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50화 (50/251)

00050  정혜연  =========================================================================

태상은 그의 말을 듣고 그제야 레드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버프 능력자를 데려가는 거면 데려가는 거다 처음부터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그랬다면 레드와 태상의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는 건 그가 아니라 레드가 됐을 테지만 말이다.

“그랬군요. 알겠습니다. 능력을 보장한다고 하니 믿어보죠.”

“크흠! 그럼 이제 된 겁니까?”

레드는 어쩌다가 자신이 이렇게 휘말리게 됐는지 알지 못한 채 태상에게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사실 그에겐 한 가지 약점이 있었는데, 바로 굉장히 심한 팔랑귀라는 것이었다. 남의 말에 워낙 잘 속아 넘어 가는 사람인지라 현실에서도 배신을 많이 당했었다.

그런 사람한테 태상이 S등급 미션을 걷어 찬 걸 후회나 하지 말라고 하고 미련 없이 나가려고 하니, 덜컥 심장이 내려앉은 것이다. 분명 이렇게까지 쩔쩔 매면서 그들에게 미션을 하겠다고 말할 위치가 아닌데도 이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 아주아주 후회를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돈도 날리고, 친구도 잃은 경험이 많은 그는 결국 더 이상 사람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혼자 있는 걸 좋아하게 되고,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자 일부러 더 강하게 행동한 거였다. 레드의 측근들만이 그가 성격상 약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태상의 뜻밖의 행동으로 한껏 경계하고, 조심하고 있던 성격이 툭 튀어나온 것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미션을 함께 할 사람들이 모두 모이기로 했으니 그때 참석해주십시오.”

“....끄응.”

태상이 손을 내밀자 레드가 정신이 번쩍 드는지 신음을 흘렸다.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싶었다. 또 옛날 버릇이 나와 이리저리 잔뜩 휘둘려버린 거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긴 했어도 여전히 S등급을 포기하는 건 무척 아까운 일이었다.

그러니 결국 레드는 태상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자리 자리에 앉은 김에 레드에게 혜연의 길드 탈퇴에 대해 얘기를 해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혜연이를 저희 길드로 데려오고 싶습니다. 탈퇴라고 말하는 것보다 스카웃이라고 생각하는 게 낫겠네요.”

“스카웃이요?”

레드가 스카웃이라는 색다른 표현에 관심을 보였다.

“전 불카누스 길드가 혜연을 저희한테 주는 대신, 일정한 대가를 받고 서로 좋은 동맹 관계를 맺는 걸 원합니다.”

“길드 마스터셨습니까?”

레드가 금시초문이었던 지라 물었다. 태상이 길드마스터라고 하니 그제야 이해가 되기도 했다. 딱 보기에도 태상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아니, 사실 자신을 이렇게 당황하게 만든 이가 평범한 이라는 걸 인정하기가 싫었다. 자존심이 상하니 말이다.

그런데 한 길드를 이끌어 가고 있는 길드 마스터라고 하니 자존심 상했던 게 쏙 들어갔다. 레드는 상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을 느끼며 물었다.

“어떤 길드를 운영하고 계시죠? 여태까지 그런 식의 길드원 교환은 없었지만, 제법 솔깃한 제안이긴 합니다.”

상위에 드는 불카누스 길드이기에 혜연과 비슷한 B급 능력자는 넘쳐났다. B등급 중 그리 높은 편에 속하는 것도 아니기에 혜연을 주고 얻을 수 있는 게 생긴다면 그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봤다.

솔직히 그냥 데려가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혜연을 이곳에 잡아두고 뽕을 뽑을 때까지 쓰는 것보다 선심 쓰 듯 넘기고 챙길 거 챙기는 건 오히려 레드가 환영할 일이었다.

“T.P라는 길드 마스텁니다.”

“아~ 바로 그 T.P길드 마스터였군요.”

레드가 알고 있는 길드라는 듯 말을했다. 당연히 그가 알 리가 없어야 하는 게 정상이었기에 이게 뭐하는 수작인가 싶어 태상이 그를 빤히 봤다. 그리고 역시나 레드는 말을 그렇게 했어도 지금 잔뜩 당황해 있는 상태였다. T.P라는 생전 들어보지 못한 길드명 때문이었다.

태상은 S등급 미션을 가져 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어중이는 아닐 게 분명했다. 그럼 적어도 한 번쯤은 스쳐 지나갔을 것 같은데, 아무리 머릿속을 열심히 뒤져봐도 영 떠오르는 게 없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태상의 길드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태상은 레드의 복잡한 머릿속이 빤히 보여 피식 웃었다.

