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0 요정 =========================================================================
사로나와 태상이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사로나는 거추장스러운 서두를 모두 빼고 본론부터 그에게 말해왔다.
“지금 이곳 상황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지금까지 실종 된 요정들의 수는 총 열 명. 만약 이대로 계속 요정들이 실종되어 페앙이 죽게 된다면 아예 이곳 요정들 모두를 잃고 말 거에요.”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 이 나무...그러니까 페앙인지 뭔지 그게 죽으면 왜 요정들이 다 죽는다는 겁니까?”
그의 기대처럼 요정들과는 달리 사로나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정확히 해주었다.
“페앙은 요정들을 지키는 수호수입니다. 그녀가 죽게 되면 결계가 사라질 거고, 악마들은 그걸 안 순간 요정들을 잡으러 쳐들어 올 겁니다. 그동안 요정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던 건 모두 페앙 덕분이었으니까요.”
“악마가 요정들을 싫어합니까?”
그들의 성격 상 누구와도 친근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요정들이 악마를 싫어합니다. 악마는 요정을 좋아하고요.”
“....?”
그녀의 알 수 없는 대답에 태상이 잠시 이해를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그는 왜 그녀가 그렇게 말했는지 눈치 챘다. 악마가 왜 요정을 좋아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요정들이 그놈들에게 쓸모 있는 존재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요정들이 악마들에게 쓸모 있는 존재인가 보군요.”
“네. 맞습니다. 악마들은 요정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악마에게 요정은 보양식이거든요. 그러니 요정들은 악마를 싫어하고, 악마는 요정을 좋아하는 겁니다.”
보양식....
굉장히 잔인한 말이 아닐 수가 없다. 물론 동물과 인간의 사이를 봤을 때, 그 잔인한 일들을 자신도 해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갑자기 요정들이 사라진 게 악마 짓이라고 생각하는 거군요.”
“네. 하지만 아직까지 범인의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악마가 이곳에 숨어들었다면 분명 페앙이 알 수 있었을 텐데, 모르겠다고만 하더군요. 그렇게 점점 요정들을 잃다보니 페앙의 힘이 줄어들게 되고, 결국 계속 악화만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요정들 수가 줄어들면 페앙의 힘이 줄고, 페앙의 힘이 줄어 죽게 되면 보호해주는 이가 없어 결국 나머지 요정들도 모두 죽게 된다 라는 거군요.”
“맞게 이해하셨어요. 지금 가장 시급한 건 이런 짓을 하는 악마를 찾는 겁니다.”
“악마가 있었다면 페앙이 알아차렸을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래서 아마 지금 이곳에 있는 이는...”
태상이 사로나가 말하기 전에 먼저 말 했다.
“악마 계약자겠군요. 그놈이 요정을 납치해서 데려 간 걸 거고요.”
사로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맞아요. 요정들에겐 특유 몸을 숨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걸 뚫고 납치해 간 걸 봤을 때, 분명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처음 태상이 이곳에 왔을 때, 무력화를 주변에 쓰지 않았다면 계속 요정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들은 태상은 놈이 자신과 같은 능력을 쓰는 건가 싶어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놈을 한 번이라도 본 이가 없습니까?”
“없습니다.”
목격자도 없다 이거지....
사건이 제법 복잡하고 심각하다 싶었다. 이 넓은 공간에서 작정을 하고 숨은 놈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다행인 것은 놈들이 계속 요정들을 납치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만큼 이 주변에 있을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질 않아 마냥 이 주변을 수색하는 것밖엔 도리가 없었습니다. 혹시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까?”
사로나는 지금 벽에 막혀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막막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태상이 온 것이고 말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태상에게 희망을 거는 것밖엔 없었다.
태상은 잠시 생각을 정리해보겠다고 하며 말을 아꼈다.
“요정들이 사라진 시간, 장소 등등 공통점이 있습니까?”
“없어요. 아침에도 없어지고, 밤에도 없어집니다.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게 됐는지도 모를 정도로 은밀하죠.”
“그렇다면 매복을 하고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단 얘긴데....”
분명 요정들을 납치해간다는 것으로 봤을 때, 이 근처에 있는 게 분명하다. 하루에도 여러 번 수시로 주변을 수색한다는 사로나에게 들키지 않았다면 놈의 능력이 아주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쪽으로 치중되어 있다는 뜻이 된다.
‘순간이동?’
순식간에 공간을 이동해서 납치한다면 그렇게 은밀하게 움직이는 게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요정들처럼 몸을 보이지 않게 하는 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
‘몸을 보이지 않게 한다라....’
제법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놈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면 태상은 미션을 아주 적절하게 잘 받은 거였다. 놈에게 가장 불리할 능력을 그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근처에서 가장 몸을 숨기기 좋은 장소를 골라서 함께 좀 갑시다.”
“그런 장소들은 이미 제가 꼼꼼하게 살펴봤어요.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머무른 흔적이 있긴 했지만 그 이상은 발견하지 못했으니까요.”
“완전히 꼼꼼하게 살폈다고 자신합니까?”
“........”
