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56화 (56/251)

00056  수련동  =========================================================================

[왜? 접속 끊어야 하는 시간이야?]

“아니, 지금부터 5일 동안 나랑 연락 안 될 거야. 연락 안 되는 곳에 가 있을 거거든.”

[5일 동안이라고? 이틀 후에 움직이기로 한 거 아니었어?]

“사정이 생겼어. 잡으러 가는 거, 5일만 미루자.”

태상의 갑작스러운 말에 반이 난감한 듯 신음을 흘렸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

[....미루는 건 상관없는데, 그 정도로 중요한 거냐?]

일정을 이미 모두 잡아 놓은 상태인지라 갑자기 5일이나 일을 미루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그의 사정 때문에 19명의 스케줄이 바뀌어야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손해를 입고서라도 태상은 강행할 생각이었다.

“응. 이 미션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달렸어. 날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줘.”

[....알겠다. 해명은 꼭 해야 할 거다. 너 하나 믿고 5일이나 미루는 거니까.]

“당연하지.”

태상이 시원하게 대답을 하자 반은 결국 그가 하자는 데로 해줄 수밖에 없었다. 19명 아니,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18명에게 모든 일이 5일 후로 미뤄졌다는 것을 말 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상하게도 반은 태상을 처음부터 쭉 믿어주었다.

C등급 미션 때를 봐도 그렇다.

겉보기엔 아무런 활약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헌도 1위를 했던 상황에서도 분명 다른 곳에서 태상이 확약 했을 거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불만을 토로하지 않게 해주었다.

태상이 무리한 S등급 미션을 가져왔을 때에도 고민을 하긴 했지만 그를 도와주었고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반은 태상이 이유를 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짜고짜 5일을 미뤄달라는 말에 알겠다고 말해줬다.

그를 믿는다며 말이다. 그러니 태상은 반에게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믿음을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태상은 반드시 수련동을 수료하고 나오겠다고 다짐했다.

솔직히 수련동이 어떤 곳인지 아직 잘 모르기에 그곳에서 5일 동안 머문다고 실력이 엄청나게 상승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 상태로 가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렇게 결정을 한 것이다.

지금 태상은 수련동을 얕잡아 보고 있었다. 라마스가 굉장히 어렵고, 살아 돌아오는 사람보다 죽는 이가 더 많다고 겁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겪지 않은 일에 겁을 먹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인 무력화를 믿고 있기도 했다.

라마스는 그런 태상의 생각을 알면서도 그를 수련동에 추천한 거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태상은 이곳에서 너무 거침이 없었다. 처음부터 염려를 한 부분이 바로 그의 그런 거침없는 성격이었다.

그의 자신감 있는 태도가 실력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묵인하고 있었지만, 수련동이 어떠냐는 그의 말에 신중하지 않게 결정하는 것을 보고 라마스는 자신의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 상태의 태상에겐 수련동이 가장 필요했다. 비록 이 선택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 해도 말이다.

라마스는 태상이 모든 준비를 끝내자 그를 수련동이 있는 공간으로 이동시켜주었다.

라마스의 손짓 한 번에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태상이 서 있는 곳은 금세 처음 보는 낯선 공간이 되었다. 그의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동굴이 입을 쩌억 벌리곤 그를 환영해주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수련동입니다.”

동굴 주변에는 누군가의 손도 닿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 우거진 수풀과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태상이 동굴 안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가 수련동이야? 그냥 천연 동굴 같아 보이는데.”

“겉보기엔 그렇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다르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저기에 들어가면 5일 동안은 절대 못 나온다 이거지?”

“수련동을 나가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저곳을 완전히 무너트리거나 5일동안 저곳에서 살아남아 나오는 겁니다.”

라마스가 길게 말을 하긴 했지만 결론만 따지고 보면 5일 동안 절대 못 나온다는 게 맞다는 뜻이었다.

태상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재미있어 보이긴 하네.”

인적도 없고, 빛 한 점도 없는 동굴 안으로 곧 들어가야 하는데도 태상은 영 무서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웃으며 재밌겠다는 말까지 하는 걸 보면 두려움을 억지로 숨기고 있는 것도 아닌 듯 했다.

