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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5화 (15/251)

00015  두 번째 접속  =========================================================================

“아, 미션 하는 거 처음이라고 했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들을 따라 가는 게 티가 났는지 레베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미소를 보며 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나무가 있는 곳까지 가는 거, 시간이 오래 걸리나?”

“아뇨. 오래 걸리지 않아요. 저도 아직 해보지 않아서 듣기만 했는데, 어떤 천사가 미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보내준대요.”

“천사가?”

“신기하죠? 여긴 정말 신기한 곳 투성인 것 같아요. 처음엔 싸워야 한다고 해서 무서웠는데, 이렇게 지켜주는 분들이 계시니까 든든한 거 있죠.”

“......”

그러고 보니 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천사들에게 각자 소원을 한 가지씩 빌고 온 사람들이었다. 태상은 이 강한 곳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약한 여자가 무슨 소원을 빌었을지 궁금해졌다. 싸워야 한다고 해서 무서웠다면서 도대체 그 두려움을 이길 만큼 얻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넌 소원, 뭐 빌었어? 이곳이 그렇게 무서웠으면 그냥 소원을 안 빌고 오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태상의 물음에 레베카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우물쭈물거리며 말하기 곤란해 하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에선 그렇게 소원 물어보는 거, 불문율이래요. 각자 개인적인 사정은 매너있게 묻지 않아 주는 거에요.”

매너니 뭐니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가 궁금하다는데.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태상인지라 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래서 얘기 안 해 줄 거야?”

태상의 물음에 결국 레베카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녀의 소원은 시시했다.

“.....제가 몸이 많이 약해요. 그래서 그 병을 낫게 해달라고 했어요.”

“뭐야, 고작 그걸 빈 거야?”

“고작이 아니에요. 전 원래 스무살을 넘기지 못할 거란 말을 듣던 시한부였어요. 죽어가고 있는 절 살려 준 게 천사님이었어요! 저한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어요.”

“......”

그냥 몸이 좀 약한 줄 알았지 그렇게까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인지 몰랐다. 태상은 레베카에게 실례를 한 것임을 깨달았다. 비록 그녀가 말을 하지 않아 생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난 그냥 몸이 조금 약한 줄 알았지. 다른 사람들은 좀 더 근사한 소원을 할 거라 생각했거든. 근데 다른 소원보다도 네 소원이 제일 화려하고 짱이네. 목숨을 얻었을 거니까.”

태상의 말에 그녀의 마음이 조금 풀렸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던 그녀가 태상에게 물어왔다.

“그럼 오빠는 무슨 소원을 비셨는데요?”

“내 소원이라....”

태상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 하려면 엄청나게 복잡할 것이다. 하루 아침사이에 내 몸이 바뀌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다른 악마 쪽 사람의 짓이었고 자신은 그 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왔다는 이런저런 얘기를 모두 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얘기를 안 해주기는 더 뭐했다.

그녀는 말하고 싶지 않은 얘기를 그의 재촉이 어쩔 수 없이 털어 놓은 상태였다. 자기만 듣고 입 씻기에는 태상의 입장이 곤란했다. 결국 그가 큰맘 먹고 그녀에게 말했다.

“난 우리 가족들 지켜달라고 빌었어.”

“네??”

레베카는 태상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질 못했다. 가족을 지켜달라는 걸 왜 소원으로 썼다는 게 거짓말로 느껴졌다.

“그게 무슨 소원이에요. 거짓말 하시는 거죠?”

“거짓말 아닌데. 진짜 그거 빌었어.”

“가족들 목숨을 누가 노려요? 아니면 진짜 부모님이 자식들 잘 되라고 기원하듯이 그런 뜻으로 빈 거에요?”

후자면 정말 태상의 이미지와는 맞지가 않았다. 얼굴이미지 말고 성격에서 말이다. 그의 얼굴은 부드럽고 다정한 이미지였지만 성격은 툴툴대고 솔직하게 표현하면 싸가지가 없었다.

“설마 그런 거겠어? 사실 내 사정이 복잡하거든. 어떤 놈이...”

“도착했다! 다들 안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시작하려던 태상은 일행이 걷는 걸 멈추고, 반의 목소리가 들려와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들어오라는 곳을 보니 바닥에 이상한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그 옆에는 정말 그녀가 얘기한 데로 천사가 있고 말이다.

