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0 C등급 미션 =========================================================================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전혀 색다른 공간에 서 있었다. 그곳은 아주 분주했으며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저곳 분주하게 움직이며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C등급 악마를 죽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었다. 굉장히 바쁜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이들이 많았다.
“마든 길드원들은 이쪽에 오셔서 보급품 받아 가세요!!!!!”
“에샤 길드!! 모이세요!! 에샤 길드원은 이쪽으로 모여요!!”
‘길드...’
처음에는 그냥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있는 줄 알았는데, 나름 그들만의 체계가 있는 듯 했다. 슬슬 전투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각자 끼리끼리 모이기 시작했다.
‘이래서 라마스가 길드를 들라고 했던 건가?’
태상에게는 예전에 반이 주었던 스크롤이 고이 모셔져 있었다. 아직은 길드에 들고 싶은 마음이 없어 스크롤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자신도 길드에 들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길드에 들면 확실히 도움을 받을 수 있어 편하긴 편한 듯 했다. 자신이 마든 길드 소속이라고 하자 여러 가지 물품들을 챙겨주는 게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기 혹시 태상씨 아니에요?”
“....?”
갑자기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태상이 뭐지? 하는 얼굴로 뒤를 돌자 어떤 여자가 그를 보며 아는 척을 해오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를 아는 이가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누구...?”
“아..! 저 기억 안 나세요? 레베카인데....”
“레베카? 레베카라고?”
태상이 놀라 되물었다. 레베카는 그가 처음 F등급 미션을 했을 때 만났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차림새에선 도저히 그때 그 여자라고 추즉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지금 굉장히 이곳 사람다운 복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흰색 로브를 입고, 화려한 무늬를 지닌 지팡이를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딱 보기에도 게임 속 마법사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레베카가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왜 연락 안하셨어요. 기다렸는데.”
레베카는 그가 길드에 들어올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보통 대부분 길드에 들고 싶어 안달이기 때문이다. 길드에 들어가면 실보다 득이 많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원해주고, 보호해주고, 모르는 것을 알려주기까지 하니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 소식이 없어 의아했던 참이었다.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이야! 아무래도 저희 길드랑 인연이신가봐요.”
레베카는 예전의 소심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녀의 몸짓에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보지 못했던 시간동안 그녀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았다.
“반도 여기에 있어?”
“네. 저희 길드 많이 참가했어요. 아무래도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요.”
낮은 등급의 미션은 많은데 비해 등급이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미션이 별로 없었다. 그 정도 되는 악마라면 이성이 존재하며, 심지어는 제법 강한 계약자까지 계약 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가 쉽게 천사들에게 몸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해서 C등급 악마를 죽이는, 더욱이 이런 대규모 레이드는 아주 오랜만의 일인 것이다.
“선착순 마감이어서 다는 못 들어왔는데, 다들 오랜만에 좋은 미션이 떠서 들떠있어요. 혹시 길드 들지 않으셨으면 저희가 있는 곳에 가실래요?”
만약 태상이 다른 길드에 들어갔다면 그녀가 그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태상은 아직까지도 길드에 들지 않았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해봐야 일주일 조금 더 지난 시간이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 제법 반가울 것 같았다.
“반 아저씨랑 다니엘 오빠랑 안나 언니는 거의 제 교육 담당이시라서 제가 하는 미션에는 거의 다 참여하셨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반과 다니엘, 안나는 C등급 미션이 떠도 다른 이들에게 양보를 하는 수준이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레베카 때문에 참여 했다고 말했다.
괜스레 자신 때문에 귀찮은 일을 자꾸 떠맡는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며 레베카는 연신 가는 길에 재잘댔다. 이렇게 말이 많은 아이인 줄 몰랐기에 태상은 변한 레베카의 모습에 잠시 당황해야 했다.
하지만 바뀐 그녀의 성격이 그다지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활발한 게 보기가 더 좋았다. 아마 그녀의 변화에 도움을 준 게 그 길드원들 덕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좋아보이네.”
“다들 정말 잘해주세요. 칭찬도 해주시고, 격려도 해주시고...다들 친절하시고.....정말 이렇게 도움만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에요.”
레베카는 연신 자신의 길드를 칭찬하며 태상의 눈치를 힐끗힐끗 봤다. 그녀의 속셈이 무엇인지 태상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도 길드에 들었으면 하는 마음인 것이다. 태상은 그녀의 속 마음을 모르는 척 하며 따라가 반과 다니엘 그리고 안나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레베카가 낯익은 얼굴인 태상을 데려오자 가장 반가워한 것은 반이었다.
“너!! 이 녀석! 왜 그동안 소식이 없었던 거야? 죽은 줄 알았잖다 이놈아!”
반이 하하하 웃으면서 태상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태상은 씨익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뭐, 다시 만나도 별 생각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시 만나니 반갑네. 오랜만.”
반이 손을 흔들며 안나와 다니엘에게까지도 인사를 해왔다. 그들이 반처럼 그를 반긴 건 아니었지만 그의 등장이 마냥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누구야?”
근처에 있던 다른 길드원들이 태상에 대해 묻자 다니엘이 반이 말하던 이라며 귀띔을 해주었다.
“아~! 그 싹 보인다는 그 놈?!”
길드원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태상을 봤다. 반은 태상에게 물어 볼 것이 많은지 연신 질문을 던졌다.
“여긴 미션 받아서 온 거냐?”
“응. 갑자기 다짜고짜 미션 받으라고 해서 받았더니 그렇게 됐어.”
