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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60화 (60/251)

00060  늪과 나무 그리고...  =========================================================================

서걱!

컥!

끄아아악!

탕! 탕탕탕! 탕!

무력화의 효과는 컸다. 이미 자신의 능력이 써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겁을 먹은 악마 계약자들은 도망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공격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3분이 지났음에도 말이다. 몇 명만이 도망치느라 자신도 모르게 능력을 사용했다.

능력이 다시 써진다는 것을 아는 것과 동시에 죽어버려 그 이상의 행동은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들 모두를 제압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 죽인 건가?”

얼굴이며 옷이며 피가 튀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많은 인원을 죽여야 했기에 피가 튀는 걸 신경 쓰지 못한 것이다. 일행들이 두리번거리며 혹여 있을 생존자를 찾아 다녔다.

많은 이들을 죽였으나 큰 부상을 입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완벽한 대승이었다.

“쥐새끼가 남아 있는지 확인 좀 해주겠어?”

태상이 천사들에게 말하자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하늘 위로 높이 올라갔다.

기어코 천사가 숨어 있던 쥐새끼 한 명을 발견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천사가 죽이려는 것을 막고 악마 계약자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고 일행에게로 왔다. 악마 계약자는 그가 앞으로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 건지 잘 알았지만 차마 혀까지 깨물진 못했다.

죽을 용기가 없어서였고, 삶에 대한 열망을 쉬이 포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아악! 살려주세요..흐흐흑...흑...살..려..흑...흑...주세요 제발.....”

악마 계약자는 부득이하게도 여자였다. 모습이 비교적 멀쩡한 것으로 보아 전투를 할 때 몸을 숨기고 있었던 듯 했다.

여자라는 사실에 일행 남자들이 입맛을 다셨다. 그가 왜 곧장 죽이지 않고 끌고 오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악마 계약자들도, 천사 계약자들도 여자 포로는 대부분 성노리개로 쓰다가 죽인다. 아무래도 여자가 젊은 아가씨라는 점이 그들을 동하게 하는 모양이었다.

사로나가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을 찌푸린 후 외면하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비록 함께 하는 일행이긴 하지만 저런 눈동자를 하는 남자들을 볼 때마다 혐오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일행은 힐끗거리며 태상을 바라봤다. 악마 계약자를 질질 끌고 온 남자는 그녀를 태상의 앞에 무릎 꿇렸다.

태상은 자신의 앞에 쓰러진 여자를 쳐다보다가 물었다.

“뭐하러 끌고 왔어요?”

“여자 계약자라서요.”

“여자 계약자가 뭐요?”

태상이 영알아 듣는 눈치가 아니자 남자가 당황했다. 눈동자가 흔들리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물거렸다.

“어...그러니까...”

반이 상황을 눈치 채고 태상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여자들이 있었기에 대놓고 얘기하면서 알려주기엔 뭐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원래 악마 계약자들 중에 여자가 남으면 좀 놀다가 죽이거든. 네가 파티 리더니까 먼저 하라고 데려 온 거다.”

태상이 그의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딱 보니 악마 계약자들이 혜연에게 한 짓처럼 그들도 악마 계약자인 저 여자에게 똑같은 짓을 하려는 듯 했다. 태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나보고 여기에서 그 짓을 하라고?”

이런 위생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그게 설 수 있나?

주변이 온통 비릿한 피냄새로 가득했다.

더욱이 환경도 환경이지만 떳떳하게 자기 여자랑 하면 될 걸 왜 싫다는 여자를 데리고 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밖에 널린 게 여자인데 말이다. 여자를 겁탈하고 죽이는 짓은 뉴스에서 나오는 성범죄자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짓을 하겠다고 줄 서 있는 게 아닌가.

“자기 여자 내버려두고 겁탈을 왜 해? 변태도 아니고.”

“여기선 원래 다 그래. 단순히 성욕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복수 차원인 거다. 가족같은 동료를 죽이고, 함께하던 친구를 죽인 놈들이 바로 저놈들이니까.”

“........”

복수차원이라고 하니 태상은 더 이상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반과 대화를 하는 것이 주변에 있던 일행에게 모두 들렸기에 그들은 괜스레 멋쩍어 헛기침을 했다. 태상이 만약 어중이떠중인데도 저런 말을 했으면 남자들이 오히려 역으로 순진하다 뭐다 하면서 반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태상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으며, 나이트 레드보다 훨씬 강한 사람일지도 몰랐다.

