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24화 (24/251)

00024  악마 계약자  =========================================================================

“이런 일들이 아주 많이 일어납니까?”

“지금 아쿠아맨이 일으킨 살인사건은 총 3건이에요. 미제 사건으로 넘겨지려다가 저희 부에 들어왔고요.”

“아쿠아맨?”

“제가 한 번 지어봤어요. 어떤가요?”

“여기, 이번 사건에 대한 서류 입니다.”

그에게 괜스레 커피를 건넸다가 무안을 당했던 남자가 태상에게 서류더미를 주었다. 서류의 두께가 어마어마했고, 태상은 이런 사건 서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난감했다. 하지만 일단 그의 흥미를 끄는 사건이었기에 잠시 사표를 내는 건 뒤로 하고 봐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 형사들이 놈이 있는 곳에 매복해 있다고 해요. 저희들도 빨리 가 봐요.”

여자가 태상을 재촉하자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원래 검사가 현장까지 나갑니까?”

“...네? 새삼스레 왜 그러세요. 여태까지 계속 현장 고집하신 건 검사님이시잖아요.”

‘이런.’

어리둥절해 하며 그녀가 말하자 태상이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하여튼 이래저래 사람 여간 귀찮게 하는 놈이었다.

“아~ 그랬었지? 잠깐 착각했네. 알다시피 좀 아팠어서.”

“아직 회복 다 안 되신 거에요? 그럼 현장은 저희들끼리 나갈게요.”

“아니, 괜찮아요. 저도 갈 겁니다. 사건이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워서.”

자신과 아예 동떨어진 일들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지면 아무래도 태상은 이 때 아닌 검사직을 계속 유지해야 할 것도 같았다. 분명 그런 짓을 저지른 놈은 천사나 악마와 계약을 한 능력자일 것이다.

헌데 그가 어떻게 현실에서도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가만히 두고 봤다간 아주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정부에서 괜히 이런 부서를 만들어서 수사를 하게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힘을 사용하는 이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현실세계가 엉망이 될 수도 있었다.

그들의 힘은 라마스가 말 한 것처럼 굉장히 위험하다. 사람들 쉽게 죽일 수 있으며, 그 힘을 악용하려 한다면 할 수 있는 나쁜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무슨 꿍꿍이로 그 힘을 이용해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곳에서 힘을 사용할 수 있는지도 알아내야 했다.

“갑시다.”

태상이 어서 안내하라는 듯 그들에게 손짓했다.

“아! 네.”

태상은 차로 이동하며 여자에게서 더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놈에게 당한 피해자들에게는 어떠한 공통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그의 기억에 남았다.

사는 지역도, 직업도, 성별도 다 가지각색이었다고 했다.

세 명의 피해자 모두 같은 방법으로 살해당한 것 빼고는 서로 안면조차 없는 사이여서 수사에 난황이었는데 마침 목격자가 나와 희망이 생긴 것이다.

태상이 도착하자 사방에 경찰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에는 물웅덩이까지 생겨나 있어서 무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다고 생각됐다. 여자가 기겁을 하며 일단 119에 신고를 했고, 태상은 차문을 열고 나와 현장을 살폈다.

경찰들 모두가 목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온몸이 푹 젖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살해당했다는 방법으로 모두가 당한 것 같았다.

“뭐, 뭐에요? 죽은 거에요?!”

차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부르는 것으로 이름을 안 태상이다. 여자의 이름은 도정희였고, 남자는 강적우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일단 여기에서 사고 수습하고 있어요.”

“어...어어!! 어디가세요!!!”

정희가 호들갑을 떠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태상은 뛰기 시작했다.

아직 놈이 이곳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태상은 이상하게도 놈이 근처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뛰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면 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인적드믄 골목 안에 들어서자 누군가가 그의 등을 공격했다.

태상이 뒤로 나가떨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단 누군가가 그를 공격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기에 그가 재빨리 몸을 돌려 상대를 봤다.

“누구냐!?”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후드티를 입고 있어 놈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체격이 남자인지라 성별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놈이 누구일 것 같다는 짐작은 됐다.

그의 등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때린 건 분명 물이었다. 놈이 물로 그를 친 게 분명했다.

