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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47화 (47/251)

00047  정혜연  =========================================================================

냉녹차 한 모금을 시작으로, 태상은 그녀에게 이번 일이 어떻게 일어났고 얼마나 진행이 되었는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악마 계약자에 대해 말을 할 때마다 주먹을 꽉 쥐었지만 혜연은 생각보다 훨씬 차분하게 그의 말을 들었다.

“S등급 악마를 죽여야지 이 일이 완전히 끝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녀는 자신을 꼭 그 파티에 끼워달라고 부탁했다.

“부탁드립니다. 비록 큰 도움이 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제게 기회를 주세요.”

“인원이 한정적이지 않았다면 당연히 널 데려갔을 거야. 하지만 고작 20명밖에 갈 수 없는 미션이다 보니 인연으로 아무나 데려갈 수 없어. 솔직히 S등급 악마를 20명으로 잡을 수 있을 수 있을까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야.”

이번 미션은 A등급 악마를 죽여야 한다. 그녀 입으로 스스로가 지금까지 B등급 악마를 죽이는 미션을 다녔다고 말했으니 그 이상인 A등급 악마를 죽이는 일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복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잘 알지만 그렇다고 마냥 껴줄 순 없었다.

태상이 거절을 하자 크게 실망을 하긴 했지만 더 이상 조르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가 안 된다고 하는 말을 거스르지 않기 위함이었다.

“앞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강해지겠습니다.”

혜연은 복수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 모두 자신의 약함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이를 악물며 반드시 강해지리라 다짐하고 다짐했다.

혜연의 능력은 염력이었다. 말 그대로 집중을 하면 보이지 않는 기운으로 물건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능력이었다. 그 염력으로 단검을 기습적으로 생각지 못한 방향에서 날린다거나 하는 등의 공격을 한다고 했다.

만약 그 능력을 좀 더 확장해서 쓸 수 있다면 그녀는 아주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기에 나태해진 상태였다. 집안일은 난쟁이가 모두 해줬고, 돈과 같은 재물은 C등급, 그리고 가끔 B등급 미션을 받아도 충분히 유지가 가능했다. 재화는 점점 씀씀이가 커진 탓에 부족하다고 생각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적어도 계약자가 아니었을 때 생활보단 훨씬 자유롭고,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전투보단 현상유지를 더 중점에 두고 지냈다. 지금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일을 당한 걸지도 모른다. 그런 안일한 태도 때문에 말이다.

그녀의 눈빛이 굳은 의지로 반짝였다.

“아, 그건 그렇고 혹시 길드가 있어?”

“네. 길드는 가입해 있는 상탭니다. 하지만 천계에 가서 당장 탈퇴할 생각입니다. 제게 주인님이 생겼는데 다른 길드에 있을 순 없죠.”

태상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로나가 분명 그에게 길드를 탈퇴하는 게 아주 힘들다고 말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혜연이 길드를 탈퇴하는 것도 당연히 무척 힘들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말하니 의아한 것이다.

“내가 듣기론 길드 탈퇴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런가요? 하긴, 저도 지금까지 누군가가 길드를 탈퇴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긴 합니다.”

역시나 그녀는 길드탈퇴 방법에 대해 전혀 모르는 듯싶었다. 태상은 일단 길드를 탈퇴 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할 사로나도 소개 시켜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상이 아이라와 여행을 즐기고 있을 사로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이 마지막 여행일인지라 아마 마무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가는 길도 전용기로 보내주기로 했기에 조금 있다가 만나야 하긴 했지만 당장 궁금해서 묻고 싶었던 것이다.

[잠시 통화 가능해?]

[응, 잠시만.]

화장실로 간 건지 잠시 후 그녀의 목소리에서 울림이 느껴졌다.

[아이라랑 점심 먹고 있었어. 가이드 붙여준 덕분에 잘 놀았고. 고마워.]

태상의 배려 덕분에 한국 여행을 제대로 즐긴 아이라와 사로나였다. 태상은 그녀에게 본론을 꺼냈다.

[그래, 잘했네. 갑자기 전화한 건, 뭐 좀 물어보려고. 지금 별장에서 구했었던 여자가 깨어났다고 해서 병원에 갔었거든. 근데 이 여자가 우리랑 같이 행동하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태상은 방금 전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얘기해주었다. 혜연은 그의 노예가 되겠다고 했지만 언어를 돌려 길드원으로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로나에게 길드를 탈퇴하려고 하는데 많이 어려운 건지 물었다.

