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1 C등급 미션 =========================================================================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전투가 시작되려 하는 것인지 쿵! 쿵! 북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반의 길드가 다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무기를 꺼내들었다.
“이제 드디어 시작이군. 가자.”
태상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그들을 따라 이동했다. 태상처럼 공격능력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션을 받은 이들은 뒤쪽에서 이동하고, 악마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길드는 앞 쪽에서 이동을 했다.
숲속 길을 따라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보통 나무는 갈색과 초록색으로 이뤄져야 하는 게 맞는데 풀잎들이 모두 검은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건 흙도 마찬가지였다.
이 공간 자체가 다 그런 건가 싶을 수도 있지만 그건 절대 아니었다. 태상이 숲길을 걷기 시작한 초입에서는 이런 색을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게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왜 흙이며 나무며 전부 검은색이지? 원래 이런 거야?”
태상이 궁금해져 묻자 다니엘이 대답을 해주었다.
“악마 때문이다.”
“악마 때문에?”
“역겨운 놈들이지. 이 땅을 자기네 땅으로 바꾸려고 수작을 부리는 거야. 이게 전부 퍼지면 이곳은 악마 놈들의 것이 될 거다. 그땐 다른 악마 놈들이 잔뜩 몰려와서 손을 쓸 수 없을 거고.”
라마스가 알려 준 메로메로라는 녀석을 보는 건 그 후로부터 조금 더 숲길을 걸어야 했다. 놈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태상은 숨이 막혀 옴을 느꼈다. 긴장 때문에 이런 느낌이 드는 줄 알았던 태상은 그 답답함이 자신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갑자기 강한 악마를 만나서 그래요. 적응되면 괜찮아 지실 거에요.”
레베카가 의젓하게도 태상을 다독여주었다. 태상은 어쩐지 어른이 어린아이한테 위로 받은 아이러니한 느낌이 들어 헛웃음을 지었다.
“저놈이다.”
“저게 C등급 악마?”
누군가가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 쭉 시선을 움직이니 드디어 그가 보고 싶어 했던 악마의 모습이 드러났다. 태상은 어마어마한 덩치에 놀라 잠시 몸을 굳혀야 했다.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한 놈이었다.
“아니, 천사랑 너무 차이가 심한 거 아니야?”
태상이 어이가 없어 말했다. 반이 그 말을 듣더니 킬킬 웃음을 터트렸다.
“천사는 우리랑 비슷하게 생겨서 악마도 그럴 거라 생각했구나?”
“아니, C등급이 저 정도면 도대체 그 위에 놈들은 어쩌라는 건데.”
메로메로는 마치 젤리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슬라임이라는 게임 몬스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시커먼 놈이 꾸물꾸물거리며 떡하니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눈 코 입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코끼리가 5마리는 붙어 있는 크기의 메로메로가 갑자기 입을 쩌억 벌렸다. 그 속에 있는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나자 몇몇 능력자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절로 겁을 집어 먹게 만드는 크기와 생김새의 악마에 비해 천사들은 인간과 조금 더 클 뿐 그 크기가 악마들의 덩치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천사들은 놈들과 전쟁에서 오랫동안 밀리지 않았지. 크기만 크다고 강한 게 아니라는 뜻이야.”
“기분 나쁘게 생겼어요.”
“만져보면 더 기분이 나쁠 것 같군. 미끌미끌 거릴 것 같아.”
반, 레베카 그리고 다니엘 순서로 말을 했다. 메로메로도 많은 이들의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놈의 몸이 꿈틀거리자 바닥에 잔잔한 진동이 울렸다.
“놈이 우릴 봤군.”
“바로 공격 시작하죠.”
“그래야겠어. 넌 뒤쪽으로 빠져 있어라.”
반이 태상을 뒤로 밀고, 앞으로 나섰다. 그와 동시에 몇몇 이들이 그의 옆으로 와 방패를 꺼내들었다.
“한 군데로 데미지를 집중해야 한다. 생채기만 내면 놈은 끝이야.”
하지만 생채기를 내는 게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쉽지 않다고 해서 포기할 사람은 없었다.
