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5 악마 계약자 =========================================================================
그에게 지금 당장 알려 달라 재촉을 하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놓친다면, 놈에게 방법에 대해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사라져버릴 것이다.
태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써서 놈에게 말했다.
“내 능력이 순간이동이야. 네가 지금 바로 알려주면 능력을 이용해서 바로 도망칠 수 있어.”
태상의 말에 다행이도 놈이 단 번에 걸려들었다.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근데 이거 곧바로 할 정도로 쉬운 방법은 아닌데...원래 능력은 네 여기, 영혼에 들어 있는 거거든. 그걸 밖으로 끄집어내야 해.”
그가 태상의 가슴을 꾹 누르면서 말했다. 태상이 감을 잡지 못하고 물었다.
”정확히 어떻게 하라는 거지?“
“상상력과 강한 집념이지. 이미 우린 능력을 사용해 본 적이 있잖아? 그걸 이곳에서 쓴다고 생각하면 돼. 그런데 거기에 강한 집념이 더해져야 해. 아마 그곳에서 쓸 때보다 훨씬 피로도가 많이 생길 거야. 자주 사용해야 좀 익숙해질 수 있지. 한 번 해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걸 먹어야 해.”
놈은 주머니에서 작은 환약처럼 생긴 것을 꺼내들었다.
“이거 엄청 귀한 거거든? 지난 일은 잊고 나랑 함께 일하는 걸로 퉁치자고. 어때?”
태상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르자 태상이 씨익 웃었다.
“난 이미 잊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네가 내 은인이잖아? 계약을 할 수 있게 해준.”
저 자가 방법을 알려준 것 때문에 그놈이 계약을 했고, 자신이 피해를 봤다. 그러므로 이놈은 이명진처럼 태상에게 원수라 봐도 좋았다.
태상이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놈이 마음이 놓였는지 활짝 웃었다.
“마침 네 능력이 순간이동이라니, 앞으로 우리 둘이서 미션을 하면 금방 끝내겠는데?”
살해 현장에서 빠져나올 때 아주 딱인 능력이었다. 태상이 환약을 받아들고 망설임 없이 입에 집어넣고 으적으적 씹은 후 삼켰다. 놈이 때려 입안이 엉망이 되어 있던 터라 씹어 삼키는 데 많은 고통이 따랐지만 태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자, 어때? 능력이 써지나?”
놈이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경찰이 올까싶어 주변을 살피는 듯 했다.
“이제 해봐야지.”
태상은 약을 먹고 난 후, 그가 했던 말처럼 강한 집념을 담아 놈에게 ‘무력화’를 사용하기 위해 애를 썼다. 만약 정말 써진다면 놈은 더 이상 능력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잠시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왜 안 되지? 내가 약을 잘못 줬나?”
놈이 자신의 품을 뒤적거렸다. 그 안에서 몇 가지 약을 꺼내들며 이리저리 살폈다. 그때, 갑자기 태상의 입에서 피가 역류하며 쏟아졌다. 태상의 몸이 인형이 쓰러지듯 풀썩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돌연 놈이 프흐흐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맞다맞다. 내가 깜빡하고 얘기를 안 했구나. 그 약, 여기서 먹으면 몸에 무리가 가서 죽는데. 영혼에 있는 힘을 끌어올릴 만큼 네 녀석 육체가 강하질 못해서 몸이 붕괴되거든. 진짜 미안하다. 어떡하냐? 나 때문에 너 죽겠다? 크하하하!”
놈이 낄낄 거리며 바닥에 쓰러진 태상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너..쿨럭...웁....이..자식....”
“큭큭큭, 너 진짜 멍청한 놈이다. 내가 너 따위랑 동료를 해? 함께 한다고? 감히? 나랑 네가? 너 따위 놈이 그게 가당키나 한다고 생각했냐?! 엉?”
놈이 쓰러진 태상의 몸을 발로 치며 히죽히죽 웃음을 터트렸다. 태상은 속수무책으로 놈의 발길질에 당해 쿨럭쿨럭 피를 계속해서 토해내야 했다. 온 몸이 저릿저릿하고, 힘이 빠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발버둥 쳐보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 때마침 골목 입구에 경찰들이 나타났는지 총을 든 채로 말했다.