길드라는 말에 사로나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B등급 계약자라면 힘들지도 몰라. B등급까지 올라가는 데 얼마나 많은 지원을 받았느냐가 중요해. 자신이 줬던 걸 배로 받지 않는 이상 그들은 놔주지 않을 거야.]

그녀의 일리 있는 말에 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개는 천계에서 해줄게. 좀...독특하긴 한데 도움은 될 것 같아.]

혜연이 정희에게 했던 일들이 떠올라 말에 머뭇거림이 깃들긴 했지만 그녀가 도움이 될 거란 것은 확신하고 있었다. 사로나와 그렇게 짧은 통화를 끝낸 태상이 그녀에게 길드에서 지원을 얼마나 받았는지 물었다. 혜연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다지 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길드에서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편이라서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길드 일에 자주 끼는 편도 아니었고, 길드도 저한테 많은 일을 시키지 않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B등급 중 하급에 속해서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태상에겐 열심히 자신이 강하다고 어필했지만 B등급 중 하급에 속한다고 하면 버림 받을까 겁이나서 그렇게 말한 거였다.

거짓말을 한 거라면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태상은 그녀가 진실 그대로 말을 했었어도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C등급 악마를 상대하고 있는 데 B등급 계약자면 자신보다 높으니 강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B등급 능력자 중에서도 강해지는 데에 전혀 관심이 없는 그녀는 아마 계속 그 길드에 있었으면 어느 순간 그렇게 희생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강해지려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죽어 다른 새로운 계약자로 갈아치워지는 게 바로 그곳의 현 실태였다.

물론 이제 마음을 달리 먹었으니 더 이상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다.

태상은 이제 슬슬 길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녀를 탈퇴 시키지 않으려고 한다면 길드대 길드로 그녀를 스카웃해서 데려오는 것도 생각해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탈퇴시키는 것보다 일정한 보상을 주고 데려오는 방법도 있었기에 그걸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그가 길드를 만들어야 했다. 마침 그동안 미션을 꾸준히 해왔기에  길드를 만들 수 있는 점수를 모아둔 상태였다.

오늘 천계에 접속해서 그동안 미뤄왔던 길드를 만들어야 할 듯싶었다.

**

“어서오십시오, 태상님.”

천계에 접속하자 라마스가 그를 반겨주었다.

“그동안 모은 점수 몇 점이야?”

“지금 갖고 계신 점수는 87050점 입니다.”

길드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느 86000점이 필요하다. 언제 저 점수를 다 모을지 걱정이 됐는데 어느덧 전부 모으고도 남아 1천점을 더 모은 상황이었다.

“길드 이름과 문양을 생각해놓으신 게 있으십니까?”

라마스의 물음에 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길드 이름은 The prince and The pauper로 해줘.”

“왕자와 거지요? 좀 이상한 이름 같습니다.”

“동화 이름이야. 아마 이명진 그놈이 들으면 꽤나 찔릴 걸? 뭐, 그놈 때문에 그걸로 정한 건 아니지만 나름 마음에 드는 이름이라서. 너무 길어서 다 안 들어 갈 것 같으니 줄여서 T.P로 하고 이걸 문양으로 해줘.”

태상이 종이에 적은 그림을 라마스에게 넘겨주었다.

그 모양이 마치 왕관과 같았다. 라마스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 이름 T.P, 문양은 이것으로 의뢰 넣겠습니다.”

“응.”

라마스가 의뢰 넣기 위해 가기 전, 태상을 사로나와 만나기로 한 곳으로 이동시켜 줬다. 아직 약속했던 일주일은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은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반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가 만나기로 한 장소에 가자 이미 사로나와 혜연이 만나서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둘이 벌써 만났네?”

태상이 다가가 묻자 혜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태상님.”

“왔어?”

사로나의 얼굴 표정이 조금 딱딱해진 게 아무래도 둘이 같이 있기가 어색했던 듯싶었다.

“서로 인사 했어?”

“혜연씨가 날 기억하고 있더라고.”

“그래?”

