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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70화 (70/251)

00070  납치  =========================================================================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치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처럼 손과 발이 긴 못이 날아와 그를 벽에 고정시켜버렸다.

끔찍한 고통이 동춘을 찾아왔다.

처음 날아 왔던 못은 반 밖에 박히지 않았지만, 지금 날아 와 박힌 못은 망치질이라도 한 마냥 깔끔하게 그의 몸에 깊숙하게 박혀 그를 벽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손가락 한 마디 한 마디에 못이 전부 다 박혀 있었기에 정말 말 그대로 손 하나 깜짝할 수 없을 만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동춘은 자신의 몸이 벽에 박혔다는 것을 인지하고 3초 뒤에 찾아 온 고통에 입을 벌렸다. 너무 고통스러우면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 수 있다더니, 지금 그게 동춘이 겪고 있는 현상이었다.

태상은 어느새 세연의 몸을 안아 들고 있었다. 그녀의 몸을 꽁꽁 묶고 있던 줄은 힘없이 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태상의 품에서 얌전히 안겨 있었다. 만약 태상이 그녀를 좀 더 주시했다면 기절한 이 치고는 심장이 무척 빠르게 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상은 동춘에 대한 분노 때문에 보지 못하고 있었다.

태상은 일단 그녀가 깨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킬 생각이었다.

혹시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하나 사둔 추적시계에 놈의 피를 묻혀두었다. 놈이 도망친다 해도 자신이 찾아 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추적 가능한 시간은 넉넉했다.

동춘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잠시 보낸 그는 세연을 안전하게 안아들고 밖으로 움직였다. 움직이는 동안 그녀의 몸에 상처가 있는지 확인하며 태상이 낮게 욕을 뱉었다.

“시발, 다쳤잖아.”

줄에 쓸려 빨갛게 부은 거지만 그것 외에도 멍이 든 곳이 군데군데 있어 태상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새끼, 가만 안두겠어...”

조용히 혼잣말로 중얼거린 태상이 핸드폰을 꺼내 강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강회장이 전화를 받자마자 태상에게 말했다. 태상이 세연의 납치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으려 전화를 한 것이라 생각한 듯 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위치를 알 수 있을 것 같...]

“이제 그만해도 돼. 엄마는 내가 구했어.”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데리고 있다고. 그놈은 내가 처리할 거니까 건드리지 마. 내가 할 거야.”

태상의 목소리에 짙은 살기가 맺혔다.

[위험하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잖냐! 고세 움직인 게야?!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약속 안 지킨 건 미안해. 근데 가만히 있을 순 없었어. 엄마가 납치 됐는데, 그걸 어떻게 가만히 두고 봐.”

[끄응....내가 너무 널 오냐오냐 키웠구나.]

강회장이 화가 났는지 목소리에 못 마땅함이 묻어났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다친 곳은 없느냐?]

강회장도 그녀 걱정이 된 건 맞는 듯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태상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다행히 그놈이 건드리기 전에 구해서 괜찮아. 조금밖에 안 다쳤어. 근데 여기저기 멍이 좀 많이 들었네. 속상하게.”

강회장은 그의 말에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난 널 얘기한 거다. 넌 회사를 물려받을 귀한 몸이라는 걸 왜 이렇게 생각 못하는 게냐! 네가 없어지면 기업을 누가 이어 받을지 걱정도 안 드는게야? 네 행세를 하고 있는 그놈한테라도 줘야 하는 거냔 말이다!]

태상을 걱정하는 마음에 강회장이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태상은 조용히 침묵했다. 그와의 약속을 어긴 잘못도 있었기에 태상은 얌전하게 강회장의 호통을 들었다. 강회장은 태상에게 앞으로 몸을 조심히 여길 것을 약속 받아 내고서야 호통을 멈추었다.

“....난 남은 볼 일이 있으니까 사람 좀 보내서 엄마 데려 가.”

어쩐지 진이 빠진 태상은 강회장에게 말했다. 그는 태상이 어두운 쪽의 일을 관여하는 것이 못 마땅했다. 물론 기업을 경영하려면 그런 쪽 일에 아예 무관하게 살 순 없지만 사람을 죽이는 일을 직접 하는 것과 시키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사람을 시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을 직접 하려는 태상이 못 마땅했다.