태상의 말에 반이 놀란 얼굴을 했다. 이 미션에 대한 정보를 남들보다 빠르게 알았다는 건 태상의 계약자 천사의 등급이 높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보통 천사의 등급이 높은 자들은 계약자들도 그만큼의 실력을 갖춘 이들이 많았다.
반의 천사도 B등급이었는데, 그의 실력이 A~B등급 악마를 죽일 정도의 실력이니 천사의 실력과 엇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 미션은 B등급 천사인 그의 계약자도 겨우 정보를 얻어 그에게 알려준 미션이었다.
그런데 태상의 계약자가 그 소식을 미리 알았다고 하니 어쩌면 자신이 계약한 천사보다 등급이 높을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네 담당 천사 등급이 꽤나 높은가보다? 이런 정보를 너한테 던져도 주고.”
“글쎄, 높은 것 같긴 한데 영 새가슴이야. 계집애도 아니고... 마음에 안 들어.”
천사는 무성이다. 가슴이 나와 있어도, 혹은 가슴이 없다고 해도 그들을 여성이니 남성이니 하는 것으로 지칭할 수 없었다.
태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라마스의 답답한 행동이 떠올라 한숨을 쉬었다. 반이 힘내라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보아하니 천사랑 뭐가 잘 안 맞는 것 같은데, 네가 참으라고. 부모님 말 들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되듯이 천사 말 잘 들으면 피는 안 되더라도 피를 덜 흘릴 순 있을 거다.”
‘아끼다 똥만들어 버릴 것 같던데.’
태상이 반의 말에 속으로 투덜거렸다.
도대체 언제까지 F등급에서 자신을 놀게 할 건지 모르겠다. 이번 C등급 미션에서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면 라마스의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투 준비는 한 거냐? 꼴을 보아하니 아무 것도 없이 그냥 멘 몸으로 온 것 같은데.”
“그냥 미션완수 보상이나 받고 떨어지래. 어디 안전한 곳에 짱 박혀 있고 말이야. 나설 생각 말라는 거지.”
태상이 불만스러워하는 얼굴이 가득이자 반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보기엔 태상이 그런 천사의 권유를 얌전하게 들을 성격은 아니었다. 천사가 아무래도 태상에게 굉장히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같아보였다.
“어디까지나 네가 위험해질까봐 걱정 돼서 그런 거다. 솔직히 아직 네 실력이면 네 천사 말을 들어야 하는 게 맞아. C등급 악마한테 한 번 맞으면 바로 골로 갈 수도 있거든. 허무하게 죽긴 싫을 거 아냐?”
"레베카는 지금 몇 등급 미션 해?"
“E등급 하고 있지.”
“거봐! 레베카도 E등급 미션을 하는데 나는 왜 여전히 F등급을 하고 있냐고.”
“레베카는 길드가 있고, 넌 없잖아. 그러니까 네 천사가 걱정 돼서 F등급 미션만 주는 거지.”
반의 지적은 예리했다. 라마스가 그에게 좀 더 높은 난이도 미션을 주지 않는 것은 그가 길드가 없기 때문이 맞다. 길드의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지 못했다.
“길드를 꼭 반드시 들어야 하는 거야? 난 내 일에 남이 간섭하는 거 싫어 해.”
“길드를 너무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줬으면 하는데. 우린 그저 동료들을 도우려는 의도일 뿐이야. 그들을 도와야 함께 싸울 전우가 생기는 거니까. 그리고 강한 동료가 있어야 우리가 조금이라도 살 가능성이 생기는 거고.”
“......”
단순히 길드를 한 사람을 억압하고, 참견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며 반이 태상의 선입견을 꼬집었다.
오히려 길드에 들면 다양한 사람과 친분을 쌓을 수 있어 훨씬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태상은 반의 말에 점점 길드라는 곳을 들어야 하는 필요성을 깨닫고 있었다.
“길드라는 거, 그렇게 꼭 필요한 곳이라는 거지?”
“거의 필수적이지. 길드에 들지 않은 이들은 결국 죽고 마니까. 이곳에선 홀로 살아남을 수 없다. 반드시 서로 돕고 의지 해야 해.”
단호한 반의 얼굴을 보며 태상이 깊게 깨닫는 것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생각을 좀 더 해봐야겠네.”
“우리 길드는 네게 여전히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으니 부담 갖고 잘 생각해 보라고.”
“...보통 부담 안 가지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네가 너무 우리 길드를 쉽게 보는 것 같아서. 원래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를 걸쳐야 들어 올 수 있는 길드거든 우리 길드가.”
둘은 나이 차이가 꽤 있었지만 서로 뒤끝 없는 성격을 알기에 다른 이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해서 태상도 만약 길드에 든다면 그가 있는 길드에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말이다.
태상은 일단 이번 미션은 반의 일행과 함께 하기로 했다.
반의 일행은 C등급 악마와 직접적으로 가까이 가서 싸워햐 하는 길드였다. 태상은 그 파티에 겁도 없이 끼겠다며 나섰다.
“그러다가 죽으면 후회해도 소용없는데.”
안나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쪽한테 살려달라고 빌붙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시고. 어떻게, 해 줄 거야? 말거야?”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것도 좋은 경험일 테니까. 어차피 안전이야 우리가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되고....그대신 섣불리 나서서 공격하려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어때?"
"그럴게."
태상이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이 공격을 한다 해도 먹히지 않을 놈이라는 건 라마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저 가까이에서 놈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