“아직도 포기를 못한 거냐?”

갑자기 놈이 알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태상이 입을 다물고 놈을 노려봤다. 놈이 킬킬 웃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우리처럼은 못 된다니까? 난 선택받은 사람이고 넌 그저 그런 운명을 가진 놈일 뿐이지. 이 정도 알려줬는데도 계약을 못했으면 그냥 포기하는 게 어때?”

‘놈이 이명진과 아는 사이군.’

태상은 놈이 천사와 악마들 사이에 관련 된 이였음을 깨달았다. 놈은 태상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낄낄 웃으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명진아? 대답해야지?”

남자는 그를 굉장히 무시하고 깔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명진은 그가 가진 힘을 갖기 위해 놈에게 일부러 접근을 했던 것 같았다. 저놈에게서 힌트를 얻었고, 결국 그는 힘을 갖는데 성공하게 된 것이리라.

놈은 아직 이명진이 성공을 했다는 걸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태상은 잠시 이명진 행세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한테서 강제적으로 듣는 것보다 이명진 행세를 해서 캐내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아보였다.

“어떻게 그 힘을 이곳에서 쓸 수 있는 거지?”

“저번에 네가 날 한 번 놔준 대가로 살짝 알려주긴 했지만 내가 그랬다고 너랑 친구 먹은 건 아니지. 내가 그 말에 대답을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거야??”

“왜 이런 짓을 하지? 싸이코패스라도 되는 건가? 부족한 거 없잖아. 그런데 왜 사람을 죽이지? 그들이 누구이기에?”

퍽!

“큭!”

말이 거슬렸는지 놈이 주먹으로 태상의 얼굴을 때렸다. 태상은 저 멀리 나가떨어지며 또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때린 뺨이 얼얼하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한 방에 사람을 멀리 나가트리진 못한다.

태상은 헉헉 숨을 겨우겨우 몰아쉬며 입 안에 고인 피를 퉤하고 뱉었다. 뺨이 빠른 속도로 붓고 있었다. 이빨이 몇 개 나갔는지 모르겠으나 침을 뱉을 때 이물질이 함께 뱉어졌다.

“어이어이, 명진이. 너 너무 태도가 당당하다? 지금 나한테 납작 엎드려야 내가 말을 해줄까 말까 한 거 아니었나? 아무리 해봐도 안 되서 막 나가자 다짐한 거야 뭐야? 그런 태도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겠어?”

‘개새끼! 비굴한 짓은 다 하고 다녔군. 이딴 쓰레기한테 기어서라도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거냐?’

그놈이 한 행동이 자신이 한 것으로 취급받는 건 무척이나 열 받는 일이었다. 분하지만 지금 그곳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저놈을 태상이 당해낼 순 없었다.

“내가 그렇게 빈다고 해도 네가 말을 할까? 그럴 사람으로 안 보이는데.”

“그건 네가 하기에 달렸지. 난 지금 굉장히 화가 나 있다고. 갑자기 경찰이 나한테 총을 겨눴단 말이지. 이런 일이 있으면 재깍재깍 나한테 연락을 했어야 할 것 아냐!?”

“....크읏...!”

태상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놈은 태상이 자신을 절대 해코지 할 수 없을 거란 확신을 갖고 있었는지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휘청휘청 잠시 균형을 잡지 못하던 태상이 벽을 짚고 일어나 입가를 닦아냈다.

손등에 피가 묻어나왔다.

놈의 태도가 아무래도 영 호의적이지 못했다. 이명진이랑 같은 편인 줄 알고 놈을 떠보려 했는데 아무래도 이건 잘 못 된 선택인 것 같았다. 그는 놈의 반응을 좀 더 이끌어 내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패를 조금 꺼내보기로 했다.

“근데 말이야. 넌 왜 내가 당연히 실패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나한테 알려줬잖아. 방법을.”

“....그게 무슨 뜻이냐? 지금 네가 계약을 했다는 거야?”

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명진은 놈에게 벌레와 같은 놈일 뿐이었다. 그런 놈이 자신과 똑같이 악마에게 선택을 받았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네가 악마랑 계약했다고? 네가? 너 까짓 게?”

