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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71화 (71/251)

00071  납치  =========================================================================

제니탄이 뒤를 돌아 기척을 내서 물은 이를 바라봤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자는 황당하게도 인간이었다. 제니탄은 천사가 방해를 하러 온 것인가 싶어 긴장했다가 인간인 것을 확인하고 황당함에 헛웃음을 지었다.

“뭐야? 인간이잖아.”

제니탄이 혹시나 해서 물었다.

“너 인간인 거지?”

그러자 황당하게도 전혀 겁먹은 얼굴을 하지 않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 지금 그럼 인간 주제에 감히 내 앞에서 그따위 말을 지껄인 거냐?”

“그런 말 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태상이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제니탄은 건방진 그의 태도에 으드득 이를 갈았다.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제니탄이 분노한 것도 분노한 거지만, 지금 태상도 무척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내가 누구인지 아냐는 제니탄의 외침에 태상이 대답을 했다.

“악마잖아 악마. 그리고 그 제니탄인지 뭔지 하는 이름 안 궁금하니까 좀 닥쳐 줄래? 그리고 너 아직 내 질문에 대답 안 했다는 거, 기억 해둬야 한다.”

제니탄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뒷목이 땡겨옴을 느껴야 했다. 이런 황당한 무례는 생전 처음 당하는 무례였다.

자신이 악마라는 것을 아는 것을 보니, 놈은 분명 천사 계약자가 분명했다. 하지만 제니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이 자신에게 이런 무례를 저지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은 인간계다.

계약자들은 인간계에서는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만약 능력을 쓸 수 있다고 해도 놈은 혼자였다. 혼자서 C등급 악마인 자신을 죽일 순 없었다. 그러니 결국 저놈은 자신에게 이런 무례를 해선 안 되는 거였다.

“네가 천사 놈들의 계약자인 건 짐작으로 알겠다만, 이곳에서 천사들은 계약이 아닌 이상 소환될 수 없다는 걸 알아야지. 그걸 알고도 감히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제니탄의 말에 태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아. 그리고 부를 생각도 없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놈인가 보구나. 넌 날 보자마자 도망을 갔어야 했다. 네놈의 그 잘못을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그의 말이 무섭지도 않은지 태상은 무시라도 하듯 여전히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도리어 발을 움직여 제니탄이 있는 곳 가까이로 다가오기까지 했다.

제니탄은 알 수 없는 태상의 당당한 태도에 불길함을 느꼈으나, 자존심 때문에 무시했다. 저놈이 무서워 도망친다면 구겨진 자존심을 평생 회복하기 힘들 것이다. 평생 자신의 삶에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게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제니탄은 차라리 그렇게 해서라도 태상에게서 벗어나야 했었다. 그는 더 이상 후회할 기회조차 없어지게 될 테니 말이다.

한편 동춘은 눈을 끔뻑대며 둘의 대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하나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몸이 악마라는 존재 덕분에 씻은 듯이 나았기에 도망갈 방법이 생겨난 상태라는 것이다. 두 다리가 멀쩡했으니 당연히 이 끔직한 곳에서부터 도망을 쳐야 했다.

동춘은 저들 둘이서 싸우느라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못할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잘 뛸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꿀꺽-

그의 몸이 저릿저릿했다.

동춘의 몸에 소름이 돋고, 저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이유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태상과 제니탄이 내뿜는 살기 때문이었다. 살기가 워낙 강했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동춘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이다.

태상은 갑자기 나타나 세연을 데려가고, 자신을 벽에 못 박아 놓은 사람이었고, 제니탄은 그 못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한 뒤 자신의 상처를 치료한 존재였다. 둘 모두가 동춘에겐 공포의 대상 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그의 머릿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가득 채워졌다.

“자꾸 딴 소리 할래? 내가 물었잖아. 아까 전에 한 말 다시 해보라고. 너 방금 전에 누굴 죽인다고 했지?”