[사람한테 시키면 알아서 잘 처리하는 걸 왜 굳이 네가 직접 하겠냐는 거냐.]

“내가 할 거야. 예전에 할아버지한테 말한 적 있지? 어릴 적에 나 납치했던 놈들, 내 손으로 처리하지 못한 게 화가 난다고.”

[태상아.]

“이번엔 내 손으로 할 거야. 그래야겠어. 그땐 아버지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잖아.”

[...알겠다. 그럼 사람들 보내 놓으마.]

“엄마가 무서워할 수 있으니까 그 놈도 보내. 엄만 내가 있어야 안정될 거야.”

얼굴은 그의 것이니 성격이 다르다 해도 안정감은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강회장과 전화를 끊은 태상은 그녀를 차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차를 창고에서 떨어진 곳에 세웠다. 그녀를 혼자 두기엔 걱정이 되었기에, 바깥에서 지켜보다가 차가 보이면 납치범에게 갈 생각이었다.

태상은 추적시계를 주시하며 어서 빨리 강회장이 보낸 사람들이 오기를 바랐다.

**

“흐..흐으으으......”

동춘은 희미해져 가는 정신을 붙잡으려 애를 썼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머릿속을 정리해보려 해도 아무 것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못은 여전히 그의 몸에 박혀 있었고, 중력은 그를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끄...끄으...으..끄으...”

의미를 알 수 없는 희미한 신음만이 스산한 창고를 울렸다. 동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런 고통을 겪을 바에야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냥 편하게 죽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듯 했다. 그 정도로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은 끔찍했다. 온 몸이 그의 몸속에서 나온 피로 흥건했다.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피가 어느새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사....살...고 싶어.”

동춘이 숨이 끊어질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후회가 됐다. 결국 누구에게도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지 못했다. 가족들은 빚쟁이 아버지에 이어 범죄자 아버지라는 낙인까지 채우게 될 것이다.

“흐....멍..청한..놈...”

네 까짓 게 뭘 할 수 있다겠다고 이딴 짓을 저지른 거냐....

결국 이렇게 될 걸 말이다.

만약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절대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강태진 그놈을 직접 노려서 함께 죽을 거다. 그럼 적어도 덜 억울할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타들어가던 모닥불의 불이 거센 바람에 휘날려 꺼졌다. 나무가 다 타버려서 꺼질 수도 있는 것이기에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바람은 분명 인위적인 것이었다.

동춘은 눈을 껌벅거렸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 거대한 검은 날개를 펼치고 허공에 떠 있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존재는 동춘의 상대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쯧 혀를 찼다. 어쩌다가 이런 놈이 걸렸는지 모르겠으나 이미 소환이 되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존재는 동춘의 몸에 박힌 못을 손짓 하나로 모두 다 튕겨내 버리고, 그의 상처를 순식간에 아물게 해버렸다. 동춘은 어버버 하며 자신의 몸에 일어하는 기이한 일을 바라봤다.

날개를 한 번 펄럭인 악마는 도도한 눈빛으로 동춘을 바라봤다. 그는 더 이상 몸에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몸을 벌벌 떨며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엄청난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담아 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나는 악마 제니탄이다.”

“악...마요?”

그러고 보면 그의 외향이 악마와 비슷했다. 거대한 검은색 날개 하며, 뾰족하고 붉은 손톱, 이마에 나 있는 뿔과 파충류의 눈동자처럼 길쭉한 동공 등이 말이다. 그외에 악마를 설명하는 많은 외형들이 있었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악마와 아주 흡사했다.

제니탄은 이런 놈은 굳이 계약자로 존중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회용으로 급하게 계약자가 필요해 나온 것이었기에 그는 동춘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 않고 교묘하게 진실을 바꾸어 말했다.

“너는 앞으로 나의 노예가 되어 일을 돕게 될 것이다.”

“노예요?”