라마스는 묘한 표정으로 태상을 바라봤다.

이곳을 앞에 둔 계약자들은 강하건 약하건 상관없이 모두들 겁에 질릴 수밖에 없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수련동 주변에는 알려지지 않은 결계가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계는 수련동을 바라보는 이의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공포심을 자극한다. 그래서 과거엔 수련동에 입실하기 전, 오줌을 지리고 도망을 치는 이들도 많았다.

때문에 수련동을 들어간 것 자체만으로도 인정을 받기도 했었다. 너무 난이도가 높아 성공하는 이가 없자 폐쇄되어 이젠 그런 인정도 받지 못하지만 말이다.

어떤 사람은 수련동 앞에 서면 환상이 보인다고도 했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수련동 안에서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숨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다고 말이다. 결계는 천사인 라마스에겐 통하지 않아서 정확히 어떻게 두려움을 자극하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다만 그동안 계약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아왔기에 태상에게도 이 결계가 통하는 건 확실했다. 라마스는 태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뭘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것이 태상의 태도를 조금은 바꿔 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태상은 변화없는 얼굴로 멀뚱히 수련동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태상의 질문에 라마스가 생각을 멈추고 말했다.

“네. 들어가시면 됩니다.”

천계에서는 실제 몸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영혼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먹거나 싸거나 하는 등의 생리현상을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준비물이라면 체력을 회복하는 물약 정도가 될 것이다.

회복물약은 라마스가 태상에게 넉넉하게 챙겨주었기에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동굴 깊숙한 곳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태상은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동굴 안을 빤히 주시했다.

다시 눈을 비비고 봐도 방금 전 느낀 기척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태상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라마스가 이곳엔 아무도 없다고 이미 말을 했다. 태상은 자신이 착각했을 거란 생각을 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수련동 입구 가까이에 온 태상은 방금 전에 자신이 본 게 헛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헛것이 맞나?

태상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사람이 그의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라마스.”

태상이 라마스를 불렀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라마스는 수련동의 결계가 태상에게 무언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며 그의 목소리에 대답을 했다.

“여기 좀 이상한데?”

“뭘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강태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마스는 알아야 했다. 그래야 그를 케어 할 수 있었다. 이건 그를 서포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라마스는 태상이 어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태상은 모른다는 말에 자신의 앞에 있는 게 뭔지 말하는 대신 흐음....하고 신음을 뱉었다. 그는 자신의 볼을 긁적이며 라마스에겐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공간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태상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선물이야?”

“예?”

예상치 못한 말에 라마스의 날개가 순간 파르르 떨렸다.

선물이라니, 말도 안 된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분명 눈앞에 있을 텐데 그게 왜 선물이라는 걸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말에 라마스가 표정관리에 힘쓰며 물었다.

“지금 뭘 가리키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말은 네가 한 짓이 아니라는 거지? 딱 봐도 진짜는 아닌 것 같아서 네가 나 힘내라고 만들어 준 줄 알았지.”

“지금 뭘 보고 계시는 데요?”

라마스의 물음에 태상이 손으로 허공을 휙 휘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던 것이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가 이내 다시 되돌아왔다. 태상은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넌 알 필요 없는 거야. 이거 진짜 허상이네. 괜히 설렜잖아.”

태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곤 라마스에게 손 인사를 했다.

“나 진짜 들어가 본다. 수고해. 5일 뒤에 보자.”

라마스는 그가 도대체 뭘 본 건지 무척 궁금했지만, 그의 뒤를 따라가서 캐물을 순 없는 노릇이기에 아쉬운 신음을 흘렸다.

그는 왜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를 선물이라고 말했던 걸까?

라마스의 궁금증은 풀릴 줄 모르고 쌓여만 갔다.

한편, 동굴 안으로 들어 온 태상은 힐끗 뒤쪽을 바라봤다. 허상이긴 하지만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효과가 있을 것 같긴 한데, 움직이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를 따라오지 않는 걸 보니 말이다.

태상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림에 떡도 아니고, 저게 뭐야?”

어차피 접속을 끊으면 만날 사람이다. 그러니 진지한 일을 앞두고 쓸데없이 미련 보이지 말자 생각한 태상이 성큼성큼 어두운 동굴 안을 걸어 들어갔다.

