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4 늪과 나무 그리고... =========================================================================
그녀의 비명소리가 태상의 귓가에 정확히 박혀 들어갔다. 줄기는 빠르게 빙빙을 데리고 메디노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먹이를 갖다 바치는 것과 같았다. 그의 열려진 가슴 부위가 더욱 크게 벌려지며 빙빙을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드!!”
태상이 레드를 불렀다. 자신을 잠시 서포트 해달라는 뜻이었는데, 그가 단번에 그 뜻을 이해했는지 태상을 향해 달려와 그를 노리는 줄기를 잘라내고, 태웠다. 덕분에 태상은 잠시 자유가 될 수 있었다.
태상이 바닥을 박차고 메디노를 향해 달려갔다.
메디노는 겁도 없이 자신에게 달려오는 태상을 보며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동료를 구하려고 무모하게 돌진하는 태상의 행동이 같잖았던 것이다. 전투를 할 때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고 싸우면 절대 이길 수 없었다. 때론 냉정하게 동료를 버릴 줄도 알아야 했다.
저렇게 앞에 누가 있는지도 상관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달려오는 건 잡아 먹어 달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과 같았다.
그러니 웃음이 나는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을 보는 건 메디노를 즐겁게 했다.
그는 일부러 자신에게로 달려오는 태상을 향해 줄기를 보내지 않았다. 가까이 오면 가까이 올수록 위험해지는 건 그가 아니라 태상이었기 때문이다.
태상이 빙빙의 몸을 휘감은 줄기를 향해 마나건을 쐈다.
줄기가 그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끊어져 빙빙이 바닥에 떨어졌다. 태상은 그녀의 몸을 안아 들고 벗어나려 했지만 그걸 가만히 두고 볼 메디노가 아니었다.
어느새 다가온 줄기들이 태상과 빙빙의 몸을 칭칭 감았다. 태상이 마나건으로 줄기들을 끊어보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다가 온 더 많은 줄기들이 그의 몸을 칭칭 휘감았고, 다른 줄기가 그의 손을 칭칭 감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줄기들은 둘을 함께 메디노의 쩍 벌려져 있는 입 속으로 데려갔다. 성인 남자와 성인 여자의 몸 크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도 그들을 집어 삼키는 건 거뜬해보였다.
일행들이 그들을 구해내고 싶어 했지만 너무 많은 양의 줄기들이 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가장 큰 전력인 태상과 힐러인 빙빙이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자 일행들의 얼굴에 짙은 절망감이 서렸다.
“안 돼!”
“젠장!!!”
메디노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네놈들도 모조리 먹어주마!!”
그의 가슴에 있던 입이 결국 태상과 빙빙을 삼킨 채 꽉 닫혔다. 덕분에 줄기들에게선 벗어날 수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메디노에게 공격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주, 죽은 거야?”
“이제 도대체 저놈을 무슨 수로 죽이지? 힐러까지 딸려 갔는데...!”
일행들은 점점 조금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또 다시 최악을 만났으니 도저히 싸우자고 선뜻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도망이라도 칠 수 있으면 도망치자고 할 텐데, 지금 그들은 자기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탈출구도 몰랐다.
방금 전 태상의 행동은 전투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다. 동료를 구하려다가 모든 것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정히 닫힌 메디노의 가슴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속에서 태상과 빙빙을 먹어치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메디노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의 길쭉한 혀가 입술을 훑었다.
“제법 맛이 좋구나. 너희들도 그럴까?”
메디노의 보라색 눈동자가 번쩍였다.
“어차피 도망갈 곳도 없습니다. 죽을 각오로 싸워야지만 살아 돌아갈 수 있습니다.”
레드의 말에 일행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겁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순 없었다. 이미 한 번 어이없이 죽을 뻔 했는데, 이번에도 아무 것도 못해보고 당할 순 없었다.
