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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63화 (63/251)

00063  늪과 나무 그리고...  =========================================================================

“다른 일행들이 곧 정신 차릴 겁니다. 굳이 혼자서 하지 않아도 되요.”

태상의 말에 레드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표정에서 오기를 읽은 태상은 잠시 고민하다가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레드 혼자서 나무를 상대해 줄 수 있다면 다른 일행들이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행을 구하는 데에 시간을 쓰지 않았더라면 레드는 충분히 나무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을 때부터 능력을 사용했음에도 나무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레드다. 비록 무력화가 끝난 상황에서 회복력까지 좋은 놈을 혼자서 상대하는 게 벅찼을 뿐이었다.

다시 한 번 그에게 맡긴다면 레드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킬 것이다.

태상은 잔뜩 화가 나 괴성을 내고 있는 나무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나무는 자신을 공격한 이를 찾아 꿈틀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거리를 넉넉하게 둔 덕분에 나무는 일행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놈은 눈이 없는지 계속해서 주변만 빙빙 도는 헛손질만 계속 하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놈의 숨통을 끊어놔야 합니다. 지속시간이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태상의 무력화는 걸리면 3분의 시간동안 모든 능력을 0으로 만들어준다. 공격력도 약해지고, 방어력도 약해지며, 능력을 사용할 수도 없다. 그런 사기적인 능력에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면 태상이 이기지 못할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태상의 능력에는 단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면역력이라는 것이다.

그보다 아주 많이 약한 놈들은 무력화를 아무리 중첩해 사용한다 해도 상관이 없지만, 실력이 제법 있는 놈들은 그의 능력에 쉽게 면역력이 생기게 된다. 해서 첫 번째 무력화를 사용했을 땐 3분 동안 효과가 있지만 두 번째 사용했을 땐 몇 초나 지속 될지 알 수 없었다.

아예 걸리지 않을 수도 있고, 아주 짧게 걸렸다가 끝날 지도 몰랐다. 그건 대상의 강함에 따라 다르기에 태상도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태상은 수련동에서 자신의 무력화가 어떤 능력인지 세세하게 파헤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엔 불과 몇 초밖에 지속되지 않았던 무력화를 무려 3분 동안이나 지속시킬 수 있었던 건 태상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이 가진 약점도 알 수 있었다.

분명 처음엔 걸렸던 놈이 세 번, 네 번, 그리고 그 이상의 숫자로 넘어가자 잘 먹혀들지 않고 점점 지속되는 시간도 적어지는 이상한 현상을 겪은 태상이다. 처음엔 이게 뭘까 고민을 하다가 면역력이라는 단어가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면연력이 생기는 게 아니라면 분명 처음엔 통했던 놈이 나중엔 통하지 않게 되는 게 설명이 되질 않는다.

태상은 그제야 자신의 능력에도 약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수련동을 가지 않았다면 계속 모르는 채로 싸웠다가 나중에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뒤늦게 알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 상태로 무력화를 믿고 싸웠는지 뼈저리게 느낀 태상이다. 해서 태상은 자신의 능력을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써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이런 무력화의 단점을 알기에 태상은 결정을 신중하게 내려야 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일행들은 이곳이 어딘지, 지금 이게 다 무슨 상황인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저들을 정신 차리게 해서 싸우려면 아마 시간이 꽤 걸릴 게 분명하다.

레드가 나무와의 전투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니고, 거의 죽일 뻔 했다가 재생력에 밀려 아깝게 죽이지 못한 거였으니 태상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레드를 한 번 믿어 보기로 한 것이다.

태상이 레드와 함께 성이 난 나무를 향해 다가갔다. 나무는 자신의 몸을 고치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아직도 한쪽에는 레드의 능력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길이 존재했다.

태상이 신호를 보내길 기다리며 레드가 자신의 검을 꽉 쥐었다. 태상이 감각을 통해 나무 전체에 능력을 사용했다. 꿈틀거리며 재생하던 나뭇가지의 움직임이 순간 정지화면처럼 멈춘 순간, 태상이 레드에게 말했다.

“지금입니다!!”