태상은 뒤쪽으로 물러나 다른 이들이 메로메로를 공격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라마스의 말처럼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나섰다가 민폐를 끼칠 수 있었다. 그러니 그가 가만히 있어주는 게 올바른 일이었다.
메로메로를 공격하는 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메로메로는 끄떡 하지를 않았다. 수많은 공격을 너끈히 견뎌내면서 그가 우워어어어~~하는 큰 포효 소리를 냈다.
“크윽!”
아무래도 놈이 포효소리엔 공격이 담겨 있는 듯 했다. 몇몇 이들의 귀에서 피가 흐르며 고통스러워하다 쓰러지는 일이 생겨난 것이다. 그 현상은 뒤쪽으로 가면 갈 수록 심해졌다.
앞 쪽에서 공격을 하는 이들은 별 다른 데미지를 입지 않았지만 그들에 비해 약한 뒤쪽 사람들에겐 여파가 심했다.
“다들 조심해!”
가장 크게 데미지를 입은 건 아무래도 레베카였다. 그녀는 태상과 비슷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힐러라는 특성상 앞 쪽에서 전투를 대비해야 했다.
레베카도 귀에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 했다. 아무래도 놈보다 약한 이들이 포효 소리에 당한 듯싶었다. 그에 비해 이상하게도 태상의 몸은 멀쩡했다. 때문에 휘청거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레베카를 태상이 대신 챙겼다.
“흐으으윽....하윽...!!”
신음을 흘리는 레베카를 위해 태상이 해줄 것은 없었다. 레베카가 힐러이지 그가 힐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힐러도 아니고 도대체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거야?!’
레베카가 힘들어해도 그녀의 몸을 부축해 주는 것 빼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만약 놈이 또 다시 같은 공격을 한다면 레베카가 더욱 심하게 다칠 게 빤했다.
태상은 그녀를 이곳에서 멀어지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레베카가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저, 저... 괜찮아요. 멀쩡해요.”
“너 귀에서 피나는 거 알아? 내 목소리 들리기나 하냐?”
“정말 괜찮아요....잠시 제가 정신을 못 차렸어요. 다른 사람들 많이 다쳤죠? 제가 치료할게요.”
레베카가 계속해서 자신은 괜찮다고 중얼거렸지만 태상이 보기에는 그녀의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태상은 자신이 놈의 공격에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레베카는 어느새 자신의 몸에서 이상한 빛을 내뿜더니 정말 괜찮아진 듯 창백한 안색에서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레베카가 휘청거리면서도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치료했다.
태상은 이번에도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무력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자신은 누군가의 뒤에서 몸을 숨기거나 싸움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가만히 서서 라마스의 말대로 보상만 받고 가기에는 그의 성미에 맞지가 않았다.
놈의 공격에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아 태상은 자신의 실력이 놈에게 아예 당해내지 못할 만큼 약하지 않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반의 길드는 자신을 원거리 능력자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에겐 숨겨진 다른 능력이 있었다.
만약 자신의 능력이 저 악마놈에게 먹힌다면 어떻게 될까?
솔직히 먹힐 거란 생각은 안 들었다. 그 정도로 약한 놈이 아닐 테니 말이다. 그래도 아예 시도를 안 해보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
반이 절대 나서지 말라고 했지만 이건 엄연히 나서는 게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갈 필요도 없었다. 그냥 놈이 시야에만 있으면 자신의 능력을 쓸 수 있었다.
한편 메로메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안나의 단검이 놈의 몸을 주욱 길게 그어졌다. 메로메로의 피가 사방으로 튀며 안나의 몸에 튀자 그녀가 큭! 하고 신음을 흘렸다.
그의 피가 안나의 살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놈의 피는 독성이 강해서 인지 강한 통증을 유발시켰다. 그녀는 다친 팔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났다. 어차피 안나가 해야 할 일은 메로메로에게 상처를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 했으면 다른 이들이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이곳에 온 것이 C등급 악마를 잡으러 온 게 아니라, 도움을 주러 온 것이었다. 너무 그녀만 활약하면 안 됐다.
그러니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안나가 뒤로 물러나자 다른 계약자들이 그 쪽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콰아앙!!!
그때였다. 갑자기 일행이 몰려 있는 곳을 향해 무언가가 날아와 폭발 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비하지 못한 이들이 공격을 맞고 그대로 몸을 축 늘어트렸다.
