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7 수련동 =========================================================================
쿵.
쿵.
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로 보아 놈의 덩치가 제법 될 듯 싶어보였다.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태상은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무력화를 사용하려 했다.
‘아차!’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태상은 시야를 이용해 사용할 대상을 정하고서야 능력이 써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야가 완전히 차단 된 상황.
고로 그는 능력을 사용할 수가 없어진다는 뜻이었다. 당황한 태상이 머뭇대고 있을 무렵, 놈이 가만히 있지 않고 태상을 노리며 달려왔다.
크워어어어어!!
미처 피하지 못한 태상의 등에 강한 충격이 가해지고,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과 동시에 몸이 멀리 나가 떨어져 벽에 부딪혔다.
“크으윽...!”
벽에 부딪힌 뒤 바닥에 또 다시 몸을 부딪 혔기에 태상은 세상이 빙글 한 바퀴 도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온 몸의 뼈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태상은 정신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건 그의 생존 본능과도 같았다. 그가 아파서 주춤거리고 있을 때, 놈은 태상을 노리고 또 다시 공격을 해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행이 부러지거나 하는 곳은 없는 듯 했다. 몸을 움직이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걸 보니 말이다. 아마 이렇게 멀쩡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라마스가 준 갑옷 덕분일 것이다.
물론 태상은 그걸 생각하기도 전에 묵직한 몸으로 달려오는 몬스터를 느끼고 왼쪽 방향으로 몸을 굴렸다. 쿵!! 하며 땅이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아마 태상이 있었던 자리에서 난 소리일 것이다.
태상은 이를 악물고 최대한 소리에 집중했다. 눈을 떠봐도 여전히 어둠만 짙게 내려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나아진 것은 태상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희미하긴 하지만 몬스터로 보이는 물체가 좀 더 짙은 어둠을 끼고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놈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능력을 사용하는 데엔 충분했다.
태상은 망설이지 않고 놈을 향해 무력화를 사용했다.
자신의 능력, 체력, 방어, 힘 모두가 잠시 동안 0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알지 못한 놈은 태상을 죽이기 위해 눈을 번쩍였다. 이번엔 태상도 놈을 피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진 놈이 태상을 노리는 사냥개였다면, 지금은 그 위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탕탕!! 탕탕탕!! 탕탕!!
놈은 마나건의 공격력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
잘 보이지 않아 확인할 순 없으나 아마 놈의 몸이 태상의 마나건으로 인해 벌집이 되었을 것이다. 태상은 자신의 총알이 모두 놈의 몸에 꽂혔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보여주듯 묵직한 놈의 몸이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만약 갑작스러운 어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시간을 끌면서 다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가 태상을 당황스럽게 했기에 놈한테 애를 먹은 거였다.
몬스터가 죽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야명주의 빛이 다시 되돌아왔다. 주변이 환해지면서 태상은 온 몸에 흙이 묻은 상태로 서 있는 자신의 꼴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몬스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시선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몬스터의 생김새를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몬스터 시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투 흔적조차도 없었다.
그가 쏜 마나건의 흔적조차도 말이다.
태상이 몬스터를 쓰러트린 순간, 수련동이 모두 다 정상으로 되돌려 놓은 듯 했다. 태상은 어찌됐든 이곳에 더 이상 괴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전히 가슴에 야릿한 통증이 남아 있었다. 고작 눈 하나 잃은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꼴사납게 당하다니, 황당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태상은 자신의 엉망인 꼴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런 식이라 이거지?”
태상의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었다.
“재밌네.”
왜 이곳이 수련동이란 이름이 지어졌는지도 알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수련을 받게 되면 분명 죽을 확률도 높긴 하겠지만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방금 전에 태상이 별로 강하지 않은 놈한테 애를 먹은 건 100% 경험 부족에서 나온 거였다.
