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1 늪과 나무 그리고... =========================================================================
‘그래, 어차피 A등급 악마잖아.’
이 미션이 s등급으로 측정된 것은 인원이 20명, 소수라는 점과 앞에 선행 되었던 악마 계약자들의 음모를 저지하는 것이 합쳐져서이다.
반이 미션에 갈 일행을 구할 때, 모두 A등급 악마는 2~3번 이상은 경험해본 자들로 구성했기 때문에 태상의 말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물론 그들이 잡을 땐 무수히 많은 계약자들이 옆에 있긴 했지만 지금 구성 된 인원이 일당 백이니 믿어 보잔 생각이 들었다.
예전 A등급 악마를 죽일 땐 양이 많았고, 지금은 질이 높았다.
“오래 시간 끌지 말죠.”
태상이 누가 말리기도 전에 늪지대에 발을 올렸다.
돌아서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들의 앞에는 늪밖엔 없었다. 단순히 찝찝하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멀뚱히 서 있을 수도 없고, 또 미션 자체를 아예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태상은 먼저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군중 심리는 무섭다. 태상이 먼저 발을 올리자 꺼려하던 이들 모두가 표정을 구기긴 했어도 늪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먼저 한 발자국 들어가고나서, 그 뒤를 반과 사로나가 뒤따랐다. 나이트 레드는 마지막에 움직이며 일행을 보호했고 말이다. 중간에 낑기게 된 나머지 일행은 결국 반대니 뭐니 해볼 겨를도 없이 다수의 의견을 따라 늪지대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도 거진 들어가는 쪽으로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기에 못 이기는 척 들어간 것이기도 했다.
발이 푹푹 빠지기에 일행의 걷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진흙이 일행의 발을 놓고 쉬이 놔주려 하지 않았다. 도시 생활을 즐겼던 태상인지라 푹푹 빠지는 늪은 그도 처음이었다. 때문에 그는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입술을 꽉 깨물고 걸었다.
일행 중 유일하게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들은 천사밖에 없었다. 날개를 이용해 땅에서 1M정도 떨어진 상태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태상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덥지?”
“그러게. 갑자기 푹푹 찌네. 꽤 들어 온 것 같은데 여전히 늪밖에 없고 말이야.”
반이 태상의 말을 받아 말했다.
태상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천사들을 불렀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해?”
“알 수 없습니다. 온통 사방에 놈의 기운이 가득 차 있어서 어느 한 곳에 메디노가 있다고 설명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저희는 이곳 전체가 메디노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태상은 시원찮은 천사들의 대답에 잠시 까마득해져 자리에서 멈췄다.
“결국 이대로 계속 쭉 가도 메디노를 발견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단 소린 거지?”
“네.”
태상은 이대로 계속 체력을 소비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주변을 살피며 뒤쳐진 일행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더불어 생각 좀 하고 말이다. 앞서 걸을 땐 몰랐는데, 일렬로 오던 줄 중간부분에서 뚝 끊어져 있었다.
“이대로 계속 움직이는 게 맞는 것 같아?”
태상이 반과 사로나에게 물었다. 둘 모두 막막하게 계속 체력을 빼느니 무언가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게 좋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사로나가 잠시 생각하다가 의견을 제시했다.
“천사들한테 정찰을 해보라고 시키는 게 어떨까?”
“아! 그거 좋네. 어차피 쟤네들은 날아다녀서 속도가 빠르잖아.”
진즉 그럴 걸 그랬다며 반이 좋아했다.
천사들은 태상이 시키지 않는 한 그 무엇도 먼저 하는 법이 없었다. 그가 시키는 것을 최선을 다해 하는 건 좋지만 자율성은 떨어지는 편이었다. 태상이 천사들을 불러 사로나가 말한 것을 그대로 전했다.
“알겠습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천사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날개를 펄럭여 하늘 위로 올라갔다. 세 명의 천사가 동시에 움직였던 지라 그들은 방향을 정해 주변을 정찰하러 사라졌다. 그 사이 뒤쳐졌던 일행의 줄이 이어졌고, 일행 모두가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됐다.