지금도 그가 활약해준 덕분에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미션을 부상자 한 명 없이 성공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는 거였다.

그 때문인지 일행들 사이에서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태상은 힐끗 여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바라봤다.

언제 저렇게 모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안나와 사로나 그리고 빙빙이 뒤쪽에서 자기네들끼리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여자를 데리고 뭘 하겠다는 건지 아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애써 신경 안 쓰고자 일행과 조금 떨어진 곳에 모여 있었다.

불쾌해 하고 있긴 해도 저렇게 떨어진 곳에 모여 있다는 것 자체가 저들도 묵인한다는 뜻이었다. 이곳에선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으나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는 건 알겠는데 자신의 앞에서 그 짓을 하는 꼴을 보고 싶진 않았다.

“제가 잘못 생각했네요. 하하, 이런 거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그냥 처리하죠.”

그녀를 데려 온 남자는 속으로 조금 투덜거리긴 했지만 태상에게 그렇게 말했다. 일부러 태상을 생각해서 건드리지도 않고 데려 온 건데, 괜한 짓을 한 듯싶었다. 그냥 혼자 즐기고 죽인 뒤 돌아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남자의 말에 태상이 손에 쥐어져 있는 마나건을 들어 여자의 미간에 총을 쏘았다.

탕!

탄환은 매정하게도 여자의 이마에 정확히 박혀 들어갔다. 여자는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듯 손을 들어 이마에서 느껴지는 이물질을 매만졌다. 그러다가 이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태상이 마나건을 내리고 허리춤에 있는 총걸이에 넣으며 말했다.

“왜 하는지도 알겠고, 다들 묵인하는 거라는 건 알겠는데, 지금은 저런 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잖아요? 미션 끝난 거 아닙니다. 더 큰 산인 A등급 악마가 남아 있어요. 성욕인지 복수인지 그런 건 모르겠고, 나중에 각자 알아서 해결하는 걸로 합시다. 지금은 A등급 악마에 집중하자고요.”

태상의 말에 다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은 고생한다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태상처럼 도덕과 비틀린 이곳 상황에 혼란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행동이 역겹고 더럽다며 그들을 경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도 이미 악마 계약자들을 죄책감 없이 죽이고 있으면서 말이다.

새삼스레 그런 혼란을 겪는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냥 깔끔하게 목숨을 죽이는 사람이 보기엔, 누군가를 성적으로 괴롭히고 조롱하다가 죽이는 게 더럽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은 이곳에 점점 적응해가는 과정이었다.

빙빙과 또 다른 힐러, 찰리에게 힐과 버프를 다시 한 번 받은 일행은 메디노가 숨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이기로 했다. 날개 한쪽을 다쳤던 천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서서 태상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상은 살아 있는 천사들의 든든한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악마가 숨어 있는 곳으로 가자.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거지?”

C등급 천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를 따라오십시오. 그 자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천사가 앞장을 서서 걸었다. 일행은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천사들이 멈춰선 곳 앞엔 늪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방금 전만 해도 평평하고 마른 땅이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바로 앞은 광활한 늪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저곳이 메디노가 숨어 있는 곳입니다.”

C등급 천사가 늪지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냥 늪밖에 없는데 악마가 어디에 있다는 거야?”

“저 늪을 지나가야 되는 건가?”

일행이 수군거리며 말했다. 그때, 태상은 천사들이 자기네끼리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옆에서 대화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천계에 접속하면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 사람도,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모두 무리 없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떠들고 있었다.

태상은 그것이 천사들의 언어임을 깨닫고 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뭔가 알아 낸 거라도 있어?”

태상의 물음에 천사 한 명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했다.

“메디노의 기척이 이곳 늪 전체에서 느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늪지대 전체가 악마일 수도 있습니다.”

“뭐가 악마라고?”

“늪지대 입니다.”

“이게?!”

태상이 늪지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천사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늪지대는 끝이 보이지 않게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그 늪이 악마란다.

이곳에서 A등급 악마를 잡아 본 적 없는 사람은 태상뿐이었다.