동춘이 눈을 껌벅였다. 왜 갑자기 제니탄이라는 악마가 자신의 앞에 나타나 자신이 노예가 될 거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게 진짜 현실이 맞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네가 원하는 것을 한 가지 말해라. 위대한 나의 노예가 된 기념으로 너의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동춘은 소원이라는 말에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소, 소원이라 함은 뭐든 다 가능한 겁니까?”

“나는 위대하다. 너의 소원이 무엇이든 다 가능하다.”

제니탄은 귀찮다는 듯 어서 얘기하라며 그를 재촉했다.

어서 저놈과 계약을 맺고 돌아가 놈을 사용해야 했다. 일이 급했기에 저런 놈과 계약을 맺는 거지, 평소였다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놈이었다. 계약자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어떤 것도 다 된다고......그럼 혹시 사람을 죽이는 것도 됩니까? 된다면 강태진 그놈과 그 가족들을 모두 다 죽여주십시오!!! 그 놈만 없으면...그놈만 없으면 노예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동춘은 악마에게 비는 소원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뤄 줄 수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악마가 너무 대충 설명을 했던 이유도 있거니와 그가 한 치 앞만 보며 그의 머릿속을 가득 매운 강태진에 대한 증오만 생각했던 것도 있었다.

차라리 그가 재물을 달라고 하거나, 시간을 돌려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었을 시기로 돌려 달라고 했다면 좀 더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잠시이고 결국엔 악마가 그의 목숨을 다른 용도로 써먹었을 테지만 말이다.

“강태진? 정확히 그 놈의 얼굴을 떠올려라. 사진이 있다면 더 좋고.”

누군가를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었기에 제니탄은 별 거 아니라는 듯 그에게 말했다. 죽이는 것은 그가 손가락 까딱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동춘과 계약하기엔 손가락 까딱하는 것도 아깝긴 했지만 말이다.

동춘이 주섬주섬 자신의 옷 주머니를 더듬어 꾸깃꾸깃한 사진을 꺼내들었다.

“이놈입니다. 이놈들 가족까지 모조리 다 죽여주십시오! 특히 강태상!! 그 놈이랑 그 어미도 전부요!”

“흐응~ 뭐 그 정도야.”

제니탄은 빨리 일을 끝내자 생각하고 힘을 모았다. 그의 몸 주변에 어두운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 기운들이 이동춘이 빈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 아니, 그럴 거라 생각했으나 갑자기 어두운 기운들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제니탄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왜 안 된다는 거야!!!"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허공에 대고 외쳤다.

동춘은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제니탄의 말에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안 된 겁니까?"

무슨 소원이든 다 된다고 해놓고 이런 일도 안 된다고 하니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제니탄은 까드득 이를 갈았다. 고작 저딴 놈과 계약 하려고 하는 일에 이렇게 일이 꼬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제니탄은 오기가 생겨 다시 한 번 기운을 모으고 그의 소원을 들어주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검은 기운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왜지? 왜 안 된다는 거지? 고작 인간 몇 명 죽이는 것 뿐인데?"

제니탄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자신의 힘이 모자른 것인가 싶지만 고작 인간 몇 죽인다고 그리 많은 힘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 태상이 과거에 라마스에게 소원을 빌어 그의 가족 모두가 보호 받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몰랐기에 제니탄은 자존심이 상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제니탄은 C등급 악마였다. A등급 라마스의 힘이 담긴 보호를 그가 뚫을 순 없었다. 계속해서 제니탄은 불가능하다는 답만 받자 화가 나 주변에 살기를 흩뿌렸다.

"감히 이 제니탄을 무시해!?! 내 특별히 직접 찾아 죽이겠다!!"

제니탄이 분노하며 말했다. 고작 사람 몇 명 죽이는 일에 불가능하다 답을 받으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그의 눈동자가 흉흉해졌다.

그때, 갑자기 그의 귓가에 아주 스산한 살기를 담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한 번 말해볼래? 지금.....너 누굴 죽이겠다고 한 거야?"

말소리의 주인공을 본 동춘의 눈동자가 놀람으로 커졌다.

============================ 작품 후기 ============================

나가시기 전에 뭐 잊으신 거 없으신가요?

더위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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