“꼼짝 마! 손들어!!”
“하하하하하하!”
경찰이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눴음에도 놈은 여유만만 했다. 자신의 능력을 믿었던 것이다. 그가 경찰의 경고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봤다. 이미 무전을 했는지 제법 많은 수의 경찰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뭐야, 또 이렇게나 모인 거야? 정말...사람 귀찮게 하는 데 뭐 있다니까.”
그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경찰이 다시 한 번 그에게 움직이지 말라 경고를 했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아마 곧 뉴스에선 경찰들이 익사를 해 죽었다는 이야기가 한동안 떠돌게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경찰들의 경고를 무시한 그를 더 이상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이들이 이내 총 방아쇠를 당겼다. 놈이 킬킬거리며 능력을 사용했다. 놈들의 머리 쪽에 물을 소환시켜 이 물 한 방울 없는 골목에서 익사시킬 생각이었다.
“자~! 재밌는 물놀이 타임이다!!! 크하하하!”
그가 큰 목소리로 웃으며 힘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경찰 중 한 명이 위험을 느꼈는지 놈을 향해 총을 쐈다. 그 총알은 목표한 지점으로 그 무엇의 방해도 없이 도달해 박혔다.
탕! 탕탕!!!
거대한 총소리가 골목을 울리자 근처를 지나던 이들의 걸음이 멈추고 잠시 소리가 들린 방향을 항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꿀꺽.
경찰이 침을 꿀꺽 삼켰다. 경찰을 죽인 연쇄 살인범이기에 총기 사용이 가능해서 쏘긴 했지만 누군가를 죽이려 총을 쏜다는 것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어어?”
경찰들이 긴장하며 굳어 있을 무렵, 놈은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들어 역류하는 자신의 피를 멀뚱히 내려다봤다.
이상해. 왜 내 몸에서 피가 나는 거지?
자신은 분명 능력을 사용했는데, 어디에서도 물이 보이지가 않았다. 대신 자신의 가슴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왜? 하는 물음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 채 바닥에 쓰러졌다.
놈이 쓰러지자 경찰들이 여전히 총을 겨눈 상태에서 빠르게 접근했다.
[범인이 즉사했습니다. 지원 바랍니다. 민간인 한 명이 현재 숨은 붙어 있으나 위독한 상태입니다. 병원 후송이 필요합니다.]
태상은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놈의 말대로 자신의 능력이 현실에서도 사용됐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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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드십니까?”
흐릿한 시야에 태상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시야가 흐릿해 태상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 흐릿해? 눈이 안 좋아졌나...?’
이상한 느낌을 받으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어쩐지 이상하게도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태상이 잠시 혼란스러운 정신을 다잡았다.
‘그러고 보니 나 쓰러졌었지.’
갑자기 만난 악마 계약자한테 속아 피를 토하고 쓰러졌었다.
‘그럼 여긴 병원인가?’
하지만 흐릿한 시야 속에서 보이는 이는 하얀 간호사복을 입은 여자가 아니라 은은한 후광을 비추는 천사 라마스였다.
라마스....잠깐, 라마스라고?!
태상이 눈을 번쩍 뜨자 라마스가 태상을 향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정신이 드셨군요.”
“뭐...야?”
“죽어가는 상태로 이곳에 소환되셨습니다. 그리고 허락 없이 인드고의 눈물을 태상님께 사용했습니다. 임의대로 사용한 것, 정말 죄송합니다.”
“인드고....”
인드고의 눈물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만병통치약이었다. C등급 미션에서 받았던 보상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는 인드고의 눈물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깨어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냐, 괜찮아. 그거 안 먹었으면 깨어나지도 못했겠지.”
“네, 상태가 심각하셔서 어쩔 수 없이 임의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인드고의 눈물을 갖고 계셔서 다행이었죠. 아니었으면 저도 손쓸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몸에 힘이 안 들어가지?”