태상은 세연의 안전을 끝까지 확인하고 돌아가려 했으나 갑자기 느껴지는 찐득찐득한 기운에 놀라 빠르게 창고로 다시 돌아 온 상태였다. 그의 우려처럼 창고에는 동춘이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악마가 떡하니 서있기까지 했고 말이다.

더욱이 악마는 어처구니없게도 태상의 가족들을 직접 죽이겠다고 살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감히 자신의 가족에게 손을 데려 하는 놈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 말을 왜 다시 해야 하지?”

“하긴, 하지 않아도 상관없지. 결과는 같을 테니까.”

얘기를 하던 하지 않던, 저놈은 그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태상의 말에 제니탄은 기가 막혀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인간의 가소로운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더 이상은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렇게 계속 날뛰어라. 널 지옥에 데려가주마!”

사실 제니탄은 이곳에서 모든 힘을 끌어낼 수 없었다.

해서 태상에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은 본래 자신의 힘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절반의 힘이라 해도 사실상 아무런 능력이 없는 일반인에겐 무척 치명적인 힘이었다. 그러니 태상을 죽이는 것에는 힘의 반의반도 필요 없을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자신을 공격하기 시작한 제니탄을 보고 가만히 있을 태상이 아니었다.

제니탄이 움직이자, 당연히 그도 움직였다.

그는 제니탄에게 무력화를 사용하고, 그가 자신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 긴 손톱을 휘두르는 것을 가뿐하게 발로 차버렸다. 본래 발길질로 절대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지만, 태상의 몸은 천계와 똑같은 상태였으며, 무력화까지 사용한 상태였다.

그가 막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제니탄은 태상의 몸이 찢겨져 바닥을 뒹굴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자신이 바닥을 뒹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물론, 그 깨달음을 얻은 후 시간을 좀 더 가질 수 있었다면 좋았겠으나 그러질 못했다.

태상은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제니탄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자신의 앞에 악마가 나타난 이상 놈을 죽이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아마 제니탄은 동춘과 계약을 하기 위해 온 거일 것이다.

만약 동춘이 제니탄에게 무슨 소원을 말했는지 알았다면 태상의 눈이 아마 뒤집혔을 것이다.

그걸 듣지 않은 지금도 눈앞에 있는 두 놈들을 갈아 버리고 싶은 심정인데 말이다. 태상이 바닥에 뒹굴고 있는 제니탄에게 접근해 그의 뿔을 잡아 우득! 분질러버렸다.

“아아아악!!!”

그의 뿔은 절대 저렇게 오이같이 약한 강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나도 쉽게, 마치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똑 하고 부러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건 정말 너무 이상했다.

이상한 일은 뿔만이 아니었기에 더욱 이상했다.

태상이 그의 어깨를 잡아 뜯어버리듯 힘을 주자, 마치 어린 새싹이 뜯기 듯 자신의 팔이 뜯겨져 나갔다. 그것에 멈추지 않고, 태상은 제니탄의 날개를 갈기갈기 찢어 발로 밞았다.

마치 그에게 모든 분을 다 풀기라도 하듯 제니탄의 몸은 태상에 의해 밟히고, 뜯기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전투는 이런 게 아니었다.

서로 대등하게 싸우거나 혹은 자신이 태상의 위치에서 상대방을 조롱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뜯기는 것은 자신의 날개였으며, 부러지는 것은 자신의 뼈였다.

태상이 제니탄의 다리를 잡아 바닥에 내동뎅이를 쳤다. 쿠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제니탄이 쿨럭 피를 한 웅큼 토해냈다. 태상은 그의 얼굴을 발로 밟아 계속해서 놈에게 데미지를 주었다.

동춘은 도망가려던 것도 잊고, 입을 쩌억 벌린 채 앞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광경에 넋을 놓아야 했다.

