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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8화 (28/251)

00028  악마 계약자  =========================================================================

“내 돈을 가져다가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왔다네.”

“그놈보다 먼저 확인했나보네. 난 그놈이 먼저 확인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네가 말하는 그놈이라는 게 우리 태상이를 말하는 건가?”

“맞아.”

“내가 조사해본 결과로는 너와 태상이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아이를 아는 거지?”

태상과 강회장의 시선에 만약 전기가 흐른다면 파지직파지직 소리가 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연륜있는 강회장의 시선을 꿀리지 않고 볼 수 있는 자는 몇 되질 않는다. 절로 몸이 움츠러들고, 고개가 숙여지는 건 오랜 시간동안 군림해온 강회장만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태상은 그런 강회장의 시선을 거리낌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에겐 몰라도 강회장의 눈빛은 태상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기에 그랬다. 어릴 적부터 강회장은 태상을 무척이나 아꼈다. 태상에게 강회장은 자신을 강하게 키워줄 어미 호랑이이지, 자신을 잡아먹을 호랑이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의 시선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다.

“유명하잖아. 그러니 알 수도 있는 거지.”

태상이 말하자 강회장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난 아직 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네만.”

“.....음. 그랬나?”

태상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조심스럽게 송이가 다가와 둘 앞에 차를 내밀었다. 송이는 송구하다는 듯 강회장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마땅한 차가 없어서 녹차 준비했어요.”

태상은 프림이 들어간 커피였고, 강회장은 녹차였다. 태상이 강회장 앞에 놓인 녹차를 자신의 앞에 두고 자신의 잔을 그에게 주었다.

“......”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신 분이니 커피보단 녹차가 나을 것 같아 그렇게 준비한 송이였다. 어이없는 태상의 행동에 도대체 왜 그러냐는 듯 태상을 바라보자 강회장이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하하하!”

‘왜 저렇게 웃어? 노망이라도 난 건가?’

태상이 녹차를 홀짝거리면서 마시며 생각했다. 강회장은 너무나도 웃기다는 듯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돌연 웃음을 뚝 멈추고 송이와 수행원에게 말했다.

“두 사람, 잠시 자리를 비켜 줄 수 있겠나? 이명진 군과 둘이서만 얘기를 나누고 싶네만.”

“예.”

수행원은 두 말 않고 그의 말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송이는 너무도 쿨하게 나가는 수행원의 행동에 당황하다가 태상을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시선인지라 태상이 고개를 끄덕여 그렇게 하라고 답 했다.

송이까지 밖으로 나가자 둘 사이에 잠시 호로록 차를 마시는 소리만 들렸다.

누구도 선뜻 말을 먼저 꺼내질 못했다. 지금 꺼내려는 말이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인지 스스로 잘 알았기 때문이다.

태상이 돌연 커피를 마시는 강회장을 보다가 말했다.

“그놈은 어떻게 하고 있어?”

강회장이 커피잔을 내리고 말했다.

“기억을 잃었다고 하더군. 어멈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 예전에도 심했지만 지금은 말도 못하지.”

“큭, 고생 좀 하겠네.”

태상이 꼬시다는 듯 웃었다. 강회장의 시선이 차에서 멀어져 태상에게 다시 꽂혔다.

“어떻게 된 거냐?”

“흐음, 뭐부터 설명을 해야 하나....”

태상은 간단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천사니 뭐니 이런 걸 설명하기엔 강회장은 너무 늙었다. 아무리 노련한 호랑이라 해도 그의 고정관념을 크게 흔들만한 얘기를 할 순 없었다.

“놈이랑 나랑 몸이 바뀌었어. 돌아갈 방법은 알아봤지만 결론은 못 한다고 나왔고. 기억을 잃은 채 할 수밖에 없었겠지. 놈은 강태상이 아니니까. 솔직히 할아버지는 눈치 챌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엄마야 그냥 내 몸뚱어리면 어화둥둥 이니 이상해도 넘어갔을 테고, 아빠는 원채 나한테 관심 없으니까. 근데 할배는 아니잖아. 그래서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어.”