밖에서 봤을 땐 그냥 끝을 모르는 어두운 공간만 있어서 어떻게 생겼을지 짐작이 되지 않았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라마스가 말한 대로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천장이며 벽이며 할 것 없이 꽉 막혀 있었다. 당연하게도 탈출구는 없었다. 벽 부위에는 빛을 내뿜는 야명주가 단단하게 박혀 있어서, 수련동을 구경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말과는 달리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무언가 처절하게 싸운 흔적이나 몬스터의 시체, 계약자들의 시체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뭔가 엄청 으스스한 걸 생각했던 태상은 멕이 쭉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태상은 넓은 수련동 안을 한 바퀴 쭈욱 둘러보며 주변 지형을 자세히 살폈다. 바닥은 고른 흙바닥이었고, 천장을 올려다보니 빛 한 점 들지 않게 꽉꽉 막혀 있었다.

유일한 틈은 수련동 벽 한쪽에 뚫려 있는 구멍이었는데, 그 구멍에서 쉼없이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그 아래엔 작게 물이 고여 있었고 말이다. 아무래도 몸을 씻거나 물을 마시고 싶을 땐 저것을 사용하면 될 듯 했다.

물론 이곳에선 그런 인간의 생리적 충동이 잘 느껴지진 않지만 말이다. 아마 라마스가 곁에 없으니 수련하다가 엉망이 된 몸을 씻으려면 저 물이 필요할 듯 싶었다.

워낙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인지라 주변을 살피는 것은 금방 끝이 났다.

그때, 갑자기 수련동이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떨리기 시작했다. 태상이 깜짝 놀라 원인을 찾고자 두리번거리는데, 그가 들어 왔던 통로 쪽이 점점 바위로 막히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가 일부러 하는 건 아니고, 수련동 스스로가 그렇게 움직이게 짜여 있는 듯 했다.

라마스에게 한 번 들어가면 5일은 나오지 못한 다는 것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닫혀가는 저 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아마 살고자 하는 본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태상은 주먹을 꽉 쥐고 저 문이 다시 열리는 날을 상상하며 꾹 참았다.

통로 문이 닫히자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던 수련동이 조용해졌다. 태상은 뭔가 또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때, 역시나 예상대로 갑자기 야명주가 빛을 잃고 꺼졌다.

“뭐야?”

빛을 갑자기 잃자 태상은 눈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소름끼치는 어둠이 태상의 몸을 휘감을 무렵, 어디선가 들려오기 시작한 소리가 점점 뚜렷하게 태상의 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마치 동물의 소리와 흡사했다.

태상은 그 소리를 듣자 라마스가 해준 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랜덤으로 몬스터가 소환 됩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엔 자신 혼자였다. 그런데 갑자기 낯선 소리가 들려온 것으로 보아 그가 말한 데로 지금 막 몬스터가 소환 된 것이 분명했다.

태상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환영파티 하자 이거지?"

태상이 마나건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총을 사용하는 태상인지라 시야를 잃은 건 아주 큰 약점이었다. 그는 꿩 대신 닭이라고 귀로 놈의 기척을 읽어야 한다 생각했다.

태상은 괜스레 번잡하게 만드는 자신의 눈을 감아버리고 청각, 촉각, 후각에 집중했다. 놈이 어디에 숨었는지 찾아야 했다. 가장 먼저 태상에게 정보를 준 것은 청각이었다.

태상은 몸을 뒤로 굴리며 왼쪽을 향해 마나건을 쏘았다.

탕!!

그의 얼굴 앞으로 거센 바람이 휘날렸다. 조금만 더 늦게 피했어도 그의 얼굴이 놈의 발톱에 갈려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자신이 쏜 총에 놈이 맞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장 공격이 날라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총알이 아예 쓸데없는 곳으로 날아가진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코멘 감사합니다.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달나라아무개님의 질문은 개인 쪽지로 답변 보내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낙월희님, 수련동은 태상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인지라 그렇게 약하게 하면 얘가 짧은 시간 안에 강해지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 저렇게 설정을 짰는데....너무 과한 설정 일 수 있단 생각을 못했습니다.ㅜㅜ 매번 코멘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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