“해봅시다. 젠장, 이대로 죽을 순 없다고!”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공격을 해야 하죠? 저놈의 줄기 때문에 가까이 갈수도 없잖아요.”
“근거리 능력자들이 줄기를 막고, 원거리 능력자들이 저놈을 공격하는 수밖에 없어!”
반이 우왕좌왕하는 이들을 정리했다.
그의 의견을 들어 근거리 능력자들 뒤에 원거리 능력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왜 공격을 안 하지?’
능력자들이 대열을 갖추는 동안 메디노에게서 아무런 공격이 없다는 게 조금 이상해진 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악마를 주시했다.
반이 생각하기에 메디노가 그들에게 대형을 갖출 만큼의 시간을 주는 게 이해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곧장 모두를 잡아먹을 만큼 흉흉했었다. 하지만 메디노는 사실 그들을 공격할 여유가 없었다. 그건 그가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탕!
그때,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총소리가 울렸다. 메디노의 눈동자가 혼란으로 흔들렸다.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려던 그는 갑자기 털썩 무릎을 꿇었다.
더욱이 총소리는 한 번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탕!
탕!
탕!
몇 번의 총소리가 들리고, 메디노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몸, 정확히는 배부분을 손으로 더듬으며 혼란스러워했다. 몸속에서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몸이 젖혀지며 두 팔을 벌린 메디노가 괴성을 토해냈다.
“끄으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
그의 몸이 뒤로 젖혀지는 바람에 가슴이 활짝 펼쳐지자 닫혀 있던 가슴이 또 다시 가로로 찢어지며 그 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까 전에는 그곳에서 줄기들이 나와 일행을 공격했지만 지금은 두 개의 묵직한 물체가 축 늘어진 줄기들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일행은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
태상은 줄기들에게 온 몸이 묶여 끌려가면서도 그다지 다급한 얼굴이 아니었다. 아니, 다급하다기보단 신중한 얼굴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빙빙을 구하려고 메디노에게 달려간 게 아니었다.
그가 메디노에게 달려간 것은 그를 죽이기 위함이었다. 생각보다 상황은 절망적이지 않았다. 줄기들이 몸과 손을 꽁꽁 묶어 놓긴 했지만 마나건을 빼앗진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몸속으로 끌려 들어 온 태상은 빙빙을 꽉 끌어안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기절하지 않았다면 좀 더 상황이 나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기절했는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질 않고 있었다.
태상은 마나건을 절대 놓지 않기 위해 손에 힘을 꽉 쥐었다.
가슴이 쩍 벌어져서 생긴 지라 입이라고 부르기 뭐했지만 어찌됐든 그것에 먹혔으니 이곳은 놈의 몸 속이라고 봐도 될 듯싶었다. 늪에 끌려 들어갔을 때처럼 온몸을 강하게 압박하는 힘에 태상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압박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태상의 몸을 강하게 짓눌렀다.
치이이이익-
큭!
그리고 지금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걸 알리 듯, 갑자기 다른 방법으로 공격이 시작됐다. 태상의 몸에 마치 염산에 닿은 듯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줄기들이 문제였다. 그들이 닿고 있는 곳 모두가 녹고 있었다.
아마 라마스가 준 갑옷이 아니었다면 그의 몸은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말았을 것이다. 심각한 건 그가 아니라 빙빙이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도 제법 성능이 좋았는지 녹지 않고 버티고 있긴 했지만 힐러인 그녀에게 오랫동안 버티는 걸 기대하긴 힘들 듯 했다.
아니, 솔직히 지금 그도 오래 버티는 건 불가능할 듯 했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줄기들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옷이 없는 얼굴과 목 부분이 치명적이었다. 붉게 달아오르며 화상을 입는 듯 화끈거리는 통증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태상은 더 이상은 버티는 게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둘째쳐도 빙빙에겐 너무 위험한 공격이었다.