수련동은 태상이 부족한 경험과 실력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방금 전만 해도 자신에게 뭐가 부족한지, 어떤 부분을 연습해야 하는지 몰랐던 태상에게 눈에만 의존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지 않았는가.
더불어 무력화의 약점도 알아냈다.
반드시 눈으로만 대상을 지정해야 사용할 수 있는 무력화. 그 약점을 없앨 수 있다면 태상은 미션에서도 훨씬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눈을 통해서가 아닌 감각을 통해 무력화를 사용할 수 있을 수 있을까?
태상은 온 몸이 흙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심각하게 계속해서 생각했다. 이리도 생각해보고, 저리도 생각해봤다. 집중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주변에서 알짱대며 건드리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태상은 이미 한 번 무력화를 사용하는 것을 하나의 대상에서 범위를 넓혀 사용할 수 있게 변형시킨 전적이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을 가졌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겠는가.
태상은 그렇게 점점 수련동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라마스의 말처럼 이곳을 수료하게 되면 예전의 자신보다 훨씬 강해진 자신을 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
“큭!”
태상이 몸을 뒤로 살짝 빼자 그 사이를 날카로운 단검이 스쳐갔다. 그는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몸을 180도로 빙글 돌렸다. 그러자 그의 옆구리를 노리는 단검이 예기를 내뿜으며 아슬아슬하게 그의 몸을 지나갔다. 태상이 발로 놈의 머리통을 차버리자 놈이 꽥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물론, 태상은 놈이 소리를 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탕! 탕!
태상은 쓰러진 놈을 향해 망설이지 않고 마나건을 쐈다. 그러자 놈이 꿈틀거리다가 이내 숨을 거뒀다. 저놈이 죽었다고 방심은 금물이었다. 아직도 15명이나 남은 몬스터가 태상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련동에 오기 전까지 태상은 그다지 몸을 움직이지 않고, 몬스터를 쓰러트렸다. 모두 간단하게 무력화를 사용한 후 마나건으로 끝을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련동에 온 이후에는 그런 사치스러운(?) 방법으로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없었다.
몬스터들은 교활했고, 수련동은 팍팍했다.
그는 지금 청각을 잃은 상태에서 무력화 능력까지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수련동은 태상을 비웃 듯 매번 기발한 방법으로 그를 당황시켰다. 몬스터의 갑작스러운 습격은 정말 무작위 시간에 찾아왔고 말이다. 이젠 그 갑작스러운 습격이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인지라 이곳에 있을 땐 신경을 모두 곤두세워야 했다. 그 덕분인지 그의 감각은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날카로워질 수 있었다.
태상이 바닥을 박차고 점프를 하며 공격을 피했다. 그는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질을 참지 못해 소리를 질렀다.
“씨발!!!!! 그래도 이건 진짜 너무 하지 않냐!?”
무력화를 아예 못 쓰게 하다니, 진짜 죽으라는 소리가 아닌가!!
물론 그는 자신이 낸 목소리조차도 들을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무력화만 믿고 이곳에 들어왔다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때, 한 마리가 넋을 놓고 있는 것을 본 태상이 놈의 미간에 마나건을 쐈다. 놈의 이마가 훅 뒤로 젖혀지며 나가떨어지고, 이내 숨이 끊긴 듯 움직임을 멈췄다.
청각과 능력 두 가지를 동시에 잃은 지금은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물론 그동안 쉽게 몬스터를 상대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중에서도 손 꼽히게 최악의 상황이었다.
눈과 청각 촉각 모두를 통해 몬스터의 기척을 느끼는 법을 익혔지만, 아무래도 그동안 청각에 많이 의존을 한 모양이었다. 그동안 라마스가 준 갑옷에 얼마나 감사를 많이 했는지 모른다.
정말 안 얻어터진 곳이 없었다. 아마 회복물약이 없었으면 온 몸이 멍투성이었을 것이다. 이젠 그 회복 물약도 몇 개 남아 있지 않았다.