“아는 놈이 왜 직접 올 생각은 못해?”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올 텐데 뭐 하러? 귀찮게.”

“그 귀찮아 소리 입에 베지 않게 고치라고 했지!”

강회장의 애정 어린 호통에 태상이 피식 웃었다.

“보고 싶었어, 할아버지.”

“......내 강아지가 고생이 많았겠구나.”

강회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감히 자신의 가족을 건드리고도 편히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절대 오산일 것이다. 강회장은 태상이 생각했던 것 그대로 똑같은 생각을 하며 이를 갈았다.

“설마 할배 자기 손자 죽일 건 아니지? 영혼이 바뀌긴 했지만 지금 할배 피로 만들어진 몸을 차지한 건 그놈이거든.”

“복수는 직접한다 이거냐?”

태상의 말을 찰떡 같이 알아듣는 강회장이었다. 태상이 씨익 웃었다.

“이래서 내가 할배를 좋아한다니까.”

“....일단 두고는 보마. 하지만 자신은 못하겠다. 놈이 내 앞에서 손자 행세를 하는 꼴을 오랫동안 참아줄 순 없을 것 같구나.”

“응. 오래 걸리지 않게 할게.”

“그나저나....아까 그 아이는 누구냐?”

강회장은 처음 현관문을 열고 나왔던 송이라는 여자아이가 눈에 밟힌 것 같았다. 태상이 큭, 하고 웃었다.

“관계가 좀 묘하네. 손주며느리이긴 한데 진짜 손주며느리는 아니니까.”

“그 여자아이와 결혼이라도 했단 거냐?”

“내가 한 건 아냐. 이명진 와이프였어. 그런데 지금은 내 여자야. 그거면 된 거 아냐?”

강회장이 태상의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의 손자가 남이 버린 것을 주웠다는 뜻이 되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남이 버린 걸 주워 쓸 만큼 대단한 아이냐?”

“이명진이 워낙 별 볼 일 없는 녀석이어서 저 여자도 대단한 여자는 아니야. 하지만 뭐 나름 이 생활에서 재미를 만들어준 여자거든. 속빈 여자들보단 나아. 적어도 저 여자애는 진심으로 이 몸뚱어리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누구한테 사랑 받는 거, 기분 좋잖아.”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 도움 필요 한 거 있으면 말 하거라. 그리고 쪽지가 그게 뭐냐? 좀 더 격하게 욕을 해줬어도 모자랄 판에...쯧!”

그가 금고에 넣어놨던 쪽지를 강회장이 꺼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도둑놈한테는 도둑질로 갚으마. - 이 명 진-]

당당하게 이름을 적어뒀고, CCTV에 얼굴도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못 찾을 수가 없는 증거들이 수두룩했다.

“그냥 약 좀 오르라고 그렇게 적어 놓은 거야.”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난 다르다. 넌 여전히 내 후계자라는 걸 잊지 말거라.”

강회장이 굳은 결심을 한 듯 말했다.

태상이 그의 말에 기겁했다.

“뭐? 그럼 지금 이 몸을 한 나한테 회사를 물려주겠다는 거야?”

“난 분명 너한테 물려주겠다고 했다. 네가 이명진이 됐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내가 정한 후계자는 여전히 너야.”

“.......”

태상이 머리를 짚었다. 이런 식으로 나올 줄 몰랐다. 아버지를 후계자로 삼지 않은 것을 보고 핏줄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할배, 나 할배 손자라서 후계자 시킨 거 아니었어?”

“아니, 내 손자라고 해도 내 마음에 차지 않았으면 그런 말 안했을 거다.”

“이야~ 냉정하네.”

“설마 이제 와서 싫다고 할 건 아니겠지?”

“음....”