그가 일부러 줄기들에게 끌려간 이유는 무력화를 사용한다 해도 메디노에게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A등급 악마에게 무력화가 얼마나 먹힐지 모르기에 가장 확실하게 공격할 방법이 생겼을 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껴두고 쓰지 않았던 것이다.
태상이 그렇게 아껴두었던 무력화를 지금 이 순간에 사용했다.
무력화에 당한 줄기들은 태상의 힘을 버틸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을 칭칭 감싸고 있는 줄기들을 모조리 뜯어내기 위해 몸에 힘을 주자 줄기가 힘없이 뜯겨졌다.
가장 먼저 뜯긴 것은 팔과 가슴 부분이었다. 우드득 줄기들이 모두 털어낸 태상은 망설이지 않고 마나건을 이용해 사방을 향해 마구 쏘아댔다. 무력화의 시간 안에 메디노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무작정 공격하는 수밖엔 없었다.
절대 끊어지지 않게 끈질기게 그의 몸을 옥죄던 놈들이 쉽게 뜯어지긴 했지만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은 여전해서 총을 쏘는 게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한 발, 한 발이 메디노에게 무척 큰 충격을 주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탕!
총을 쏠 때마다 거칠게 주변이 흔들렸다. 놈의 몸 안에는 온통 줄기들로 가득 차 있어서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무력화 때문에 재생력이 사라진 줄기들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했다.
탕!
탕!
탕!
몇 번의 총소리가 울렸을까?
어두웠던 주변에서 갑자기 빛이 세어 나오더니 이내 몸이 어딘가로 쏠려 떨어졌다.
태상이 빙빙을 놓지 않고 있었기에 그녀의 몸도 함께 딸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보니, 밖으로 나온 모양인 듯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쿨럭! 쿨럭!”
그의 몸 주변에는 기분 나쁜 끈적끈적하고 투명한 이물질로 가득했다. 주변에 죽은 줄기들이 따라 나왔고 말이다.
태상이 살아서 나왔다는 것을 본 레드가 메디노를 향해 뛰었다. 태상이 저렇게 멀쩡하게 나왔다는 건 그가 악마에게 무력화를 사용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3분이 지나지 않았다면 지금이 바로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였다.
레드가 메디노를 향해 활활 타오르는 검을 휘두르자 일행들이 상황을 파악했다.
“공격해!!!”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다른 일행들 모두가 메디노를 향해 공격을 쏟아냈다. 태상이 무력화를 쓴 게 맞는지 정확히 알 순 없었으나 모두들 지금 이 순간이 놈을 쓰러트릴 기회라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레드의 검이 메디노의 목을 향해 움직였다.
태상의 공격으로 내부가 엉망이 되었기에 메디노는 레드의 공격을 방어할 수 없었다.
불길을 머금은 그의 검은 순식간에 메디노의 목과 몸통을 분리시켰고, 다른 이들의 공격은 몸통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한편, 버프 힐러인 찰리가 서둘러 그들에게 달려와 몸 상태를 물었다.
“괜찮으세요?”
그의 품에 물약이 가득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태상과 빙빙에게 그것을 주기 위해 온 듯 싶었다. 태상이 물약을 달라는 듯 손을 내밀자 그가 허둥지둥 말했다.
“뭘 드릴까요? 여기에 해독 포션이랑 체력 포션이랑....”
“다.”
태상이 빼앗듯 그의 손아귀에서 물약을 건네받아 뚜껑을 열고 머리에 쏟았다. 자신과 빙빙의 몸 전부에 말이다.
“으엇!”
찰리가 물약으로 세수를 하는 태상의 엄청난 행동에 경악해 소리를 질렀다. 물약병 하나의 값이 만만치 않았기에 이건 완전히 10만원짜리 수표로 똥 닦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 작품 후기 ============================
제가 월,화,수 휴가를 다녀옵니다.
해서 수요일까지 연참 없이 일일연재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ㅜ.ㅜ
선,추,코,후원쿠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