레드가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그의 검에는 벌써 활활 타오르는 화염이 나무를 다시 한 번 잡아먹기 위해 타오르고 있었다. 나뭇가지들은 레드가 가까이 접근하자 그제야 기척을 눈치 챘는지 방향을 바꿔 레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몸을 붙잡으려 하는 나뭇가지들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쏟아졌다. 하지만 태상의 마나건이 레드의 몸을 옥죄려는 나뭇가지들을 터트려 보조하고 있었기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태상의 보조를 받은 레드는 타오르는 불의 검으로 나무를 사정없이 파괴시키기 시작했다.

퍼엉!!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일행들은 갑자기 들려오는 불길과 폭발음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들은 전투를 하고 있는 태상과 레드를 보고 놀라 힘없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지금 이렇게 널브러져 있을 게 아니라 저 전투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일단 돕자고!”

반이 외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두 힐러, 빙빙과 찰리에게 버프와 힐을 받은 일행들이 몸을 움직였다. 태상의 말 때문에 무리하게 움직였던 지라 체력이 모두 회복 된 다른 일행과는 달리 빙빙의 안색은 창백했다.

반이 빙빙에게 말했다.

“수고했다. 쉬고 있어라.”

빙빙이 고개를 끄덕이자 반과 일행들이 나무를 공격하는 것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굳이 오지 않았어도 나무는 레드의 강력한 공격에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나무의 고통 섞인 비명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하지만 레드는 자비 없이 계속해서 나무를 공격하고 공격했다. 더 이상 움직일 나뭇가지가 없을 때까지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일행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들었던 나이트 레드의 말들이 과히 거짓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신이 좀 드셨나보네.”

다니엘이 활을 들어 나무를 향해 공격하는 것을 본 태상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

다니엘은 그의 말에도 입을 꾹 닫고 공격에 집중했다.

불길이 워낙 강해서 근거리에서 공격하는 이들은 선뜻 나설 수 없었고,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이들만 나무를 향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공격을 퍼부었다.

그중 단연 다니엘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말이다. 그가 활을 한 번 쏠 때마다 펑! 펑! 하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어떻게 된 거냐?”

캠프파이어도 아닌데 거세게 타오르는 나무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화염에 모두 잡아 먹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상황이 좀 정리 되는 것 같아 보이자 반이 태상에게 물었다. 레드는 나무를 죽인 것에 만족스러운지 흡족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늪에 끌려들어갔어. 정신을 잃기 전에 능력을 썼더니 갑자기 몸이 쑥 빠지더라고. 몸을 압박하던 힘도 사라지고 말이야. 정신 챙기고 주변을 보니까 다들 저 나무한테 꽁꽁 싸매져서 기절해 있더라고. 다들 나무한테 먹히기 일보 직전이라 급하게 구하고 놈을 죽이고 있었지.”

다들 궁금한 눈치이자 태상이 짤막하게 핵심만 요약해서 그들에게 말했다.

“나무한테 먹힐 뻔 했다고?”

“나무가 어떻게 사람을 먹어?”

“상상 그 이상이죠. 아마 저 나무가 사람들을 먹어서 메디노한테 기운을 전달해주고 있었을 겁니다. 영약 공급해주던 놈이 죽었으니 아마 지금쯤 메디노도 우리의 존재를 알았겠죠.”

태상이 메디노를 언급하자 계약자들 사이에서 긴장이 돌았다.

“아직 나타난 건 아닌 거죠?”

이렇게 준비 하나 없이 악마 메디노를 만나는 건 가장 최악의 상황이 되는 거다. 어쩌면 공격 한 번도 제대로 못해보고 곧장 전멸 당해버릴지도 몰랐다.

“아직은 그렇긴 한데, 아마 곧...”

콰아아아앙!!!!!!

“........”

태상은 말을 멈추고 갑자기 폭발이 일어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활활 타오르던 나무의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뿌옇고 검은 연기만 남아 있었다.

절대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이 타오르던 불길들이었기에 그런 이상한 현상에 다들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행들이 각자 자신의 무기를 꽉 쥐고, 검은 연기를 내뿜는 곳을 향해 겨눴다.