“악마 계약자다!!!!”
악마의 생김새가 다르듯이 계약자도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천사들 계약자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똑같은 사람이었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서로 계약을 맺은 이들이 천사와 악마로 갈라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공격을 시작했다.
계약자는 영악하게도 일행들을 기습해서 공격해 혼을 쏙 빼놓고 도망을 쳤다.
악마 계약자가 나타날 것은 반 일행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계약자가 다수인 천사 쪽과 정면 대결을 하면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을 텐데 나타났다는 것이 이해되질 않았다.
"악마 계약자를 쫓아!"
반이 말하자 계약자들 중 몇이 나서서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악마 계약자가 나타난 효과는 이미 충분히 본 후였다. 다른 이들의 공격이 주춤한 사이 악마가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해버렸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계약자가 튀어나왔나 했더니 저 이유 때문인 듯 했다.
방어력이 뛰어난 메로메로가 버텨서 시간을 끌면, 이곳을 완전히 오염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상처가 다시 치료됐습니다!”
“젠장, 어떡하지?”
안나는 팔을 다친 터라 또 다시 메로메로에게 접근해서 공격을 성공시킬 자신이 없었다. 레베카에게 치료를 부탁하려고 했지만, 메로메로의 공격으로 다친 사람들이 많아 그럴 수가 없었다.
안나는 자신이 다시 한 번 가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위험한 것 같아요. 제가 가서 그냥 끝낼게요."
하지만 반은 안나를 막아섰다. 고작 C등급 난이도에서 안나를 잃을 수는 없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진형을 맞추고, 천천히 하면 돼.”
“지금 시간이 없잖아요. 저놈들이 시간 끌려는 속셈인 거 아시면서 그런 말을 하세요?”
“날 잊은 건 아니겠지? 너무 혼자서만 활약하려고 하면 곤란해. C등급이라서 내가 굳이 나설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겠네.”
안나를 다니엘이 막아섰다. 안나 못지 않게 다니엘도 뛰어난 원거리 능력자였다. 반이 거 보라며 안나를 뒤로 물렸다.
“넌 뒤로 가서 치료나 받아! 아직까지 안 받고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
다니엘이 나서자 안나도 더 이상 자신이 하겠다고 나설 수가 없었다. 그녀가 뒤로 물러나자 반이 진지한 눈빛을 하며 다니엘에게 물었다.
“할 수 있겠어?‘
순간 데미지는 다니엘보다 안나가 더 뛰어났다.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치명타 터지면 어떻게 될 것도 같아요. 그리고 안 되면 될 때까지 공격하면 되죠. C등급 악마를 상대 못하면 B등급 능력자 자격이 없는 거고요. 제까짓 게 방어력이 높으면 얼마나 높다고....”
다니엘이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그 순간 태상이 메로메로를 향해 능력을 사용했다.
태상의 능력은 ‘무력화’.
대상의 방어, 힘, 스킬 등을 모두 무력화 시키는 능력이었다. 메로메로에게 얼마나 효과가 먹혀들어갈지 모르지만 태상은 혹시나 하는 희망을 담아 사용했다.
다니엘이 화살이 시위를 떠나 빠른 속도로 메로메로에게 접근했다.
그의 화살은 단순한 화살이 아니었다. 화살 주위에는 파지직파지직하는 힘의 소용돌이가 화살의 공격력을 높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이 악마에게 닿은 순간, 메로메로는 귀를 찌를 듯이 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키에에에에에엑!!!!!!!!
“뭐, 뭐야?”
“성공했다!! 성공했어! 당장 공격해!”
활은 메로메로에게 닿아 퍼어엉! 하고 터졌다. 메로메로의 피가 사방으로 튀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 잠깐의 찰나를 놓치지 않고 저마다 공격을 시작했다.
아무리 방어력이 높다 해도 상처가 난 곳을 집중적으로 많은 이들이 공격하는 것은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의 계약자는 천사 쪽 계약자에게 쫓기느라 메로메로를 도울 수 없었다. 메로메로가 쏟아지는 공격을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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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지각했네요. 죄송합니다. 선추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