태상의 말에 사로나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 장소는 한 두 번 살핀 게 아니었으므로 그렇다고 고개를 단 번에 끄덕였어야 하는 게 맞는데 이상하게도 그와 눈이 마주치자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만 가보죠.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만만한 태도의 태상을 보며 그가 언제까지 저 태도를 할 수 있을지 두고 보자 생각하는 사로나였다. 그녀도 이곳에 왔을 때만해도 이렇게까지 시간을 끌 미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미션에서 벌써 일주일 넘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포기해버릴까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정이 들대로 들어버린지라 그럴 수도 없었다. 그녀가 외면한다면 이들은 정말 죽을 지도 몰랐다.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녀가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땐 다른 계약자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뾰족한 수가 나질 않고, 그에 비해 보상도 그리 좋지 않아 한 명, 한 명씩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사로나 혼자 이곳에 남게 된 것이다.
그러니 태상도 자신처럼 자신만만하게 왔다가 기세가 꺾일 거라 생각했다. 아마 며칠 지나지 않아 그도 떠나겠다는 말 한 마디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사로나는 어디 한 번 당해보라는 뜻으로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지금 당장 시작하죠.”
“그럽시다. 마침 컨디션이 엄청 좋아서.”
그의 몸에 남은 인드고의 눈물이 여전히 그의 몸을 맴돌고 있었다. 지금은 그 무엇을 해도 자신이 있었다. 뭐, 예전에도 자신감이 없진 않았지만 말이다.
페앙의 줄기의 도움을 받아 아래로 내려 온 태상과 사로나는 줄줄이 사탕으로 따라오려는 요정들을 납치당하고 싶지 않으면 어서 돌아가라고 겁을 주어 돌려보내고 길을 떠났다.
이미 여러 번 수색을 해왔던 길인지라 사로나의 안내는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태상은 자꾸만 그녀의 발걸음을 막으며 천천히를 요구했다.
“왜 자꾸 그러는 겁니까?”
사로나가 참다가 도저히 못 참겠는지 물었다.
“그렇게 빨리 움직여서야 제대로 수색이 되겠어요? 좀 더 천천히 움직이자고요.”
“그렇게 느릿하게 움직이면 범인이 보고 달아날 겁니다.”
“글쎄, 그건 두고 봐야죠.”
태상은 요정들을 발견했을 때처럼 계속해서 주변에 자신의 능력을 쏘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혹여 놓치는 곳이 있을까 싶어 움직임을 느릿하게 한 것이었다.
만약 자신의 능력을 좀 더 폭 넓게 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이게 정말 안 되는 건가?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안 된다 불평하는 거랑, 시도 해보고 안 되는 구나하고 생각하는 거랑은 차이가 있었다. 태상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로나에게 휴식하자고 말했다.
“얼마나 걸었다고 휴식이요? 지금 범인을 찾을 생각이 있는 겁니까?”
사로나는 여유가 가득한 태상의 태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에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 왔으면 보통 해결하겠다는 의욕은 있어야 하는 게 맞는데, 이렇게 의욕이 없는 자는 처음이었다.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자신만만한 태도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요정들은 조금의 호의만 보여도 좋다고 따르는 착하고 순수한 존재였다. 괜스레 그 아이들이 이 자에게 정을 주어 마음 고생하는 일이 없길 바랐다.
사로나는 이런 태도를 보일 바에야 그냥 태상이 이 미션을 포기하고 떠나주는 게 더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로나가 결국 태상의 의견을 들어 잠시 휴식을 위해 바위에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하지만 그녀의 싸늘한 시선은 태상에게로 계속해서 꽂혔다.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태상은 지금 온 신경을 다 집중해서 자신의 능력을 지정한 대상이 아니라 좀 더 넓게 펼쳐 낼 수 있게 할 순 없는지 시도를 해보고 있었다.
대상을 지정할 때, 그 대상을 넓게 본다면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생각한 것이다.
가령 나무 한그루가 왼쪽에 있고, 일직선으로 오른쪽에 나무가 있다면 그 사이의 공간을 대상으로 지정해서 능력을 쏘아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왼쪽 나무와 오른쪽 나무 사이의 공간이 대상으로 지정되어 그 넓이만큼 무력화가 사용되는 거다.
자신의 시선이 따가울만도 한데, 태상이 끄떡도 하지 않자 사로나는 무의미하게 태상을 째려보는 것을 그만하고, 한숨을 깊게 쉰 뒤 막막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그를 째려본다고 해결 방법이 나오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때, 갑자기 태상이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며 주먹을 꽉 쥐고 외쳤다.
“아자!”
갑작스러운 그의 돌발행동에 사로나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태상의 표정이 무척이나 밝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설을 세우고 시도해보았던 것이 됐기 때문이다. 그의 무력화가 범위를 훨씬 넓혀 사용이 되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 먹혀들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순 없지만 분명 범위가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력화가 사용되어 진 것은 확실했다.
“이제 그만 쉬고 갑시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아까보단 빠르게 움직이자고요.”
속도를 높이는 건 사로나가 먼저 얘기하고 싶은 거였다. 그녀가 땅이 꺼질 듯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꾹꾹 그의 거슬리는 태도를 참아내고 있었다.
이번 일에 성과가 없다면 그녀는 그에게 미션을 포기하고 돌아가라고 말할 참이었다. 아마 그녀가 오랜 시간 동안 이 미션을 해결하지 못하고 묶여 있었다고 말하면 기겁을 하고 도망 칠 게 분명했다.
그녀는 태상에 대한 신뢰가 땅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태상의 말대로 아까보단 훨씬 빠르게 이동을 하고 있었다. 사로나는 어느 한 군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