태상이 반과 일행들에게 원래 A등급 악마는 이런 거냐는 식의 눈빛으로 바라보자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들도 천사가 뭐라 하는지 주시하며 듣고 있었기에 똑똑히 들었다. 늪이 악마라고 하는 것을 말이다.

“지금 우리보고 늪이랑 싸우라는 거요?”

“악마 놈들이 대체적으로 몸집이 크긴 한데 이건 진짜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말이 돼? 늪이 악마라고 하면, 도대체 어딜 공격해야 놈이 죽는 건데?”

일행이 천사들에게 항의를 했다. 하지만 천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희도 모릅니다. 늪 전체에서 악마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기에 그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더 이상은 알지 못합니다.”

“.......”

천사들의 괜한 말 때문에 일행들 전체가 선뜻 늪을 밟을 수가 없어졌다. 만약 자신들이 늪지대를 걸어 들어갔다가 악마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거면 어떡하는가.

차라리 듣지 않았다면 모를까, 듣고서도 태연하게 늪을 밟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일행은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발목이 묶이고 말았다.

천사들의 말을 무시하기엔 꺼림칙했고, 그들의 말을 믿기엔 더욱 뾰족한 수가 나질 않았다. 계약자들이 천사들처럼 하늘을 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저 늪을 지나지 않으면 어차피 해결 방법은 없잖아요. 돌아서 갈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아무 것도 안 하고 돌아 갈 건가요?”

태상이 결국 참지 못하고 머뭇대는 일행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일행 중 누구도 태상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의 시선을 마주해주는 이는 반뿐이었다. 그는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눈을 마주치긴 했지만 그의 표정에서도 난감함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제일 앞서서 이동하겠습니다. 위험하면 무력화 쓰면 되는 거 아닙니까?”

“........”

그도 당연히 위험하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이대로 허무하게 돌아가는 건 더 싫었다.

그때, 반이 더 이상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는지 박수를 치며 엉덩이를 걸치고 있었던 바위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짝!

“그래, 맞아. 무력화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계집애들처럼 다들 몸 좀 그만 사려! 다들 죽는 거 각오하고 온 거 아니야?”

반이 태상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형님....”

“쓰읍! 그 나이 먹고 어린놈한테 용기 좀 내라는 소리 듣고 있기 부끄럽지도 않아? 다들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거야? 엉? 방금 전에 봤잖아! 그 많던 악마 계약자 놈들 죽이는 데 다친 놈 있어? 너 다친데 있어?”

반이 한 명, 한 명씩 손가락질로 가리키며 물었다.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반이 거 보라며 더욱 큰 목소리로 말했다.

“거봐, 없잖아! 근데 뭐가 그렇게 무섭다는 거야? 우리한텐 나이트 레드도 있다고!”

일행의 머릿속에서 방금 전에 있었던 무력화의 힘이 스쳐 지나갔다. 잠자코 있던 나이트 레드도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가만히 있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난 갈 겁니다. 늪지대 전체가 악마 일리 없어요. 아니, 오히려 몸체가 이렇게 크면 더 좋겠네요. 아무데나 공격해도 놈이 맞는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그렇네?’

사람들의 귀가 쫑긋거렸다.

"지금 S등급이라고 다들 너무 겁 먹고 계시는데, 악마는 A등급입니다. 다들 A등급 악마 상대해 보셨잖아요."

정작 그런 말을 하는 태상만 A등급 악마를 상대해보지 않았다는 진실은 저 너머로 넘어가버리고, 태상의 말을 들은 그들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나이트레드, 태상, 반까지 일행들의 핵심 멤버가 다들 가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설득을 하니 나머지 일행들의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여자들까지도 가겠다는 의미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 있었다.

태상의 무력화도 있고, 강한 데미지를 자랑하는 나이트 레드까지 붙어 있는 파티에서 뭐가 무섭다고 피해야 하는가. 그 어떤 미션 때보다도 든든한 동료가 있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앞서 말했다시피 S등급 미션이다. 보상이 얼마나 좋을지 다들 알기에 위험을 무릎 쓰고 온 거였다. 이대로 포기하면 S등급 보상을 포기해야 했다. 눈앞에 보물 상자가 있는데, 그걸 열어보지 못하고 돌아가라고 하면 다들 싫다고 고개를 저을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을 몰아내고 탐욕이 그들의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무섭다고 돌아갈 순 없지!”

누군가가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말은 다른 일행들의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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