그는 자신의 몸에 튄 피를 보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지금 태상이 저 악마에게 신경을 다 쓰고 있을 때 도망을 쳐야 했다. 안 그러면 또 다시 못에 박혀 자신이 저 악마처럼 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곳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게 동춘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

‘도망 가야 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야 해!!’

꿀꺽 침을 삼킨 동춘이 슬금슬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태상은 아직 그가 걸음을 조금씩 옮기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열려 있는 창문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들키지 않고 창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창문을 열어 둔 것이 신의 한수라 생각하며 말이다.

동춘이 헐레벌떡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최대한 저 창고에서 멀리 떨어져야 했다. 그가 목격한 장면들은 그가 견뎌내기에 너무 힘든 것들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악마를 존재와, 그 존재를 장난감 다루듯이 상대하는 괴물은 동춘의 머릿속을 백지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저 이상한 일들을 이해하는 데에 머리를 쓰는 것보다 이곳에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빨리 도망칠 수 있을지를 열심히 생각했다.

“사람,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해...! 경찰! 경찰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자신이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동춘은 지금 이 순간, 경찰이 너무나도 애타게 보고 싶었다. 그들만이 저 괴물들에게서 자신을 지켜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가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았다. 하지만 불행이도 그의 핸드폰은 창고에 있었기에 찾아낼 수가 없었다. 더욱이 배터리가 다 나가서 켜지도 못하는 상황이었고 말이다.

그가 달리면서도 뒤를 바라보며 초조해했다. 또 다시 어디선가 태상이 나타나 그의 머리를 잡아 챌 것만 같았다.

젖 먹던 힘까지 다 끄집어내서 달렸다.

너무 빨리 달려서 인지 중간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다리를 삐끗한 것인지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동춘은 아픔도 모르고 정신없이, 조금이라도 더 떨어지기 위해 달렸다. 쩔뚝거리면서도 말이다.

그때, 저 멀리서 차 한 대가 그에게 구원을 내리 듯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어서 도로로 가서 그 차를 무슨 일이 있어도 세워야 한다 생각했다. 늦은 시간이었던 터라 저 차를 잡지 못하면 그는 영영 이곳에서 지나가는 차를 보지 못할 수 있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달려 다가오고 있는 차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저 차만...!! 저 차만 잡으면 살 수 있다!

부디 운전자가 자신을 봐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몸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의 목을 움켜쥔 무언가가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컥!”

그리고 스산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조용히 들려왔다. 묵직한 손의 무게가 그의 목과 어깨 위에서 분명히 느껴지고 잇었다.

“도망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의 어깨에 올라와 있는 손에는 악마의 것으로 짐작되는 붉은 피가 찐득찐득하게 묻어 있었다. 끼기긱 로봇이 움직이는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리다가 그것을 본 동춘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흐이이이이익!!!!”

그는 겁에 질린 나머지 오줌을 지렸다. 따듯한 오줌물줄기가 허벅지를 타고 내려가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태상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코를 막았다.

오줌으로 인해 찌릉내가 그의 콧속을 자극했던 것이다.

“아~ 진짜! 더럽게.”

태상은 진저리를 치며 동춘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동춘은 도망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리는 그의 의지를 무시하고 힘이 풀린 채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가 앉은 곳은 오줌이 고여 있던 곳인지라 태상의 얼굴을 더욱 찌푸리게 만들었다.

“허억...! 허억....!”

너무 놀라서 그런지 동춘의 안색이 창백했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가슴에 통증이 오는지 자신의 심장을 붙잡았다. 태상은 저러다가 심장마비로 죽을 기세였던지라 쯧쯧 혀를 찼다.

“고작 이런 일에 심장마비 걸리는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납치를 한 거야? 서로 조용히 넘어갔으면 이럴 일도 없었잖아.”

============================ 작품 후기 ============================

오늘은 3연참.

찌끄러기 악마 훗. 선추코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지적해주신 부분 수정, 오타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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