수련동에 완전히 집중하기 위해 태상은 송이에게 말해 일 때문에 5일 동안 자리를 비운다고 말까지 한 상태였다. 태상은 강회장이 마련해 준 별장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동에 접속해 수련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재미는 있었다. 재미가 있었기에 버틸 수도 있었다.
이런 스릴을 이곳 아니면 언제 느껴보겠는가. 더욱이 수련동은 이런 깜찍한(?) 짓까지 하면서 그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태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의 심장이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것을 매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재미가 없을 수가 없었다.
키에에에엑--!!
한참 진땀을 빼며 이리저리 피해 다니던 태상은 드디어 마지막 몬스터가 눈알에 총알을 맞고 안구가 터지는 것을 보며 숨을 크게 쉬었다.
“끄으으으~~~읏났다!”
만세 하고 손을 번쩍 들자 사방을 뒤덮은 놈들의 피와 살점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바닥에 털썩 대자로 뻗어 태상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태상은 돌아 온 청각을 느끼며 깊게 숨을 쉬었다.
전투 후에 찾아오는 나른함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숨을 쉬던 태상은 길게 하품을 했다.
이곳에서 수련을 시작한지 이제 삼일 째다.
현실에서 삼일이 지났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틀이 남은 거라는 뜻인데, 솔직히 강해진 건 알겠지만 그 수준이 얼마만큼 되는진 모르겠다.
얼마나 강해졌다 옆에서 말해 줄 이가 없기 때문에 더 모호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태상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더 열심히 수련을 했다. 이곳에서 수련을 한 게 얼마나 효과를 보일지 모르기에, 그리고 지금쯤 모두들 막연하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떠올라 쉴 수가 없었다.
오늘 무력화 능력을 쓰지 않고 전투를 하게 되니 느꼈던 무력감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동안 무력화를 너무 믿고 있었는데, 그 능력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힘을 길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자신이 바닥을 뒹굴면서 수련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과거 자신의 행동이 떠올라 헛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그렇게 전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수련동에서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전에도 무력화가 없으니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
그는 천계에 오고 난 후 진지하게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됐다.
무언가를 이루기도 전에 모든 걸 갖고 태어난 태상은 삶에 그리 의욕적이지가 못했다. 그래서 생과 사가 오가는 천계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마냥 재밌기만 했다. 지루하던 자신의 삶에 유일하게 활력소가 되어 주니 말이다.
몸이 바뀌었을 때에도 이명진에 대한 복수심으로 기분이 나쁘긴 했어도, 금방 지금의 삶에 적응하며 살았다.
강태상이었을 때 분명 자신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 둘 중 뭐가 더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선뜻 선택할 수 없을 것이다. 가족의 곁에 있었을 때보다 지금이 솔직히 더 살 맛 나는 인생이었다.
지루하지도 않았고, 주변에는 늘 새로움이 넘쳐났으며 짜릿한 쾌감도 있었다.
태상은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지금의 삶이 예전보다 조금 더 좋았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자신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으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알리지 말아달라, 복수는 자신이 할 거다 하는 등의 말로 시간을 끈 것이다.
다시 예전의 심심했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때, 갑자기 수련동에 지진이 일기 시작했다. 노곤함에 빠져 있던 태상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한껏 풀어져 있던 그의 눈매가 매섭게 반짝인 것도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태상은 수련동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 앞으로 어떤 일이 생겨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몸에 변화가 일어나고, 아무것도 없던 주변에 몬스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태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한 바탕 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변화를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를 악문 태상이 마나건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번엔 무슨 수작을 부릴 거냐?"
그의 힘줄이 긴장으로인해 뻐근하게 당겨왔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모양인지 조용하지만 소름 끼치는 몬스터의 크르릉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크르르르.....
그 울음소리는 태상을 적으로 인식했다는 알림소리와 같았다.
태상은 재빠르게 놈을 향해 마나건을 겨눴다. 또 다시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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