물론 쉰다고 완전히 편하게 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방은 푹푹 발이 빠지는 늪밖에 없었기에 앉아서 쉬는 건 꿈도 못 꿨다. 그저 정승같이 서서 흐르는 땀을 닦아내는 게 전부였다.
“물이라도 가져올걸 그랬어.... 여기서 갈증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는데.”
늘 전투 후에는 천사들에게 상처치유를 받던 그들인지라 이런 식의 체력 저하는 오랜만에 느끼는 거였다.
“이런 게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나.”
일행들의 투덜거림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그렇게 서로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며 땀을 식히던 일행 중 한 명이 갑자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곤 자신과 얘기를 나누던 상대 일행의 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근데 발이 좀 심하게 빠진 것 같다. 어떻게 빠져 나오려고 그러냐?”
“엉?”
계속 한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에 발이 깊이 빠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그는 아차 하며 자신의 발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에게 지적한 남자의 발을 본 순간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인마, 너도 마찬가지잖아. 허벅지에 닿겠다 닿겠어. 너 키가 이렇게 작았냐?”
“헉! 언제 이렇게 깊게 빠진 거야?”
그제야 자신의 발을 발견한 남자는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당연히 문제없이 빠질 거란 생각을 했다. 해서 서로의 발이 깊게 빠진 것을 깨닫고도 그리 다급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이서 아무리 낑낑 대봐도 오히려 더 깊게 빠질 뿐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웃음기가 메말라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둘은 다른 일행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누가 여기 좀 도와줘!”
“발이 깊게 빠져서 나오질 않아!”
양 손으로 한 쪽 다리를 빼보려 낑낑 댔으나 꿈쩍도 하질 않았다. 그들은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관심 가져주지 않자 화가 나 버럭 소리를 지르며 주변을 살폈다.
“아이씨! 여기 누가 좀 도와달...!?”
버럭 소리를 지르던 남자는 깨달았다. 지금 자신들의 문제가 둘만의 문제가 아님을 말이다. 다들 자신의 빠진 다리를 부여잡고 기어 나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전부 다 빠진 거야?”
그가 얼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지금 모두가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분명 발목 위까지만 차 있던 늪이 점점 그들의 발을 잡고 아래로,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늪이 이렇게까지 깊은 줄은 다들 몰랐던 것이다.
계약자들의 힘을 일반인의 힘과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더욱이 근거리 능력자들은 힘과 체력, 민첩이 일반인보다 몇 배는 더 강했다. 그런데도 늪 하나에 빠져 다들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늪은 더 탐욕스럽게 그들의 몸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가장 먼저 희생 될 사람은 바로 나이트 레드였다. 그의 몸이 진행속도가 가장 빨랐다. 늪은 나이트 레드의 가슴 언저리에서 그를 빨아 당기고 있었다.
“으아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늪은 일행 모두를 빠르게 끌어당겼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건 태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분명하게 다른 점이 있긴 했는데, 바로 그가 정신을 아주 똑바로 차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들 당황으로 일그러져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태상은 이 수상한 늪을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반, 사로나. 진정하고 내 말 들을 수 있겠어?”
늪은 발버둥을 많이 치면 칠수록 더 빠르게 당긴다. 그러니 최대한 늪에 몸을 맡기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었다. 반과 사로나도 다른 일행처럼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던 지라 태상의 말을 쉬이 귀에 담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재차 그들을 부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발버둥 치던 것을 멈추고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이거 되게 구리거든? 이 늪, 천사들이 말했던 것처럼 일반 늪이 아닌 것 같아. 지금 여기가 인간계도 아닌데 늪 하나에 빠져서 못 나온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후우.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 근데, 이게 악마가 부린 수작이라는 걸 안다 해도 나갈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천사들은 왜 안 돌아 오는 거지?”
