하는 야호의 볼록한 배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C등급 악마 심장이면 바꿀 수 있는 점수가 꽤 됐다. 그런데 이 녀석이 그걸 홀랑 먹어버린 것이다. 태상은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뱉어라. 배 갈라버리기 전에.”
야호의 몸이 움찔한 순간, 송이가 소란을 듣고 그들이 있는 거실로 왔다.
“무슨 일이야?? 어머! 흰별이 좀 봐. 애교 부리는 거야 지금?”
굉장히 도도한 녀석이었기에 야호의 애교는 처음 보는 송이였다. 야호는 영악하게도 송이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그녀의 품으로 점프했다.
“꺅!”
송이가 깜짝 놀라 야호를 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녀와의 거리가 제법 됐는데도 야호는 매끄럽게 그녀의 품에 안착했다.
송이의 품에 안겨 갸르릉 소리를 내자 그 귀여움에 녹아 꺄악꺄악 소리를 질렀다. 태상은 괘씸한 저 녀석을 빼앗고 싶었지만 송이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태상이 끄응...하고 난감함에 신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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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코쿠폰 감사합니다.
새 파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