하긴, 혜연이 그에게 다른 여자가 악마 계약자들을 죽였다는 걸 봤다 얘기했었으니 그녀가 알아 본 것도 무리가 없긴 했다. 사로나는 워낙 엉망이 된 혜연의 모습만 봤기에 멀쩡한 지금의 모습을 보고 단박에 알아보긴 무리가 있었고 말이다.

“오늘 길드 문장 사서 의뢰 넣었어. 길드 탈퇴 문제는 어떻게 됐어?”

“얘기 하자마자 정색을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런 반응을 보일 거라곤 생각 못 했거든요.”

고작 해봐야 B등급 중 하위급 능력자인 자신에게 말이다. 사로나는 그 문제를 먼저 겪어봤던 지라 입을 열었다.

“아마 그동안 받은 거 다 내어놓고 나가라고 하거나 못 나가게 협박을 할 거에요. 아니면 무리한 미션에 넣으려 하던가요. 이 미션을 완수하면 탈퇴시켜주겠다고 해놓고 난이도는 엄청 높은 걸 줄 확률이 높아요.”

그녀의 말에 태상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까지 치사하게 나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방금 전 그녀가 한 말이 모두 자신이 스스로 겪은 듯 해보였다.

그렇게 대화를 잠시 나눈 일행은 반 일행을 만나기 위해 움직이기로 했다.

레베카가 그에게 잔뜩 주었던 텔레포트 스크롤 때문에 그들을 찾아가는 건 문제가 되질 않았다. 스크로를 찢어 함께 이동하자 이젠 제법 익숙해진 공간이 나타났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그곳에서 쉬고 있던 이들이 제법 됐는데, 지금은 단 한 명만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리고 그곳에 남아 있는 이는 태상이 얼굴을 모르는 처음보는 자였다.

"반을 만나러 왔는데요."

"약속 하고 오셨습니까? 지금 자리에 안 계시는데요."

"당연히 있을 줄 알고 약속 안했는데...난감하네. 혹시 연락 좀 넣어 줄 수 있겠어요?"

"누구라고 전해드릴까요?"

"강태상이라고 하면 알 겁니다."

태상의 말에 남자가 갑자기 반응을 보였다.

"강태상이요?"

남자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갑자기 그에게 다가왔다. 태상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한 번 쭉 훑은 그는 양 옆에 서 있는 사로나와 혜연을 힐끗 바라본 후 말했다.

"따라오세요. 반이 말해 놓은 게 있어요. 당신이 오면 바로 뛰어 올 테니 잡아두고 있으라고요."

남자는 태상과 사로나, 혜연을 2층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2층에 있는 많은 문 중 한 곳을 열어 들어가라는 듯 손짓했다. 그가 문을 연 곳은 태상이 한 번 가본 적 있는 방이었다.

예전에 반과 대화를 나눴을 때 들어갔던 바로 그 문이었다.

태상이 남자가 열어 준 방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의 양 옆으로 사로나와 혜연이 자리를 잡자 남자가 말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바로 연락 넣을 테니까."

남자가 문을 닫고 나가자 혜연이 궁금했는지 물어왔다.

"여긴 어딘가요?"

"내가 아는 사람 길드. 이번 일을 계획한 악마 메디노 잡으러 같이 가기로 한 사람이 곧 만날 사람이야."

혜연이 이해가 됐는지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그 미션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게 무척 아쉬운 모양이었다. 태상에겐 자신이 쓸모 있다고 잔뜩 어필해 놓긴 했지만 A등급 악마를 상대하는 전투는 솔직히 잘해 낼 자신이 없긴 했다.

그러니 A등급 악마를 상대하는 일에 그녀가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은 없을 것이다. 왜 진작 좀 더 강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는지 무척 후회가 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는지 쿵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곧 그들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방의 문을 거칠게 쾅! 하고 여는 이가 있었다. 그 사람은 당연하게도 반이었다.

============================ 작품 후기 ============================

후, 후기가 슬펐나요?.........큽..(눙물 좀닦고 오겠습니다.)

코멘에서 계약자인걸 말하면 패널티가 있냐는 질문을 하셨는데, 패널티는 없지만 태상이 원래 이명진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자니 뭐니 이런 걸 말 하지 못하는 겁니다. 아마 나중에 자기가 이명진이 아니라는 게 다 밝혀지면 천계, 마계 이런 이야기도 모두 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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