흰 날개를 펄럭거리는 천사가 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머지 일행이 그 무늬 위에 서자 반이 말했다.

“이동한다. 준비해.”

무슨 준비를 하라는 건지 알지 못해 그냥 멀뚱히 서 있었다. 그런데 다른 이들도 딱히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반까지 무늬 안으로 들어가 옹기종기 보이자 무늬들이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태상은 몸을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져야 했다.

세상이 빙글 돌고, 멀미가 나듯 속이 울렁거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닥에 쓰러진 건 그 뿐만 아니라 레베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와 태상이 힘들어하는 것에 비해 다른 일행은 멀쩡하게 서 있었다. 다만 약간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뿐이었다.

“쿨럭, 이거 뭐야?!”

태상이 정신없어 하면서 물었다. 그러자 반이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큭큭, 그래서 준비 하라고 했잖냐.”

“이게 도대체 뭔데!? 하아...! 젠장.”

“미션을 하는 곳으로 이동시켜주는 이동마법진이다. 주변을 봐라.”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자 아까 전까지만 해도 옆에 있던 천사가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주변 풍경도 전부 달라져 있었다. 도시 한 복판이었던 곳이 갑자기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분명 숲 속이었다.

공간이 바뀌는 건 라마스 때문에 익숙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바뀌게 될 줄은 몰랐기에 잠시 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재밌지?”

“....전혀. 하나도 안 재밌어. 얘기 좀 해줬으면 좋았잖아.”

옆을 보니 마찬가지로 속이 뒤집힌 레베카를 안나가 달래고 있었다. 그녀에겐 물도 건네주면서 말이다. 왜 자신은 안 챙겨 주냐고 묻기엔 유치하니 휙 하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원래 이런 건 직접 경험으로 겪으면서 익숙해지는 거다.”

반이 태상의 어깨를 토닥였다. 태상이 바닥에서 일어나 잠시 머리를 부여잡고 흔들었다.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이런 것에 어떻게 적응을 하라는 건지 잠시 막막해졌다. 레베카와 태상의 속이 진정되자 일행은 일을 떠날 준비를 했다.

“우리가 지금 가는 곳은 다들 알다시피 황금나무다. 황금나무를 지키는 괴물, 정확히 우리들의 말로 하자면 악마가 있을 거다. 그 악마를 죽이고, 사과를 얻어 와야 한다. 황금나무에는 단 한 개의 황금사과만 걸려 있다. 그러니 총 두 명의 악마를 죽여야 한다는 뜻이다.”

‘악마....’

드디어 직접적으로 악마와 만나는 첫 순간이었다. 태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떤 놈일까.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뺏어간 그놈은 말이다.

앞으로 수없이 죽여야 할 존재였다.

“고작 F등급 밖에 안 되는 거니 너무 긴장들 하지 말라고. 그렇다고 너무 풀면 실수하니까 뭐든 적당히. 적당히 가자.”

“레베카는 뒤쪽에서 어떻게 사냥을 하는지 보는 걸 위주로 해줬으면 좋겠어. 강태상 당신은 다니엘 옆에서 어떻게 공격하는지 잘 보고 배우도록 하고요.”

반이 먼저 이야기를 하고, 뒤를 이어 안나가 말했다.

하지만 태상은 다니엘 옆에 쫄래쫄래 쫓아다니며 배우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그는 직접 전투를 경험해보고 싶어 미션을 하러 온 거였다. 당연히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들 일행은 얼마 걷지 않아 드디어 황금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름에 걸맞게 나무부터 잎까지 모두 황금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아름답고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 광경에 눈을 빼앗기기 전에 그곳 주변을 쿵! 쿵! 하는 소리를 내며 걸어 다니고 있는 악마가 보였다.

놈의 몸 이곳저곳에는 이끼가 끼어 푸른색을 띄고 있었는데, 엄연히 바위로 만들어진 놈이었다. 황금 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있었는데, 두 놈이 그 나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지키고 있었다.

“자, 저게 바로 F등급 악마다. F등급의 악마는 이성 없이 오로지 본능만 갖고 있는 놈들이지. 그래서 생각보다 상대하기 쉬운 편이다. 놈들의 공격 패턴이 일정하거든. 패턴만 잘 익히면 크게 다치지 않고도 놈들을 상대할 수 있지. 그래서 심장의 질이 떨어지는 편이기도 하고.”