다른 일행들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데에 비해, 태상은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연기를 헤치고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누군가를 주시했다.

“누구냐?”

다들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데, 태상이 입을 열었다.

연기를 뚫고 나오는 이의 몸집이 컸다. 라마스와 비슷한 몸집을 하고 있었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는 뿔과 어깨 쪽에서 휘날리는 붉은 망토는 놈이 악마임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알면서도 누구인지 물었던 태상은 양 옆에 달려 있는 검은 색 날개를 주시했다. 날개가 활짝 펼쳐져 펄럭이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접혀 망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내 귀여운 애완동물을 죽인 놈들이 네놈들이냐?”

전신 갑옷을 걸친 악마가 입을 열었다. 그의 눈동자는 보랏빛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태상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똑같은 A등급인데, 라마스는 왜 저런 포스가 없지?’

악마들은 생김새부터 먹혀 들어가는데, 천사들은 하나같이 다들 여리여리하게 생겨서 태상의 마음을 탐탁지 않게 만들었다.

태상의 시선이 그의 몸을 따라 내려가다가 손 부분에서 멈췄다. 그의 손아귀에서 뚝뚝 피가 떨어지는 날개가 보였다. 저 날개는 태상에게 아주 익숙했다. 바로 천사들이 등 뒤에 달고 다니는 날개인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잠시 잊혀졌던 C등급 천사들이 떠올랐다.

“그 날개는....”

“아아~ 성가신 새 세 마리가 돌아다니기에 사냥하느라 잠깐 신경을 못 썼을 뿐인데, 그 사이 애지중지 키워 온 애완동물이 사냥 당하고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나.”

악마는 손에 들려 있는 천사의 날개를 바닥에 내팽겨 쳤다.

강제적으로 뜯겼는지 날개 살점들이 너덜너덜했다. 정확히 3마리라고 칭했으니 C등급 천사가 모두 놈에게 죽임을 당한 모양이었다. 죽은 건 아쉽지만, 어찌됐든 그들은 자신의 몫을 충분히 했음은 알 수 있었다.

만약 나무를 죽이기 전에 메디노가 도착했다면 상대하기가 배는 까다로워졌었을 것이다.

태상은 처음 만나는 A등급 악마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동안 만난 악마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눈앞에 두고 나니 알 것 같았다. 아직은 태상의 수준이 A등급 악마에는 밀리고 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의 몸이 경직되어 누가 봐도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태상은 천사와 계약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초보자다. 그동안 C등급 악마 한 명을 만나 본 게 전부인데, 갑자기 C등급에서 A등급 악마로 올라가니 당연히 압박감이 더욱 심할 수밖에 없었다.

“긴장 풀어라. 계획대로만 하면 된다.”

반이 그런 태상의 긴장을 풀어주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태상은 움찔 몸을 떨다가 이내 깊게 심호흡을 했다.

메디노는 일행이 20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잔뜩 방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그의 방심을 이용해 목숨을 노려야 한다. 비록 생각과는 달리 일행 모두의 상태가 최고는 아니었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고작 너희들이 어떻게 수낙을 죽일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날 성가시게 한 대가는 치러야 할 거다. 물론....대가는 네놈들의 목숨이고 말이야!!”

메디노의 주변에 넘실거리는 검은 기운들이 일행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태상은 뒤로 물러나며 그와 거리를 벌렸다.

“크윽...!!”

“모조리 나의 기운이 되어라!!!!”

기괴하게도 그의 가슴부분이 가로로 길게 찢어지더니 입을 벌리 듯 벌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길쭉한 검은색 줄기들이 빠른 속도로 일행을 덮쳐왔다.

일행과 태상은 정신없이 메디노의 공격을 피해야 했다. 마나건으로 줄기를 터트렸음에도 줄기는 빠르게 재생해서 다시 그를 노리고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때, 빙빙이 결국 몸을 피하지 못하고 줄기에 몸이 칭칭 감겼다.

“꺄아아악!!”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쌈박한 제목으로 바꾸라고 하시는데...

제목을......바꾸고싶어도 못 바꿔요....페스티벌 때문에.....(크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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