태상이 시선을 회피했다. 지금 그에겐 회사보다 훨씬 더 재밌고, 집중하고 싶은 게 생겼다. 또 다시 예전처럼 회사에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곤 싶지 않았다. 지금은 회사보다 천계의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 아니잖아. 어찌됐든 그 놈을 처리 한 후에 가능 한 거니까. 내가 돌아갈 때까지 그놈 부려먹어. 알고 보니까 검사였더라고? 머리는 제법 굴러가는 놈이야. 잔뜩 기대하게 만들어줘. 그래서 놈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 모든 걸 다 빼앗아 버릴 거야.”

태상의 눈빛에 살기가 담겼다. 강회장은 그것을 눈치 채고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저 눈빛을 한 게 바로 내 자식이지.

강회장은 태상에게 실망했던 자신의 마음을 되돌렸다. 태상은 달라진 게 아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가장 많이 닮았으며, 여전히 자신을 가장 흡족하게 만들어 주는 손자였다.

태상은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난 왕자다. 감히 거지 따위가 따라 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

“으~~아! 어떻게 됐어?”

태상이 기지개를 펴며 라마스에게 물었다.

라마스는 날개를 펄럭이며 말했다.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몇 가지 의견에 집중 된 상황입니다.”

“그래?”

“첫 번째 의견으로는 악마와 똑같이 인간계에 저희들도 나가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의견으로는 몇몇 이들을 뽑아 인간계에 손을 뻗은 악마를 찾아 저지시키게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모든 이들에게 알려 천사 계약자임을 숨기도록 해서 피하자는 것이고요.”

“피하자고? 이 일이 그렇게 끝낼 수 있는 문제였어?”

“물론 아니죠....”

천사들이라고 딱히 뾰족한 수는 없는 듯 했다. 태상이 보기엔 두 번째 의견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인 듯싶었다.

“내가 봤을 때, 두 번째가 제일 합리적이야. 악마 놈들처럼 미션을 줘서 몇몇 사람들을 뽑아 일을 해결하자고. 그런데, 악마들처럼 인간계에서도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할 순 있는 거지?”

“예, 가능합니다. 이곳에서 쉽게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계약자들이 영혼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계에서는 영혼이 몸 안에 잠들어 있습니다. 악마 계약자가 주었다는 그 약은 아마 영혼을 깨우게 만드는 약일 겁니다.”

“일단 악마 놈들이 어디까지 일을 진행시켰는지, 그것부터 알아야겠어. 좀 더 자세하게 알아 본 다음에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하자고.”

“예.”

“자, 그럼 이 문제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오늘 미션은 뭐야?”

태상은 인드고의 눈물을 먹은 것 때문에 현재 몸 상태가 굉장히 좋았다. 해서 의욕이 과하게 넘치고 있었다.

“오늘은 C등급 미션입니다."

"C등급? 웬일이야?"

라마스가 지금 말하는 C등급은 예전의 그 C등급 미션을 생각하면 안 된다. 등급 안에서도 각자 난이도가 다양한데, -,+, ++ 이렇게 3가지로 나누어졌다.

예전의 C등급 미션은 C++미션이라고 볼 수 있고, 지금 라마스가 얘기하는 C등급 미션은 C-라고 생각하면 됐다. 그동안 태상을 계속 F등급에 머무르게 했던 라마스치고는 엄청나게 높은 난이도를 그에게 주는 것이었다.

태상이 의외라는 시선으로 라마스를 봤다.

라마스가 그에게 갑자기 C-등급 난이도 미션을 주게 된 것은, 태상이 C등급에서 공헌도 1위를 했던 것 때문이었다. 라마스는 그동안 자신이 태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지금부터는 그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에 주력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자신의 계약자가 얼마만큼의 능력을 갖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서포트 해주는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앞으로 태상님이 어떻게 활약하느냐에 따라 난이도를 조절 할 생각입니다. 제가 그동안 태상님을 서포터하는 데에 부족했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C등급부터 시작해서 능력을 파악하는 데에 중점을 둘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그랬어야 했으나 태상의 성격상 허무하게 죽을 것 같아 라마스가 과하게 보호를 했던 거였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성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실력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라마스의 말에 태상이 마음에 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도 바라던 바야."

태상이 말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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