반은 레베카와 태상을 위해 그렇게 놈에 대해 브리핑을 해주었다.

저런 비슷한 놈들은 이미 라마스가 만들어 준 놈들과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 태상은 놈을 혼자서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시한데?’

딱 보기에도 느려 보이는 놈이었다. 저런 놈은 몇 대 갈기기만 해도 쉽게 나가떨어질 놈이었다. 태상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저 놈은 자신보다 약한 놈이라는 것을 말이다.

“자, 보고 배우라고 신참.”

반과 다니엘 그리고 안나의 공격이 시작됐다.

그들이 모든 힘을 다 사용하면 저놈은 반의 공격 한 번에 나가떨어지고 말 것이다. 해서 그들은 일부러 힘을 줄여 레베카와 태상에게 공격을 하는 패턴을 알려줄 심산이었다.

다니엘이 가장 먼저 한 마리를 유인하기 위해 활을 들었다. 그는 허공을 겨누며 쐈고, 신기하게도 그 화살은 바위악마에게 정확히 꽂혔다.

기본적인 상식으로는 바위에 화살촉이 꽂히는 건 말이 되질 않는데, 신기하게도 화살촉은 놈의 몸을 뚫고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화가 난 바위악마가 눈을 붉은 빛으로 번쩍거리며 다니엘을 향해 정확히 노려봤다.

그놈이 쿵! 쿵!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 놈은 생각보다 민첩하게 다니엘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나 다니엘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반이 칼보단 방패를 들어 놈을 향해 내리쳤다.

방패에 맞은 바위악마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전투를 보는 태상의 감상평은 ‘시시하다’였다. 하지만 레베카는 두 손을 가슴에 모와 잡고, 전전긍긍하며 초조하게 그들의 전투를 보고 있었다.

방패에 한 번 맞았을 뿐인데, 놈은 거의 전투 불능의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만큼 반과 바위악마의 차이가 컸던 탓이다. 안나가 그것을 보고 반에게 말했다.

“너무 쌔게 치셨어요.”

반이 머리를 긁적였다.

“음...약하게 한다고 한 건데, 힘 조절을 못했군.”

‘확실히 강하긴 하네.’

놈은 거의 빌빌 대고 있어서 전투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었다. 낑낑거리며 그래도 죽이겠다고 꿈틀거리는 놈이었다.

“이런 거 못 죽이겠다고 징징거리는 놈은 아닌 것 같은데. 마무리 한 번 해보겠어?”

반이 태상에게 말했다.

누구나 처음에는 살생을 꺼려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태상에겐 그다지 필요 없는 배려였다. 하지만 굳이 귀찮게 설명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그는 손에 든 마나건을 놈에게 겨눴다.

꿈틀거리더니 결국 몸을 일으킨 놈이 크워어어어어!! 하고 포효를 했다.

놈이 소리를 지르자 황금나무 주변을 돌고 있던 다른 한 놈의 시선이 태상을 향했다. 아무래도 그 포효로 놈이 동료를 부른 듯싶었다. 태상은 총으로 포효를 한 놈의 미간에 총을 쏘아 죽이고 뒤를 돌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놈을 바라봤다.

다니엘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활에 시위를 겨눴지만 반이 그를 막았다.

“잠깐, 기다려봐. 좀 두고 봐보자고.”

“위험할 텐데요.”

“저것 좀 보라고. 저놈, 도망치질 않잖아. 도망을 안 가는 건 딱 두 가지 이유에서지. 도망을 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워서 몸이 굳었거나, 아니면 놈을 상대할 자신이 있을 때나.”

반이 씨익 웃었다. 이번 기회가 태상이 어떤 놈이 될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기대처럼 태상은 무서움에 몸이 굳은 게 아니라 놈을 죽일 자신이 있어 가만히 서 있는 거였다. 그가 달려오는 놈을 똑바로 쳐다보며 총을 겨눴다.

“꺄악!”

레베카가 질끈 눈을 감으며 비명을 질렀다.

바위악마가 태상을 향해 땅을 박차고 뛰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탕! 탕! 탕!! 커다란 총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

휘이잉~

일행들 사이를 훑고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갔다.

침묵이 돈 일행들 사이에서 반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큭...정말 화끈한 놈이잖아?”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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