“혜연을 저희에게 넘겨주는 대신 뭘 얻고 싶으신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레드가 고민이 되는지 흐음...하고 신음을 흘렸다.

그에게서 뭘 받아내야 할까. 아니, 뭘 받아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저 스토커 여자를 내어주고 받을 만한 것이라.....’

레드는 혜연을 쳐다보기만 해도 넌더리가 났다. 그녀가 이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그를 아주 끈질기고 더럽게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그가 나타나는 시간은 귀신같이 알고 떡하니 길드를 지켜서 그를 쫓아 다녔다.

길드를 탈퇴해달라고 해서 요즘 수뇌부 사이에서 골치 아프게 만든 존재가 자중을 하기는 커녕 더 난리를 피우고 다니니 더 골이 아팠다.

다른 길드원한테 자신이 길드를 탈퇴하려고 했는데 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둥의 얘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흐리게 한 것도 문제가 컸다.

협박을 해보지 그랬냐고??

그들이 왜 협박을 안 해봤겠는가. 그러나 협박했다가 협박의 협짜도 안 먹히는 골 때리는 여자라는 것만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뒤로 꼼수 쓰지 말고 여기서 그냥 자길 죽이라면서 길드 건물 로비에서 대자로 누워 나 죽으면 길드에서 죽인 거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여자다.

덕분에 혜연의 머리카락 하나도 아 뜨거워라 하며 손도 못덴 그들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혜연이 딱 그 짝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가장 문제는 그 모든 것을 레드, 자신을 부여잡고 한다는 점에 있었다. 물론 그녀가 그렇게 한 것은 모두 태상과 레드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레드가 백기를 들고 지금 태상을 만나는 이 자리에까지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태상이 왜 저런 미친 여자를 데려가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넘치고 넘치는 게 인재인데, 하필이면 왜 저런 미친 여자를 찍은 걸까?

둘의 사이가 단순한 길마와 길드원 사이가 아니라 몸을 섞는 사이라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저런 여자보다 훨씬 몸매 좋은 여자가 쌔고 쌨는데, 취향 한 번 독특하군.'

그렇게 생각한 레드는 생각하는 방향을 바꿔 본론을 다시 끄집어냈다.저 미친 여자를 주고 뭔가를 받기도 뭐했지만 그가 뭘 줄 수 있는지도 감이 잡히질 않아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번에 S등급에서 나오는 점수 당신 몫을 모두 저에게 넘겨주실 수 있습니까?”

레드는 일단 태상이 저 여자를 얼마의 가치로 생각하는지 알기 위해 저질러봤다. 어차피 공헌도 1위는 자신이 될 테니 굳이 그걸 달라고 할 필요가 없었고, 그에게 받아낼 게 그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의 말에 발끈한 건 혜연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차라리 제가 그만큼의 점수를 얻어서 줄 테니 당장 그 소리 취소하세요!”

혜연의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레드를 잡아먹을 기세였다. 가뜩이나 그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곁에 있으려고 한 거였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그에게 민폐를 끼칠 순 없었다. 그녀가 반박을 하고 있을 무렵, 태상이 물었다.

“그거면 됩니까?”

“태상님!!”

“......”

레드가 의외라는 시선으로 태상을 봤다. 당연히 말도 안 된다는 소리가 튀어나올 줄 알았던 것이다.

“좋습니다. 이번 S등급 미션에서 받을 보상 점수를 드리죠. 그럼 이걸로 혜연은 불카누스 길드와는 더 이상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겁니다.”

“그럴 수 없어요!”

혜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반박했지만 태상은 그녀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눈짓했다.

그는 오히려 S등급 미션 보상으로 받을 점수만으로 그녀를 데려올 수 있게 된 게 잘 됐다 싶었다. 워낙 사로나가 길드라면 학을 떼기에 그녀를 데려 오려면 꽤 많은 걸 줘야 한다고 짐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거래는 태상의 길드가 처음으로 다른 길드와 동맹을 맺게 해주는 일이 된다. 반에게 들은 것처럼 이곳에선 거대 길드가 워낙 자리를 완전히 잡고 있기 때문에, 신생 길드가 성장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다른 거대 길드의 보호가 없다면 결국 텃세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태상의 길드도 그들의 텃세에서 벗어날 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트 레드라는 거물이 있는 불카누스 길드와 동맹을 맺고 시작을 하게 된다면, 말이 달라진다. 누구도 쉽게 그의 길드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란 뜻이다.