태상이 낑낑거리며 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쥐려 했다. 겨우겨우 오징어 구운 것처럼 구부려지긴 했지만 완전히 힘이 들어가진 않았다.
“아직 인드고의 눈물이 다 퍼지지 않았습니다. 워낙 효과가 좋아 드시고 바로 깨어나신 겁니다.”
“아...그런 거야?”
확실히 아까보단 점점 몸의 감각이 돌아오긴 하는 것 같았다. 라마스의 말대로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태상은 자신의 몸을 다시 가눌 수 있게 됐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예전보다 훨씬 개운하고 가벼운 최상의 컨디션이 됐다.
“몸 상태가 최하를 찍었다가 최상을 찍네.”
그 오묘한 감각에 태상이 자신의 몸을 쓸었다.
“몸은 예전보다 훨씬 좋아지셨을 겁니다. 현재 태상님 능력치는 힘 최상급 체력 최상급 민첩 상급 지능 최상급으로 단계가 올라가셨습니다.”
“뭐? 진짜? 인드고가 엄청 좋은 거긴 했구나.”
C등급에 나올 보상이 아니라고 하더니 이 정도까지 능력을 올려줄 줄은 몰랐다. 태상은 뜻밖의 횡재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가요? 태상님의 몸에 깃들어 있는 이상한 힘이 느껴집니다. 악마의 것이 분명한데....”
라마스의 말에 아참! 하며 태상이 오늘 있었던 일들을 그에게 말했다. 악마들이 현실에서까지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말이다. 라마스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그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설마 그들이 그런 짓까지....”
라마스의 기세가 심상치가 않았다. 태상은 주변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의 몸을 옥죄어 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크읏...! 라마스?!”
“핫! 아...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라마스가 분노한 게 분명했다. 그 분노로 인해 생긴 살기가 태상의 몸을 짓눌렀던 것이다. 태상은 괜히 A등급 천사가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라마스는 강자였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알려다가 건네 준 환약을 먹고 이 상태가 되셨다는 거죠?”
“맞아.”
“악마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하네요. 그러지 않고서야 질서를 어지럽히는 천벌을 저지르다니....”
“만약 그들이 좀 더 많은 능력자들한테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어떡하지?”
이건 태상에게도 큰 문제가 된다. 천사들이 지키고 싶은 자신만의 세계가 있듯이 태상도 현실이 그런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이 천사와 악마들의 싸움에 엉망이 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저것들이 현실을 엉망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물론입니다. 무슨 수를 써야겠네요. 이런 큰 정보를 얻어와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 사실을 늦게 알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라마스는 당장 다른 천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다른 천사들에게 직접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라마스의 부탁에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으나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못해줄 것이 없는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태상이 직접 겪은 것을 천사들에게 애기해주어 상황의 심각성을 전달해주길 바랐다.
그동안 태상은 천사들이 모여 있는 곳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가 본 천사라고는 라마스와 미션지로 이동시켜주는 천사, 그리고 C등급 공헌도 1위를 했을 때 보상을 받느라 본 천사 셋뿐이었다.
미션을 함께 할 사람들을 구하는 공간이 있듯이, 천사들이 생활하고 모여있는 공간도 따로 있는 듯 했다.
“아마 보시면 좀 많이 놀라 실지도 모릅니다.”
라마스가 공간을 이동하기 전에 머뭇대다가 말했다. 태상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해 괜찮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이내 깜짝 놀라고 말았다. 라마스의 말대로 정말 그는 천사들이 지내는 곳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사들이 지내는 공간이다 보니 천국과 비슷한 곳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생각과 180도 다른 곳이었다. 차라리 천사가 아니라 악마가 살면 이해는 하겠다 싶었다.
천사들이 지내는 곳은 붉은 바위들로 가득했다. 붉은 돌이 주변에 퍼져있어, 온통 울룩불룩하고 험난한 지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태상이 놀라는 표정을 지어서 인지 라마스가 묻지도 않은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원래 이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악마들과 전투를 하다보니 이렇게 변해버리고 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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