‘악마 계약자!’

태상은 더욱 조심스럽게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이면 놈이 천사 쪽이 아닌 악마 쪽이었다. 그 뜻은 이곳에서나 저곳에서나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눠야 하는 사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하! 거짓말 치지 마!! 악마와 계약을 했으면 네가 지금 이 꼴을...이...꼴..을...”

놈이 태상이 입은 옷과 액세서리들이 눈에 들어오는지 말끝을 흐렸다. 악마에게 소원을 빌 때 거의 대부분이 비는 소원이 바로 ‘돈’에 관한 것이었다. 그도 악마에게 돈을 달라고 했었다. 그러니 명진도 그런 소원을 빌었을 확률이 높았다.

명진이 얼마나 못 사는 놈인지 잘 알고 있었던 그는 그가 입은 옷이며 액세서리들이 싸구려가 아니라는 것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했다.

놈은 절대 저런 수준의 것들을 걸칠 게 못 된다.

평소에도 명품을 하고 다니긴 했지만 억 소리 나는 악세서리를 할 만큼의 여유는 되질 않았다.

“지, 진짜 네가 계약을 한 거야? 악마와?”

“그래. 했지. 네가 방법을 알려준 덕분에 할 수 있었어.”

“하!”

그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듯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털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정리했는지 태상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태상이 그의 눈동자에 지지 않고 바라보자 놈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런 거면 진즉 얘기를 하지. 그랬으면 내가 이렇게까지는 안 했잖아. 괜히 미안하네. 동료끼리.”

그가 태상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놈은 태상이 악마와 계약했다는 말을 믿고부터는 오히려 친근감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어떤 악마와 계약을 했냐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를 캐묻기 시작했다. 태상은 남자의 변한 태도에 속으로 어처구니없어 하다가 이내 말했다.

“내가 먼저 말을 안했으니 이건 그냥 넘어갈게. 덕분에 계약할 수 있었던 것도 있으니까. 난 너랑 적이 되고 싶지 않아. 어차피 우린 동료잖아. 그런데 문제는 네가 너무 과하게 티를 내면서 행동하고 있다는 거야. 이런 식으로 정보를 다 흘리면 이곳 생활이 완전 엉망이 될 거라고.”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천사 계약자 놈들을 죽일 방법은 이곳밖에 없으니까. 무리해서라도 죽일 수밖에 없다고. 여기 아니면 언제 천사 계약자 놈들 50명을 죽이겠어? 내가 너 계약자 된 기념으로 특별하게 미션에 껴줄까? 보상 점수가 엄청나다니까?”

놈의 말을 들으니 슬슬 이곳에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이 보였다. 놈이 죽인 이들이 왜 공통점이 없었는지도 밝혀진 상황이었다.

이놈은 현실에서 천사계약자를 죽여 미션을 완수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 거야? 현실에서 능력 사용 못 하지 않나?”

“다 방법이 있지.”

놈은 정말 방법이 있는지 자신만만했다. 태상은 놈에게 그것을 알아내고 싶었다.

“나도 알려줘. 널 도와줄 수 있어.”

“미션 같이 할 생각 있다는 거지?”

“물론, 점수만 준다면야 못 할 게 없지.”

태상이 일부러 속물같은 말을 하자 놈이 굉장히 흡족해했다. 태상이야 당연히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여기에서도 능력을 쓸 수 있는 방법은 말이야.....”

놈이 태상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태상이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저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삐용 삐용

‘젠장!’

태상이 미간을 찌푸렸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듣지 못했으니 당연하게도 그랬다.

"이런, 벌써 경찰이 떳네."

일단 몸을 피해야 하기에 놈이 방법을 나중에 그곳에서 알려주겠다고 말해왔다. 그가 말하는 그곳이란 당연하게도 꿈 속에 들어가면 접속할 수 있는 천사와 악마의 세계를 애기하는 거였다. 하지만 태상은 놈이 있는 악마진형에 절대 갈 수 없는 몸이었다.

알다시피 그는 악마가 아니라 천사쪽 계약자이기 때문이다.

태상은 난감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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