만약 천사들이 온다면 그들이 구해줄 수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걸고 있는 사로나였다. 하지만 천사들이라 해도 이미 허리선을 넘어 늪에 빠진 그들을 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더욱이 이 늪은 보통 늪이 아니지 않은가.
“안 돼!!”
그때, 나이트 레드의 몸이 기어코 늪에 모두 빠지고 말았다. 일행들이 믿고 의지하는, 그리고 가장 강한 데미지를 줄 거라 예상했던 나이트 레드가 그렇게 허무하게 늪에 빠져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일행들의 얼굴에 급속도로 절망감이 깃들었다. 늪에 들어가기 불안 불안하다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곳에 들어가자고 일행을 선동한 태상이 원망스러웠다.
나이트 레드를 시작으로 일행들이 한 명씩 늪 속으로 사라졌다.
태상은 모든 감각을 총 동원해 이런 짓을 저지르는 대상을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주변에 있는 거라곤 늪뿐인데, 그곳에 무력화를 써본들 효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런 짓을 저지른 악마가 그들의 앞에 있었다면 그에게 무력화를 사용해 이런 수작을 막아보기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악마가 없는 지금, 태상의 능력은 불필요했다.
차분하게 발버둥치지 않아 다른 이들보다 시간을 최대한 끌었다 해도, 태상의 몸은 어느덧 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사로나와 반도 모두 이미 늪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목 부분에 있던 늪이 점점 얼굴로 향하자 태상은 고개를 하늘 위로 들었다.
그리고 그때, 저 멀리 하늘 위에서 반짝이며 다가오는 물체가 보였다. 그가 정찰을 보냈던 천사들이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미 손까지도 모두 잠겨 있었던 터라 그들에게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조금만...더 빨리!!!
비록 그들이 와도 별 뾰족한 수는 없어보였지만 태상에겐 그들이 마지막 희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태상의 바람은 끝내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그의 몸이 결국 늪에 모두 먹혀 버리고 만 것이다.
태상은 눈을 꽉 감았다.
사방에서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미 늪 속으로 깊게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론가 계속해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몸을 짓누르는 어마어마한 무게 때문에 손가락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신이 아득해져 갔지만 태상은 정신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말이다.
그는 마지막 희망을 담아 감각을 활짝 열어 사방으로 자신의 능력을 퍼트려갔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몸이 쑤욱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쿵!
무언가에 부딪힌 태상은 자신의 몸을 짓누르던 무언가로부터 해방됐다.
“허어억...!! 쿨럭, 쿨럭! 헉....헉.....”
덕분에 아득해졌던 정신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눈을 뻔쩍 뜬 태상은, 뭐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의 몸 이곳저곳에 생채기가 나 있긴 했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한 곳은 없었다. 몸이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한 태상은 침을 꿀꺽 삼키고 주변을 살폈다.
무슨 상황인지 알아야 했다. 분명 그는 늪에 빠져 정신을 잃어간 것인데, 지금 그가 있는 곳이 황당하게도 대리석바닥으로 만들어진 어떤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가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눈에 담은 순간, 잠시 입을 벌리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거대한 나무였다.
그런데, 나무가 맞긴 한 건지 솔직히 의심이 들었다. 나무의 색이 기괴했기 때문이다. 나무가 온통 검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그 빨간 게 사람의 피를 뒤집어 쓴 것 같아 보여 보고만 있어도 절로 소름 돋게 했다.
그리고 나무에 열린 게 열매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태상이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고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은 모두 태상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자신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던 일행들 말이다.
물론 그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을 잃은 것인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우거진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나무 아래에는 사람들이 입었을 것으로 보이는 옷가지들이 쌓여 있었다. 모두 계약자들이 입었던 장비가 분명했다.
주변에 뼈나 살이 보이지 않는 점으로 보아 분명 저 나무가 그들에게 무언가 수를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 작품 후기 ============================
너무 덥네요. 다들 더위 조심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