아직 신생 길드에 불과한 T.P가 자리를 잡으려면 초반에는 다른 길드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태상이 혜연과의 일만 얘기한 게 아니라 그에게 동맹까지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다.

불카누스와의 동맹과 혜연을 데려 오는 것을 S등급 점수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리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차피 이 미션에선 보상으로 받는 점수보다 공헌도에 따른 보상이 더 갚지다.

태상은 공헌도를 다른 이에게 넘겨 줄 생각이 없었다. 저번에 받은 1위 공헌도가 미션 보상 점수보다 몇 배는 많았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레드는 너무 쉽게 허락하는 태상 때문에 자신이 저 여자의 가치를 잘못 생각하고 있나 싶었다. 그는 T.P길드가 당연히 거대는 아니더라도 중상위권 길드는 될 거라고 짐작했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엉뚱하게도 혜연이 다른 사람 모르게 엄청난 실력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이미 달라고 말을 내뱉어놨으니 물릴 순 없었다.

태상이 저 여자를 어지간히 사랑하나보다...하고 생각하는 게 편했다.

“이렇게 쿨하게 수락하실 줄 몰랐지만,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이제부터 저 여자 분은 자유입니다.”

레드가 말을 하자 혜연의 목걸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불카누스의 문양인 불 모양 목걸이가 과거 길드에 들지 않았을 때로 변한 것이다. 그녀가 길드에서 탈퇴 되었다는 뜻이 됐다.

태상에게서 받은 점수는 길드 자금으로 쓰이게 될 것이다. 길드와 길드가 서로 동맹관계를 맺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S등급 미션을 성공시키고 받을 점수보다 훨씬 더 값이 나가는 거였다.

혜연의 일이 크게 부딪치는 것 없이 순조롭게 해결된 것에 태상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당사자인 혜연은 안색이 창백했지만 말이다. 또 다시 태상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무척 당황스럽고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태상을 똑바로 쳐다 볼 면목도 없어지는 것이다.

도대체 목숨을 구함 받고도 얼마만큼이나 더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건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게 면목 없었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태상은 일이 좋게 끝났음에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만남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레드와의 기선제압에도 성공했고, 혜연의 길드 탈퇴 문제도 깔끔하게 해결이 됐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 레드에게 직통으로 연락을 할 수 있는 번호를 받고, 헤어진 태상은 혜연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네. 제법 마음에 들어.”

나이트 레드와 그의 동료 버프능력자가 함께 한다면 정말 태상의 능력이 A등급 악마에게 통하지 않는다 해도 미션에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반드시 입은 은혜 갚겠습니다. 이번에 손해 보게 되신 점수도 모두 갚겠습니다.”

우뚝 걸음을 멈춰 선 혜연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태상에게 말했다. 태상이 그녀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말했다.

“좋은 태도야. 당연히 갚아야지. 갚으라고 널 지금 도와주고 있는 거야. 내가 베푼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배로 갚아야 할 거야. 평생 내 옆에서. 알겠지?”

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반드시...꼭 배로 갚겠습니다. 정말....감사합니다.”

혜연이 고개를 푹 숙였다.

태상은 그런 그녀를 힐끗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태상의 할아버지인 강회장이 그에게 알려 준 게 떠올랐다.

'내 사람을 만들고 싶으면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을 주거라. 그럼 그는 너의 사람이 될 거다.'

물론 그걸 주는 것으로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고도 경고했다. 인간의 욕심은 무한해서 그걸 지속적으로 채워주지 않는다면 우리들을 배신할 거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럼 그땐 어떻게 하냐고 묻자 강회장이 말했다.

‘그땐 그들이 가진 감정을 건드리면 된다.’

감정은 그들이 계속 복종할 수 있게 만드는 좋은 먹잇감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 감정은 사람에 따라 달라서 통하는 사람과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 사용하기 무척 까다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그걸 이용해야 진짜 내 사람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자신을 따르는 것이 오로지 감정에 취중 되어 있는 그녀를 이번 기회에 완전히 묶을 수 있게 된 거라 생각했다. 물질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혜연은 앞으로 절대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노예가 되게 해달라고 한 것처럼 그녀가 완전히 그의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리고 방금 전의 일 때문인지 몰라도, 태상은 그녀가 이제 완벽하게 자신의 손아귀에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굳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이미 그의 손아귀에 들어 왔을 지도 모를 물고기였지만 말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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